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6화 (126/133)

기적 (1)

“크크큭-”

“뭐가 그렇게 좋으신가요?”

김아리의 아파트에 들어갔다 온 이후로 계속 실실 쪼개고 있다.

“크크큭- 명준아.”

“네, 사장님.”

“사람은 이래서 집요해야 하는 거야. 뭐든지 끝까지 파면 나와요. 크크큭.”

“그 집에 뭐가 있었습니까?”

“있었지.”

“뭐가 있었나요?”

“로또.”

“네?”

“몇십 년짜리 연금 복권. 크크큭.”

사무실로 돌아가는 차 안, 우지만은 징그럽게 웃어댔다.

---*---

법무법인 해결, 카페 같은 휴게실.

조심스레 눈치를 보던 이재희는 엊저녁 정도로부터 들을 말을 확인했다.

“형법 350조가 뭐였더라···?”

“공갈. 1항, 사람을 공갈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항, 전항의 방법으로 제삼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한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공갈죄는 왜? 신 건이야?”

“아···아니요. 공부하던 건이 있어서요.”

“아, 그래.”

“그럼 혹시 96도2151 사건 판결도 기억하세요?”

“응. 공갈미수 사건 말이지?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당시에는 그 범죄사실을 협박죄로 구성하여 기소하였다 하더라도, 그 후 공판 중에······.”

판례를 줄줄 읊었다.

완전기억능력.

정도의 말이 맞았다.

“변호사님.”

“응?”

“그럼 진짜 저 기억하지 못하신 척하시는 거예요?”

“응? 그게 무슨······. 아! 사실은 말이지···.”

---*---

압구정, <해결> 근처 고깃집.

“오랜만이네요. 사무장님이랑 단둘이 술 마시는 거.”

“그렇네요.”

퇴근 후, 서지우는 최성태와 술자리를 가졌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워낙 말수가 없는 분이라, 간혹 날씨 좋은 날이면 이렇게 술자리를 청했다.

“예나는 어떻게 지내나요? 잘 지내죠?”

“네. 유튜브인가 뭔가 하면서 잘살고 있습니다.”

“들었어요. 구독자가 많다고.”

“네.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좋네요.”

“네.”

중간중간 대화가 끊기고 주제도 중구난방이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요새 회사생활은 어떠세요?”

“좋습니다.”

“혹시 불편하신 거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그런 거 없습니다.”

“그럼, 다행이고요.”

···

“이 작가님 귀국하신답니다.”

“아, 그러세요. 이번에는 좀 오래 다녀오신 것 같네요.”

“네.”

“부장님.”

“네, 변호사님.”

“몇 개월 전에 김 변이 쓰러졌을 때, 이중기 작가님하고 같이 계셨잖아요.”

“네? 아···네···.”

“혹시 이 작가님 어디 아프신 데 있나요?”

“네? 아, 아니요. 그런 거 아닌데요.”

“거기가 은평자애병원이었죠? 이 작가님이 입원하셨던 곳이.”

“네···.”

“거기서 기록 좀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작가님 건강검진기록 말씀이신가요?”

“아니요. 다른 사람이요.”

---*---

까톡-

[정인: 진짜 그렇게 물었어?]

[정인: 자기 기억하지 못한 척한 거냐고?]

[아리: ㅇㅇ]

[정인: 그래서 뭐라고 했어?]

[아리: 기억상실증이라고.]

[정인: 엥? 진짜?]

[아리: ㅇㅇ 몇 년 전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서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몇 개 있다고 했어.]

[정인: 그랬더니 믿어?]

[아리: 처음에는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는데, 나중에는 믿는 눈치였어.]

[정인: 간당간당하다, 김아리]

[아리: 야, 당신 남친분께서 그러셨대요. 김 변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고, 못한 척한 걸 거라고.]

[정인: 진짜?]

[정인: 이 사람이. 알았어. 내가 단속시킬게.]

[정인: 아-참, 아리야, 나 이번 주말에 언제 갈까? 아침에 갈까? 근처에 아침 잘하는 집 있어?]

[정인: 야, 김아리.]

[정인: 왜 갑자기 읽씹인데.]

[정인: 엘베냐?]

[정인: 김아리!]

[아리: 정인아, 내가 좀 있다가 다시 연락할게.]

퇴근길, 아리는 정인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그날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눈앞에 그가 나타나 멈춰야 하기 전까지.

