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머리 (4)
의정부 대화요양병원을 방문한 날, 우지만은 우연히 김아리를 목격했다.
그녀의 뒤를 쫓아볼까 생각했던 그는 그녀가 돌아가기를 기다렸다 다시 병원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아리의 모친 문정숙 그리고 옆의 환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어머님, 방금 다녀가신 분이 따님이세요?”
“누구?”
“방금 따님 다녀가셨잖아요. 아니에요?”
“나 딸 없어.”
“네? 그럼 방금 다녀간 분은 누구세요?”
“아들.”
“아들? 변호사님 아들?”
“내 아들 알아?”
“아, 그럼요. 그 훌륭하신 아드님이랑 제가 잘 알죠.”
“그래?”
“네. 근데 강남에서 일한다는 쌍둥이 따님도 있지 않으세요? 방금 다녀가신 분이 그분 같은데.”
“나는 그런 딸 없어.”
*
“어찌 저리 매정할꼬?”
“왜요?”
“문안 오는 자식은 딸인데, 자주 오지도 않는 아들밖에 모르고. 딸이 아주 효녀야, 효녀.”
“아드님은 자주 안 오세요?”
“아주 코빼기도 안 보여.”
“따님은 자주 오고요?”
“자주 와. 어디 일 나간다고 하던데. 바빠져서 요새는 격주에 한 번씩 오는데, 그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왔어. 두 번 올 때도 있었고.”
“아···그 따님이 어디서 일하는지는 아세요?”
“어디 미용실에서 일한다고 하는 것 같던데.”」
아리의 아파트 주위를 며칠째 맴돌고 있던 우지만은 병원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뭐를 찾고 계신 겁니까?”
도무지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명준의 질문에 우지만은 멍하니 아파트 입구만 바라봤다.
바로 그때, 남장을 한 아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형님, 저기.”
며칠째 같은 광경.
퇴근 무렵, 김아인이 귀가하면 집을 봐주시는 듯한 이모님이 나와 인사를 하고는 헤어진다.
무심코 보고 있으면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광경.
그러나, 우지만은 생각 없이 보고 있지 않았다.
“신기하지 않냐?”
“뭐가요?”
“남매가 같이 나간 적이 한 번도 없어.”
“저도 집에서 살 때는 누나랑 나간 적 한 번도 없는데요. 하루에 두 마디는 할까?”
“너 누나 있었냐?”
“네.”
명준의 지적에 우지만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상하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한 일주일 지켜볼 동안, 둘 다 동시에 외출하는 걸 본 적이 없다는 말이야. 평일에는 여동생이 계속 집에 있고, 주말에는 오빠가 계속 집에 있고. 이상하잖아.”
술집으로 출근한다면 밤에 나갈 테니까, 마지막 확인을 위해 우지만은 아리의 아파트 앞을 지켰다.
혹시나 해서 일주일간을 지켜봤는데, 김아리가 술집에 나가지 않는 것은 명백해졌다.
그런데 다른 이상한 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일에는 여동생이 집에 하루 종일 있는데, 이모님은 왜 오시는 거지? 그것도 저녁 늦게까지. 보아하니까, 이모님이 청소도 하고 장도 보고 다 하시는 것 같은데. 여동생이 몸 못 쓰는 병신도 아니고.”
“듣고 보니 그렇네요?”
“처음에는 그거 뭐 은둔형 외톨인지 뭔지 그런 건가 잠깐 생각했는데, 아니잖아. 주말에는 엄마 병원에 간단 말이지.”
“네.”
“뭘까, 명준아?”
“······.”
김아리가 사채를 썼다면, 어딘 가에서 술집에 나가고 있을 거라 여겨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조사하다 보니, 끝을 보고 싶은 미스터리 소설 같다.
우지만은 아파트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
법무법인 해결, 회의실.
“학력 위조가 왜 문제가 되죠? 능력하고 전혀 상관없는 건데.”
“그걸로 인기를 얻었으니까.”
“그걸로 인기를 얻은 것이 확실한 건가요?”
“일단 엘리트 이미지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맞잖아. CF도 그런 쪽으로 많이 찍었고.”
