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0화 (130/133)

기적 (5)

“김아인이 김아리입니까?”

서지우의 질문에 최성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네.”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언제부터 알게 됐냐고 묻지도 않는다.

확인을 받은 서지우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문제가 뭔가요?”

“네?”

“우지만이랑 관련이 있나요.”

“아···그게···일이 조금 복잡하게 됐습니다.”

평소답지 않게 최성태가 뜸을 들인다. 서지우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우지만도 아나요?”

“아! 그걸 변호사님이 어떻게···?”

오면서 생각했다. 그것 말고는 딱히 우지만이 그렇게 대범하게 나올 수 있는 이유가 없었다.

우지만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알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지금 김 변호사, 아니 김아리 어디 있나요?”

“병원에 계십니다.”

‘병원?’

“그 정도로 아픈가요?”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쌍둥이 오빠가···방금 사망했습니다.”

‘사망···했다고?’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뺑소니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오빠가 애초에 의식을 되찾은 적이 없다는 추론까지는 했지만, 죽었다고?

“방금 사망했다고 하셨습니까?”

“네.”

“사인은요?”

“직접적인 사인은 심정지입니다. 사실 오늘 아침에 갑자기 의식이 돌아와 병원으로 옮겼는데, 16시 34분에 심장이 멈춰 사망 선고가 났습니다.”

‘16시 34분? 나도 그때쯤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 같은데···.’

서지우는 묘한 기분이 든다.

어떻게 일이 이렇게···.

“변호사님?”

대표 변호사가 한참 말이 없자, 불안해진 최성태는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그러자,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지시를 내렸다.

“부장님, 지금부터 제 말 잘 듣고 실행해 옮겨주세요. 일단, 김아인 변호사의 장례를 준비해주세요.”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최성태에게 지시를 내린 서지우는 곧바로 유성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링- 띠리링-

-네, 서울지검 유성재입니다.

“바쁘냐? 바빠도 나 좀 만나줘야겠다.”

-왜? 뭔 일 있어?

“지금, 당장.”

---*---

동묘앞역에서 청계천 방향으로 오 분쯤 거리에 있는 낡은 건물.

우지만이 알려준 주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서지우는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비린내···.’

혹여 또 이전 같은 두통이 찾아올까 순간 긴장하지만, 건물 1층의 생선가게가 그를 안심케 한다.

그리고,

깨닫게 한다.

‘그 사람이 이곳에 왔구나.’

서지우는 냄새나는 계단을 올랐다.

*

“명준아, 너는 연금 복권이 생기면 뭘 하고 싶냐?”

“저는 시골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집부터 한 채 해드리고···.”

“그런 거 말고, 이 새끼야. 아이- 새끼, 야, 너 지금 나 고아라고 멕이는 거냐?”

“아, 아닙니다.”

“그리고, 너는 이 새끼야 내가 그렇게 말해줘도···. 연금 복권이 생기면 사채를 굴러야지. 자본금이 생긴 거잖아. 기회가 온 거잖아. 남자가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지. 안 그렇냐? 넌 인생에 목표가 얼마야?”

“전에도 한번 말씀드렸는데, 한 백억 원정도면 저는 만족할 것 같습니다.”

“아, 새끼, 사내새끼가 배포가 저리 작아서야···. 야! 한 천억 원쯤은 돼야, 사내지.”

“천억 원이요?”

“그럼. 천억 원쯤 되면 우리도 모히토 가서 몰디브 마시는 거지. 카하하.”

“모히토 가서 몰디브 마시는 게 아니라···몰디브 가서 모히토 마시는 건데.”

“알아, 이 새끼야. 농담 때린 거잖아. 아- 새끼. 재미없게시리···.”

딸깍. 끼이익.

우지만이 설레발을 떨고 있는 사이, 서류 봉투 하나를 든 서지우가 그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약속한 시각이 몇 시간이나 남은 시점.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우지만은 여유로운 척 그를 맞이했다.

“아이- 우리 변호사님이 급하셨네. 점심 먹고 보자고 한 것 같은데···. 명준아, 가서 커피 좀 사 와라. 앉으시죠.”

