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의 진짜 능력 (3)
송파경찰서.
“아, 진짜 우리가 보낸 거 아니라니까요?”
“그럼 누가 보내? 니들 핸드폰에서 사진하고 메시지가 전송되었는데. 니들 핸드폰은 그런 기능이 있냐? 제멋대로 나체 사진 찍어 보내는 기능?”
“그게 아니라, 말했잖아요. 술 먹고 일어나 보니까 그렇게 되어 있었다고! 그년이 그런 거라니까요!”
“그러니까, 술집에서 어떤 처음 보는 여자랑 같이 술을 먹고 모텔에 갔는데, 그 여자 혼자 멀쩡해서 술 처먹고 꽐라된 성인 남성 둘 옷을 벗겨서 나체 사진을 찍어 니들 여자 동창한테 보냈다? 왜?”
“모르죠. 아! 한패인가 보다. 아, 예나 그년이랑 아는 년인가 보다.”
“에라이- 이 새끼들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아- 진짜예요! 그 여자가 술에 약을 탄 거라니까요.”
“소변 검사에서 아무것도 안 나왔어요.”
“CCTV! CCTV 체크해 봐요. 술집하고 모텔에 있는 CCTV 체크했어요? 체크했냐고요.”
“아- 이 새끼들이 인권 존중해 줬더니 어디 시끄럽게···. 했어. 아무것도 없어.”
“네? 아무것도 없다고요? 시발, 그럴 리가요. 있어요. 우리 둘이 들어가는데 여자가 없었다고요?”
“CCTV 기록이 없다고. 둘 다 고장 나서 기록이 없어.”
“네에? 아, 씨, 그거 봐. 그거 봐요. 이거 완전 누가 짠 거라니까요. 이거 내가 한 거 아니에요. 어떤 미친 새끼들이 자기 몸을 이렇게 찍어서 보내요? 우리가 한 거 아니라니까요.”
“술 먹으면 개가 되는 인간들이 있지.”
“아, 씨발, 아니라니까요! 이거 예나 년하고 ···아, 그래 맞다. 그 형사 애비가 그런 거예요. 이거 완전 우리 엿 먹이려고···.”
쾅!
“조용히 안 해! 이 새끼들이 오냐오냐해줬더니만···. 야! 경찰이 우스워? 방송에서 인권, 인권 하니까 경찰 앞에서 ‘씨발, 씨발’ 거려도 될 것 같아? 여기가 어디라고···. 콩밥 좀 먹고 싶어? 니들 같은 놈들 감옥 가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
“야, 니들 그분이 어떤 분인지 모르지?”
“······.”
“겁대가리 없는 놈들. 그분 사시미칼 든 깡패 새끼들 오십 명이 있는 건물에 혼자 맨손으로 들어가서 다 때려잡고 깡패 두목 체포해서 나온 전설이야, 전설. 니들 같은 놈이 엉길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라고. 근데, 그분 따님을 건드려? 니들이 어린 나이에 생을 포기했구나?”
“···그 전설 분이 먼저 저를 때려서···.”
“시끄러워, 이 새끼야. 그럼 자기 딸한테 이딴 사진들을 보내고 있는 놈을 가만히 두냐? 나 같았으면 손가락 찢어놨어, 이 새끼야. 아무튼 니들이 한 짓 통신매체이용음란죄라서 최대 2년 징역이니까, 피해자가 합의 못 하면 감방 갈 준비해.”
---*---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잘 해결되었나요?”
“네, 변호사님 덕분에 잘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잘됐네요. 예나 씨는 괜찮으시죠? 그런 더러운 사진을 보내서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아닙니다. 그게 없었으면 얼마나 고생했을지 모릅니다.”
왜 막내 파트너 변호사에게 갔을까?
사실 큰 기대를 하고 부탁한 것은 아니었다.
‘변호사 같지 않은’ 그라면 이런 상황에 딸이나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공감해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딸 예나가 아이돌이 되겠다고 했을 때, 최성태는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관심이 없었다. 아니, ‘저러다 말겠지.’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그런 부정적인 관심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무뚝뚝한 아빠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 갔던 아내가 신장암 진단을 받고 돌아왔다. 자꾸 몸이 붓는다고 해서 짜게 먹어서 그런다고 했는데···.
