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1/133)

아리의 진짜 능력 (2)

E070 아리의 또 다른 능력

“와- 아빠가 무슨 형사 출신 로펌 사무장이라고 하더니 이제 변호사까지 등장했네.”

목과 팔에 문신을 한 놈은 입꼬리를 삐죽거리며 비아냥거렸다.

“경고했어. 한 번만 더 이 일로 우리 예나 협박하면, 그때는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나이는 어려도 험악하게 생겼다. 옆에 데리고 나온 놈 역시 같은 부류다.

일진.

“와- 우리 예나 백 많다. 옛날에 우리랑 놀 때는 좆밥이었는데.”

“난, 제 아빠가 형사라고 해서 뻥인 줄 알았잖아. 크크큭.”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한때는 일진이었지만, 지금은 학교 졸업 후 취업도 못 한 채 그냥 PC방이나 전전하는 동네 양아치.

아리는 전혀 무섭지 않다. 이런 놈들의 심리를 잘 안다.

겁먹은 모습을 보였다가는 더 엉겨 붙을 거다.

“니들 세상이 안 무섭지?”

“무서워해야 하나? 좆도 안 무서운데.”

“아, 씨발 꼰대들은 할 말 없으면 맨날 이런 소리를 하더라.”

원래 같았으면 시원하게 쌍욕을 박아주겠지만, 놈들이 몰래 녹음 중이다. 그래서 아까부터 계속 도발 중이고, 최성태 사무장도 그렇게 당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했나.

딸이 협박당했다는 말에 판단력이 흐려진 최성태 사무장은 실수를 저질렀다.

만나 경고를 해준다는 것이 그만, 협박이 되어버렸고 결국 한 대 치기까지 해버렸다.

“이 아저씨한테 맞은 건 나예요. 근데 뭘 경고를 해요. 아, 시발 합의 안 해주면 내가 고소할 거예요. 합의하자고 나온 줄 알았더니 뻘소리하고 자빠졌네.”

전직 강력반 형사에, 현 로펌 사무장이다.

차라리 뭐 좀 되는 놈들이었으면 최성태 사무장이 나타났을 때 겁을 먹었을 것이다.

근데 돌대가리 동네 양아치들이다 보니 상대하기가 더 곤란하다.

마음 같아서는 유치장에 며칠 가둬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최성태 사무장이 약점을 잡혀버렸다. 그들을 협박하는 육성이 담긴 음성 파일이 그들에게 있었다.

---*---

“죄송합니다, 김 변호사님. 이런 일까지 부탁하게 돼서.”

“아니에요. 아닙니다. 제가 경험이 부족해서 도움을 못 드릴 것 같아서 그렇죠. 서 변호사님이나 윤 변호사님에게 부탁하기는 좀 그래서 저한테 오신 거죠?”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묻지 않았는데···. 막상 놈들을 보고 와보니 아리는 딱히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떠오르지 않았다.

“······네.”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푹 숙인 최성태는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해요.”

“···아닙니다.”

최성태도 안다. 형사소송 경험이 전무한 신임 변호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을 거라는 걸.

그래도 딱히 찾아갈 사람이 없었다.

경찰서에 있는 후배들이 있었지만, 이런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본인이 일을 크게 만들어버렸다. 차라리 처음부터 후배에게 부탁했더라면 오히려 더 나았었을 텐데.

전과도 없는 동네 양아치 같은 놈들이라 몇 마디 타이르면 그만둘 줄 알았던 건 게 그의 착각이었다.

최성태는 미안했다.

매번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딸에게 미안했고, 이런 부탁을 받고 저런 놈들을 상대하러 온 변호사님에게 미안했다.

“이런 일로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변호사님은 이제 신경 쓰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어쩌시려고요?”

마음 같아서는 누명이라도 씌워 감옥에 처넣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딸이 관련된 일이고, 이제 변호사님까지 알게 된 일이기에.

“······합의해야겠죠.”

“안 돼요!”

아리가 정색하고 반대하자, 최성태는 살짝 당황스러웠다.

“상식이 통하는 새끼들이 아니에요. 제가 겪어봐서 알아요. 합의하겠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돈을 달라고 할 거고,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거예요.”

최성태도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다.

그래도 지금은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단 저쪽에서 먼저 예나를 협박했다는 증거는 없고, 오히려 최성태가 그놈 중 하나를 때린 증거만 있었다.

놈들을 고소하려고 해도 당장은 걸만한 혐의가 없었다.

그래서 ‘삥’을 뜯겨 줄 생각이다.

