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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보상이라고요?”
학철이 리얀에게 물었다.
“받아라.”
리얀이 엄지손가락을 튕겨서 뭔가를 날렸다.
챙!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뭔가 반짝이는 것이 학철을 향해 날아왔다. 학철은 반사적으로 그것을 받았다.
“어라, 이건?”
노란색으로 반짝이는 금화였다. 언젠가 금으로 된 돌반지를 본 적은 있었지만 진짜 금화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금이라 그런지 크기에 비해서 무게도 아주 묵직했다.
‘아기 손가락에 맞는 종잇장만 한 금반지가 한 20만 원 정도 하던데… 그럼 이 정도 금이라면 수백만 원 하겠네? 삼백? 사백?’
“계약금이라고 생각해라.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그에 따르는 전리품도 모두 주겠다.”
진지한 목소리였다. 뭔지는 몰라도 아주 심각한 일을 하러 온 모양이었다.
“저기요, 그런데 리얀 님, 정체가 뭐에요? 아까 마법사 어쩌고 하는 걸 들은 것 같긴 한데….”
학철은 금화를 만지작거리면서 물었다.
“나는 마법사다. 다른 세계에서 차원이동문을 통과해 이곳으로 왔다.”
리얀은 황당한 소리를 너무나도 당당하게 하고 있었다.
“차, 차원이동문요?”
학철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
“아니, 굳이 왜 다른 세계에서 여기로 오셨어요?”
“나는 흑마법사를 추적하고 있다. 내가 살았던 곳에서 전쟁을 일으켰던 원흉이다. 나는 흑마법사를 죽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리얀이 말했다.
“흑마법사요?”
마법사와 흑마법사. 학철은 도저히 믿기가 어려웠다.
“학철. 이 세계에는 마법사가 없느냐?”
“있긴 하죠. 이은결이나, 최현우… 아, 그러고 보니까 며칠 전에 요 앞 공원에서 누가 공연도 했어요. 이은결이었나?”
“네가 말하는 마법사는 공연예술가를 말한다. 눈속임으로 관객들에게 환상과 즐거움을 주는 공연예술가 말이다. 나는 그런 눈속임을 쓰는 예술가가 아닌, 진짜 마법사다.”
분명 뭔가 붉은 기운을 피우고, 그 기운으로 총알을 막고, 핏방울을 이용해 사람 뒤통수에 구멍을 뚫고, 또 시체를 감쪽같이 사라지게 하는 걸 봤으니 이 말을 믿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기 힘든 말이기는 했다.
“아, 예, 그, 그래요. 일단 마법사라고 해요. 그런데 다른 세계에서 오셨다면서 한국말을 정말 잘하시네요? 여기 오래 사신 거 아닌가요?”
“마법이다.”
리얀은 이렇게 말하면서 학철 쪽으로 성큼 다가왔다. 학철은 움찔했지만 꾹 참고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내 눈을 보아라.”
리얀의 눈동자는 짙은 갈색이었다. 그런데 눈동자를 바라보자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 어지러웠다.
- 내 말을 이해하겠느냐?
리얀이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외국어로 학철에게 물었다.
- 어? 이게 어느 나라 말이죠? 제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알바 하면서 별별 외국어 다 들어봤는데 이런 말은 처음인데….
학철은 자신의 입에서 난생 처음 들어보는 외국어가 술술 나오자 스스로 놀라면서도 말을 계속 이어갔다.
- 정신 감응 마법이다. 이국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마법이다. 지금처럼 타인이 외국어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줄 수도 있다.
“와!”
학철은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마법이 신기해서 탄성을 냈다.
- 혹시 그럼 저, 나중에 영어 쓸 수 있게 해 주실 수도 있어요?
학철은 토익 점수가 안 올라서 짜증 났던 걸 떠올리면서 물었다.
“해 줄 수 있다. 네가 원하는 외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만날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은 우선 날 도와야 한다.”
리얀은 한국어로 바꿔서 말했다.
“어, 저기, 그러니까, 제가 뭘 해야 하나요?”
“나에게 권총을 쓴 녀석, 그 녀석은 분명 흑마법사의 부하일 것이다.”
리얀이 조금 전 죽은 사내가 있던 곳을 물끄러미 보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흑마법사는 이곳에 오래전부터 와서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연히 조직도 있을 것이고, 나름대로 방어 준비도 마쳤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단순히 흑마법사를 추적해서 죽인다는 내 계획은 이미 틀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음. 그렇겠네요.”
“우선 놈들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집결지는 어디인지, 보급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다시 말해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그런데 제가 그런 걸, 그런 정보를 모으고 그런 건 못 할 거 같은데요….”