“본인 입으로 말한 건 아니잖아요.”
“일단 다수의 기사에서 콜롬비아 대학을 나왔다고 명시되는데, 본인이 부인한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김 변, 왜 이렇게 화가 나 있어. 도현승 팬이야?”
신건 의뢰가 들어왔다.
몇 년 전, CF 하나로 벼락스타가 된 남배우의 학력 위조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오르면서 악성댓글과 허위기사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시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진실촉구를 명목으로 ‘카더라’하는 소문들이 커뮤니티에 난무하기 시작했고, 결국 기존의 있던 광고들마저 내려가기 시작하니, 소속사는 <해결>에게 대응을 의뢰했다.
“그게 아니라. 어디 이력서를 낸 것도 아니고, 본인들이 제멋대로 떠들어 놓고, 이제 와서 진실을 밝히라는 게 이치에 맞지 않아서요.”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도현승은 콜롬비아 칼리지라는 2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데뷔 초기 인터뷰 중, 한 기자가 콜롬비아 칼리지를 콜롬비아 유니버시티로 착각하는 바람에 기사에는 마치 도현승이 아이비리그에 속한 콜롬비아 대학을 졸업한 것처럼 나갔고, 소속사가 몇 번 수정하려고 했지만, 많은 사람이 그의 엘리트한 이미지와 맞는다고 생각해 오해가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좀 더 명확하게 정정하는 게 맞았다고 하면 할 말 없으나, 어느 정도 노력했다고 생각한 소속사에서는 그냥 두었다.
솔직히 그 같은 거짓 뉴스가 도현승의 엘리트한 이미지를 더 확고하게 해준 것은 맞았다.
그렇다고 콜롬비아 대학을 나왔다는 뉴스가 그가 인기를 얻게 된 전부는 아니었다.
나름대로 연기도 잘했고, 재능이 있는 친구였다.
배경을 조사한 아리는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반해, 정도는 일정부분 본인에게 책임 있다는 의견이었고.
“무엇보다도 학력하고 무관한 일을 하고 있잖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지. 학력이 중요하니까.”
“학력은 학력일 뿐인지, 실력하고는 무관한 거잖아요.”
그녀도 모르게 목소리가 올라갔다.
“김 변, 왜 이렇게 화를 내? 진짜 도현승 팬인가 보네. 이 변, 이 변은 어떻게 생각해?”
“음. 저는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일단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었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도 수정하지 않은 건, 적극적이지 않았을망정 상대를 기망하려는 의도가 어느 정도는 있었던 거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인기가 곧 수익인 사업인데. 적극적은 아니었다고 해도 방조한 것 맞잖아요. 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재희의 마지막 말이 아리의 심장에 비수처럼 꽂혔다.
적극적으로 속이려고 하지도 않았는데도 이렇게 비난을 받는데, 그녀가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녀는 자신보다도 서지우가 먼저 떠올랐다.
---*---
도현승의 소속사,
포니 엔터테인먼트 사장실.
“일단 악성적인 댓글하고 도현승 씨가 본인 입으로 아이비리그 출신이라고 말하고 다녔다는 식의 허위 글들을 작성한 사람들을 상대로 적절한 조처를 하겠습니다만···.”
서지우는 당장 소송을 진행하는 건 좋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정말이에요. 한 번도 제가 제 입으로 아이비 나왔다고 한 적 없습니다. 진짜입니다, 변호사님.”
“믿습니다. 다만, 이 업계의 전문 변호사로서 조언을 드리자면, 대중하고 싸워봤자 소용없다는 겁니다. 현재 여론이 도현승 씨에게 불리하게 형성되어 있고, 무슨 말을 하든 변명처럼 들릴 겁니다. 법원에서 악성 글들을 양산한 사람들을 상대로 승소 판결을 받는다고 해도, 지금 대중이 배신감을 느끼는 건 도현승 씨가 아이비 출신이 아니라는 거니까요. 설사 그것이 도현승 씨가 말한 적이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요.”
연기와 전혀 상관없어도,
자격을 얻어낸 것이 아니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그만큼 중요한 것.
학벌.
