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화 (128/133)

기적 (3)

도산병원, 신경외과.

“딱히 뭐 이상한 것 안 보이는데, 아직도 통증이 있어?”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누군가 송곳으로 뇌를 찌르는 것 같은 느낌.

“지금은 그렇게 심하지 않은데···.”

여운이 남아있다.

마치 상처 주의가 욱신거리는 것처럼 머리가 전체가 울린다.

“입원해서 며칠간 추이를 지켜보는 건 어때?”

고세윤의 제안에 서지우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표정 보면 그 정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좀 놀랬습니다.”

“그러니까 서 변이 놀라 이렇게 갑자기 나를 찾아올 정도면 통증이 상당했었을 것 같은데. 아니야?”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입원해서 추이를 지켜본다고 달라질 건 없을 것 같다.

고세윤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다.

이제 어렴풋이나마 알겠다. 그가 가진 증상은 현대 의학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좀 더 지켜보고 더 심해지면 찾아올게요. 아, 근데 혹시 뇌에 문제가 생기면 감각에도 이상이 생기나요?”

“왜? 이상한 데 있어? 그럴 수 있어. 감각이라는 게 몸이 감지한 신호를 뇌가 해독하는 것이니까.”

“어젯밤에 통증을 처음 느꼈을 때, 비린내 같은 게 느껴졌던 거 같아서요.”

“흠- 아무래도 안 되겠어. 입원하자고. 좀 더 정밀한 검사가 필요해.”

고세윤 의사가 다시 한번 권했지만, 지우는 병원으로 나와 회사로 향했다.

---*---

“타이레놀 센 거 좀 처방해줄 수 있어?”

“왜? 어디 아파?”

우지만을 만나고 온 다음 날, 아리는 월차를 내고 정인을 찾았다.

“어제부터 머리가 띵한 게 좀 아프네.”

“그래?”

정인은 서랍에서 갖고 있던 타이레놀 ER 정을 꺼내 아리에게 건넸다.

“아, 혹시 다른 두통약 먹은 거 있어?”

“아니. 어젯밤에 타이레놀 먹은 거밖에 없는데.”

“그래? 몇 시에?”

“두 시쯤 먹었나?”

“그럼 괜찮아. 근데 타이레놀이 전혀 안 듣는 거면 이거 먹는다고 크게 좋아지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

아리는 정인이 준 타이레놀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냥 먹는다.

아무것도 안 하기에는 머리가 너무 지끈거린다.

“근데 그것 때문에 회사도 안 간 거야?”

딱히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상담할 상대가 필요했다.

도움이 필요했다기보다는 모든 일이 발각되었을 때, 그래도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사실은 말이야···.”

아리는 우지만과 관련된 일을 털어놓았다.

“김아리! 그렇다고 돈을 주면 어떡해! 그런 부류들 어떤지 알잖아!”

“그렇기는 한데···. 다른 방법이 없었어. 시간을 벌어야 했어.”

생각할 시간을···.

“사채업자라면서? 이제 계속 돈을 요구할 거야! 그리고 결국 뽑아 먹을 때까지 뽑아 먹고는 폭로해버릴 거라고! 알잖아, 김아리!”

안다. 그런데 이미 그의 갈고리에 걸려버렸다.

“경찰한테 가자.”

“가서 뭐라고 해? 내가 쌍둥이 오빠 신분을 훔쳐서 변호사 흉내를 내고 다녔다고?”

정인은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눈앞에 친구가 왜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갔다.

“정말 방법이 없는 거야? 그렇다고 계속 그놈한테 끌려다닐 수도 없잖아.”

방법이 없다.

사라지는 것 이외에.

아니, 혼자 사라져도 안 된다. 집에 누워있는 오빠도 같이 사라져야 한다.

흔적도 없이.

아리는 눈물이 차오르는 걸 겨우 참아냈다.

그러려고 찾아온 것이 아니었기에.

“이제부터 고민해봐야지!”

힘내 거짓말을 한다.

---*---

“아이고, 변호사님, 오랜만입니다.”

법무법인 해결 건물 앞 주차장.

서지우가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껄렁껄렁한 걸음걸이의 남자가 덩치 좋은 사이드와 함께 다가왔다.

“너, 내가 처박혀서 기어 나오지 말라고 했지.”

우지만과 그의 부하.

서지우의 말에 부하 녀석이 움찔거렸지만, 진짜 뭘 어쩌려는 의도는 없다.

“아이- 무서워라. 변호사님, 그래도 제가 오랜만에 이렇게 찾아왔는데, 협박할 때 하시더라도 먼저 인사 정도는 받아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헤헤.”

