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4)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는 누구보다 친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십 대 때는 그게 그냥 평범한 오누이 사이라고 여겼다.
나중에 알았다.
아무리 친하지 않은 오누이 사이라도 그렇게까지 서로 없는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된 일이에요, 이모님?”
“아니, 글쎄. 기저귀가 젖었길래 버리고 왔더니만 눈을 뜨고 있지 뭐야. 그냥 반사신경이겠거니 했는데, 아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라고.”
기적이 일어났다.
깜짝 놀란 이모님은 몇 가지 테스트를 해본 뒤, 아인을 병원으로 데리고 왔다.
“아리한테 몇 번 전화했는데, 안 받더라고. 그래서 다급한 마음에 구급차를 불렀지.”
서지우의 방에 있었다.
당연히 잘한 일이었지만, 아리에 입에서 차마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잘된 일일까?’
예상하지 못한 이들이 한꺼번에 터지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했다.
“여보세요. 부장님, 저 아린데요.”
---*---
아리에게 전화가 왔을 때, 최성태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서류를 접수 중이었다.
의식불명이었던 쌍둥이 오빠가 깨었다는 소식에 최성태는 곧바로 은평자애병원으로 향했다.
“변호사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의사 선생님도 기적이 일어났다고 할 뿐 제대로 설명해 주시질 않아서···.”
의식불명이었던 사람이 3년 만에 깨어났으니 응당 축하할 일이겠지만, 아리의 표정을 본 최성태는 그럴 수 없었다.
“환자 상태는 어떤가요?”
“좀 전까지는 의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시 눈을 감고 있어서···.”
“변호사님은 괜찮으십니까?”
“죄송해요. 누구한테 연락해야 할지 몰라서···.”
“잘하셨어요.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씀해주십시오.”
잠시 망설이던 아리는 우지만에 털어놓았다.
최성태가 도와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보다는 이제는 누구든 붙잡고 해명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실 문제가 생겼어요.”
“문제요?”
---*---
「아, 김 변호사님 오늘 출근하셨나요? 아니지, 내 정신 좀 봐. 이제 출근하시니까, 아직 모르시겠네. 김 변호사님은 요새 회사 잘 다니시나요? 저 대신 안부 좀 전해주십시오. 흐흐흐.」
도무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놈의 목소리와 표정이.
‘분명 김 변하고 뭐가 관계가 있는데···.’
깊게 생각만 하려 하면 머리가 찌근거린다.
이런 적이 없어 더욱 당황스럽다.
다른 류의 두통약을 여럿 먹어봤지만, 하나도 듣질 않는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걸.’ 서지우는 후회했다.
두통이 멈추질 않으니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느낌이다.
띠리링- 띠리링-
때마침 울리는 휴대폰.
모르는 번호.
하지만, 발신인이 누군지 짐작이 간다.
“여보세요.”
-아이고, 변호사님. 전화를 받지 않으실까 봐, 문자를 먼저 하고 전화를 다시 걸까 잠시 망설이는 중이었는데, 바로 받아주시네요. 우지만입니다. 헤헤.
“······.”
-여보세요?
“원하는 게 뭐야?”
-흐흐흐. 이제야 궁금하신가 봅니다. 내가 가진 카드가.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사실 어제 사무실로 찾아간 이유도 자초지종도 설명해 드리고 협상도 하고 싶어서였는데, 성질도 급하신 우리 변호사님께서 바로 경찰에 전화하시는 바람에···.
“그냥 말해. 뜸 들이지 말고.”
-아- 이게 그냥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데···. 사정이 좀 복잡해서요. 얼굴 보고 말하죠. 커피도 한잔하면서. 흐흐.
잠시 고민한 서지우는 만나는 데 동의한다.
“그럼 내일 보지. 오전에 사무실로 와.”
-아니요. 제가 한번 찾아갔으니까, 이번에는 변호사님이 찾아오십시오. 주소는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할 말 더 있나?”
-아- 혹시나 또 쓸데없는 짓을 하실까 봐, 미리 경고하는데. 괜히 또 이상한 짓을 하시면 김 변호사님이 다치십니다.
‘김 변이?’
“그게 무슨 소리야?”
