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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홍대 가다-2화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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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카레프 권총. 일명 TT 권총.

러시아 군대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부산이나 인천 등지에서 러시아 선원들을 통해서 밀수된다고 알려져 있다.

덩치 큰 사내는 바로 이 토카레프 권총을 들고 빨간 머리 여자를 겨냥하고 있었다.

“넌 뭐냐?”

사내가 학철을 보며 물었다.

“저, 저요? 여기 알바인데요?”

“안됐네. 알바 하다가 총 맞아 죽게 됐으니.”

사내가 혀를 끌끌 찼다.

곧 죽게 생겼다는 말을 들었지만, 학철은 머리가 멍했다. 실감이 나질 않았다.

“나에게 같은 수법이 두 번 통할 것 같은가?”

빨간 머리 여자가 사내에게 말했다.

“백 번도 통하지. 이거, 권총이야, 권총. 이런 거 처음 보지?”

“아까 봤다. 그리고 나에게 같은 수법이 두 번 통할 거라고 생각하다니, 모욕이다.”

“아, 예. 어련하시겠습니까. 그럼 이만 가시죠, 마법사님.”

말을 마친 사내는 들고 있던 토카레프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쾅!

실내에서 듣는 총성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거대한 폭발음은 고막을 찢을 듯이 크게 울린다.

학철도 거대한 총성에 충격을 받았다. 귀에서 이명이 울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충격적인 것은 빨간 머리 여자 앞, 허공에 떠 있는 탄두였다. 탄두는 유선형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공중에 떠 있었다.

“어, 어라?”

사내도 놀랐는지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더 해 봐라. 백번도 통하는지. 어서!”

빨간 머리 여자의 도발에 사내는 연이어 방아쇠를 당겼다.

쾅! 쾅! 쾅!

하지만 이번에도 토카레프 권총에서 발사된 총탄은 어김없이 빨간 머리 여자 앞에 멈췄다.

학철은 연이은 거대한 총성 때문에 정신이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탄두가 그냥 저절로 멈추는 게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빨간 머리 여자 앞에는 희미하지만 붉은색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총탄은 날아와 바로 그 붉은 기운을 뚫지 못하고 멈추었다.

“내 차례다.”

여자는 사내를 향해서 가벼운 손짓을 보냈다. 그러자 붉은 기운 속에 박혀 있던 네 개의 탄두가 동시에 사내를 향해 날아갔다.

“으악!”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학철은 무슨 일인지 알기 위해 사내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했다.

사내는 양어깨와 양 허벅지에 구멍이 뚫린 상태로 잠시 서 있다가 무릎을 꿇으면서 앞으로 쓰러졌다. 입에서는 고통으로 가득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들고 있던 토카레프 권총은 바닥에 떨어졌다.

“저 권총, 치워라.”

빨간 머리 여자가 학철을 보고 명령했다. 학철은 대꾸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여자의 명령을 따랐다. 시커먼 토카레프 권총은 예상보다 훨씬 묵직했다.

“이제 내가 질문을 하겠다. 질문은 딱 한 번만 한다. 대답하지 않거나 거짓을 말하면 죽는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여자는 쓰러진 사내의 귓가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조… 좆까.”

사내가 고통을 참으며 간신히 내뱉은 말은 욕설이었다.

“지금 밖에 몇 놈이나 있지?”

“좆까라고!”

사내는 협조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빨간 머리 여자가 손에 묻어 있던 피 한 방울을 남자의 뒤통수에 떨어뜨렸다.

“딱 한 번만 묻겠다고 말했을 텐데.”

다음 순간, 사내의 뒤통수에 떨어진 핏방울에서 단백질이 타는 고약한 냄새와 함께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으으으아아아악!”

사내의 사지가 마치 감전된 사람처럼 부들거렸다. 학철은 그 광경이 너무 끔찍해서 하마터면 들고 있던 권총을 떨어뜨릴 뻔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지금 날 추적하는 놈이 몇이지?”

“으아아아아! 조, 좆까! 으아아악!”

사내는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뒤틀면서도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잠시였다.

뻑!

두개골이 뚫리는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렸다. 뭔가가 사내의 뒤통수를 뚫고 들어가 뇌를 파괴한 모양이었다. 사내는 팔다리를 쭉 뻗고는 그대로 모든 동작을 멈췄다.

“기, 기절한 건가요?”

학철이 빨간 머리 여자에게 물었다.

“아니. 죽었다. 머리가 뚫렸으니까. 지금 여기, 이곳이 여관 맞느냐?”

여자는 사람이 죽은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답한 다음 학철에게 물었다.

“예, 예, 게스트하우스니까, 예, 그,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그럼 너는 여기서 일하는 종업원인가?”

“예, 맞아요.”

“이름이 무엇이냐?”

“학철요. 오학철.”

“그래. 나는 리얀. 리얀이라고 한다. 본의 아니게 내 일에 끼어들게 되어서 유감이다.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너는 날 도와야 한다.”

통성명을 하기는 했지만 학철은 여전히 지금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 게 옳은지 알 수가 없었다.

