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133)

사채꾼 우지만 (5)

띠리링- 띠리링-

“어, 민준아.”

“난데. 조사해봤는데, 확실히 구린 거는 있어. 있기는 한데···.”

딱히 피해자가 나온 것이 아니라, 구속하기는 어렵다. 놈들이 정윤하를 협박하기는 했지만, 돈을 받아낸 건 아니기에, 협박한 사실만 가지고는 구속수사는 불가능이었다.

“금융범죄수사계 계장님하고 이야기해봤어. 놈을 주의 깊게 보면서 조사는 계속하실 거라고 하더라고.”

“고맙다.”

“고맙기는 뭐. 원래 경찰이 해야 하는 일을 네가 먹기 좋게 떠다 준 거지.”

최성태로부터 사건 배경에 관해 들은 후, 서지우는 백도진과 김인경을 만났다. 워낙 구린 놈들이라, 그들로부터 우지만을 신고할 만한 정보를 얻는 건 일도 아니었다.

“성재에게 연락하려다가 너한테 했다.”

증거를 얻은 서지우는 경찰청에 근무하는 동기한테 연락을 취했다.

“잘했어. 요새 검찰은 수사권 때문에 시끄러워. 이런 거는 우리가 더 잘해. 쪽수도 더 많고.”

“피식- 그래.”

“하긴 뭐 성재가 그런 거 신경 쓰고 사는 애는 아니지만···. 아무튼 알고 있으라고 전화했다. 우지만이 풀려날 거라고. 그래도 수사는 계속 진행한다고.”

“알았다.”

“그래, 들어가라.”

딸깍.

---*---

“오 형사님!”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계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우지만은 곧바로 강남서 오상욱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 그러니까 나도 모르는 일이었다고. 청에서 단독 진행한 거야.

“그게 지금 이 상황에 통하는 변명이라고 생각하세요, 오 형사님?”

-변명?

“저 들어가면 제가 혼자 들어가겠습니까?”

-우 사장!

“오 형사님, 우리 제발 그런 일 만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뉴스 헤드라인에 나오고 싶으시지 않으면요.”

딸깍.

보험도 없이 이 사업을 하고 있을 정도로 멍청한 그가 아니다.

오상욱 형사 말고도 이곳저곳 뿌려놓은 게 있었다.

“형님, 괜찮으신가요?”

“너 같으면 괜찮겠냐? 하- 어떤 새끼가 꼰지른 거야. 이거 분명 누가 나를 찍어서 신고한 건데···. 야, 너는 가서 송국종 사장 좀 만나봐.”

“네, 알겠습니다.”

“만나서 경찰 조사니, 신고니 하는 소리 한 번이라도 나오면 바로 잡아 와. 내가 진짜 이번에는 오줌 지리는 걸로 안 끝낼 테니까. 그리고 경수 너는 빌라에 있는 장부들 챙겨서 창고로 가지고 가.”

“전부요?”

“응, 전부. 아, 그리고 잘 봐, 누구 따라붙는 놈들이 있나. 경찰 낌새라도 보이면 바로 연락해. 그거 뺏기면 진짜 끝이다.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띠리링- 띠리링-

지시를 내린 우지만은 또 다른 의미에서 뒤를 봐주고 있는 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우 사장이 웬일이야?

“형님, 잘 계시죠?”

-나야 뭐 똑같지. 요새 잘나간다며?

“에이, 잘나가긴요. 그냥 작게 사무실 하나 운영하는 거죠.”

-아니던데, 빌딩 한 채 샀다는 소문이 있던데.

“하하하. 그러면 제가 한국에 있겠습니까, 모히토에 가서 몰디브나 빨고 있겠지.”

-크크큭. 역시 센스가 있어. 왜? 무슨 일이야?

“아, 다른 게 아니고요···.”

---*---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지난번에는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밤늦게 전화했는데 친절하게 받아주시고.

형사님이 다녀가셨어요. 경찰청 무슨 수사과에 계시는 분이라고.

그분한테 다 말씀드리니까 마음이 한결 낫네요.

친절하신 분이셨어요.

이렇게 된 거 그냥 다 솔직하게 말하려고요. 어차피 가게에서도 소문이 다 나서, 일도 못 하고.