“김아인 변호사님? 아니면, 김아리 변호사님이라고 해야 하나? 크크큭.”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떨리는 사지를 겨우 붙잡고 차분하게 대응했지만,

“당신 뭐야?”

“어떻게 오라버니가 계시는 집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실까? 아니면, 어디 조용한 데 가실까? 나는 둘 다 상관없는데. 크크큭.”

그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온 듯했다.

---*---

아리네 아파트 근처 커피숍.

우지만은 아리를 보며 연신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댔다.

“변호사님 슈트발이 죽이십니다. 그런 정장은 한 벌에 얼마나 해요?”

“당신, 수배 연장 안 됐다고, 혐의가 없어지는 거 아니야. 전화 한 통화면 당신 곧바로 연행돼.”

“아우- 깜빡 속았네. 근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대학도 안 나왔는데. 머리가 좋았나? 아님,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나?”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하면···.”

지푸라기라고 잡고 싶은 심정. 아리는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에 전화하는 시늉을 해보지만, 꿈적도 하지 않는 우지만.

“왜 걸다가 마세요? 거세요. 배터리가 다 됐나? 아, 그럼 내 거로 거세요.”

툭.

우지만은 자신의 휴대폰을 아리가 있는 쪽으로 밀었다.

그의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

‘!!!’

집에 누워있는 오빠 김아인이다.

신음이 터져 나올 뻔한 걸 겨우 참아냈다.

“왜? 거시라니까.”

손을 테이블 위로 올릴 수도 없다. 떨리는 모습을 들킬까 봐.

“솔직히 나도 불알 밑에 털 나고부터 사기, 협박, 공갈 다 하고 살았지만, 이런 거는 또 처음이야.”

“······.”

“내가 아는 놈 중에 이쁘장하게 생긴 새끼가 한 명 있거든. 근데 이 새끼가 겁도 없이 제 모시는 형님 돈을 들고 가서 도박했다가 홀라당 날려 먹었지 뭐야. 그래서 이걸 죽이네, 마네, 몸을 갈라다가 장기를 파네, 막 그럴 소리를 하다가 말이야. 이놈이 웬만한 여자보다 이쁘게 생긴 걸 보고 그 형님이 이 새끼를 여장시켜서 유튜브에 내보냈어. 그런데 이게 웬걸 대박을 쳤네. 사내새끼들이 그 새끼 겨드랑이 한번 보겠다고 캐시를 엄청나게 쏴대네. 크크큭-”

“······.”

“근데 그거는 화장하고 필터 쓰고 카메라 뒤에서 하는 짓이고. 이건 레베루가 다르지. 안 그래? 고졸 계집애가 변호사 흉내를, 그것도 남장을 하고. 하하하하. 나는 내 간뎅이가 큰 줄 알았어. 근데 더 큰 년이 있었네.”

“원하는 게 뭐야?”

“크크크큭.”

아리의 질문에 한동안 기분 나쁘게 웃던 우지만은 갑자기 목소리를 깔았다.

“뭐겠어?”

“···.”

“일단 1억 준비해.”

“!”

“그리고 나한테 붙은 혐의 떨궈.”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건 제가 알 바가 아니죠. 안 그렇습니까, 변호사님?”

비아냥거린 우지만은 승리자의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금으로 준비해주세요, 변호사님.”

“···.”

“아, 형법 제347조 아시죠? 아시겠지, 변호사님인데. 제가 그 조항으로 몇 번 학교에 다녀온 적이 있어서, 나도 좀 아는데. 근데 이 정도 사기면 10년 정도 때려야 하는 게 맞지 않나. 특경법 위반인데.”

형법 제347조 (사기)

1항,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항, 전항의 방법으로 제삼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특정재산범죄의 가중처벌)

1항, 「형법」 제347조(사기)···의 죄를 범한 사람은 그 범죄행위로 인하여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가액(이하 이 조에서 "이득액"이라 한다)이 5억 원 이상일 때에는 다음 각호의 구분에 따라 가중처벌한다.

1. 이득액이 50억 원 이상일 때: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2. 이득액이 5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일 때: 3년 이상의 유기징역.

“크크큭- 몇 년이나 받으실 것 같습니까, 변호사님.”

아무리 침착하려고 해도 제멋대로 떨리는 몸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침도 넘어가지 않는다.

