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2화 (122/133)

거머리 (2)

“형님, 이 여자 돈 빌린 이유가 뭔지 아세요?”

“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왜, 그래도 형식적으로 묻잖아요, 사채 줄 때.”

서류철에서 김아리의 주민등록증 사본을 발견한 우지만은 백 사장을 다시 찾아갔다.

“기억 안 나지. 돈 빌리러 오는 애들이 한둘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기억해, 인마.”

“그러지 말고 한번 잘 보세요.”

“왜? 누구 아는 애야?”

백이강은 마지못해 우지만이 들이미는 주민등록증 사본과 당시 신청 기록들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김아리? 하- 모르겠는데. 진짜 왜 그러는데? 아는 애냐고?”

“네. 뭐 좀···.”

서류철에서 김아리를 발견한 우지만은 곧바로 <해결>의 웹사이트를 들어가서 김아인을 확인했다.

쌍둥이라는 사실을 유추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게 이상해서 백이강을 찾아온 게 아니었다.

‘잘나가는 변호사가 집 안에 있는데, 왜 사채를 쓰지?’

백 사장이 돈 많은 할머니를 물어 지금은 합법적인 대부업체를 하고 있지만, 1년 전까지만 해도 우지만과 별다른 바 없는 사채꾼이었다.

술집 애들과 호빠 애들, 그 외 삼류 인생들에게 무담보로 돈을 빌려주고 그들의 인생을 쥐어 짜냈다.

‘그런 그에게 찾아왔다는 건······.’

조그만 꼬투리라도 협박할 만 거리를 부릅뜨고 찾고 있던 우지만에게는 로또 티켓 같은 정보였다.

“김아리···. 김아리···. 근데 이름이 좀 낯이 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게.”

“형님, 잘 좀 생각해봐요.”

“김아리······아! 김아리! 그래, 얘.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나네. 얘, 애경이가 소개해 준 애네.”

“애경이요?”

“응. 애경이라고 <제이스> 나가던 애 있어. 색기 충만해서 예쁘장하게 생긴 애.”

“<제이스>면 차병원 사거리에 있었던 텐이요?”

“응. 너도 알지?”

“네. 그럼, 김아리도 술집 애였나요?”

희망에 찬 우지만이 설레는 표정으로 물었지만, 백 사장의 대답은 듣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아니. 어머니가 뺑소니를 당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돈이 필요하다고. 그러고 보니 나한테 뺑소니친 놈을 잡아줄 수 있냐고 묻기까지 했네. 우리가 무슨 심부름센터였는 줄 아나···참···.”

“그래요?”

“그런데 뭐 구라인 줄 어떻게 알아. 별의별 얘기를 다 지어내서 돈을 빌리는 놈들인데. 근데 얘는 진짜인 거 같기는 하더라.”

“형, 확실해요? 얘 술집 애 아니에요?”

“모르지. 근데 아닌 것 같던데. 나도 이 바닥에 오래 있다 보니까, 딱 봐도 견적이 나오잖아. 얘가 어떤 애인지. 아···그래. 미용 일 한다고 했어. ”

“미용일이요?”

“아, 그래, 그래. 애경이도 미용실에서 알게 된 거고. 나도 그래서 빌려줬고.”

우지만은 잠시 정보들을 정리한 뒤, 마지막 질문을 하고는 백이강의 사무실을 나왔다.

“근데 돈은 어떻게 갚은 거예요? 장부 보니까 나중에는 연체도 많이 하고 원금은 거의 갚지도 못하고 있었던데.”

“내가 그때 우리 황 여사님 만나고 있을 때라 그런 애들이 몇 있었지, 큰 물고기 쫓고 있는데 잔챙이들 신경 쓸 겨를이 없잖아. 근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서는 돈을 갚았어. 아하- 내가 왜 얘를 기억하고 있나 했더니, 그래서 기억하는 거네.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데, 나타나서 돈을 한큐에 갚아서.”

“한 번에 다 갚았어요?”

“응.”

“돈이 어디서 나서요?”

“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야 알 필요도 없지. 사람을 죽이고 받았든, 은행을 털어서 갚았든. 아- 근데 왜 이렇게 꼬치꼬치 물어? 진짜 뭐? 얘한테 크게 당한 적 있어, 우 사장?”

