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6)
서두르기는 했어도 오빠의 장례식은 아무런 문제 없이 끝이 났다.
장례 이틀 되는 날, 시신은 화장터로 옮겨졌고, 몇 시간 만에 가루가 된 오빠의 잔재는 인천 앞바다에 뿌려졌다.
몇 주 뒤, 중국으로 밀항하려던 우지만도 인천에서 잡혔다.
체포된 후 김아인 변호사가 사실은 나라는 사실을 줄기차게 호소했지만, 그를 진지하게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운명이었을까?
그날 동묘 사무실로 경찰들이 들이닥쳤을 당시, 우지만은 너무 급히 도망쳤던 바람에 그 자리에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고졸 쌍둥이 여동생이 식물인간이 된 오빠의 신분을 이용해 2년 넘게 로펌 변호사를 했다는 그의 주장은 아무런 물증 없이 터무니없게 들렸고,
그로 인해, 그는 유죄 판결을 받기 전까지 여덟 번이나 마약 검사를 받게 되었다.
내가 그에게 주었던 7천만 원은 신기하게도 고스란히 내 손에 돌아왔다.
나중에 들었다. 그날 동묘 사무실로 들이닥친 경찰은 우지만을 잡으려고 온 게 아니라 관련 없는 사건 팁이 있다는 핑계로 서지우가 부른 경찰들이었다는 걸.
우지만에게 목덜미를 잡히고 오빠가 죽을 때까지만 해도 세상이 나를 집어삼키는 줄만 알았는데.
조만간 감옥에 가게 될 것 같아 두려웠는데.
막상 모든 게 끝나고 나자, 허무하리만큼 조용했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그 남자가 막아줬다.
*
“엄마, 오빠 죽었어.”
“···.”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던 오빠가 하늘나라 갔다고.”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엄마는 오빠의 부고 소식에 허공만 쳐다봤다.
불쌍한 사람.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죽었는데도 그리워하지도 못하고.
“엄마, 아인이가 먼저 태어났어요? 아니면 내가 먼저 태어났어요?”
그 뒤로 몇 번 더 물어봤지만, 엄마는 끝내 대답해주지 않았다.
딱히 상관없었다.
궁금하기는 했어도 어떤 답이든 앞으로 내 인생이 바뀔 것도 없었으니까.
자극적인 질문들은 던지면 혹여 그녀의 상태가 좋아질까 해서 던지는 질문일 뿐.
“아인이 뿌려진 곳에 가보고 싶으면 말해요. 언제든 데려가 줄게.”
2년 뒤, 엄마도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살아생전 아인이가 뿌려진 곳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죽어서는 가볼 수 있었다.
어디 다른 연고도 없었기에, 엄마의 장례도 바다장으로 치렀다.
*
오빠 장례가 끝나고 얼마 뒤,
서 변호사님이 찾아왔다.
“어떻게 지내?”
미안하다고, 죽을죄를 지었다고 빌고 싶었지만, 너무나 죄송한 나머지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고맙습니다.”
겨우 떨어진 입술 사이로,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하자, 그가 다시 물었다.
“돈 때문이었나?”
돈 때문이었다.
여러 말을 더해봤자, 의미 없었다.
결국은 ‘돈’ 때문이었으니까.
“···죄송해요. 대표님한테는···대표님 볼 면목이 없습니다···.”
내 대답에 그는 전혀 대수롭지 않은 듯 나를 바라봤다.
“그럼 지금은? 지금은 필요 없고?”
“···예?”
“나는 김 변, 아니, 김이 계속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무슨···?”
“김이 하겠다고만 하면 지원해 줄 맘 있어. 회사 차원에서.”
눈물을 흘리면 가식적으로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아까부터 꾹 참고 있었다.
그런데,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코끝이 찡해졌다.
“왜···저한테 이렇게까지···잘해주시나요?”
“우리 식구니까.”
“제가 뭐라고···흑흑···변호사님도 속이고, 다 속였는데···흑흑.”
피식-
“나는 세상 사람 전체를 상대로 사기를 쳤는데···.”
“네? 그게 무슨···?”
“정리되면, 전화해.”
다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받고 새 출발 할 수 있었다.
기적이란 말 외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
‘왜 그랬을까?’
그냥 그러고 싶었다.
김아인이 김아리였다는 사실은 안 순간, 신기하게도 배신감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헛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그걸 눈치채지 못했지?’