저 괜찮겠죠?

이 일도 지나가면 괜찮아질 수 있겠죠?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며칠 전 늦은 밤, 아리는 윤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김아인 변호사에게 건 전화였다.

우지만이 가게에 다녀가고 그녀는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어떻게 할지 모르는 그녀를 겨우 달래 진정시켰다.

지금 들어온 문자를 보니 그때보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것 같긴 한데, 그중 “형사”라는 언급이 의아했다.

“형사? 경찰청 수사과?”

신고한 적 없다. 물론 조만간 할 생각이었지만, 경험이 별로 없는 아리는 조심스러웠다.

어디에 신고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제대로 수사가 진행될 수 있는지 고민 중이었다.

똑똑똑.

“변호사님.”

안 그래도 찾아가려고 했는데, 최성태 사무장이 먼저 와주었다.

“아! 최 부장님.”

“잠깐 시간 괜찮으신가요?”

“네. 안 그래도 부장님한테 가려고 했는데.”

“정윤하 씨 일 때문인가요?”

“네, 어떻게 아셨어요? 역시 최 부장님이 신고해주신 건가요?”

넘겨 집어본다.

“아니요.”

“아니···라고요? 그럼 누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이름이 최성태 부장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서 변호사님께서 하셨습니다.”

“네에? 대표님이요?”

---*---

사채업을 하고 있으니 원한 살만한 일은 당연히 많다. 그러나 섣불리 신고당할 정도로 허술하게 해온 장사가 아니다. 겁을 줄 때는 확실히 줬고, 기름칠할 데는 아끼지 않고 했으며, 바짝 기어야 할 때는 코가 땅바닥에 닿을 정도로 엎드렸다. 그렇게 바닥에서부터 일궈놓은 업체였다. 그리고 그것이 독고다이인 그가 강남 바닥에서 사채업을 할 수 있는 이유였다.

자신이 누구보다 촉이 좋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자신을 좇고 있는 자가 누군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곳저곳 전화를 돌린 후 사무실에 홀로 앉아 가만히 생각해본다.

‘누굴까?’

수없이 많이 떠오르는 얼굴들. 그들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본다.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 되고 만다.

딩동.

그 리스트에 없는 사람이 찾아왔다.

“누구시죠?”

“당신 신고한 사람.”

---*---

“대표님이 어떻게···?”

일부러 서지우에게 말하지 않고 진행했던 사건이었다.

회사가 주로 하는 케이스도 아니었고 돈을 받고 하는 케이스도 아니었기에 말하기 어려웠다. 도움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면목이 없었다.

게다가 윤정도가 탐탁지 않아 하는 케이스였기에 말하지 않는 게 좋다고 여겼다.

“윤 변호사님이 서 변호사님께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사건 수임을 그렇게 반대하면서도 윤정도는 최 부장님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조언을 주고 대표에게도 말해주었다. 분명 막내가 사건을 그만두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걱정돼서 보고한 것이었다.

서지우 역시 아리에게는 말 한마디 없이 사건을 해결해주었다.

둘 다 참 츤데레 같은 사람들이다.

“왜···?”

“겉으로는 차가워 보여도 자기 식구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 않는 분들입니다.”

자기 식구를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멋진 사람들이다.

“그럼 해결된 건가요?”

“네, 정윤하 씨 사건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확신에 찬 최성태의 답변. 아리는 궁금해진다, 서지우가 어떤 식으로 해결했는지가.

---*---

강남, <스위트 크레딧> 사무실.

“당신 뭐야?”

우지만은 소파 맞은편에 앉아 있는 서지우를 꼬나보며 물었다.

“변호사.”

“생판 처음 보는 변호사가 무슨 원한이 있어서 나한테 이러는 거지? 나한테 돈 빌린 적 있어?”

없다. 자기한테 돈 빌린 사람들 얼굴 정도는 전부 기억한다.

아,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다.

어디서 봤더라···.

“어, 너?”

몇 주 전, 인터넷에서 봤다. 사무실에 찾아왔던 곱상하게 생긴 변호사 명함에 적힌 로펌 사이트를 훑어보다가.

“그 엔터테인먼트 로펌 대표? 맞지? 그놈?”