---*---

동묘앞역 근처 낡은 건물 2층.

사무실에 돌아온 우지만은 백이강으로부터 들은 정보들을 곰곰이 곱씹었다.

아다리가 대충 맞기는 하는데, 그래도 뭔가 구린내가 난다.

“돈 잘 버는 변호사 오빠가 있는데 애초에 왜 사채를 쓰지?”

“오빠랑 사이가 안 좋았나?”

“지금은 좋고?”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해도 엄마가 뺑소니를 당해서 돈이 필요한 거면 오빠가 돈을 줬겠지?”

“그때는 오빠가 취직 전이라 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해도 이상하잖아. 왜 사채를 써? 변호사면 자격증 하나만으로도 시중 은행에서 1억씩 신용대출 해줄 텐데.”

“학자금 대출이 많아서? 이미 대출 한도까지 차서? 그래도 여동생더러 사채를 쓰라고 하지는 않지, 정상적인 가족이라면.”

좀처럼 결론이 나오질 않자, 우지만은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동안 옆에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있던 부하 명준에게 물었다.

“야, 한번 사채 당긴 년이 다시 사채 안 쓰는 거 봤냐?”

“아뇨.”

“그래. 무조건 다시 돌아오지. 여기가 그런데 거든. 그 이유가 뭐였던 간에. 분명 어디 다른 데 가서 사채를 쓰고 있을 텐데.”

백이강이 아니라고 했지만, 우지만은 김아리가 술집에 나간다는 가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게 사채 쓰기 이전이었든, 쓰고 난 이후였든, 한번은 술집에 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했다.

지금 술집에 나가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쌍둥이 누나든, 동생이든 형제가 술집에 나간 사실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협박거리가 될 수 있었으니까.

“가자.”

“어디요?”

“형사놀이 하러.”

<제이스> 애경이라고 했지···.

---*---

동대문, 트랜스 양복점.

“죄송해요. 너무 늦게 왔죠?”

이것저것 일들이 많았다.

며칠 전부터 가봉하러 오라고 했으나, 아리는 이제야 할아머니를 방문했다.

할아머니는 여느 때처럼 말없이 가봉을 마치고는 아리에게 주민등록증을 건넸다.

“저번에 이걸 흘리고 갔어.”

“아! 이게 왜···.”

보통 트랜스 양복점에서는 현금으로 계산했다.

하지만, 지난번에는 현금이 모자라 신용카드로 결재를 했는데, 신용카드를 꺼내던 와중에 떨어진 모양이다.

“감사해요.”

“조심해.”

“네?”

“무슨 연유로 남자도 아닌 게 남자 흉내를 내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거 하나 실수로 어디 떨어뜨려다가 덜미가 잡히는 수가 있어.”

아리는 지갑이 두 개였다. 하나는 아리 본인이었을 때 가지고 다니는 것과 다른 하나는 오빠일 때 가지고 다니는 것.

당연히 후자에는 아인의 주민등록증이 들어있고, 그날 트랜스 양복점에서 떨어뜨린 것도 아인의 주민등록증이었다.

협박조는 아니었지만, 트랜스 양복점 할아머니의 진지한 목소리가 순간 아리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한다.

옳은 말.

사소한 실수에도 들킬 수 있다.

“감사합니다.”

---*---

“누구세요?”

“나? 이런 사람.”

우지만은 ‘스위트 론’이라는 글자가 박힌 명함을 애경에게 건넸다.

“아리는 왜 찾으시는데요?”

“왜 찾겠어? 용무가 있으니까 찾지.”

자기가 사는 오피스텔에 찾아온 남자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훑은 애경은

“몰라요. 연락 안 된 지 오래되었어요.”

라고 말하고는 오피스텔 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러자, 남자는 다시 벨을 누르고는,

“본명 오문영. 93년 3월 9일생. 본적 부산. 아버지 오재승, 어머니 양윤숙. 주소가 부산시 동래구···.”

그녀의 개인 정보를 큰소리로 읊었다.

띠리릭-

애경은 문을 다시 열 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게 뭐예요?”

“그냥 잠깐 대화. 아는 것만 알려주면 그냥 돌아가.”