“뭘 찾았길래 대낮에 여길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왔던 데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안녕하십니까, 여기 강남구 언주로164길 법무법인 해결인데요···.”

품에서 전화를 꺼낸 서지우는 망설임 없이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아- 역시 우리 대표 변호사님은 앞뒤 가리는 게 없으셔. 공격형이야. 그냥 공격형. 내 스타일이야. 아- 이렇게 만나지만 않았어도 우리 사이가 이렇게 나쁠 것 같지는 않은데.”

“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딸깍.

“뭐 변호사님이 전혀 궁금해하지 않으시니, 내가 내 입으로 말하기도 좀 그렇고. 그런데요, 변호사님. 나를 너무 그렇게 동네 양아치 취급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뭐 정말 여기 그냥 나타나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이. 소매에 뭘 감추고 있는지 정도는 말할 기회를 좀 주시지, 쩝.”

서지우는 말없이 우지만의 표정과 몸짓을 관찰했다.

분명 협상할 만한 거리가 있어서 찾아왔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경찰서 가서 얘기하지.”

“하하하. 역시 우리 변호사님. 공격형. 어택! 하하하. 오늘 그럼 그냥 가고. 다음에 전화 한번 드리고 찾아뵙죠. 야, 가자.”

우지만은 병풍처럼 서 있던 명준에게 명령하고 돌아섰다.

그리곤 몇 발걸음 뒤, 고개만 휙 돌려 물었다.

“아, 김 변호사님 오늘 출근하셨나요? 아니지, 내 정신 좀 봐. 이제 출근하시니까, 아직 모르시겠네. 김 변호사님은 요새 회사 잘 다니시나요?”

“···.”

“저 대신 안부 좀 전해주십시오. 흐흐흐.”

서지우는 단번에 감지했다.

그게 물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지만이 사라지고 회사 안으로 들어간 서지우는 김아인을 호출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님, 오늘 병가 내셨는데요.”

느낌이 좋지 않다.

다시 머리가 지끈거린다.

---*---

「아리야, 그래도 그런 놈에게 협박당하는 것보다는 경찰에 자수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면, 너희 대표님이 말씀드리면, 도와주시지 않을까?」

밤새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아리는 낮에 만난 정인의 말을 떠올렸다.

“안돼. 대표님만 곤란해지실 거야.”

경찰에 모든 걸 털어놓는 순간, 대표님도 공범으로 조사받을 것이 뻔했다.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는 상황.

아리는 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나?’

아리는 아인이 있는 방 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순간 팔과 어깨에 소름이 솟아오른다.

자신이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구역질이 올라올 것만 같다.

똑똑.

참았던 눈물이 떨어진다.

그녀도 안다. 아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걸.

뚫고 갈 수도, 도망칠 수도 상황에 아리는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아, 김 변호사님 오늘 출근하셨나요? 아니지, 내 정신 좀 봐. 이제 출근하시니까, 아직 모르시겠네. 김 변호사님은 요새 회사 잘 다니시나요? 저 대신 안부 좀 전해주십시오. 흐흐흐.」

우지만의 마지막 말이 그의 뇌리를 맴돌았다.

분명 계산된 행동.

‘도대체 무슨 협상카드를 찾았길래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나타났지?’

마지막에 남긴 그 말만 아니었어도 전혀 궁금하지도, 궁금해할 가치도 없었겠지만, 그 말 때문에 서지우는 좀 더 정보를 캐지 못한 데 대한 후회가 들었다.

[서지우: 김 변, 많이 아픈 거야?]1

[서지우: 문자 보면 연락해줘.]1

여전히 읽지 않은 문자.

서지우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

영원히 밤이길 희망했으나, 어김없이 찾아온 아침.

한숨도 자지 못한 아리는 꾸역꾸역 옷을 챙겨입었다.

맵시 있게 잘 떨어진 양복바지와 슈트 재킷도 오늘따라 더 내 옷 같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숨어있을 수만도 없다.

아리는 좀비처럼 가방을 챙겨 아파트를 나섰다.

“안녕하세요, 김 변호사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

“굿모닝. 아팠다며? 괜찮은 거야? 얼굴이 아직도 안 좋아 보이는데.”

“변호사님, 괜찮으십니까?”

애써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출근한 아리는 동료들과 인사를 하고 개인 사무실 안으로 허겁지겁 숨어버렸다.

“허억- 헉-”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이런 게 공황장애라는 건가?’

아리는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똑똑-

“변호사님, 대표님이 찾으···. 변호사님, 괜찮으세요?!”

때마침 들어온 유이헌 과장이 아리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깜짝 놀랐다.

“괜찮아요.”

“변호사님, 땀이 엄청 나세요. 진짜 괜찮으세요?”

