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8화 (108/133)

엇갈린 작대기 (2)

“아리?”

법무법인 해결 홈페이지 속 김아인 변호사의 사진을 보고 매니저가 ‘아리’라고 외치자, 수지는 그게 누구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 아리. Zoom 있을 때 다녔던 샵에 보이쉬하고 예뻤던 애. 내가 스카우트하려고 했던. 기억 안 나?”

“아, 아. 기억나.”

이름은 얼핏 기억나지만, 얼굴은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 사람이랑 비슷하게 생겼어?”

“비슷? 완전 똑같이 생겼어!”

“그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중, 뭔가 떠올랐는지 수지가 먼저 말을 이었다.

“아! 쌍둥이인가보다.”

“쌍둥이?”

“응. 그때 그분 이름이 ‘아리’라고 했지?”

“응.”

“김아리?”

“응.”

“변호사님 이름이 김아인이야. 김아인, 김아리. 돌림자가 같은 걸 보면 둘이 쌍둥이네!”

그럴싸한 추측.

순간 도플갱어라도 본 줄 알고 놀랐던 매니저 송세연이 과거의 일을 회상해본다.

“쌍둥이 오빠가 있다고 들은 적은 없는데···.”

“동생일 수도 있지.”

“아니, 그러니까 오빠든 동생이든 자매든 있다고 들은 적이 없는 거 같아.”

“그래?”

“그러고 보니 집안 얘기를 한 적 없는 거 같아.”

“자기 얘기 잘 안 하는 분인가 보네.”

“말이 많은 타입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조용한 타입도 아니었는데···. 보통 쌍둥이가 변호사면 이야기하지 않나? 거기다가 연예 관련 쪽 로펌에 다니는 거면? 내가 매니지먼트 회사 다니는 것도 알고 있었고, 스카우트 제의도 했는데.”

“사이가 안 좋은가? 그럴 수도 있지 뭐. 나도 다른 데 가서 우리 가족 이야기 안 하니까.”

“너야 연예인이니까······.”

말꼬리를 흐린 송세연은 다시 핸드폰 속 사진을 봤다.

아무리 봐도 너무 닮았다.

“잘됐다!”

“뭐가?”

“혹시 그분 연락돼?”

“누구? 아리?”

“응.”

“아니, 그만두고 연락 온 적 있어서 다시 걸어봤는데, 전화번호가 바뀐 거 같더라고.”

“그래?”

순간 수지의 입꼬리가 아쉬운 듯 내려가려다 말고 다시 올라간다.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모양이다.

“아! 언니!”

“왜, 또?”

“그러면 되겠다.”

“뭐가 그러면 돼?”

“그 ‘아리’라는 분 어차피 다른 샵에서 일할 거 아니야.”

“모르지. 근데 아마 그렇겠지? 실력이 나쁘지 않았으니까.”

“알아볼 수 없을까?”

“아리 일하는 데?”

“응.”

“왜?”

질문과 동시에 수지가 왜 그녀가 일하는 곳을 찾으려 하는지 눈치챘다.

“기집애, 너 아리 통해서 이 변호사랑 가까워지려는구나?”

“일을 만들어서 만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존심 상하게 먼저 연락하기도 그렇고. 응? 언니 알아봐 주라.”

“아우, 여우.”

“히히. 방금 연기도 연애를 많이 해야 는다며. 응? 알아봐 주라.”

“알았어. 내가 전에 있던 샵에 연락해서 아리 지금 어디서 일하는지 알아봐 볼게. 근데 장담 못 해. 다른 일 할 수도 있고.”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뭐. 고마워, 언니.”

---*---

“아빠-”

“어, 네가 웬일이야?”

“근처에 친구 만날 일이 있어서 왔다가 아빠 얼굴도 볼 겸해서 들렀어.”

최성태 사무장은 예고 없는 딸 예나의 방문이 반가웠다.

“전화하지, 그랬어?”

“그냥 얼굴만 보고 가려고 한 건데 뭐. 자 이거.”

예나가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그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케이크.”

“케이크?”

“응. 회사 사람들하고 나눠 먹으라고.”

“뭘 이런 걸 다 가지고 와.”

“맛있는 데야. 아빠도 꼭 하나 먹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딸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온 것이.