싫지만 그게 가장 이 일을 조용히 해결하는 방법이라 여겼다.

그런데···.

“저한테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좀 전까지 미안한 표정을 짓던 막내 변호사의 표정이 바뀌었다.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른 모양이다.

“어쩌시려고···?”

“부장님, 혹시 놈들이 자주 가는 술집을 알아낼 수 있을까요?”

---*---

신천의 한 술집.

늦은 시각.

“야- 적셔여-”

“적셔-”

최예나를 협박했던 두 놈이 술을 마시고 있다.

“야, 미나 안 나온 데?”

“그년 요새 공무원 취직한다고 공부 중이야.”

“미친. 세경이는?”

“거기 남친 생겼잖아.”

“맞다. 동구 형이랑 사귀기 시작했다고 했지? 아, 진짜 우리 그룹도 이제 다 뿔뿔이네.”

“야, 그나저나 합의금 받으며 뭐 할래?”

“너 그거 반띵이다.”

“미친 새끼, 내가 맞았는데, 왜 반띵이야? 7대3.”

“야, 내가 녹음하자고 했잖아. 그리고 예나 그년 유튜브 하는 것도 내가 먼저 알았고, DM 보내자고 한 것도 내 아이디어였어.”

“아, 오케이. 좋아, 6대4.”

“좆 까고 있네. 5대5다. 어차피 내 핸드폰에 있는 녹음 파일 없으면 너도 합의 못 해, 이 새끼야.”

“와, 시발, 친구라는 새끼가 이걸로 또 협박하네.”

“협박은 시발. 네가 먼저 7대3이니 이런 개지랄 떨었잖아.”

“알았어, 알았어. 5대5.”

“븅신, 원래 5대5데. 선심 쓰는 척은.”

“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합의금 받으면 뭐 할래?”

“나, 오토바이 살 거야.”

“오토바이? 살 수 있어? 얼마를 받아내려고?”

“야, 적어도 한 삼천은 뜯을 수 있지 않겠냐?”

“뭐- 삼천?!”

“뭘 그렇게 놀래?”

“괜찮을까? 그렇게 많이는 안 줄 것 같은데.”

“야, 그 아저씨 눈 돌아가는 못 봤냐? 자기 딸 일이라고 완전 이성 놔버리는 거.”

“하긴 맞았을 때 존나 아프더라. 뒤지는 줄 알았어.”

“내가 들은 게 있어. 그 아저씨 와이프 죽고 예나밖에 없어서 예나한테 존나 미안해한대. 그니까, 통장에 돈이 얼마 전 있느냐가 관건인데···. 한 삼천은 있지 않겠냐? 그래도 로펌 사무장이라는데?”

“로펌 사무장 돈 많이 벌어?”

“몰라.”

양아치들이고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놈들이 아니라서 감이 없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할 예정이다.

“그렇기는 한데···. 우리가 먼저 협박한 거는 맞잖아.”

“야, 증거 없어. 그래서 내가 DM으로 하지 말고 만나서 하자고 했잖아.”

“아무리 그래도···솔직히 따지고 보면 예나 걔가 우리하고 잠깐 어울려 다니기는 했어도 딱히 뭘 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나 줄까?”

“아- 이 새끼가 뭘 모르네. 이래서는 5대5도 아깝네. 내가 들은 게 있다니까. 예나 걔 연예인 한다고 했을 때···홀리 쉬이엣.”

“왜? 갑자기 말을 하다가···홀리 쉬이엣.”

녀석들이 이것저것 궁리를 하고 있는 사이, 가게 안으로 짙은 화장에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자가 들어왔다.

플래티넘 금발 머리카락을 한 여자는 가게 안을 한번 돌아보더니, 그들이 잘 보이는 코너 테이블에 앉아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야, 봤냐? 우리 봤어, 우리 봤어.”

“방금 나랑 눈 마주쳤어.”

“혼자 온 거 같지?”

“술잔 하나만 시켰어.”

“아, 시발 무슨 여자가 이런 술집에 혼자 오냐.”

“저거는 꼬셔달라고 하는 거 아냐?”

“그렇지? 그거지?”

“응.”

예쁜 여자의 등장에 순간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까먹는다.

“네가 가봐.”

“내가?”

“지금 가면 백퍼.”

“네가 가. 너랑 눈 마주쳤다며?”

“그러니까 네가 가야지.”

“그게 무슨 개소리야?”

“원래 못생긴 놈이 가는 거야.”

“됐어.”