“저기, 그게요, 저희 사장님도 지금 안 계시고….”

“학철. 나는 지금 부탁하는 게 아니다. 날 돕지 않으면 너도 죽는다. 조금 전에 못 보았느냐?”

학철은 지금 사지를 쭉 뻗고 죽어 있는 사내가 자신을 향해서 했던 말을 똑똑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안됐네. 알바 하다가 총 맞아 죽게 됐으니.’

“알았어요, 알았어요. 리얀 님이라고 하셨죠? 그런데요, 일단 경찰을 불러야 할 거 같아요. 안 그러면 사장님 오셨을 때….”

학철이 말하거나 말거나 리얀은 뭔가 정신을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바닥에 떨어져있던 핏방울들이 리얀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조금 전 보았던, 붉은 빛이 도는 기운이 리얀의 주변을 휘감았다.

리얀의 주변을 휘감은 붉은 기운은 이윽고 핏방울이 되어 뭉쳐졌다. 리얀은 그 핏방울을 죽은 사내의 등 뒤로 떨어뜨렸다.

한 방울. 두 방울.

핏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죽은 사내의 신체가 마치 지우개로 지우는 것처럼 사라져 갔다.

“어, 어, 저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내의 시체는 언제 있었냐는 듯 깔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아주 작은 얼룩이 바닥에 남았을 뿐이다.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핏자국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학철! 날 돕겠다고 했으니 일단 옷을 가지고 오거라.”

리얀이 학철에게 말했다.

“아니, 제가요, 돕겠다고 직접 말한 적은 없는 거 같은데요….”

“내가 입고 있던 옷은 피가 묻어서 눈에 뜨인다. 눈에 뜨이지 않을만한, 편한 옷으로 부탁한다. 그리고 내 머리카락을 숨길만 한 모자도 부탁한다. 어서!”

리얀은 학철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했다. 학철은 하얀 천 쪼가리만 두르고 있는 여자에게 이런 심한 공포를 느낀 적이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 생각하면서, 세탁실에 있는 옷가지를 챙겼다.

“뭐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역시 경찰을 불러야 하나? 아냐. 경찰 불러 봐야 아무것도 없잖아? 시체도 없고, 피도 없고. 권총이 있긴 하지만… 권총 보여주고 상황 설명해 봐야 믿어 줄까? 그냥 불법무기소지 같은 걸로 내가 잡혀가는 거 아냐?”

학철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옷가지를 챙겼다. 빨간 머리 여자, 리얀은 키가 크고 덩치도 큰 편이니까 남자 청바지와 큰 후드티면 될 거 같았다.

권총은 세탁실 구석에 던져놓았다. 그런 물건을 들고 있다가는 오히려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갈 것만 같았다.

세탁실에서 나와 다시 로비로 갔을 때, 리얀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로비는 평온했다. 방금 벌어진 일이 거짓말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공기 중에서 풍기는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아니었다면, 학철은 자신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을 것이다.

“그 옷이냐?”

리얀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리얀의 피부는 도자기처럼 깨끗했다. 걸치고 있는 하얀 천도 깔끔했다.

‘조금 전에 피가 묻은 걸 분명히 봤는데. 뭐지?’

학철은 리얀의 하얀 피부 쪽으로 시선이 가는 걸 억지로 참으면서 청바지와 후드티를 건네주었다.

리얀은 학철의 시선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옷을 입었다.

“허리가 좀 크구나. 하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

리얀이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다만 후드티는 짧아서 팔을 들어 올리자 배꼽이 훤히 드러났다. 꽤 큰 후드티였지만 어깨도 넓고 가슴이 커서 그런 것 같았다.

‘리얀이라고 했지? 분명 우리나라 사람은 아냐. 얼굴도 그렇고, 몸매도 그렇고. 그런데 한국말이 너무 유창한데… 여기서 오래 살았나?’

“학철. 날 노리는 놈들이 지금 밖에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이 세계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이다. 마침 너를 만났으니, 결국 너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구나.”

“저기요, 리얀 님. 제가 진짜 좀 심심하다고, 지루하다고 불평을 하긴 했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일을 겪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학철이 말했다.

“학철. 네 심정은 이해가 간다. 고작 여관의 잔심부름이나 하는 일꾼 주제에 이런 일을 겪게 되어서 유감이다.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나는 놈들에게 죽는다. 그리고 내가 죽는다면, 당연히 너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기분 나쁜 소리였다. 일꾼 주제라니!

“살아남지 못할 거라니, 무슨 그런 악담을 하세요….”

하지만 학철은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리얀의 눈초리가 너무 매서웠다.

“학철. 조금 전에 날 노렸던 녀석, 뒤통수에 구멍이 뚫리는 걸 보고도 그런 말을 하느냐?”

조금 전 사내가 죽을 때 사지를 쭉 뻗었던 광경이 떠올랐다. 오싹했다.

“그게 아니라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당연히 그만한 보상도 있을 것이다.”

리얀이 말했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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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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