케이크 같은 디저트를 즐겨 먹는 그는 아니었지만, 다 큰 딸이 그런 걸 가지고 찾아와준 사실만으로도 눈물이 핑 돌았다.

“혹시 부장님 따님?”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때마침, 볼 일이 있어 최성태 사무장의 책상이 있는 곳으로 다가온 정도가 예나를 알아봤다.

“실물이 더 예쁘세요?”

“네?”

“아, 저 예나 씨 유튜브 본 적 있습니다. 제가 볼 콘텐츠가 아니라서 자주 보지 않았지만, 슈퍼챗 보낸 적도 있고.”

“아!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 여기 케이크 좀 드세요.”

“아, 여기 케이크 진짜 맛있는데.”

“아시는구나.”

“여기 유명하잖아요. 아우- 잘 먹겠습니다. 아, 혹시 같이 드실래요? 저희 사무실 휴게실이 웬만한 카페보다 더 분위기가 좋은데.”

언제나처럼 여자한테 참 친절한 윤정도.

안 그래도 빌딩이 예뻐 살짝 궁금했던 예나는 정도의 제안에 아빠의 표정을 슬쩍 살폈고.

최성태는 괜찮다는 눈짓을 보냈다.

“그러면 잠깐만 있다가 가도 될까요?”

“아, 물론이죠. 잠깐만요. 창현이가 어디 갔더라? 걔가 커피를 기가 막히게 내리는데···.”

예나는 정도와 아빠를 따라 <해결>의 카페 같은 휴게실로 향했다. 직원의 반이 출장 중이라 사무실은 한가했고, 그래서 휴게실은 더 카페 같았다.

창현이 커피를 내리는 동안, 송무팀 박충오 대리가 들어와 케이크 잘랐다. 그사이 정도는 딸에게 최성태 사무장님에 대한 칭송을 늘어놓는다.

남자만 있는 곳이라 보통은 한없이 삭막하다가도 이럴 때는 또 그들만의 동료애가 있다.

평소 얼굴에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그였지만, 그 순간은 그의 표정에서 뿌듯함이 드러난다.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근데 김아인 변호사님은 어디 가셨나 보네요?”

“어, 김 변을 알아요?”

“예, 한 번 만난 적이 있어요.”

“김 변을?”

“네. 제가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요.”

“아, 그렇구나. 근데 무슨 도움?”

대답하기 전, 그녀는 아빠를 슬쩍 바라보고 더 자세하게는 말하지 않는다. 이곳저곳 떠들고 다닐 일이 아니었기에.

예나는 아리로 주제를 바꿨다.

“김 변호사님 여동생분께서 제 채널 보시고 응원이랑 댓글도 많이 해주셨어요. 콘텐츠 제안도 많이 해주셨어요.”

“김 변 여동생? 아, 헤어샵에서 일하신다는 쌍둥이 여동생.”

“네.”

최성태는 대화의 방향이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딸 예나는 김아인이 김아리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아, 그랬구나.”

“언니가 실력이 진짜 좋으세요.”

“아, 그래요? 김 변이 여동생 얘기는 잘 안 해서. 그렇게 잘하시는 분이면 한번 가봐야겠다. 혹시 어디서 일하시는지 아세요?”

모른다.

예전에 한 번 물은 적이 있다. 채널에 한 번 출연해줄 수 있냐고.

그때 아리의 대답은 방송에 나가는 게 불편하다는 대답을 했다.

“언니 일하세요?”

“어? 일하시는 거 아니었나요?”

순간 최성태의 표정이 굳었지만, 다행히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부장님, 김 변 여동생이 헤어샵에 다니지 않았나요?”

“네? 아, 그건 저도 잘···.”

다행히도 (그리고 의도적으로) 김아리에 대한 정보는 회사 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몇 개월 전, 최성태가 김아인의 정체를 알기 전, 대표변호사의 지시로 뒷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땐 공식적으로 김아리는 무직인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김아인이 되어 일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뒤로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강남의 한 헤어샵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진 상태였다. 이름도, 주소도 모르는 고스트 샵에서.

“부장님이 모르시는 게 다 있으시네요.”

“네? 아, 네···.”