“제가 진짜 잘못한 건가요?”
“법적으로는 아니요. 하지만 지금 도현승 씨가 받는 재판은 사법재판이 아닙니다.”
여론재판이지.
“억울한 심정은 알겠지만, 그냥 증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뭐를요?”
“대중이 도현승 씨에게 기대하는 것. 도현승 씨에게서 보고 싶어 하는걸. 학력 따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요.”
도현승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럴 기회가 있을까요?”
---*---
은평구, 아리의 아파트.
학교 가는 학생들,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빠져나간 아파트 단지.
미취학 학생들마저도 어린이집에 가고 한산해졌다.
보통 이 시간 때 아니면 저녁때 나왔다.
정은주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타나자, 우지만은 기다렸다는 듯이 분리수거장으로 향했다. 그에 손에는 며칠 전 그녀가 버린 쓰레기봉투가 들려있다.
“안녕하세요.”
“네.”
“누가 아프신가 봐요?”
마치 아파트에 사는 사람처럼 인사를 건넨 우지만.
정은주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경계심을 푼 거는 아니었다.
그녀의 눈치를 슬쩍 본 우지만은 자신에 손에 들린 봉투를 보여주며 말했다.
“저희집에도 아픈 사람이 있어서···.”
봉투 안에는 성인용 기저귀가 가득 차 있다. 며칠 전 본인이 버린 쓰레기였지만, 그녀는 눈치채지 못한다.
“아, 그러세요.”
“저희 장모님이 치매세요.”
치매라는 말에 정은주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우지만을 쳐다봤다.
기가 막힌 연기자. 돈 떼어먹고 도망간 인간들을 잡았을 때는 정말이지 악마가 따로 없는데, 지금은 정말 치매 걸린 장모를 보살피는 사위 같다.
“어쩌다가 사위가···.”
“제가 일하다가 그만 다리를 다쳐서···.”
다리 저는 시늉까지.
“아이고 저런···.”
“아내가 간호사인데, 제가 해야죠. 제가 하는 게 맞죠.”
불쌍한 척 연기를 한다.
“젊은 남자가 고생이네.”
“사위도 자식이잖아요. 자식으로서 응당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건데요, 뭐.”
“기특하네요. 요새 사람 같지 않고.”
“근데, 아주머님댁에도 누가 아프신가 봐요?”
대충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믿은 우지만이 슬쩍 떠보지만, 정은주는 함부로 떠벌리지 않았다.
우지만은 더 푸시하지 않고, 곧바로 전술을 바꾼다.
“그럼 들어가세요.”
“그쪽도 들어가요.”
“아, 혹시 기저귀나 패드 필요하신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아내가 요양병원에 일해서 저희는 5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거든요. 저희한테 사시면, 공짜로 몇 개 챙겨드릴 수도 있고요.”
안타깝게도 잘 피해 갔던 그녀도 할인, 공짜라는 말에 그만 넘어가고 만다.
“그래요? 50% 할인?”
“네. 병원은 대량 구매해서 싸게 들여오거든요. 저희 장모님 용도 그렇게 쓰고 있어요. 기저귓값이 비싸잖아요. 하루에 몇 개씩 쓸 때도 있고.”
“맞아. 비싸.”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진짜?”
“네, 그럼요. 이웃끼리인데요. 저희는 저번 주에 103동 1601호로 이사 왔어요, 아주머님은 어디 사세요?”
“새로 이사 오셔서 처음 뵙는구나. 나는 여기 사는 거는 아니고, 간병하러 오는 건데. 102동 1301호에.”
“아- 그러시구나.”
“근데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네- 아무튼 기저귀, 패드, 물티슈 같은 게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아우- 고마워요. 그런 거야 늘 필요하지···내가 여기 조카한테 허락받고 다시 물어볼게요.”
“네, 그러세요. 제 연락처 드릴까요?”
“아니, 뭐. 여기서 종종 보게 될 텐데. 그때 물어볼게요.”
“네, 네.”
“아, 근데, 그 기저귀. 남성용도 싸게 구할 수 있나?”
‘남성용?’
“물론이죠. 근데 누가 아프세요?”
우지만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