“야, 그럼 내가 가면 내가 그냥 데리고 나간다? 여기 술값 네가 내라.”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러니까 네가 가서 우리랑 합석하자고 해. 그럼 자연스럽잖아. 내가 가면 그냥 데리고 나가야 하지만, 네가 가면 자연스럽게 같이 술 마실 수 있잖아.”

“아이씨···.”

둘 중에 못생긴 놈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금 아리가 앉은 쪽으로 다가갔다.

“저기 혼자 오셨어요? 괜찮으시면 저희랑 합석하실래요?”

“둘 뿐이에요?”

“네.”

“좋아요.”

걸렸다.

*

같은 술집,

한 시간쯤 뒤.

“와- 술 진짜 잘 마시네요.”

“그렇게 잘 하지는 않아요. 근데 오늘은 술이 좀 당기는 날이라서···.”

술이 당긴다는 말에 남자 둘은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술이 당기는 날에는 또 마셔줘야죠. 여기요. 소주 한 병만 더 주세요.”

“한 병은 너무 금방 끝나는데.”

“아- 여기 두 벼···.”

“미소 세 병 주세요.”

“미소요?”

“미지근한 소주.”

“아······.”

“우리 게임 할래요?”

“게임이요? 좋죠. 무슨 게임 할까요? 삼육구?”

이미 얼굴이 붉어진 녀석들.

앞으로 세, 네 병쯤 더 마시면 끝날 듯싶다.

“혹시 전화기 뭐 써요?”

“저요? 갤럭시. 이거.”

“나도 같은 건데.”

“오- 커플.”

“우리 그럼 서로 잠금 해제 패턴 맞추기 할까? 못 맞추면 술 한잔 마시는 걸로.”

“맞추면 전화번호 교환?”

“에이- 그건 어차피 할 거 아니었나?”

“그럼 뭐···?”

“모텔 가서···한잔 더 하기?”

벌렁벌렁.

심장 나대는 게 눈에 보인다.

김칫국 마시기는···.

오늘 놈들이 이 가게를 걸어서 나갈 수 있는 일을 없을 거다.

“콜!”

“콜!”

“자, 그럼 시작 전에 한 잔씩 먼저 마시고 시작할까, 우리?”

아리는 맥주잔 세 개에 소주를 들이부었다.

“근데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

“응? 어디? 나 오늘 여기 처음인데.”

---*---

최성태는 마음이 착잡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법이 없다.

놈들이 사는 곳에 마약 봉지를 숨겨놓고 후배한테 신고할까 하는 생각도, 뒤따라가 CCTV 없는 곳에서 다리를 부러뜨려 놓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런 수고마저도 아까운 새끼들이다.

“미안해, 아빠.”

이제 겨우 서먹했던 딸하고 사이가 좋아졌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

최성태는 한숨이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아니야. 우리 예나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아빠가 다 해결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놈들에게 맨 처음 연락이 왔을 때 말했으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다. 사실 연락하긴 했다. 업무 중이랑 최성태가 전화를 받지 못했을 뿐.

순진한 예나는 돈 몇십만 주면 녀석들이 먹고 떨어질 줄 알았다. 녀석들이 말하는 게 전부 사실은 아니었지만, 아이돌 지망생 시절 한번 트라우마를 겪은 그녀는 이제 막 뜨기 시작한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그런 악질 소문으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만나는 그 자리에서 돈을 뽑아 줬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화근이었다. 마치 놈들이 말한 것들이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되는 빌미를 주게 된 것이었다.

“내가 괜히 돈을 주는 바람에···.”

“아니라니까. 이 아빠가 잘 해결할 테니까, 우리 딸은 걱정하지 말고 방송 시작한 거 열심히 해. 아빠가 언제나 응원하는 거 알지?”

“···응···.”

딸의 눈에서 금세라도 눈물이 흘러내리려고 한다.

만약 지금 놈들이 그의 눈앞에 있었으면 진짜 팔다리가 부러졌으리라.

까톡. 까톡. 까톡···.

갑자기 울리기 시작하는 예나의 휴대폰.

“이 밤에 누구야?”

“모르겠네.”

까톡. 까톡. 까톡. 까톡···.

“꺅! 이게 뭐야!”

“왜? 왜 그래, 예나야?”

“걔네들이 이상한 사진을···.”

말이 끝나기 전, 최성태는 딸의 휴대폰을 건네받아 재빨리 메시지를 확인했다.

길가 다 설사 똥이라도 본 것처럼 일그러졌던 그의 표정이 금세 밝아진다. 마치 그 안에서 금덩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똥이지만 금.

지금 놈들의 나체 사진이 지금 예나의 휴대폰으로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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