부하를 심부름 보낸 우지만은 책상에서 나와 서지우가 앉은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

“이렇게 누추한 곳으로 오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전에는 사무실이 더 좋은 곳에 있었는데, 변호사님께서 그러시는 바람에, 이 구석탱이에, 어쩔 수 없이···. 흐흐흐. 어째 커피 오기 전에 물이라도 한잔 드릴까요?”

“이런 구석이라도 감옥보다는 낫지 않겠어? 내가 경고했는데, 처박혀서 가만히 살라고.”

서지우의 당당한 모습에 순간 하이에나 같은 우지만의 본 얼굴이 나왔다. 무섭게 입맛을 다신 그는 다시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 역시 공격형. 코너에 몰려도 공격. 내 스타일이야. 혹시 김아인 변호사님하고는 이야기 나눠보셨나요? 이렇게 급하게 찾아온 거 보면 이제 알고 계신 거 같은데. 아닌가? 이미 알고 있으셨던 건가? 헤헤. 김아인 변호사, 아니 김아리는 변호사님이 모르고 계셨다고 하던데. 우리 솔직해집시다, 알고 계셨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줄게. 지금 여기서 나가서 필리핀이든 베트남이든, 이 나라를 떠나면 반쪽짜리 자유라도 누리고 살 수 있을 거야.”

“하- 변호사님, 공격형인 것도 좋고 세 보이려고 하는 것도 좋은데, 그건 상대가 뭘 들고 있냐에 가려가면서 하셔야지. 방금 내 말 못 들었어요? 김아리, 그 고등학교 밖에 안 나온 년이 당신네 로펌에서 변호사 짓 한 거를 내가 다 알아버렸다고. 여기 이 폰에 기저귀 차고 있는 그년 오빠 사진이 다 찍혀있다고. 어딜 지금 뻥카야, 카드 다 나왔는데. 서지우 변호사님,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해. 나도 적당히 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신경 건드리면 나도 어떻게 할지 몰라.”

혹시라도 뭔가 더 있을까 해서 몇 마디 나눠봤다.

없다. 아리에게 보여줬다는 사진들이 전부다.

그녀가 힘들었던 시절 사채를 쓴 적이 있고, 그 기록이 우연히 우지만에 손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거머리 같은 녀석이 신기하게도 냄새를 맡아 오빠를 발견.

어젯밤 서지우는 검사 친구에게서 받은 수사 자료에서 상황 파악을 완료했다.

빠트린 무언가가 있을까 해서 그의 신경을 건드려봤는데, 없다.

툭!

서지우는 서류 봉투를 녀석 앞에 던졌다.

“이게 뭡니까? 돈? 아, 역시 실력 좋은 변호사라고 하던데, 미리 아시고···엥?”

묵직한 서류 봉투를 보고는 당연히 돈이 들어있을 거라고 예상했으나, 막상 들어보니 느낌이 아니다.

안을 들여다보니 서류와 주사기들이 들어있다.

“이게 뭐야?”

느낌이 좋지 않다. 상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패를 들이밀자, 하이에나의 얼굴이 다시 나온다.

“못 봤으면 다시 제대로 봐.”

“이게 무슨 개수작이야? 너 뭐 하는 거야?”

“십 대 때 마약 건드린 적이 있더라.”

“!”

이제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 없다.

“마약을 한 것도 아니고, 모시던 형님이 시켜서 뭣도 모르고 물건만 전해준 거야. 그때도 불기소 처분 났고.”

“그건 뭐 상관없고. 마약 관련으로 조사받은 적이 있다는 거면 충분하니까. 그리고 얼마 전에는 백 사장도 만났던데. 백 사장 오늘 아침에 마약 혐의로 체포된 거 아직 모르지?”

“뭐?! ···뭐야 끝까지 가자는 거야?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이딴 주사기 몇 개 가지고 와서 협박하면, 내가 쫄 거 같아?!”

우지만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너 내가 저번에 한 말 제대로 이해 못 했지? 내 동기가 경찰청 조직법무계 계장이라고 하니까, 내 동기가 경찰청 조직법무계 계장 한 명밖에 없다고 생각한 거야?”

“!!”