진단받고 1년 뒤에 아내는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나쁜 놈들만 쫓아다니고 있었는데, 막상 아내가 죽고 나니 자신의 인생을 떠받치고 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깨달았다.
그가 가정을 부양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녀가 그가 마음 편히 형사 일을 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쳐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내가 죽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최성태가 아내 없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사이, 딸 예나는 그녀만의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아내가 죽고 나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최성태는 아리에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해지 못했던 하소연.
그냥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경찰서에 나와 있어도 제대로 일도 못 하고, 그렇다고 집에 있어도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당연히 아빠 구실도 못 했습니다. 어느 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어요, 딸이 경찰서에 있다고. 지도 나름대로 엄마 잃은 슬픔을 견딜 방법이 필요했겠죠? 그런 것도 하나 제대로 못 이해해주고···.”
두서없이 이어가는 말.
그의 입에서 들었던 말 중에 가장 긴 이야기.
다른 건 몰라도 아리는 그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나쁜 애들과 어울렸던 거 같아요. 그런 아이들 중에는 다양한 사연이 있는 애들이 있으니까. 말이 통했나 보죠. 다행히 오래는 아니었어요. 본디 심성이 착한 애라, 그놈들이 하는 행동이랑 본성을 보고 겁을 먹어서 그룹에서 나왔어요.”
한 6개월쯤 놀러 다녔을까, 하지만 그게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다시 노래하고 싶다고 하기에, 그러라고 했어요. 열심히 하더라고요. 데뷔 조인가 뭔가 하는 것에도 들었다고 하고···. 그런데 그때 같이 어울려 다녔던 애 중의 하나가 인터넷에 글을 올렸습니다.”
「이번에 <유토피아>에서 걸그룹 데뷔하는 애, 학폭 과거 세탁 중임. (사진 포함)」
“본인이 빌미를 제공한 거기는 한데···. 아버지 입장해서는 억울했습니다. 그러니 본인은 오죽했겠어요. 그냥 잠시 어울려 다닌 것뿐인데, 때렸다느니, 문란했다느니 온갖 근거 없는 소문이 다 올라왔습니다.”
최예나는 그렇게 날아오르기 전에 날개를 꺾였다.
“설상가상이라고 합니다만, 나쁜 일이 그렇게 다 쏟아질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소속사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왔습니다. 집을 팔아서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 아니었어요. 그때, 서 변호사님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최성태와 서지우의 연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그때, 서 변호사님의 도움이 없었으면······.”
어쩌면 최예나는 자살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최성태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김 변호사님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제가 한 거 별거 없습니다. 사실 서 변호사님이었으면, 훨씬 더 깔끔하게 해결하셨을 텐데. 저는 아직 경험이나 실력이 턱없이 부족해서···.”
“김 변호사님은 서지우 변호사님이 가지고 계시지 않는 능력을 가지고 계세요.”
“네? 제가요?”
“저는 이번에 분명 알게 되었지만, 서지우 변호사님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김 변호사님을 뽑으신 걸 거고요.”
“아······.”
갑작스러운 칭찬에 아리는 귓불이 살짝 붉어졌다. 아리는 얼른 주제를 바꾼다.
“그래서 그놈들이 와서 사과했나요?”
“사과를 기대할 만한 놈들이 아닙니다. 그래도 다시는 그런 짓을 못 하게 해두었습니다. 겁 좀 먹었을 겁니다.”
더는 잡힌 약점이 없는 이상, 최성태가 사는 집 방향으로는 오줌도 누지 못할 정도로 겁을 줘놨다.
애초에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단지, 딸이 관련되어 있어 조심했을 뿐이지.
“그랬을 것 같네요.”
“술집이랑 모텔 CCTV 기록은 폐기했습니다. 동생 분에게 그 부분에 있어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저와 제 딸이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고 꼭 좀 전해주십시오.”
“아···네.”
1인 2역을 하는 중인 아리는 괜히 부끄럽다.