학철은 자신 없는 투로 작게 말했다.
“당연히 정보를 모으는 일은 내가 한다. 일개 여관 종업원에게 그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아, 예, 그러시군요….”
다행이다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무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섭섭하게 생각할 것 없다. 너에게는 합당한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학철은 만지작거리고 있던 금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자 리얀이 학철 쪽으로 성큼 다가왔다. 다시 한번 짙은 갈색 눈동자를 마주치자 머리가 핑 돌았다.
‘뭐지? 또 외국어인가?’
하지만 아니었다. 학철은 뭔가 이질적인 것이 자신의 의식을 헤집어 놓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주 찝찝한 기분이었다.
“학철. 너는 군사 경험이 있구나?”
리얀이 물었다.
“예. 보병 부대 전역했어요. 행정병으로요. 그런데 어떻게….”
“정신 감응 마법이다. 간단한 과거는 읽을 수 있다. 학철. 너는 그냥 단순한 여관 종업원이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내가 사람은 제대로 고른 것 같구나.”
리얀은 환하게 웃었다.
“저기요, 제대로 고른 게 아니라 그냥 우연히 여기로 온 거 아닌가요?”
“학철. 군사 경험이 있으니 사주경계가 뭔지 알고 있겠지?”
리얀은 학철의 질문은 무시하고 말했다.
“그야….”
“나는 지금부터 이 주변을 정찰할 것이다.”
리얀은 단검을 뽑아들면서 말했다.
“저, 그런 거 들고 나가 봐야, 녀석들은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는데 도움이 될까요?”
학철이 질문을 하자, 리얀은 단검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베었다.
“으악!”
순식간에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리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원래 마법이란 에테르를 물리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나는 에테르를 이용해 적을 불태워 버리는 마법이 특기다. 그런데 이 세계 공기 속에는 에테르가 없다. 그래서 내 몸속에 녹아 있는 에테르를 이용하기 위해 이렇게 피를 내는 것이다.”
리얀이 설명했지만 학철은 그저 흐르는 피를 바라보는 데 정신이 팔려 설명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피는 마치 안개가 피어오르듯 붉은 기운으로 바뀌고 있었다. 리얀의 말이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조금 전 날아오는 총알을 막은 붉은 기운이 바로 리얀의 피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건 분명해 보였다.
“이제부터 나는 이 에테르를 이 여관 주변으로 보내 정찰을 할 것이다. 학철. 너는 그 사이에 출입구를 봉쇄하라.”
명령이었다.
“봉쇄하라고요?”
“그래. 내가 이 에테르를 이용해서 정찰을 하는 사이, 누구도 이곳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는 말이다. 사주경계.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예, 그건 알겠는데요….”
조금 전 리얀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피는 어느 사이 붉은 기운이 되었다. 그리고 그 붉은 기운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게스트하우스의 출입구 쪽으로 움직였다.
학철은 그 움직임을 넋 놓고 보고 있었다.
“학철. 나는 이 에테르의 움직임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니 그 사이에 내가 공격받지 않도록 출입구를 지켜라.”
리얀은 이렇게 말하며 칼로 갈라진 자신의 손바닥을 응시했다. 그러자 손바닥은 한순간에 언제 상처가 있었는지도 모르게 깨끗하게 치료되었다.
“어서!”
넋을 놓고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는데, 리얀이 날카롭게 명령했다.
“예!”
학철은 군대에서 직속상관의 명령을 따르는 것처럼 잽싸게 게스트하우스 출입구 밖으로 나갔다.
밖은 여전히 축제였다. 홍대 부근을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즐거워 보였다.
“아, 이게 뭐야….”
학철은 세탁실에 놓아둔 권총을 들고 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권총을 들고 있다고 해서 여기서 총격전을 벌일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당장 체포될 거야. 아니, 그 전에 경찰 총에 맞아서 죽을지도 몰라.’
마침 학철 앞을 다정해 보이는 연인이 거의 부둥켜안고서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데이트하고 있는데 여기서 총격전이라니. 말도 안 돼.’
조금 전에 여기서 총격전이 벌어졌었고,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런데 진짜 누가 오면 어떻게 막지? 맨손으로? 권총으로 무장한 놈들을 무슨 수로?’
불쑥 이런 생각이 들자 겁이 더럭 났다. 이대로 이 세상 하직하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됐다.
‘진짜 아무리 심심했어도 이런 경험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닌데….’
“학철! 뭐 해?”
누군가 큰 소리로 학철을 불렀다. 학철은 깜짝 놀라서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키 큰 백인이 하나 서 있었다.
지은이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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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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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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