“너는 이 일을 하면서도 전과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도 몰라? 전과는 명찰표야. ‘이 사람은 범죄자.’ 그중에서 마약 전과는 몇 년이 되었든, 아무리 사소한 것이든 간에 가장 강력한 명찰표고. ‘나는 마약범죄자.’”

“웃기지 마, 이 새끼야. 그딴 공갈에 내가 넘어갈 것 같아. 이 바닥에서 이십 년이야. 나 여기 주사기에 손도 안 댔어.”

“니가 착각해도 뭘 단단히 착각했나 본데. 너 수배 중이야. 사기, 공갈협박, 특수상해, 지금 그 봉투 안에 있는 서류에 네 혐의와 증거가 나열되어 있어.”

“···.”

“그런 사람의 이런 불법 사무실에서 주사기가 나왔다? 그리고 얼마 전에 마약 사범하고 만났고, 저기 저 금고 안에 7천만 원이라는 돈이 들어있고. 그 정도면 충분해.”

“뭐가?”

“너 하나 작업하는 거.”

“뭐어?”

“너 착각했구나? 내가 TV에서나 나오는 정의로운 변호사쯤으로.”

우지만은 졸린다.

“너 이 새끼 어디서 구라를 까고 그래? 나 잡히면 너랑 그년도 다 끝장이야. 내가 끌려가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너도 네 로펌도 다 끝이야. 변호사법 위반! 사기!”

삐용- 삐용- 삐용-

때마침 밖에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계획한 것일까? 아니면 우연?

서지우의 표정에 변화가 없다.

“하하하. 병원에서 의사가 아닌 사람한테 수술을 시켜도 병원은 벌금으로 끝나. 로펌에서 변호사가 아닌 사람한테 변호행위를 시켰다고 하면 어떻게 판결이 날 것 같아?”

“지랄 떨고 있네. 개 이 씨발 여유로운 척은. 다른 건 몰라도 그년은 감옥 가. 너도 그 비싼 양복 입고 강남 바닥에서 얼굴 쳐들고 일 못 할 거고.”

“진짜 그럴까? 나는 간판 갈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데.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야. 그 여자 감옥 가는 것과 나랑 무슨 상관인데. ”

“!!!”

“그런데 니가 아무리 떠들어도 아마 재판에도 못 갈걸.”

“그게 뭔 개소리야! 니가 무슨 검찰총장이라도 돼?”

“증거가 없어졌거든.”

“뭐?”

“김아인 어제 죽었어.”

김아인이 죽었다는 말은 충격이었다.

원투 펀치를 맞은 우지만은 도무지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다.

‘김아인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증거가 없어졌다고? 왜? 어떻게?’

상대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리고 그 순간, 사이렌이 꺼졌다.

“죽으면 뭐 어쩌라고? 나한테 사진 있어.”

다급하게 말해 보지만, 상대는 가소롭다는 듯 웃고만 있을 뿐.

“아까 말했을 때 도망쳤으면, 저 금고에 들어있는 현찰은 갖고 갈 수 있었잖아.”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기 시작한다.

손에 땀이 난다.

상황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는데.

우지만은 동공이 흔들렸다.

바로 그때,

똑똑똑

“동대문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안에 계신가요.”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무너진다.

우지만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일어나 문을 열더니만,

“동대문경찰서에서 나왔···어? 뭐야?”

문 앞에 서 있는 경찰들을 밀쳐내고 쏜살같이 도망쳤다.

“뭐야? 뭐야?”

“경위님, 쫓아갈까요?”

“뭔지도 모르는데 뭘 쫓아가. 그리고 이미 늦었어, 인마. 쫓아가려면 바로 쫓아갔어야지.”

---*---

은평자애병원, 장례식장.

자신의 사진이 영정사진으로 걸려있다.

아리는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또각 또각 또각.

멀리서부터 들리던 구둣발 소리가 그녀가 있는 분향실 앞에서 멈췄다.

멍하니 영정사진을 보고 있던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서지우다.

그녀는 그가 너무 반가웠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서지우는 예를 갖춰 분향하고는 아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슬프겠지만, 바로 화장해야 해.”

아리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큰 두 눈에 눈물이 고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