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4/133)

최성태 사무장 (2)

“부장님.”

어젯밤 일을 곱씹고 있던 최성태 사무장은 막내 파트너 변호사가 다가온 줄도 몰랐다.

“부장님!”

“네, 변호사님.”

“아침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계세요? 아, 알겠다. 따님 생각하고 계시는구나?”

“···네···.”

“아, 진짜 딸바보시네요.”

아니었지만, 그렇게 대답하는 최성태. 그는 자신에 책상 앞에 서 있는 아리를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어제 저희 집에 오신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그랬다. 딸 일을 도와준 데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한우 세트를 준비했고, 직접 집으로 배달해주러 가기 전 변호사님께 전화를 걸었었다.

“경비실에 물어봤는데, 경비 아저씨가 아무도 뭘 놓고 간 게 없었다고 하시던데···.”

“어제 갑자기 일이 생겨서 변호사님 댁으로 가던 중에 차를 돌렸습니다.”

“아- 그러셨구나. 음. 그럼 오늘 주시면 제가 가지고 갈게요.”

“집에 가져가는 바람에 오늘은 못 드리고, 제가 나중에 집으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그러실 필요 없는데. 그냥 내일 회사로 가져오시면 제가 그냥 들고 갈게요.”

“알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까 마치 제가 달라고 한 것 같네요. 하하.”

“아닙니다. 제가 가져다드린다고 해놓고 그냥 집에 가는 바람에 그런 건데요. 그럼 제가 내일 가져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네네. 근데 진짜 힘들게 안 주셔도 되는데······.”

사실 최성태는 어제 김아인의 아파트에 갔었다.

한우 세트를 들고 차에서 내린 그는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고, <해결>의 막내 변호사를 뒷조사하고 있던 형사를 발견하게 되었다.

*

「어젯밤,

아리의 아파트 옆 놀이터.

“교통범죄수사팀 형사가 왜 우리 로펌 변호사님을 수사하는 거지?”

얼마 전 은평중앙병원을 갔을 때, 담당 의사로부터 수원중부경찰서의 형사가 다녀갔다는 말은 들었다. 당시, 최성태는 경찰청에 있는 후배를 통해 나중혁의 신분을 확인한 적이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 아는 최성태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 예상하지 못한 나중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자초지종을 털어놨다.

얼버무리며 자리를 피하려 한들 절대 순순히 보내줄 상대처럼 보이지 않았고, 핸드폰으로 최성태의 신분을 확인해 보니 그의 말대로 전직 강력반 형사가 맞았다.

“사실 배경이 좀 깁니다.”

“나 때만 해도 어떤 사건이든 5분 안에 브리핑할 수 있다고 배웠는데.”

강압적인 어조에 나중혁은 최성태를 바라봤지만,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최대한 해보죠. 혹시 김아인 씨가 약 1년 반 전쯤에 교통사고를 당하시는 것은 아십니까?”

“49번 국도에서 일어난 사고를 말하는 건가?”

최성태가 알고 있자, 나중혁의 경계심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네, 맞습니다.”

“지금 김아인 변호사님께서 보험금을 노리고 가짜 환자 노릇을 했다는 건가?”

“딱히 그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면 교통범죄수사팀 형사가 이 밤에 왜 교통사고 피해자 집에서 나온 쓰레기를 뒤지고 있지?”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다.’ 경계심이 많이 누그러진 나중혁은 그가 왜 이 밤중에 그러고 있었는지를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최성태는 더 질문하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그가 왜 이 시간 김아인의 아파트에서 나온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비슷한 부류였으니까.

그러나,

“지금 나한테 경찰이 탐정 놀이를 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건가?”

최성태는 어조를 바꾸지 않았다.

“···말을 하고 보니, 제가 들어도 그렇게밖에 들리지 않겠네요.”

의아하게도 나중혁은 속이 시원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여기까지 온 게 된 건 그의 수사 본능 때문이었다. 신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김아인이나 김아리가 수상해서도 아니었다.

물론 잠깐 그런 의심을 가졌던 적도 있었다.

