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0/133)

사채꾼 우지만 (4)

분당, 살롱 드 애비다,

퇴근 후 손님이 많은 시각, 우지만은 부하들을 대동하고 정윤하가 일하는 헤어샵을 방문했다.

“저기···손님, 예약하셨나요?”

“네, 했어요.”

“어떤 선생님한테···.”

“선생님? 요새는 머리 커트하는 사람도 선생님이라고 부르나? 하, 참. 호칭만 바꾸면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네?”

“나는 하이디. 하이디 선생님.”

“하이디요? 여기는 그런 이름을 가진 선생님이 없는데···.”

“있을 텐데···.”

“헤라야, 괜찮아. 내 손님이야. 내가 맡을게.”

그제야 우지만 일당을 알아본 윤하는 만지고 있던 손님의 머리를 서둘러 정리하고 카운터로 다가왔다.

“아- 여기 오셨네, 하이디 선생님.”

“오셨어요? 머리 커트하시게요?”

가게 안에 있던 직원들과 손님들의 눈이 이미 그들을 향하고 있었지만, 윤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며 우지만 일당을 코너 자리로 안내했다.

“스타일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여기는 머리 한번 자르는 데 얼마나 하나?”

“남자 커트는 25,000원입니다.”

“오- 비싸네. 어이, 언니, 뭘 그렇게 봐요? 남자가 미용실에 머리하러 온 거 처음 봐? 신경 끄지?”

힐끔힐끔 쳐다보는 옆자리 여성에게 우지만이 한마디 하자, 그들을 보고 있던 시선들이 일제히 다른 곳들을 향했다.

시선만 거뒀을 뿐, 모든 이의 신경은 여전히 곤두서있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는 건 영업에 좋지 않기에, 매니저는 얼른 음악의 볼륨을 조금 더 올리고 옆자리에 앉았던 여성을 다른 자리로 옮겼다.

이제 우지만과 정윤하가 있는 곳은 가게 안에서 어느 정도 분리되고, 그들의 대화 다른 손님에게 역시 들리지 않는다.

“이런 데서 일해봤자, 한 달에 삼백은 떨어져? 그것도 안 떨어질 것 같은데. 그래서 언제 내 돈 갚으려고?”

거울을 통해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우지만과 달리, 정윤하는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그의 머리를 만졌다.

“제대로 해줘. 돈 주고 갈 테니까.”

“···.”

시선들을 돌렸다고 해도 직원들이나 다른 헤어디자이너들은 여전히 그녀와 우지만이 있는 쪽을 반사되는 거울을 통해 염탐하고 있다.

정윤하가 조심스럽게 가위를 들어 그의 머리끝에 가져가려 하자, 그가 재빨리 그녀의 손을 낚아챈다.

“가위질은 됐고. 빗질만 해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

윤하는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키며 정말이지 가까이 가고 싶지도 않은 남자의 머리 만지기 시작했다.

“아우- 손가락 느낌이 좋네. 이래서 <라운딩>에서 인기가 좋았구나.”

흠칫.

이제는 손바닥에서도 땀이 날 지경이다.

“근데 왜 이렇게 젖었어? 크큭. 내 머리를 만져서 젖은 거야?”

“···.”

“그래서 인기가 좋았구나. 크크큭. 잘 젖어서.”

부르르.

윤하의 두 눈에 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손이. 손이 잘 젖는다고. 나는 땀 많은 여자가 참 좋아. 날 보면 긴장하는 거 같아서. 크크큭.”

한동안 험악한 분위기를 만든 우지만은 정윤하가 금방 쓰러질 정도로 온몸을 떨기 시작한 후에야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 변호사 오빠 뭐야?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야? 말해봐? 무슨 사이인지?”

“어쩌다 알게 된 사이···.”

“어쩌다 알게 된 변호사가 그렇게까지 도와준다? 에이- 내가 이 바닥에 있으면서 배운 게 있는데, 인간 사이에 공짜는 절대 없어. 부모 자식 사이에도 없어. 근데 오다가다 알게 된 변호사가 술집 여자 빚을 탕감해주러 다닌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느낌상 사귀는 거 같지는 않고. 이번 사건 해결해주면 몇 번 대주기로 한 건가? 아니면, 뭐 1년 쿠폰 이런 거?”

결국 고여있던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떨어졌다.

“저한테 정말 왜 이러세요···. 저 그 돈 다 갚았어요. 송하 언니에게 물어보면···.”

“술집년이 술집에서 일해야지. 이런 거로 신분 세탁하면 다 끝나는 줄 알았어?”

