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7화 (117/133)

식구라면 (1)

“안녕하셨어요, 변호사님.”

“아, 수지 씨, 계셨네요.”

악플러 추가 조치 관련해서 회의하러 케이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을 찾은 정도는 마침 회사에 나온 남수지를 만났다.

“악플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래요? 저는 사실 많이 찾아보지는 않는 편이라서.”

“많이 줄었어.”

정도의 의견에 매니저 세연이 동의했다.

“그래?”

“응.”

“다행이네요. 근데 정말이지 하나가 달려도 되게 아픈 게 달릴 때가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더 피하게 되고···. 어쩔 수 없는 건지 알면서도 슬퍼요.”

모르는 사람에게 근거 없는 비난을, 그것도 매일 같이 받아내야 한다는 게 어떤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가늠해볼 수 있었다.

정도가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수지는 자신 때문에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것 같아 얼른 주제를 바꿨다.

“정인 씨는 잘 만나고 계세요?”

“네? 아, 네.”

“두 분이 잘 어울리세요. 그렇지 않아, 언니?”

“응. 잘 어울리세요.”

“아, 그런가요? 하하. 저기 그런데요. 이건 그냥 제 추측이기는 한데, 수지 씨 우리 김 변한테 관심 있으셨던 가 아니셨어요?”

일 이야기가 끝나고 사담을 나누던 중, 정도는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그냥 아니라고 발뺌했을 법한데 수지는 쿨하게(?) 인정한다.

“알고 계셨어요?”

“맞죠? 김 변한테 관심 있으셨던 거?”

“네.”

“그때 눈치챘어요. 시사회 때, 수지 씨가 계속 김 변 왜 안 왔냐고 물으셨을 때. ‘아, 나 오라고 준 티켓이 아니었구나’ 느낌이 왔죠.”

“눈치가 빠르시네요.”

“하하, 제가 한 눈치 합니다.”

눈치가 있기는 무슨···. 그쯤에서 끝냈으면 괜찮을 텐데, 정도는 한 발 더 나갔다.

그러는 바람에 가만히 있던 송세연이 비밀(?)을 털어놔 버리게 되었다.

“제가 자리 한번, 아니 될 때까지 만들어 드릴까요?”

“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 티가 날까 봐 걱정이시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절대 표시 나지 않게, 자연-스럽게~.”

정도는 유명 개그맨의 유행어까지 흉내면서 말했다. 옆에 있는 송세연의 이맛살이 구겨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제가 동료로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김 변 진짜 괜찮습니다. 사람이 진국이에요. 왜 그런 사람들이 있죠. 처음에는 별론데 만나면 만날수록 괜찮은 사람. 김 변호사가 딱 그런 사람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살짝 안 좋은 인상을 받았었는데, 말을 섞어보니까 사람이 아주 착해요. 키가 좀 작기는 한데 비율이 좋아서 옷발도 잘 받잖아요. 제 생각에는 수지 씨가 한번 만나보면, 진짜 괜찮다고 생각···.”

“아이- 진짜 변호사님!”

“네?”

“웬만하면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언니.”

“윤 변호사님이 말씀을 끊지 않으시니까, 자꾸 아픈 데를 찌르니까.”

“제가요? 아픈 데요?”

“수지가 김 변호사님 만나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세요? 근데 이제 와서 자꾸 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하고, 김 변호사님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하고···.”

“···진짜 괜찮은 사람인데···.”

“김 변호사님이 남자 좋아하는 거는 아세요?”

“언니!”

··· ··· ··· ···

회의실에 찾아온 긴 침묵.

정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 에이- 아니에요. 뭔가 잘못 아신 걸 거예요. 김 변이 남자를 좋아···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아니에요. 김이 생긴 거는 그래도 얼마나 상남자인데요. 말술이에요. 입도 걸고. 실장님께서 잘못 아신 걸 거예요.”

“그럼 게이도 아닌데 정인 씨가 수지한테 거짓말을 했다는 건가요?”

“네? 정인 씨가 그랬다고요?”

“네.”