김아인(김아리가 분장한)이 멀쩡한 모습으로 경찰서에 나타났을 때, 나중혁은 그가 하는 설명을 믿기 어려웠다.

경찰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우연,’ ‘기적’이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멀리했으니까.

그래서 뒷조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파도 일부러 식물인간이 된 것처럼 했다는 증거도, 그럴만한 의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막대한 보험금을 노리고 한 것도 아니었고, 처음 진단을 내린 병원에서도 의심할만한 점을 찾지 못했다.

촉만 가지고 수사를 계속할 수 없는 노릇.

관심을 끊기로 결심했다.

그러다 가해자 뺑소니 사고에 자백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퇴근 후, 나중혁은 김아리를 찾아 은평구의 아파트로 향했다.

왜 그랬을까?

모르겠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었으니까, 사건을 마무리하기 전, 그녀를 한 번 더 보고 싶었던 걸까?

나중혁이 아리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데이트를 신청하거나 그럴 마음은 없었다. 회사로 치면 거래처 업장에서 지나치는 마음에 드는 이성 정도랄까.

아니면, 속 시원히 해결하지 못한 퍼즐을 포기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던 것일까?

이러나저러나 탐정 놀이라는 걸 부인하기는 어렵다.

“선배님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이해를 구하는 나중혁의 질문에 최성태는 여전히 같은 어조로 대답했다.

“내가 의심스러운 건 자네의 의도인데?”

“네?”

“이 정도면 민간인 사찰이야.”

나중혁은 전혀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다. 화들짝 놀란 그는 곤란한 표정으로 그러한 의도가 없었음을 주장했다.

“아닙니다. 그런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것이 아니라···.”

“경찰이라는 직업은 말이야. 큰 권한을 가지고 있어. 시민을 체포할 수도 있고, 폭력을 가할 수 있고, 이렇게 남의 뒤를 조사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지.”

“······.”

“다만 그런 권한을 행사하려면 정당한 이유가 존재해야 해.”

단순히 ‘감’만으로 무고한 사람들 뒤를 조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나중혁의 행동이 선을 넘지는 않았다. 쓰레기는 버린 물건이기에 뒤진다고 해도 법에 저촉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경찰 신분으로 어떠한 혐의도 없는 사람의 뒤를 조사한 것이니까, 자기가 의심하는 것이 뭔지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채 사생활을 캐고 있었던 것이니까.

나중혁은 딱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데.”

“······.”

“영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혐의가 뭔지, 의심 드는 것이 뭔지 설명할 수 없다면, 지금 나 형사가 하는 행동은 민간인 사찰로밖에 보이지 않아.”

잠시 서로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두 형사.

나중혁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더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나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최성태는 고개를 움직인 듯 아닌 듯 살짝 끄덕이고는 길목을 터줬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지금 수원중부 교통범죄수사팀 팀장이 이진우 경감이지?”

“···네.”

경고를 던졌다.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윗선에 보고하겠다는.」

*

“변호사님.”

최성태는 본인의 사무실로 향하는 아리를 불렀다.

“네?”

“저기 혹시 그 이모님이라는 분이 변호사님 집에 종일 계시나요?”

“네? 아···그런데요? 왜···그러시죠?”

“혹시 외부 나갈 일이 있으면 가는 길에 들러서 전달해드릴까 해서요. 한우 세트가 꽤 무게가 나갑니다.”

“오늘 집에 놔두고 오셨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오늘은 그런데. 나중에 그럴 수 있으면 그럴까 해서 드리는 질문이었습니다.”

“아···네. 종일 계시기는 하는데···. 그냥 경비실에 놔주세요. 아니면 저를 주시면 더 좋고요.”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젯밤 나중혁에게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분명 최성태도 이상한 점을 감지했다.

다른 점은 나중혁은 막연히 교통사고와 관련해서 수사 중인 것이었다면, 최성태는 대표변호사의 지시에 따라 막내 파트너의 가족 관계와 배경을 조사 중이었다는 것.