“살려주세요.”

“그러니까 그때 말했듯이, 가게로 돌아가. 백 이사가 받아준다잖아. 마이킹 빵빵하게 당겨주고. 그 돈으로 갚아. 그러면 되는걸, 왜 여기서 냄새나는 남의 머리나 만지고 있어.”

“······흑흑.”

“스폰서 변호사 내세우면 끝날 줄 알았어? 우리 세계는 법이 안 통하는 세계야. 어쭙잖게 파산 신청하거나 도망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가게 일했을 때, 내 얘기 못 들어봤어? 너 하나 곱게 죽이는 거로 안 끝나. 부모님 명의로 된 아파트가 있더라? 그것마저 벗겨 먹어 줄까? 네 부모도 길거리에 나앉는 거 보고 싶어?”

“······흑흑흑.”

“크크큭. 그니까, 그냥 순리대로 살아. 순리대로.”

할 말을 마친 우지만은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바닥에 던지고 가게를 나갔다.

겨우 버티고 있던 윤하는 순간 다리에서 힘이 풀어진다.

털썩.

“윤하야, 괜찮아?”

“정쌤, 괜찮아요?”

---*---

“부장님, 혹시 김 변이 개인적으로 수임한 사건, 부장님이 조사해주고 계시나요?”

“그게···네.”

“흠. 어떤 사건인가요? 윤 변호사한테서 대충 배경은 들었습니다. 불법 사채업자가 맞나요?”

“네, 맞습니다.”

“팩트는요?”

“제가 알아본 바로는 돈을 빌리기는 했는데, 이미 채무는 변제한 상황입니다.”

“근데 왜 그렇게 나오죠? 아무리 사기꾼이라고 해도 이유 없이 그렇게 막무가내로 덮어씌우지는 않을 텐데.”

“질이 아주 안 좋은 놈들이기는 합니다. 그리고···.”

서지우의 감이 맞았다. 이유가 있다.

“아무래도 사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적인 이유?

“원래 채권자가 백도진이라고 정윤하 씨가 일하던 가게의 매니저인데, 백도진이 최근에 가게 하나를 또 맡게 되었습니다. 거기 마담으로 일하기 시작한 여자가 김인경입니다.”

김인경. 젬마.

“윤 변을 무고했던 여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더는 설명이 필요 없었다.

서지우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백도진이 어디 있는지 아시죠?”

“네. 가게에 있을 겁니다.”

---*---

경복아파트 사거리, <프렌즈>

이런 종류의 가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작은 간판 하나 달랑 걸려있고, 도무지 무엇을 하는 업소인지 밖에서는 알 수가 없다.

아직은 손님이 찾아오기 이른 시각, 가게 안으로 퇴폐적으로 생긴 남자와 얼굴이 큰 중년남성이 들어간다.

“아- 진짜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가? 손님이 없네. 옛날에는 가게 오픈하면 뉴페이스 보려고 오픈빨이라도 있었는데.”

“이게 확실히 고인물들만 오니까 그런 거 같아, 오빠.”

“고인물?”

“늘 오는 사람들만 오잖아. 옛날에는 잘나가는 학교 선배가 데리고 오고, 회사 회식 끝나고 상사들이 데리고 오고 그랬는데, 요새는 그런 게 많이 없어지다 보니까, 신규 고객들이 안 생겨.”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광고를 할 수 있는 비즈니스도 아니고.”

“인터넷.”

“인터넷?”

“요새 젊은 남자들은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으니까, 우리도 커뮤니티 같은 데에 애들 사진 좀 올리고 홍보하면 되지 않을까?”

“에이- 누가 제 사진을 인터넷을 올리는 데 동의해.”

“얼굴 말고 몸매 사진만 올리는 거지.”

“몸매 사진만?”

“응. 그냥 홀복 입은 거나, 조금 야한 속옷 입은 거 같은 사진.”

“흠···. 근데 얼굴 없으면 어디서 퍼온 사진인 줄 알고 별로 효과 없을 거 같은데.”

“그러면 한두 명 얼굴 까.”

“한두 명?”

“응. 실수라고 하고 한두 명 깠다가 지우면 되지.”

“야, 요새 세상에 그랬다가 고소당하면 나 모가지야.”

“고소할 수 없을 만한 애들 있잖아. 약점 잡혀서 못할 애들.”

“누구?”

“하이디 고년.”

“하이디?”

김인경의 말을 잠시 곱씹은 백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려는 생각이다.

“근데 어떻게 됐어? 우 사장이 데리고 오는 거 아니었어?”