-자세한 건 와서 들으시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마시라는 뜻입니다. 제 경고를 녹록하게 들으셨다가는 크게 후회하실 겁니다. 정히 궁금하시면 김 변호사님한테 슬쩍 물어보시던가요. 흐흐흐.
딸깍.
통화가 끝나고 전화기에서 더 이상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데도 지우는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김 변이 관련된 건 이제 분명했다.
‘무슨 일이지? 김 변이 왜 이런 놈한테 약점을 잡힌 거지?’
양아치이지만 우지만은 멍청한 놈이 아니다.
계산 하나는 제대로 하는 놈이고 자기가 가진 카드의 가치 정도면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아는 놈이다.
‘그런 놈이 겁도 없이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는 것 보면 분명 커다란 약점이 잡힌 것이 분명한데···.’
“아!”
그 순간 또다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고통이 어찌나 심한지 의자에 앉아 있기조차 힘들다.
순식간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방울들.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보지만 역부족이다.
지우는 그대로 사무실 바닥에 쓰러진다.
의식을 잃기 전, 주마등처럼 지나는 영상들.
‘김···변호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장면.
조선팰리스호텔,
엘리베이터 안.
「“아리야, 안 타?”
“김아리 씨이신가요?”
“네?! 아, 네···. 누구시죠? 저를 아시나요?”
“혹시 쌍둥이 오빠가 있으신가요?”
“네···. 오빠를 아시나요?”」
‘김아리? ······김아리!!!’
---*---
「“야, 너희들 뭐야?”
“꺼져 넌.”
“그러지 말라고.”
“너도 같이 죽고 싶냐?”
정의롭지 못한 장면이었다.
모른 척 지나치기에는 당하고 있는 아이가 너무 위태로워 보였다.
그래서 도와줬을 뿐인데.
사건이 정리되었을 때, 나는 질 나쁜 아이들과 어울려 싸움을 한 아이가 되어있었다.
방황하던 시기였다고는 하나, 내가 아무런 이유 없이 길거리에서 싸움이나 하고 다니는 애가 아니라는 걸 엄마는 믿어줄 거라고 여겼는데.
“너까지 도대체 왜 그래! 그렇게 살 거면 나가 혼자 살아!”
“엄마는 왜 그렇게 나를 싫어해?”
“너는 네 오빠 인생이나 막지 마. 니가 먼저 태어나서 집안이 이렇게 됐어.”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튼 너 때문에 네 오빠 인생에 무슨 일 생기면, 너 죽고 나 죽는 줄 알아!”
‘내가 먼저 태어났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안타깝게도 나는 그 황당한 발언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결국 그 사건으로 법원까지 가게 된 나는 보호관찰처분을 받게 되었고, 평범한 인생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꿈은 하나였다.
집에서 도망치는 것.
하지만, 도망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빨려 들어갔다.
“내가 먼저 태어났다는 게 무슨 말이야? 넌 알아?”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가 내가 먼저 태어났다고 했단 말이야. 엄마가 너한테는 얘기했을 거 아니야.”
“안 했어.”
“진짜야?”
“안 했다니까! 이게 미쳤나. 왜 이래?”
그전에도 이방인 같았지만, 그날 이후로는 더 심해졌다.
그나마 남매라고 느껴졌던 그 가느다란 실마저 끊어진 느낌이었다.」
*
“의식이 돌아오기는 했는데,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는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고, 눈만 껌뻑이는 아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아인.”
“······.”
“김아인.”
“······.”
“너 알고 있지? 엄마가 왜 나 싫어했는지? 넌 알고 있잖아. 말해 봐. 뭐야? 설마 넌 아들이라고, 난 딸이라서 싫어한 거야? 그런 구닥다리 같은 이유야? 그런 거라도 좋으니까 말해봐. 응?”
껌뻑껌뻑.
“너 듣고 있잖아. 너 듣고 있는 거 다 알아. 그 일 때문에 엄마가 나 싫어하기 시작한 거 아니잖아. 엄마는 원래부터 내가 못마땅했어. 그렇잖아. 너도 알고 있잖아. 야, 김아인. 말해봐! 김아인! 말해 보라고. 흑흑.”