“김 변 들어오면 물어봐야겠다.”

“네?! 윤 변호사님,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거 같은데요.”

당황한 나머지 사뭇 진지한 목소리가 나와버렸다.

예상치 못한 사무장의 반응에 의아한 건 정도뿐만 아니었다.

하지만, 따님 앞에서 나이가 한참 많은 사무장에게 말대꾸할 마음은 없다.

“아, 그런가요?”

“좀 그렇지 않을까요? 어찌 됐건 윤 변호사님이 김 변호사님의 직장 선배이신데, 후배 동생분 헤어샵에 가서 두발을 정리해달라고 부탁하는 건.”

자신의 반응이 과민했다는 걸 곧바로 눈치챈 최성태는 부드러운 어조로 두루뭉술 말했다.

근데 그럴싸하다.

“또 듣고 보니 그렇네요. 저는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실력이 좋으신 거 같아서, 그런 분에게 한번 스타일링을 맡기면 이 비루한 외모가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이, 압니다. 훌륭하신 윤 변호사님께서 그런 의도가 있으셨을 리가 없죠.”

상황을 모면하려 말을 자꾸 하다 보니, 꼬인다.

평소답지 않은 최성태의 모습에 당황스러운 건 정도뿐만 아니라 창현, 충오도 마찬가지였다.

잠시간, 어색한 침묵이 휴게실에 흘렀다.

그 침묵을 걸 깨는 건 예나의 몫이었다.

“아,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럴래?”

“응.”

“그래, 변호사님도 일하셔야 해서 가는 게 좋겠다. 아빠가 역까지 바래다줄게.”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어험, 아니야. 아빠가 바래다줄게. 가자.”

얼굴이 살짝 붉어진 최성태는 헛기침하고 먼저 휴게실을 나갔다.

예나는 아빠 회사 동료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그를 따라나섰다.

“아빠.”

“응?”

“내가 물어보는 건 괜찮지?”

“뭘?”

“나는 회사 사람이 아니잖아. 아리 언니가 먼저 팔로우한 거고.”

“응? 아···응. 너는 뭐···.”

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이유가 없다.

최성태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래도 너무 귀찮게 하지는 말고.”

“안 해. 그냥 한번 물어보고, 언니가 불편해하면 안 하려고.”

“···그래.”

느낌이 좋지 않다.

최성태는 점점 길어지는 듯한 아리의 꼬리가 불안했다.

---*---

며칠 뒤,

스케줄이 없는 날.

송세연은 남수지의 아파트를 찾았다.

“언니, 혹시 알아봤어?”

“뭐?”

“뭐라니? 김 변호사님 쌍둥이 동생이 일한다는 샵.”

“아- 너 그분한테 완전 빠졌구나?”

“알아봤어?”

수지의 반응이 재미있는 세연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알아봤는데, 모른대.”

“모른대?”

“응. 옛날 일했던 샵 원장님에게 연락해봤는데, 가게 그만두고 연락이 끊겼대.”

“진짜?”

“응. 집에 무슨 일이 생겼었던 거 같다고만 하더라.”

“무슨 일?”

“어머니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들은 것 같다고···.”

“진짜?”

“응. 그것 때문에 돈을 꾸러 다녔다는 거 같아. 결국 병간호 때문에 샵에도 못 나온 것 같고. 그러고 보니 그때 나한테 전화한 이유가 돈 때문이었던 같기도 해.”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에 수지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무래도 지금은 괜찮겠지? 오빠가 잘나가는 변호사니까? 아, 맞다. 오빠래. 쌍둥이 오빠. 원장님은 알고 있더라. 쌍둥이 오빠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고.”

“쌍둥이 오빠. 그러면 설명이 되네···. 근데 진짜 어디서 일하는지 모른대? 일을 안 하지는 않을 거 아니야?”

“모르지.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다른 일? 무슨 일?”

“내가 어떻게 알아.”

“힝-”

김아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루트가 막힌 거 같아 수지는 실망스러웠다.

“그렇게 아쉬워?”

“웅.”

“그러면 내가 대신 물어봐 줘?”

“누구한테?”

“누구긴 본인한테지.”

“본인?”

“그래, 본인. 김아인 변호사님한테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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