“조만간 데리고 올 거래.”

“이번에는 좀 더디네.”

“변호사가 나타났대.”

“변호사? 누구? 아! 설마!”

“왜 아는 놈 있어?”

“설마 진짜?!”

“왜? 누군데?”

“와- 미친. 그래서 그때 나 물 먹인 거구나! 시발년!”

“왜 갑자기 급발진이야? 왜? 누구?”

“아니, 왜 내가 말했잖아? 그년이 내 뒤통수쳤다고.”

“응. 그때 같이 만났던 변호사가 있었어. 와- 진짜 시발 그래서 그런 거였어. 어쩐지 이상하더라. 나 병신 만들고, 지는 스폰 만들어서 가게 나가고···. 내가 그랬잖아. 그년, 이상하다고.”

“근데 왜 잡아 오라고 한 거야? 이상한 년이라면서.”

“그렇게 한 거 갚아줘야 할 거 아니야? 솔직히 안 그래? 동종 업계에 있으면서? 물론 우리가 의리가 있는 거는 아니지만, 그래도 룰이라는 게 있잖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서로 등에 칼은 꽂지 말아야지.”

“그건 인정이지.”

“그러니까!”

“그래서 데리고 와서 굴리겠다?”

“오기만 해봐, 내가 진짜 진상 손님들 그년한테 다 붙일 거야.”

“와- 무섭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더니만. 그렇게 누구 인생 조지고 싶냐?”

“왜 이래? 오빠도 같이하는 거잖아.”

“나야, 매니저 관점에서 직원이 늘면 좋으니까.”

“흥. 내가 모를 줄 알고. 오빠도 하이디 그년이 만만하니까, 그런 거잖아. 돈도 백도 없어서 이런 식으로 해도 괜찮을 거 같으니까, 그런 거잖아. 예전에 소이랑, 미나 다 이런 식으로 단물 빨아먹고 팔아넘긴 거 모를 줄 알고.”

“야, 야, 팔아넘기다니! 딜을 한 거지. 딜을. 흐흐흐. 그래도 네가 하자고 말 안 했으면, 하이디 걔는 안 건드리려고 했어. 일한 기간도 짧고 애도 괜찮은 거 같아서.”

“뻥치시네. 오빠가 걔 못 따먹어서 그런 줄 모를 줄 알고.”

“아, 이 새끼가 근데 오냐오냐해주니까. 자꾸 기어오르···.”

똑똑똑.

“뭐야?”

가게 오픈전, 백도진과 김인경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방안으로 기도를 서고 있던 덩치가 들어왔다.

“이사님, 밖에 지금 변호사가 와 있는데요?”

“변호사? 손님?”

“아니요. 변호사가 이사님을 좀 뵙자고 해서요.”

“변호사가 나를?”

“아! 혹시 하이디 년 뒤 봐준다는 그 변호사 아니야?”

“그 새끼가 왜 나를?”

자신들을 찾아온 변호사의 정체에 대해 설왕설래하는 순간, 주인공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아니네···.”

“당신 누구야?”

저승사자.

---*---

몇 시간 뒤,

<스위트 크레딧> 사무실.

오늘 수금해온 돈들을 확인하고 장부 기입을 마친 우지만은 기지개를 켰다. 나름 고된 날이었다.

“야, 오랜만에 한잔 빨러 갈까?”

“예!”

“좋습니다, 형님!”

“키키킥. 이 새끼들. 기다렸구먼. 형님 소리가 절로 나오는 거 보니. 거기 가 보자, 경복아파트 사거리에 새로 오픈한 가게. 야, 경수야, 백 이사한테 전화 때려.”

“네, 알겠습니다.”

딩동-

보스의 명령에 따라 전화를 걸려는 순간, 사무실 벨이 울린다.

“누구야, 이 시간에?”

“설마 또 그때 그 변호사가 온 거 아닐까요?”

“누구? 정윤하 스폰? 그러면 진짜 곤란한데···. 야, 경수야, 누군지 가서 봐봐.”

경수가 휴대폰을 내려놓고 문 앞으로 가 현관문 외시경을 통해 박을 내다봤다.

“누구야?”

“어···.”

띵동띵동.

“누구냐고?”

“경찰인데요.”

“경찰?”

“네.”

“무슨 경찰? 오 형사?”

“오 형사님 아니고···다른 형사들인데요. 그것도 좀 많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경찰이 이 시간에 왜 여기를···.”

쿵쿵쿵!

-경찰청에서 나왔습니다. 우지만 씨, 그 안에 있는 거 다 알고 왔어요. 문 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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