정보의 주인이 정인이라는 말에 정도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

“저도 솔직히 이런 식으로 밝히고 싶지 않았는데, 윤 변호사님이 자꾸 눈치 없게 말씀을 하시니까 어쩔 수 없이···. 제가 거짓말하는 것 같으면 정인 씨하고 직접 확인해보세요.”

정인이 거짓말을 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정도는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김 변이 게이라니···.’

---*---

용산, 병원.

“그날 병문안 왔을 때 서류 가지러 나만 올라왔다가 우연히 들었어요. 그리고 며칠 뒤, 케이 엔터 사무실에서 그 남자를 다시 봤고요. 윤기정 씨 매니저가 왜 과장님을 찾아왔는지 알려줄 수 있어요?”

나름대로 조사를 해본 그녀.

그러나 그날 이헌이 게이클럽에 갔다는 사실 이외에 추가로 알아낸 것들은 없었다.

아리는 이헌을 다시 찾았다.

“······.”

기정은 쉽사리 말문을 열지 않았다.

“용산서에도 전화해봤어요. 폭행 사건 접수된 것 없다고 하더라고요. 과장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네?”

“변호사님.”

“네.”

“변호사님은 왜 궁금하세요?”

“네?”

“제가 왜 이렇게 됐는지 왜 궁금하시냐고요?”

“그거야, 같이 일하는 사람이 이렇게 심하게 다쳤는데 궁금해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술 먹고 맞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게 아닌 거 같아서요.”

너무나 당당하게 묻는 아리에 이헌은 다시 한번 할 말을 잃었다.

사실 누군가에게 죽도록 말하고 싶었다.

억울해서 하소연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사람이 아무 데도 없었다.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었고, 궁금해한다고 해도 가슴의 응어리를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낳아준 엄마한테도.

“제가 사실대로 말하면 듣고 아무 일도 안 하시겠다고 약속해주실 수 있어요?”

“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저를 위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시겠다고?”

의미심장한 요청에 아리는 이헌을 바라봤다.

그의 눈은 이미 촉촉해지고 있었다.

“그게 유 과장님이 원하시는 거라면요.”

이상하게도 왠지 김 변호사님이라면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알 수 없는 기대가 든다. 안도감 같기도 하고 동질감 같은 것 같기도 하고.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이헌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다른 성향을 갖고 태어났어요···.”

---*---

며칠 뒤, 케이 엔터 사무실.

“그 조항 꼭 넣어야 합니다!”

너무나 단호한 아리의 주장에 놀란 건 이동주 대표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지우는 아무런 내색하지 않았다.

“제 파트너가 그렇다고 하네요.”

이동주는 아리의 시선을 잠깐 마주한 뒤 서지우를 보며 말했다.

“나도 알아본 게 있는데, 괜찮을 거 같아. 그 정도 리스크야···. 이 바닥에서 별의별 놈들이 다 있으니까. 빨리 키워서 미국 진출시켜버리면 돼. 서 변, 나 이놈 계약할 거야. 계약해야 해. N사에서도 이미 그렇게 알고 있어. 우리가 안기정이 데려오는 걸로.”

서지우의 예측대로 이동주는 이미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다.

연 매출 100억보다도 N사의 투자가 더 큰 동기였다.

“알겠습니다.”

“오케이, 그러면 해당 조항 빼고 진행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리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미팅이 끝날 때까지 몇 번 더 고집을 피웠다.

“대표님, 심사숙고하시길 다시 한번 조언 드립니다!”

---*---

“김 변, 잠깐 내 방으로 오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던 서지우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아리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그리고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리도 알았다.

서지우의 질문 의도를.

좀 전 케이 엔터 회의 때 태도에 관해 묻는 것이었다.

“저는 그저···.”

유이헌으로부터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들었다. 이헌의 정체성에서 관해서도, 가해자가 안기정이라는 것도.

그리고 나오기 전 약속을 했다.

절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기로.

머리로 이해는 했지만, 아리는 이 상황이 답답했다. 가해자 안기정이 이 상황을 이용해서 처벌은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고 넘어가려는 것이.

그런데,

“유 과장 일 때문이야?”

예상치도 못하게 서지우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변호사님도 알고 계셨어요?”