어딘가로 도망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방이 막힌 현실에서 나만의 원더랜드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빙글빙글 돌아 어느새 그곳으로 돌아와 있다.
뭉쳐있던 울분이 터져 나왔다.
“차라리 일어나 주라. 응?”
“······.”
“일어나서 나랑 자리 바꾸자, 응? 내가 거기 누워있을게, 너는 이제 변호사 해. 너 변호사잖아. 너 해결 들어가고 싶어 했잖아. 그래서 이력서 넣은 거 아니야? 내가 대신 들어갔어. 그러니까 이제 일어나서 그냥 다니기만 하면 돼. 응?”
“······.”
“그렇게 우리 둘이 자리를 바꾸면···모든 게···해결···되지 않을까? 흑흑흑.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말도 안 되는 소리지···흑흑.”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는 것처럼 모든 걸 털어놓은 그녀는 이제 멀뚱히 천장만 보고 있는 쌍둥이 오빠에게 기도했다.
제발 일어나 달라고. 일어나서 자리를 바꾸자고.
그녀가 속 안에 있던 모든 것을 털어놓고 나자, 병실에는 긴 침묵이 찾아왔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차 소리. 경적 소리.
복도밖에서 들려오는 간호사의 목소리, 다른 환자들 소리, 전화벨 소리.
물 내려가는 소리.
백색소음.
공기가 흐르는 소리까지.
다양한 소음이 침묵을 채우고는 마지막에 적막이 찾아왔다.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바로 그때, 천장만 보고 있던 쌍둥이 오빠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본다.
웃고 있다.
‘행복하냐?’
‘응.’
‘왜? 뭐가?’
‘미안해.’
‘알긴 아냐?’
‘잘살아.’
‘가는 거야?’
‘고마웠어.’
쉬이익-
징-
솨아악-
띠리링- 띠리링-
빵빵
삐이이이이이이이—
“이 간호사! 766호 환자 어레스트! 윤 선생님 호출해! 당장!”
삐이이이이이—
다시 소리가 돌아왔을 땐, 아인의 눈이 감겨져 있었다.
그렇게 죽어버렸다.
이상한 감정이 솟구쳤다.
솔직히 지난 몇 년간 죽기를 그렇게 바랬다.
당장 어젯밤만 해도···
‘진작에 죽어버렸으면 이런 일들이 없었을 텐데, 그렇게 고생만 시키더니···.
이렇게 허무하게 갈 거면 왜 눈을 떠서 이곳에 온 거야?
기적이니 뭐니 하면서 사람들 설레발치게 만든 거냐고?
설명도 안 해줄 거면서, 굳이 왜···?’
“현재 시각 오후 04시 34분, 김아인 환자 사망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은 진심 깨어나길 바랐는데···.
아리는 아무 생각 들지 않았다.
---*---
징징- 징징-
징징- 징징-
요란스럽게 진동하는 전화기 소리에 눈을 떴다.
얼마쯤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던 것일까?
지우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05:54」
기억이 정확하다면 한 시간 좀 넘었다.
‘어?’
그런데 신기하게도 두통이 멈췄다.
며칠째 아팠던 머리가 상쾌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말끔하다.
‘뭐지?’
두통은 사라졌지만,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그래도 하나는 분명해졌다.
서지우는 쓰러지기 전 그의 뇌리를 스쳤던 장면들을 다시 떠올렸다.
이상했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사건들.
예전 은평자애병원에서 이중기를 만났던 날.
안기정 사건 때, 안기정이 했던 이상한 말들.
어느 순간부터 김아리에 관해 물으면 매번 어색하게 얼버무렸던 최성태 사무장.
마지막으로 그날 조선팰리스호텔 엘리베이터에서 김아리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녀의 표정
그날 마주쳤던 그녀의 얼굴과 조심스럽게 겹쳐지는 김 변의 얼굴.
‘어떻게 지금까지 그걸 눈치채지 못했지?!’
서지우는 자신에게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그걸······.’
징징- 징징-
바로 그때, 멈췄던 전화가 다시 진동하기 시작한다.
“네, 부장님.”
-변호사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혹시 김아인 변호사와 관련된 일인가요?”
-네.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지금 어디 계신가요?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