“네.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몸살 기운이 아직 남아있었나 봐요. 괜찮아요.”

유이헌은 서둘러 책상 위 티슈 상자에서 티슈 몇 장을 꺼내 아리에게 건네고는 휴게실에서 물을 가져왔다.

“이거 좀 드세요. 입술이 너무 마르셨어요.”

“고맙습니다.”

유이헌이 가져온 물을 마시는 아리.

물을 마시고 나니 조금은 살 것 같다.

터져나갈 것 같던 머리도 조금은 괜찮아졌다.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네.”

“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니면 차장님께 말씀드려서 댁으로 모셔다드릴까요? 대표님께는 제가 말씀드릴게요.”

“아닙니다. 정 힘들면 제가 말씀드리고 조퇴하겠습니다. 어제도 쉬었는데요.”

“얼굴색이 정말 안 좋아 보이시는데···.”

“고마워요. 그래도 물 마시고 나니, 조금 나아졌어요.”

“그럼 다행인데···.”

여전히 창백한 낯빛.

보고 있는 사람은 쉽게 안심할 수 없다.

“아, 근데, 왜요? 하실 말씀이 있어서 들어오신 거 아니셨어요?”

“아, 대표님이 찾으셨어요. 출근하시면 방으로 오라고···.”

“대표님이요?”

“네.”

아리는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

서지우의 방.

‘왜 이러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서지우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분명 이상한 일이 몸에 일어나고 있다.

똑똑똑

“네.”

“찾으셨습니까?”

안 그래도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김아인 변호사가 온 것 같아 일어나려고 했는데, 순간 어지러워 다시 앉았던 그였다.

“왔어.”

“네.”

“어제 아팠다며? 괜찮은 거야?”

“네, 괜찮습니다. 몸살 기운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지우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아리를 쳐다봤다.

얼굴색이 좋지 않다.

“아직 몸이 다 나은 것 같지 않은데.”

“네, 사실···다 나은 줄 알았는데···.”

“그래? 그럼 며칠 더 쉬어. 괜히 무리해서 큰 병 만들지 말고.”

잠시 망설인 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노력했지만, 도저히 오늘은 더 회사에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남 차장님에게 말해놓을 테니까, 회사 차 타고 돌아가.”

“아닙니다. 그냥 택시 타고.”

“아니야. 내 말대로 해.”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하고 돌아나가려는 순간, 아리는 서지우가 불렀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동시에 서지우도 애초에 다른 일로 물어볼 건이 있었다는 걸 상기한다.

“근데, 부르신 이유가···.”

“아. 혹시 김 변 동생은 요새 좀 어때? 괜찮아?”

“네?”

“김 변 쌍둥이 동생 있잖아. 김아리 양. 아리 양은 괜찮냐고?”

“아···대표님.”

“응.”

“왜 계속 제 동생에 관해서 물으시는 건가요?”

공격적으로 던진 질문이 아니다. 혹시 서지우가 이미 사실을 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희망 아닌 희망에 조심스럽게 묻는 것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내 뇌에 이상한 게 있어. 혹시 해마체라고 들어봤어?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한 부분인데. 내가 이게 비상적으로 커. 그게···음···어쩌다 보니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김 변 동생한테도 나랑 비슷한 증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그래서 묻는 거야. 요새 내가 조금···이상한 것들이 느껴져서.”

막상 말을 내뱉었지만, 여태껏 서지우가 한 말 중에 가장 두서없는 설명이었다. 서지우 본인도 그것을 감지했는지,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다.

“혹시 내가 동생을 좀 만날 수 있을까?”

“제 동생을요?”

“응.”

아리는 뭐라 대답하지 못한 채 곤란한 표정으로 서지우를 바라봤다.

“왜? 곤란한가?”

“아···아닙니다.”

“그럼 좀 부탁할게. 꼭 만나서 얘기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러니까.”

“아···네···물어보겠습니다.”

서지우의 표정이 간절해 보여 거절할 수 없었다.

대표 변호사의 방을 나온 아리는 다시 숨이 멈출 것만 같다.

총체적 난국이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잡고 겨우 방에 돌아와, 가방을 챙겨 일 초라도 빨리 그곳을 벗어나려고 도망치려는 순간,

징징- 징징-

손에 들고 있는 전화가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진동했다.

징징- 징징-

“네, 이모님.”

-아리야!

그 어느 때보다 다급한 이모님이 목소리.

하지만 이제 겨우 진정한 심장은 다시 놀라고 싶지 않다.

“왜 그러세요?”

-오빠가···

‘오빠가?’

-깨어났어!

오빠가 깨어났다.

삼 년 넘게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던 오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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