아리는 앞이 캄캄했다.

“일주일 줄게. 일주일 안에 현금 1억 원, 이리로 가지고 와.”

우지만은 아리 앞에 명함 하나를 던지고 가게를 나갔다.

끝까지 참은 눈물이 큰 두 눈에 고이기 시작한다.

---*---

강남, 도산병원.

서지우는 정보공개동의서 초안을 들고 고세윤을 찾았다.

“온 김에 머리 사진이나 하나 찍고 가.”

“너무 하시는 거 아닌가요? 논문 목적으로 제 정보 공개에 동의한 거지. 실험체가 되기로 한 거는 아닌데요.”

“어차피 찍을 때 됐어.”

“이렇게 막 찍어도 되는 겁니까?”

“조영제 쓰는 것도 아니고, 공짜로 해줄게.”

“싫은데요.”

“어허- 진짜라니까, 찍을 때 돼서···.”

징징- 징징-

때마침 울리는 고세윤의 휴대폰.

“잠시만, 중요한 거라서 금방 받고 올게. 어- 그래, 영숙아, 고모님 말이야···.”

고세윤의 개인 방에 홀로 남겨진 서지우.

두리번거리지도 않았는데, 그의 눈에 ‘은평자애병원’ 로고가 박힌 서류철이 들어온다.

마치 봐달라는 것처럼 책상 위에 딱 놓여있다.

서지우는 주저함 없이 서류철을 펼쳤다.

예상대로 그 환자의 진료기록.

자신과 반대로 오른쪽 해마체가 비대한 여자의···.

‘김아리. 김 변 동생?’

“미안. 내가 어디까지 했지?”

방주인이 금세 돌아오는 바람에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

「일주일 줄게. 일주일 안에 현금 1억 원, 이리로 가지고 와.」

아리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1억 원···.’

얼마 전 정인이 이쯤 해서 그만두고 나오라고 했던 말이 뼈에 사무칠 정도로 기억난다.

‘그때 그만둘걸. 그만뒀어야 했어.’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걸 알면서도 자꾸 떠오른다. 도저히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똑똑똑.

똑똑똑.

“변호사님.”

“네?”

유 과장이 몇 번 노크를 했는데도 아리는 듣지 못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야 인지했다.

“대표님이 찾으세요.”

“저를요? 아, 네, 알겠습니다.”

아리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서지우의 방으로 향했다.

---*---

똑똑똑

“변호사님, 찾으셨나요?”

“응. 들어와.”

“무슨 일로···.”

“김 변 동생 요새 뭐해?”

“네? 제 동생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스러웠지만, 아리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응.”

“제 동생은 갑자기 왜···? 공부 중입니다. 대학입시 준비.”

“그래?”

“네.”

“어디 아픈 데는 없고?”

“네?”

“어디 아픈 데는 없냐고?”

“없는···데요. 근데 왜 그러시죠?”

“아니야. 그냥 좀 궁금한 게 생겨서. 김 변은 어때?”

“뭐가···요?”

“아픈 데 없냐고?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 잠을 좀 못 자서요.”

“그래?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 거야?”

“아니요. 그런 거 아닙니다.”

“그래, 그런 거 아니면 됐고. 나가 봐.”

갑자기 불러 동생과 자신의 건강 상태를 묻는 대표가 이상했지만, 찔리는 데가 있는 아리는 그곳을 나가는 것이 더 급했다.

아리가 나가자, 서지우는 최성태 사무장을 호출했다.

‘김 변, 동생이 나랑 똑같은 증상이라는 거지···.’

똑똑똑-

“부르셨습니까, 변호사님.”

“네, 부장님. 다른 게 아니라요. 그때 말한 은평자애병원 기록 말입니다.”

“아···그게 제가 아직···.”

“그게 김아리 양의 기록이었네요. 김아인 변호사의 쌍둥이 여동생.”

“네?!”

“김아리 양에 관해 조사해주실 것이 좀 있습니다.”

---*---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아리는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며칠 전 만난 우지만 때문이었고, 방금 만나고 온 서지우 때문이었다.

‘어쩌지? 이제 정말 어쩌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똑똑똑-

“네.”

“변호사님.”

“아, 부장님.”

대표 변호사실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최성태가 그녀의 사무실을 노크했다.

말을 하기도 전, 경직된 그의 얼굴에서 안 좋은 일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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