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꾼 우지만 (3)
“변호사님, 찾았습니다. 송세하라고 <라운딩>에 있을 때는 주로 ‘송하 마담’으로 불린 여자입니다. 지금은 부산에 있는 가게에 나간다고 합니다.”
사람 찾는 데 귀신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부탁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최성태 부장은 송세하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
다음 날, 아리는 부산을 찾았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법무법인 해결의 김아인 변호사라고 합니다.”
송세하를 만난 아리는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 뒤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설명이 끝났을 때, 송세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하이디 걔 나갈 때 돈 다 갚았어요.”
그럴 줄 알았다. 윤하가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할 아이는 아니다.
“그런데 왜 아직 차용증이 있는 거죠.”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 사실 돈을 빌려준 건 제가 아니에요.”
“송세하 씨가 아니라고요?”
“네. 제가 전달해 준 거는 맞고, 하이디는 내가 준 거로 알고 있지만, 그 돈 이사님이 준 거예요.”
이사님?
“백도진 이사라고 <라운딩> 가게 관리하던 사람.”
“그 말은 윤하 씨가 가게 나갈 때 선급금으로 빌렸던 이천만 원을 세하 씨에게 갚았고, 세하 씨는 그 돈을 백도진 이사라는 사람에게 전달했다는 말인가요?”
“왜요? 못 믿으세요?”
“증거가 있을까요?”
“있어요.”
송세하는 휴대폰에서 백도진의 계좌에 송금한 기록과 함께 당일 백도진과 나눴던 대화 내용을 보여주었다.
당장 계좌의 주인이 백도진인 것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러면 왜 우지만 씨가···.”
“누구요? 우지만?”
우지만이라는 이름에 송세하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아는 사람인가요?”
“네, 알아요.”
“실례가 아니라면, 어떻게 아시는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개인적으로 친한 거는 아니에요. 우리 쪽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종종 듣는 이름이에요. 주로 돈 빌리고 도망친 애들 잡아다 주는 사람이에요. 가끔 그 사람한테 돈을 직접 빌리는 애들도 있기는 한데, 그러지 말라고 해요. 워낙 악질이라서.”
악질···.
“돈을 갚았는데 그 사람이 왜 윤하 씨한테 그러는지 혹시 짐작 가시는 데가 있나요?”
“그건 모르죠. 직접 돈을 빌렸나 보죠.”
“그런 일 없다고 합니다.”
“그럼 저도 몰라요.”
송세하는 진짜 모르는 듯했다.
그래도 확실한 건 윤하가 가게를 나올 때 빌린 돈을 갚았다는 거.
“혹시 진술서를 써주실 수 있을까요?”
“뭐요? 진술서요? 안 돼요. 그거 쓰면 경찰한테 불려 다니고 그래야 할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민사 소송에 쓰려고 그러는 겁니다.”
“그래도 싫어요.”
송세하는 끼어들고 싶지 않아 했다.
“그렇다면 조금 전에 보여주셨다. 송금 기록하고 백도진 이사랑 주고받았던 문자를 제가 사진 좀 찍겠습니다.”
“네?”
이번에도 거절하려 하는 걸, 아리가 곧바로 엄포를 놓았다.
“그것마저 못 하게 하시면 그때는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법원을 통해 증거 제출 명령을 받아 진행하는 수밖에요.”
그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다. 그 정도만 해도 송세하가 동의해줄 줄 알았다.
그리고 사실 동의를 안 해주었어도 완전히 소득이 없지는 않았다.
송세하와 헤어진 아리는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전화기에 녹음된 대화를 확인했다.
「하이디 걔 나갈 때 돈 다 갚았어요.」
분명하게 잘 녹음되었다.
---*---
“백 이사, 어제 데리고 나온 애 누구야? 백 이사 가게 애야? 아- 역시 보석들은 꼭꼭 숨겨놓고 있었네. 진짜? 그럼 나야 땡큐지. 난 또 그 아가씨가 백 이사 그건 줄 알고. 하하하. 알았어. 끊어.”
딸깍.
“어제 백도진 이사님 만나셨나요?”
“응. 공 쳤어. 왜?”