서지우는 건방진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참나- 니들 도대체 뭐야? 하이디 그년하고 무슨 더러운 관계이길래, 그 로펌 변호사들이 단체로 나서서 이러는 건데? 당신도 받았어? 쿠폰? 미친. 시발.”

자신을 신고한 사람이 고작 정윤하 따위가 고용한 변호사라는 사실에 분노가 치민다. 조심스럽게 상대를 가늠하던 우지만은 이제 대놓고 욕을 내뱉었다.

그러나 상대는 그런 모습에 겁은커녕 같잖다는 표정을 지으며 찾아온 이유를 귀에 때려 박는다.

“네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관심 없지만, 이 일 계속하려면 음지에 그냥 처박혀 있어 기어 나오려고 하지 말고.”

“뭐?”

“벌레 새끼가 겁도 없이 그림자 밖으로 나오면 밟히는 수밖에 없는 거야.”

“근데 이 새끼가 진짜···.”

“너 수사한 팀이 경찰청 금융범죄수사계야. 내 동기가 경찰청 조직법무계 계장이고. 오상욱이? 흥, 지방경찰서 형사 몇 명 네 주머니 안에 넣어놨다고 덮어질 일이 아니야.”

변호사의 입에서 오상욱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우지만은 순간 등골이 오싹한다. 뜨거웠던 정수리가 한순간에 식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게 시작이었다.

아까부터 그가 들고 있던 노란색 서류 봉투. 그가 그것을 자신 앞에 던지자, 우지만은 봉투를 들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이걸 네가 어떻게···?”

얼굴이 하얗게 변한 우지만.

봉투 안에는 경수한테 창고로 옮기라는 장부 중 하나가 들어있다.

“사람을 잘못 건드렸어.”

“원하는 게 뭐야? 정윤하야? 알았어. 안 건드릴게. 걔한테서 손 떼면 되잖아.”

할 말을 끝낸 서지우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려줘. 한번 살려줘. 내가 실수했어. 사람을 잘못 봤어. 하라는 대로 할 테니까, 말만 해. 이번 한 번만 눈감아주면 이 은혜 평생 안 잊을게.”

“숨어.”

“응?”

“다 버리고 어디 필리핀이든 베트남이든 가서 숨어 살아.”

빠득.

“아니면 살고 나오든가.”

어금니 무는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너 이 새끼, 내가 이대로 당하고 끝날 줄 알아? 나 같은 놈 건드려봤자, 네 인생에도 좋을 거 하나 없어. 벌레 같은 놈이 왜 무서운 줄 알아? 음지에 숨어있다가 너 잘 때, 너 딴 일 할 때 기어 나와서 무는 거야. 그러니까 잘 생각해.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피해가. 그러면 나도 네 주위에 다시는 얼씬대지 않을 거니까. 근데 이거, 여기, 내가 가진 거 다 뺏잖아? 그럼 나도 평생 네 주위에 어슬렁거릴 거야. 그러다 너 잘 때, 너 삐끗해서 넘어질 때를 기다렸다가 네 목에 칼침을 놓을 거야. 그러길 원해? 평생 나 같은 놈이 네 주위를 맴돌길 원해? 아니잖아. 엘리트잖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할 거 아니야. 그러니까 나 같은 놈 무시하고 너는 네 갈 길 가. 나는 계속 음지에 있을 테니까. 그런데, 여기서 나를 밟는다? 흥, 나도 그냥은 안 죽어. 5, 6년 뒤에 나와서 너도 모르게 네 그림자에 숨어있을 거야. 끔찍하지? 왜 못 할 것 같아? 아니, 해. 너 같은 놈은 가진 게 많아서 두렵겠지만, 나는 원래 가진 게 없던 놈이야. 애초에 그렇게 태어난 놈이거든. 그러니까, 여기서 그만둬.”

서지우를 쏘아보며 협박조로 말했다. 그러나, 그는 같잖다는 미소를 지을 뿐.

한마디 남기고 사무실을 나가버린다.

“좋을 대로.”

서지우가 떠나가 몇 분 뒤.

까톡. 까톡. 까톡.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아무래도 경수 그 새끼가 장부를 빼앗긴 것 같습니다.]

[어떡하죠?]

“아아아악!!!! 개새끼! 씨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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