그리고는 한 조각 어긋나있던 퍼즐이 드디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쌍둥이 오빠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우지만 따위는 문젯거리가 되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했다.
화장만 하면 끝날 일이었다.
그의 전화기에 있는 사진들이 성가실 순 있었지만, 누군지 알아보기도 힘든 환자 사진 몇 장 가지고는 경찰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피해자가 없었다.
수배 중인 사기꾼이 하는 말 하나 따위에 피해자도 없는 사건을 수사할 경찰은 없었다.
만에 하나 수사가 시작된다고 한들, 믿을 구석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지만은 한방에 떨어져 나갔다.
고맙게도 전화기까지 떨어뜨리고 가는 바람에 성가실 것도 없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정리되고, 그녀의 집을 찾았다.
장례식 때도 느꼈지만,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어떻게 여자란 걸 모를 수 있었지?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김 변, 아니, 김이 계속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무슨···?”
“김이 하겠다고만 하면 지원해 줄 맘 있어. 회사 차원에서.”
그러고 싶었다.
궁금했다.
좀 더 지켜보고 싶었다.
오빠의 신분에 봉인되지 그녀의 진짜 능력을.
본 모습을.
나와 정반대되는 해마체 모양을 가졌다는 점도 분명 이유 중 하나였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었다.
김은 내가 아는 가장 변호사다운 변호사였기에.
제안했다.
그녀가 진짜 변호사가 될 수 있도록.
다행히, 김아리는 내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는 새로이, 계속 <해결>의 식구가 되었다.
---*--
3년 뒤···
강남, 도산병원.
“허- 참, 신기하네.”
MRI 사진을 보고 있는 고세윤 신경외과장은 혀를 내둘렀다.
“왜요?”
“완전 정상이 됐어. 이 정도면 정상이지. 자, 보라고 이랬던 게, 지금 이렇게 줄어들었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고세윤은 지우가 볼 수 있도록 자신의 모니터를 돌려 최신과 예전 MRI 사진들을 가리켰다.
“그 사람 거는 어떻게 됐나요?”
“김아리 양? 아리 양도 자네랑 똑같아. 둘이 나 모르게 어디 다른 데서 치료받는 거는 아니지?”
“치료제가 없다면서요?”
“없어. 없는데···. 허- 참, 신기하네. 이게 둘 중 하나만 그런 거면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둘 다 이러니 이건 원···.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아니면 마법이든가. 아무튼 의학적으로 설명이 안 돼.”
비대했던 해마체가 줄어들었다.
그건 아리의 뇌도 마찬가지였다.
담담한 척 물었지만, 서지우도 신기했다.
자신이야 삭제 능력을 더는 쓰지 않았기에 그렇다고 추측해볼 수 있지만, 아리의 해마체는 왜 줄어들었을까?
징징-
[혜린: 어디야? 회사야?]
[지우: 아니. 왜?]
[혜린: 저녁때 잠깐 볼 수 있어? 줄 게 있는데.]
[지우: 이따가 회사로 오던가. 급한 거면, 퀵으로 보내고.]
[혜린: 급한 거 아니야. 회사는 좀 그렇고. 그럼 이따가 바에서 봐. 10시?]
[지우: 바?]
---*---
법무법인 해결.
도산공원 뒤편, 해결이 있던 건물은 증축되어 이제 5층짜리 건물이 되었다.
변호사실도 늘어 이제는 열 명의 소속되어 있는 중견 로펌이다.
“김 변, 그 이메일이 며칠자였지?”
“어떤 이메일이요?”
“그 로건 피어스에서 숲 엔터테인먼트에 2022년인가 2023년에 보냈던 이메일. 계약 조건 변경 사항들 정리해놓은 이메일.”
“2022년 3월 12일 4시 32분 이메일이요.”
“혹시 발신인 기억해?”
“제인 쏜이요. 이메일이 [email protected]이에요.”
“땡큐, 김 변.”
“변호사님, 자꾸 저를 김 변이라고 부르시는데, 저 변호사 아닙니다.”
“아, 미안. 자꾸 헷갈려서···. 그리고, 뭐 변호사 될 거 아니야.”
“윤 변호사님이 자꾸 김 변이라고 부르니까, 다른 어쏘 변호사님들도 저를 자꾸 변호사로 혼동하시잖아요. 조심해야지, 자칫 잘못하면 변호사법 위반입니다.”