“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나 진짜 그 언니 잘 몰라요. 그냥 샵 다닐 때, 워낙 착하길래 커피 몇 번 마신 적밖에 없어요.”

“그쪽이 백 사장님한테 소개해줬다고 하던데?”

애경은 아리가 백 사장의 돈을 갚지 않아 우지만이 찾아왔다고 여겼다.

“나 진짜 몰라요.”

“뭘 몰라? 아직 묻지도 않았는데.”

“그 언니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요.”

“그럼 그전에는 어디 있었는데?”

“네?”

“그전에는 어디 있었냐고?”

---*---

의정부, 대화요양병원.

“형님, 여기는 왜 오신 겁니까?”

부하의 질문에 병원을 바라보고 있던 우지만은 한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고 내셨다.

「“그 언니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요.”

“그럼 그전에는 어디 있었는데?”

“네?”

“그전에는 어디 있었냐고?”

“어디 있기는 샵에 있었죠. 청담 <살롱드누비다>.”

“샵?”

“네, 헤어샵이요.”

“그년 헤어샵 다닌 거 맞아? 술집 나간 게 아니었어?”

“술집이요? 아니에요.”

“술집 나간 적 없어?”

“아, 몰라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똑바로 얘기 안 해!”

“······말했잖아요. 저도 오다가다 어떻게 샵에서 친해졌는데, 갑자기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알려줬을 뿐이에요. 술집을 나갔는지 안 나갔는지는 제가 모르죠.”

“돈은 왜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 언니 엄마랑 오빠가 뺑소니를 당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가게도 못 나오는 거고.”

“오빠?”

“네, 오빠랑 엄마가 뺑소니 사고를 당했는데, 둘 다 의식이 없다고, 돈 빌릴 때 없냐고. 그래서 알려줬어요.”

“오빠도 사고를 당했다고?”

“그렇게 들었어요.”

“오빠라면 쌍둥이 변호사 오빠?”

“그런 것까지는 몰라요. 그냥 오빠라고만 했어요.”」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그럴 이유도 없어 보이고.

「“연락처 갖고 있는 거 있어?”

“있긴 한데, 예전 거랑 연락 안 돼요.”

“줘 봐.”

“진짜예요.”

“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을 테니까, 정확하게 대답해. 안 그러면 인터넷에 너 술집 년이라고 다 까발려버릴 거니까.”

“아, 진짜 나한테 왜 그래요? 내가 돈 빌린 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인생을 똑바로 살았어야지. 이런 것들이랑 어울리지 말고. 자, 지금 그년 어디서 일해?”

“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알아내라고 묻는 거야. 샵에 전화하든, 친했던 다른 사람한테 연락하든 해서. 한 시간 줄게. 한 시간 안에 대답 못 하면, 알지?”」

그렇게 협박해서 얻은 다음 정보.

의정부, 대화요양병원.

「“아, 진짜 다들 모른대요.”

“모르는 게 어디 있어? 어디 지방 사는 것도 아니고 서울에 있는데. 강남에 유명 샵들이라고 해봤자, 거기서 거기일 텐데.”

“진짜예요. 일 안 하는 것 같아요.”

“하- 진짜 내가 인터넷에 뿌린다고 했을 때, 이빨까는 줄 알았구나. 니가?”

“아니에요! 진짜라니까요. 원장님도 모른대요. 같이 일했던 애들도 모르고! 그게 다예요. 그만두기 전에 그렇게 말했대요. 오빠가 식물인간이 돼서 자기가 돌봐야 한다고. 엄마도 치매라서 의정부에 있는 무슨 요양병원에 있어서 자기밖에 돌 볼 사람이 없다고. 진짜예요!”」

“형님?”

일단 술집에 나가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연에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멀쩡하게 변호사 일을 하는 사람이 1년 전까지만 해도 식물인간이었다고?

그가 본 김아인은 그렇게 큰 사고를 당했던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게, 내가 왜 여기까지 왔냐?”

“······.”

“그래도 이왕 왔으니까, 만나는 보자.”

“누구를 말씀이십니까?”

“우리 아리 양 어머님. 뺑소니를 사고를 당하셨고 지금은 치매 걸리셨다는.”

차에서 내리기 전,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다듬은 우지만은 비타500 한 박스를 사 들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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