‘집에 또 누가 있나? 성인용 기저귀를 써야 할 만큼 몸이 불편한 사람이?’

띠리링- 띠리링-

-네, 선배님.

“나 뭐 하나만 더 부탁해야 할 것 같은데.”

-네.

“이름은 김아리. 생년월일은 1992년 7월 8일. 거주지는 은평구 신라로······. 적었어?”

-네, 적었습니다.

“헤어숍에 다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현 직장이랑 출신학교만 일단 알아봐 줘.”

-알겠습니다.

딸깍.

---*---

춘천, 암자.

“작가님, 저 왔어요.”

“아, 왔어!”

아리가 온 소리에 이중기는 쓰던 글을 놓고 달려 나왔다.

“뭐야? 오늘도 빈손이야?”

“저번에 내려와서 마셨잖아요.”

“저번에 마셨어도 이번에 또 마셔야지. 매정한 놈.”

“저는 누구처럼 방에 틀어 앉아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는 먹는 편한 직장이 아니거든요.”

“이놈이···. 야, 네가 써봐 이게 편한 일인가!”

“농담이에요. 헤헤. 이제 완전히 괜찮아지신 것 같네요.”

표절 시비로 정신적 타격을 받았던 이중기는 아리가 알려준 팬 사이트 덕분에 응원을 많이 받았다.

“자, 여기 시즌 2·1, 2화 원고.”

“요번에는 좀 오래 걸리신 거 같아요.”

“예전이 빨랐던 거야. 그리고 막상 쓰기 시작하니까 어려워. 펜이 잘 안 나가.”

“뒷이야기를 몰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안 그래도 서지우 그놈한테 내려오라고 했더니, 죽어도 안 내려와.”

내려온다 한들 말해줄 리 없었지만.

아리는 표절 시비를 계획한 사람이 서지우의 두 번째 아내 민태이라는 사실을 이중기에게 귀띔해주지 않았다.

집필에 도움이 될만한 사건이었으나, 본인이 말한다면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럼 저는 요거 읽은 뒤에 가지고 올라갈게요.”

불문율이 되었다. 정도가 원고를 잃어버린 사건 이후, 아리는 꼭 원고를 다 읽은 뒤 (머릿속에 집어넣은 뒤) 가지고 올라갔다.

“그러지 말고, 다 읽고 나랑 딱 한 잔만 마시고 가.”

“안 돼요. 술도 안 사 왔어요.”

“내가 요기 킵해둔 게 있지. 허허허.”

“그래도 안 됩니다.”

“자꾸 이렇게 빡빡하게 나올 거야? 그러지 말고, 딱 각 세 병만 먹자. 그리고 내가 새로 구상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네 놈이 주인공이야.”

“제가요?”

“응. 쌍둥이 여동생이 남장을 한 채 오빠 대신 로펌에 들어가는 이야기.”

“할아버니!”

---*---

은평구, 신라아파트.

최성태는 한우 세트를 들고 다시 막내 파트너 변호사의 아파트를 찾았다.

[선배님, 김아리 씨 관련해서 찾아봤는데요. 현재 직장이 없는 것 같은데요. 아르바이트 같은 거라면 모르겠지만요. 학교는 의정부에 있는 설강중학교를 나왔고요, 고등학교는 중퇴했습니다. 그 후에 검정고시로 졸업장을 얻었고요.]

최성태는 경찰청에 있는 후배가 보내준 문자를 다시 꺼내 봤다.

도대체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나중혁으로부터 사정을 들은 최성태는 여러 가능성을 점찍다가 한가지 가설을 세워봤다. 정말이지 소설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가설이었다.

그런데, 그 가설이 맞아떨어지려면, 김아리가 고졸이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가설을 제외하려는 순간, <해결>의 차량이 단지 안으로 들어왔고 술이 살짝 취한 듯한 막내 파트너 변호사가 내렸다.

그리고 잠시 뒤 ‘이모님’ 정은주가 빌딩에서 나와 그녀를 반겼다.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세워둔 차 안에 있던 최성태는 그들의 입술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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