“아니, 저번에 알려주신 주식이 있었는데···.”
“크크큭. 너 혹시 거기 투자했냐?”
“네.”
“야, 그 치가 말하는 데 투자하지 마.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거 그냥 말하는 거야. 크크큭. 얼마나 투자했는데?”
“천만 원···.”
“으이구 병신. 연에 400% 이자 떨어지는 비즈니스에 있으면서 주식에 투자하냐. 저 미련한 새끼.”
딩동-
백도진 이사와 통화를 마치고 데리고 있는 부하와 얘기를 하던 중, 사무실 벨이 울렸다.
나가보라는 우지만의 지시에 경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어.”
“왜?”
“그때 그 변호사인데요?”
“변호사? 설마 정윤하 그년 변호사?”
“네.”
술집 아가씨가 사채 끌어다 쓴 거 가지고 이렇게까지 찾아오는 변호사는 없다. 우지만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어떡할까요?”
“흠···들여보네.”
띠리릭-
경수가 문을 열자, 곱상하게 생긴 변호사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또 오셨네요.”
“네. 제가 또 보자고 하지 않았나요?”
“그러셨죠. 근데 더 할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대답 대신 아리는 휴대폰에서 송세하의 만남 때 녹음한 대화를 재생했다.
「...
“그 말은 윤하 씨가 가게 나갈 때 선급금으로 빌렸던 이천만 원을 세하 씨에게 갚았고, 세하 씨는 그 돈을 백도진 이사라는 사람에게 전달했다는 말인가요?”
“왜요? 못 믿으세요?”
“증거가 있을까요?”
“있어요.”」
또랑또랑하게 잘 들리는 대화 내용.
아리는 그쯤에서 녹음 재생을 멈추고, 송금명세와 백도진과 송세하가 나눈 까톡 대화 내용이 담긴 프린트물을 가방에서 꺼내 내밀었다.
“제가 묻고 싶은 질문입니다. 더 할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프린트물을 훑어본 우지만은 자신 앞에 앉아있는 변호사를 향해 누런 이를 드러냈다.
“이 녹음한 거, 송하 걔도 아나요?”
“그게 왜 중요하죠?”
“그냥. 기분 나빠할 것 같아서요. 아무리 변호사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사람 뒤통수치면.”
“빌리지도 않은 돈을 갚으라고 협박당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우지만의 미소가 더 사악해진다.
“변호사님이 혹시 윤하 걔랑 무슨 특별한 사이이신가요? 그런 게 아니면 돈도 없는 애 변호해주시겠다고, 이렇게까지 하실 이유가 없는데···. 헤헤. 아! 혹시 윤하 걔가 우리 모르게 꼬불쳐놓은 돈이 있었나? 우리한테 빚진 돈은 갚기 싫고 그래서 변호사한테 가져다 바치는 건가.”
“정윤하 씨가 우지만 씨에게 빚진 돈이 없다는 거 여기 증거가 있는데요.”
“헤헤헤. 백도진 이사가 빌려준 원금을 다 갚은 거는 맞는데, 이자를 안 갚았어요. 송하 마담이 빌려준 게 아니라 백도진 이사가 빌려준 거는 알고 계시죠?”
“소위 마이킹이라고 해서 술집에서 아가씨들에게 빌려주는 돈은 이자가 없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에이- 요새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거짓말이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우지만 씨가 책정한 이자율은 불법입니다.”
“그건 우리들만의 룰이라는 게 따로 있으니까. 헤헤.
김아리는 실실거리며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는 우지만을 노려봤다.
“이렇게 나오시면 저도 별수 없네요.”
“어쩌시려고요?”
“경찰한테 가는 수밖에.”
“네? 하하하. 그러세요. 그러면 뭐 저희가 무릎 꿇고 빌 줄 아셨어요? 법대로 하시죠. 저희 허가받아서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대부업체입니다. 근데, 변호사님이 이러실수록 하이디 걔만 힘들어질 거예요. 전 경고했습니다.”
“다른 사람 명의로 등록한 것을 두고 합법이라고요? 좋아요. 어디 해보죠. 저도 경고했습니다.”