“아우- 알았어, 알았어. 우리끼리 있을 때, 말실수 한 거 가지고, 변호사법까지 운운하고 그래. 하여튼, 변호사보다 더 무섭다니까. 오늘 저녁 회식 때 올 거지?”
“안 됩니다. 시험이 얼마 안 남아서 공부하러 가야 해요.”
“에이- 김 변, 아니 김 정도면 껌이잖아. 포토그래픽 메모리가 뭐가 걱정이야.”
“장학금 받아야 합니다.”
“받겠지. 그리고 못 받으면 대표님이 내주실 텐데 뭐가 걱정이야. 와. 김 없으면 술자리 재미없다고. 내 상대가 없단 말이야.”
“말씀은 바로 하셔야지요. 윤 변호사님은 제 상대가 아닌데요. 이 작가님부터 넘고 오시죠.”
“어! 이거 도발이야? 오케이. 오늘 꼭 와. 내가 진짜 봉인 풀고···.”
“정인이한테 말해도 되나요? 저번에 봉인 풀고 마셨다가 화장실에서 주무셨다고···.”
“김 변!”
까톡.
윤정도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아리.
때마침 들어온 문자의 발신인이···
“정인인데.”
정인이라는 말에 정도는 손으로 엑스자를 표시하며,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친다.
“오늘 회식이라는 말 정인 씨한테는 하지 마. 플리즈. 제발.”
아리는 알겠다고 손짓을 하고는 까톡에 답장을 한다.
[정인: 어디야? 회사야?]
[아리: 응.]
[정인: 오늘 저녁에는 뭐 해?]
[아리: 나 학교 도서관 가서 공부하려고 하는데. 시험이 얼마 안 남았어.]
[정인: 데이트하는 거 아님, 나 좀 만나줘. 나 우울해.]
[아리: 또 왜?]
[정인: 나 정말 이 사람하고 결혼해야 하는 거니?]
[아리: 누구? 윤 변님?]
[정인: 글쎄 저번에는 뭐라고 하는 줄 아니? 이미 양가 인사도 다 드린 거 굳이 프러포즈를 해야 하냐는 거 있지? 한국의 이상한 문화라면서···.]
법무법인 해결에서 3년째 인턴을 하고 있는 아리는 친구의 문자를 재미있게 바라보며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
논현, 바 어나니머스.
“아! 정말 오랜만이시네요!”
근 삼 년 만이다.
“여기는 똑같네.”
“어떻게 지내세요? 갑자기 발길을 끊으셔서 저는 어디 외국에 가신 줄 알고 있었는데.”
바텐더의 질문에 서지우는 간략하게 대답했고 늘 시키는 칵테일을 주문했다.
주문한 칵테일이 나올 때쯤 여혜린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 그의 옆에 앉는다.
“먼저 와 있었네.”
“여기 다녀?”
“가끔. 칵테일이 맛있어.”
혜린은 가방을 내려놓고 바텐더에게 무알콜 모스코뮬 한 잔을 주문했다.
“그래서 급하다는 게 뭐야?”
지우의 질문에 그녀는 내려놓은 가방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뭘 거 같아?”
“청첩장 같이 생겼는데.”
“맞아.”
“결혼해?”
“뭐야, 그 뜨뜻미지근한 반응은? 좀 더 축하해줄 순 없어? 아니면 차라리 기분이라도 나빠하든지. 사촌 누나가 결혼한다고 해도 그것보다는 더 놀라 하겠다.”
“축하해. 근데 둘이 이미 한 거 아니었어요?”
“안 했거든요.”
“이거 주려고 보자고 한 거야?”
“그럼. 뭐? 뭘 기대한 거야?”
“아니, 급하다고 하길래. 무슨 계약 건인가 했지? 이런 거면 그냥 문자로 보내도 되잖아.”
“아무튼 이제는 정말 아무 감정 없다는 거네.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나 결혼한다고 하는데?”
“무슨 소리가 하고 싶은 거야?”
“됐다. 올 거지?”
“물어보고.”
“물어보고? 누구한테? 설마 여친한테? 와- 내가 아는 서지우 맞아? 내 결혼식에 오는 거 여친한테 물어보겠다고?”
피식-
그도 우스웠는지 웃음이 나온다. 그렇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그렇게 좋은 거야?”
여혜린의 질문에 서지우는 그녀를 바라보고 대답했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