“김 변은 유 과장한테 들은 건가?”

“네. 변호사님은 어떻게······.”

어떻게 알고 계신 것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알고 계시면서도 그러면 이 대표가 안기정이랑 계약하는 걸 그냥 두시는 건가요?”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야.”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요? 유 과장님 일인데요?”

“유 과장과 안기정 사이의 일과 케이 엔터 계약 건은 별개야.”

남의 일처럼, 너무나도 이성적으로 대답하는 서지우가 아리는 입사 후 처음으로 싫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김 변이 원하는 건 뭔데? 이 대표가 안기정이랑 계약하지 못하게 훼방 놓는 거? 그래봤자, 안기정은 다른 회사랑 계약하거나 아니면 독자 회사를 차릴 텐데.”

“적어도 우리 의뢰인이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조언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나요?”

“실수? 안기정이랑 계약하는 게 실수인가?”

“실수죠. 그런 쓰레기랑 계약하면 손해가 날 게 확실해요.”

“손해? 리스크를 이야기하는 건가? 그건 의뢰인이 감수하겠다고 몇 번이고 확인해준 거 같은데.”

“그건 이 대표가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모르고···.”

“어떤 인간인데?”

“동성···.”

동성애자라고 말하려던 아리는 그만두었다. 그런 뉘앙스로 내뱉으려던 단어가 아니었다.

“사람을 무자비하게 때려놓고 사과 한마디 없는 쓰레기라고요.”

아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순간 이헌이 당한 일이 떠올랐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그녀. 그래서 사람들이 그녀에게 비밀을 털어놓게 된다.

“이 대표가 그걸 모를까?”

“네?”

“이 업계에서 삼십 년 가까이 일한 사람이야. 로드매니저부터 시작해서 거기까지 올라간 사람이라고, 그 사람이 입을 열면 대한민국에 다칠 사람이 꽤 될걸. 그런 사람이 안기정이 어떤 사람인 줄도 모르고 계약하려 할 것 같아? 뒷조사도 제대로 안 하고 전속계약금으로 20억씩이나 되는 돈을 줄 것 같냐고.”

이동주 대표가 알고도 계약하려 한다는 사실에 아리는 충격을 먹었다. ‘어떻게 알면서도 그런 인간과 계약을 한다는 말이지?’

그러나, 더 충격은 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려는 서지우의 대응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하시는 거죠? 대표님이라면 뭔가 하실 수 있잖아요.”

아리의 질문에 서지우는 고개를 돌렸다.

“어떤 일은 그냥 덮어두는 게 나아.”

“그게 무슨 말이죠?”

아리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묻자, 서지우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똑바로 보고 냉철한 목소리로 말했다.

“게이가 방송하고 입담 좋은 트랜스젠더 캐릭터가 나와 떠든다고 세상이 바뀐 건 아니야. 여전히 그 사람들에게는 살기 힘든 세상이야.”

“그렇다고 이런 일을 간과하고 넘어가는 거는 아니지 않나요?”

“넘어가지 않으면?”

“네?”

“결과를 예상해봤어?”

“네?”

아리는 그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 없었다.

“김 변호사는 유 과장의 그런 성향을 이해해? 솔직히 나는 못 하겠는데.”

“이해하지 못한다고 공존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으로서 똑같이 보호받아야 할 권리도 있고요.”

“진짜 그럴까? 다른 사람들도 김 변의 의견에 동의할까?”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가해자가 처벌도 받지 않고 저렇게 버젓이 스타 짓을 하게 놔두지는 않을 것으로요.”

“결국 김 변은 유 과장을 생각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 복수가 하고 싶어서 그런 거네.”

서지우의 지적에 아리는 곧바로 대꾸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사실이었으니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유 과장님한테 일어난 일이라고요!”

“그만했으면 됐어.”

“변호사님!”

“이미 합의했어. 끝난 일이야?”

“네? 합의요? 유 과장이 가해자랑 합의했다고요?”

---*---

「며칠 전, 용산 병원.

“이게 정말 유 과장이 원하는 거야?”

서지우는 이헌을 찾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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