아리는 상대의 말을 더 듣지 않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녀가 나가자, 애써 웃고 있던 우지만의 표정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뭐야 저 새끼···. 야, 저 변호사랑 하이디 그년이랑 무슨 사이인지 알아봐. 그냥 변호사가 이런 일이 끼어들어서 이따위 녹음까지 할 일이 아니야.”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간 김에 하이디 그년한테 분명히 말해. 이딴 식으로 나오면 인생 정말 종 칠 줄 알라고.”
솔직히 진짜 경찰에 간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술집에서 일한 여자가 신고하는 것과 변호사가 신고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물론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고작 이깟 일에 그간 깔아놓은 뇌물들을 쓰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우지만은 정윤하를 협박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정윤하와 <해결>의 변호사가 어떤 사이냐에 따라 결정을 내릴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
법무법인 해결.
똑똑똑.
아침 회의가 끝나자, 최성태 부장은 아리의 방문을 두드렸다.
“변호사님.”
“네, 부장님.”
“혹시 그 마담 만나셨나요?”
“네, 주말에 연락이 닿아서 만나고 왔습니다.”
최 부장은 걱정이 앞섰다.
막내 파트너 변호사가 오빠의 신분을 빌려, 남자로 위장한 여자라는 걸 안 순간부터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리의 실력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들킬지 모르는 비밀에 조마조마하다.
“그쪽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말 바꾸는 걸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 말을 100% 믿으면 크게 당할 수도 있습니다.”
“감사해요, 걱정해주셔서. 근데 그분이 솔직하게 다 말해줘서 쓸만한 증거도 얻고 대화를 녹음도 할 수 있어서 괜찮았어요. 사채업자를 바로 찾아가서 증거를 내밀었더니, 말로는 자기네는 숨길 게 없는 척하던데, 내심 당황하는 거 같더라고요.”
“네에? 거기를 또 가셨다고요?”
“네.”
“변호사님 혼자서 말인가요?”
“네.”
아리의 대답에 최성태 부장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변호사님, 변호사님 말을 듣고 제가 우지만 그 친구의 뒷조사를 좀 했습니다. 전과만 보면 잡범 같지만, 만만케 볼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잡범인 이유는 사채업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 뭣도 모르고 걸린 거고. 그 이후에는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서 돈놀이를 하는 놈입니다. 이런 놈들이 고약한 게 사람 약점을 알아내면 죽을 때까지 놔주질 않는 거머리 같은 놈들입니다. 괜히 얽혀서 좋을 거 없습니다.”
그에 반면 아리의 얼굴은 밝은 빛을 낸다.
“그렇다고 모른 척할 수 없잖아요.”
“변호사님이 왜 이러시는지는 저도 압니다. 윤 변호사님 일 때문에 그러시는 것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변호사님이 그 여성에 빚진 거는 없습니다. 그 여성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당시 진술서를 쓰지 않았다면, 공범이 되었을 겁니다. 재판에 가면 다면 다 밝혀졌을 것이고, 그러면 그 여성도 처벌을 받았을 거라는 겁니다.”
“빚져서 이러는 거 아니에요. 저도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에요. 변호사라면 응당 이런 불의에 화가 나야 하는 거 아닐까요? 변호사라는 사람마저 그런 사람들이 무서워 피하면 그런 사람들은 누가 상대하나요?”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대답에 한숨이 나오려던 최성태는 헛웃음이 나와버렸다.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변호사답지 않다. 그런데 그게 그녀의 매력이었다.
그녀가 이 일에서 당장 손 떼고 싶을 만큼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었지만, 최성태는 그만둔다.
대신···.
“변호사님, 다음번 그자를 만날 때는 꼭 저와 같이 가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그래 주시겠어요?”
“그래 주시는 게 아니라, 그래야 합니다.”
“넵! 그러겠습니다!”
---*---
똑똑똑.
“네.”
“변호사님.”
“퇴근 안 했어?”
“이제 하려고요.”
퇴근길, 정도는 서지우의 방을 찾았다.
“왜?”
그렇게 말렸음에도 막내 파트너가 정윤하 사건을 직접 해결하려는 의지를 꺾지 않자, 내심 걱정이 되는 정도는 서지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