“변호사님께도 진심 감사드립니다. 평생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라뇨. 그냥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사회성이 없는 분인 거는 확실하다. 무슨 성은을 입은 것처럼 감사 인사를 정중하게 하니, 부담스럽다.
“혹시 제게 필요하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너무 그러지 마세요. 맨날 부탁하는 거는 전데요, 뭐.”
그래도 좋은 사람인 거는 확실하다. 그렇게 아리는 또 한 명의 편이 생겼다.
---*---
<법무법인 해결>의 카페 같은 휴게실.
“아우 이제 슬슬 추워진다. 이제 가을은 정말 휙 지나가는 거 같아. 남자는 그래도 가을 좀 타 줘야, 제맛인데. 안 그래, 김?”
“네? 아! 그렇죠. 남자는 가을이죠. 트렌치코트 입고.”
“뭐야? 근데 목소리가 왜 그렇게 명랑해?”
“제가요? 아닌데. 멜랑꼴리한데.”
“뭔 소리야, 전혀 아니구먼. 아, 연말에 ‘티빅스’ 런칭 파티 형식으로 한다는 소식 들었지? 그때 ‘원나잇 인 라스베가스’랑 다른 런칭 작품들 제작발표회도 같이 한다는 말도.”
“네.”
“어르신 참석하신대? 쪽에서는 은근 참석하셨으면 하는 눈치던데.”
“아직 확답은 안 주셨어요. 근데, ‘원나잇’만이 아니라 다른 작품들도 그날 같이 제작 발표를 한다니까, 살짝 시큰둥하신 것 같기는 하고.”
“날짜만 같은 거지, 다른 룸에서 해. 시간대도 다르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아시잖아요. 어떨 때는 정말 애 같은 신 거.”
“주인공이셔. <청아> 윤 이사님 말 들어보니까, 완전 메인으로 들어간다는 거 같던데. 여도환, 임가령이 주인공인데 당연히 메인이겠지. 하-참 작가님도. 사생활 노출되는 그렇게 싫어하셔서 그 산골에 처박혀 계시면서, 또 이럴 때는 스포트라이트 중앙에 서고 싶어 하신다니까.”
“아예 안 하면 모를까, 이왕 할 거면 본인이 주인공이 되셔야 한 대요.”
“아무튼 정말 힘든 사람들이랑 일한다, 우리. 이중기 작가님, 여혜린 대표···. 알았어. 김 변이 잘 설득해봐. 가시면 좋을 거 같아. 이번에 표절 시비도 있어서 계속 숨어있는 거보다는 그래도 언론에 얼굴을 좀 내비치는 게 더 떳떳해 보이고.”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우리도 참석하는 거 알고 있지?”
“우리도요?”
“응. 그러니까 없으면 턱시도 준비하고.”
“턱시도요?”
“말했잖아. 파티 형식으로 한다고. 듣기로는 정말 무슨 영화제처럼 할 것 같아. 중계하고,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업계 사람들 다 초대한다고 하는 것 같더라고. 거기 런칭 라인업보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하다고 하는 배우, 감독, 제작사들 다 들어가 있어. 축제라 할 만하지. 잘만 하면, 엄청 흥행할 것 같기도 해.”
파티라···. 괜히 설렌다.
정도와 아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최성태 사무장이 휴게실 안으로 들어왔다.
“출근하셨습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부장님도요.”
“그럼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아···네···부장님도요.”
최성태는 선식을 가지고 나가면서 아리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아리를 보고 하는 거지만, 정도는 아리와 자신에게 한 줄 안다.
“뭐야? 부장님 왜 저러셔?”
“하하하. 그러게요?”
“갑자기 왜 저렇게 살갑게 구사하는 거지? 맨날 그림자처럼 왔다 갔다 하시는 양반이.”
“모르겠네요.”
“아, 알았다!”
“왜요?”
“가을 타시네. 연애하고 싶은 신가 보다. 그럴 때도 됐지. 난 이해해.”
“아···.”
“남자는 여자가 필요한 법이거든. 아- 나도 연애하고 싶다.”
느낌이 안 좋다. 이 남자 또 사고 한번 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