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133)

아리의 진짜 능력 (1)

「JCBC 뉴스실.

자료화면 영상이 끝나자, 앵커는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스튜디오에 나와 있는 남수지에게 물었다.

“자신의 기사에 입에 담기 힘든 욕을 수십 차례나 달고 여배우로서는 정말 참기 힘든 수치스러운 소문을 퍼트린 학생을 직접 만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요. 남수지 씨는 왜 수경 학생을 만나려고 하셨나요?”

앵커의 질문에 남수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애로운 표정을 지으며 설명했다.

“이유가 궁금했어요.”

“이유가 궁금했다고요?”

“네, 처음에는 저도 그 아이가 쓴 댓글들을 보고 너무 수치스러워서 운 적도 있는데. 어느 날 문득 그런 물음이 들었어요. ‘수차례에 걸친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 학생은 왜 계속 그런 댓글을 달고 비방하는 걸까? 혹시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요.”

“흔히들 ‘악플러’라고 하죠, 유명인의 기사에 악의적인 댓글을 달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근거 없는 소문을 퍼트리는 사람들을 두고. 인기가 있으면 있을수록 그런 악플러들이 더 많이 달라붙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유명세라고도 합니다만, 점점 더 심각해지는 악플러들의 행태에 최근 들어 많은 연예인이 관용 없는 강경 대응을 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요. 남수지 씨가 특별히 저 학생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습니까?”

“음. 저도 처음에는 강경하게 대응했습니다. 경찰에 신고하고, 변호사를 통해 경고장도 보냈고요. 그런데도, 저 학생은 멈추지 않았어요. 저를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데. 그런 것들이 마치 저한테 자기를 봐달라고 애걸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애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요?”

“네. 보통의 악플러는 아무리 악질이라도 형사처벌 단계에서는 용서를 구해오거든요. 근데 이 학생은 그러지 않았어요. 그러다 알게 되었습니다. 학생에게 정신병이 있다는 것을.”

“지속된 학교폭력에 정신이상 증상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네.”

“아무리 그래도 입에 담긴 힘든 욕을 하고 여배우에게는 정말 수치스러운 글들을 달았던 사람을 직접 대면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요.”

“솔직히 쉽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만나보니까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죠?”

“음. 그 아이에게 이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하고 외로운 곳이었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학교폭력에 시달려왔는데도 아무도 도와주러 오는 사람이 없었죠. 그러다 우연히 TV에 나오는 저를 본 것 같아요. 그리고는 자기를 닮은 저한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 무서운 세상에서 자신을 구해달라고 하는 그 아이의 간절한 외침 같은 거라고 할까요?”

남자 앵커는 그 순간 남수지와 사랑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방송을 보고 있는 수많은 남자가 그랬을 것이다.」

“이야- 수지 씨가 저렇게 예뻤나.”

회의실에서 뉴스를 시청하고 있던 정도와 서지우.

화면 속 수지를 보고 있던 정도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생각이 흘러나왔다.

“이동주 대표가 이런 거는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 자기네 소속 배우 홍보하고 이미지 관리하는 거. ‘이 무서운 세상에서 자신을 구해달라고 하는 그 아이의 간절한 외침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이거 보고 수지 씨 팬들이 더 생길 거 같은데요.”

이동주 대표가 한 게 아니다. 아리가 한 거였다. 그리고 조금 전 남수지가 방송에 한 말 역시 아리가 했던 말이었다.

징징- 징징-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방송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동주 대표로부터 전화가 들어온다.

“네, 대표님.”

-서 변호사, 방송 보고 있어? 어때? 괜찮지 않았어?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의 말대로 악플러들은 잡초와 같다. 어떤 강경한 대응도 완벽하게 근절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관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대중의 호감도를 올리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오늘 남수지가 뉴스실에 출현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법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었을망정 악플 관리라는 더 큰 관점에서 있어서는 분명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이건 <해결> 막내 파트너의 기지였고,

-어떤 효과가 있을지 봐야 하겠지만, 느낌이 좋아. 안 그래도 그 개놈의 새끼가 퍼트린 소문 때문에 들어오고 악플이 많아졌는데, 잘하면 이번에 턴어라운드 하겠어. 잘 되면, 나중에 김 변호사하고 수지하고 다 같이 식사하자고. 아니다. 시간 괜찮으면 오늘 당장 하는 건 어때? 수지가 김 변호사님한테 완전히 반했어. 수지 팬이라며?

능력이었다.

---*---

다음 날 아침,

<법무법인 해결>의 카페 같은 휴게실.

“나 남수지 팬 된 것 같아. 몰랐는데, 사람이 단아하고 예쁘대. 말도 참 잘하고. 어느 정도 준비해서 나간 거라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빠지게 되대.”

“변호사님은 은근 사람에 금세 빠지는 타입이세요.”

“몰랐어? 나 초금사빠야.”

정도와 아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휴게실 안으로 최성태 사무장이 들어왔다.

그러자 아리는 그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자신이 찾은 것을 보여주었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아, 네, 변호사님도···.”

“혹시 이거 맞나요?”

아리가 내민 핸드폰에는 유튜브(U-tube) 채널이 하나 띄워져 있다. 최성태 사무장의 딸이 운영하는 채널이다.

“아, 네···어떻게···.”

“아무래도 그때 차 안에서 ‘미용’이라고 말씀하시려고 했던 것 같아서 찾아봤어요. 근데 뭐랄까 이분이 최 부장님하고 묘하게 닮았다고 할까요.”

“아···네.”

붉어지는 최성태 사무장의 낯빛. 기분이 나쁘지 않다. 딸이 자신을 닮았다는 게 싫지만은 않다. 그리고 변호사 같지 않은 ‘막내’ 파트너의 관심이 감사하다.

“따님이 참 예쁘세요. 부장님 얼굴에서 좋은 거만 가져간 것 같습니다.”

“아, 네···.”

“제가 ‘구독’, ‘좋아요’도 누르고 댓글도 달았어요. 앞으로는 열렬한 ‘예뿌미’가 되겠다고 전해주십시오. 하하.”

‘예뿌미’는 최성태 사무장의 딸 최예나가 자신의 구독자들을 부를 때 쓰는 애칭이다. 이제는 완전히 새빨개진 그의 얼굴. 너무나 부끄러운 나머지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는 휴게실을 서둘러 나간다.

“최 부장님 따님 유튜브해?”

“네.”

“무슨 유튜브?”

“그냥 미용, 헤어, 패션 쪽으로 이제 막 시작하는 것 같아요.”

“아, 진짜? 그러면 말씀하시지, 주위에 홍보도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나름 명색이 엔터테인먼트 로펌인데.”

“은근 부끄러움을 많이 타시네요.”

“응. 말을 잘 섞으셔. 혼자 있는 거 좋아하시고.”

그런데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아리하고는 인사를 나눴다.

“근데, 김 변 친화력 진짜 좋네. 저 사회성 없으신 최 부장님이 김 변한테 따님 유튜브 이야기를 다 하고. 5년을 같이 일한 나한테도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 아- 나 약간 섭섭 하려고 그래.”

“그러니까 평소에 잘하세요.”

“나 잘해!”

“농담이에요. 뭘 또 그거에 발끈하세요. 초금사빠가 아니라 초발끈남이네.”

“어- 그거 좀 야하다? 초발끈남.”

아무튼 남자들이란···.

별거 아닌 것도 음담패설로 만들려 하다니.

“그럼 많이 발끈하세요.”

“근데, 최 부장님 따님 예전에 연예인 한다고 했던 거 같던데, 그건 잘 안 됐나?”

연예인···?

---*---

“김 변, 오늘 저녁에 시간 어때?”

그날 오후, 서지우는 막내 파트너를 사무실로 불렀다.

이동주 대표의 저녁 식사 초대 관련해서 스케줄을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오늘이요?”

“응. 왜? 약속 있어?”

약속은 없다.

다만, 집에 살펴야 할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

“아니요.”

“그러면 오늘 저녁에 이동주 대표님이랑 같이 식사하지, 남수지 씨도 온다고 하는데, 김 변하고 꼭 같이 나오라고 하네.”

“아, 알겠습니다.”

“바쁘면 다음에 해도 되고.”

“아니요. 오늘 괜찮습니다.”

먼저 집에 가시라고 이모님께 문자를 드려야겠다.

아리의 퇴근 시각은 보통 아홉 시 경이었다. 이모님은 일곱 시. 다만, 가끔 이모님이 집에 가지 않고 아리를 기다리는 경우가 있다. 특별히 할 말이 있거나, 아니면 그냥 정말 얼굴만 보고 가려고 그러실 때가 있다.

“더 하실 말 없으시면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 아, 김.”

아리가 돌아서기 전, 서지우는 그녀를 다시 불렀다.

“네.”

“근데 어떻게 한 거야?”

“네? 뭘 말씀이시죠?”

“어떻게 남수지 씨를 설득했어?”

아무리 홍보 효과를 기대해 볼 만한 방법이었다고 해도 자신을 ‘창녀,’ ‘걸레’ 등 아주 원초적인 단어를 써가며 악플을 단 사람을 직접 만나는 건 쉽지 않은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거기다 상대는 정신병력이 있는 청소년. 자칫 잘못하다가는 우스운 꼴을 당할 수도 있는 일.

이런 경우, 대표를 찾아가 홍보 효과를 설득하고 그다음에 대표가 소속 배우를 설득하는 것이 상식적인 순서인데, 막내 파트너는 남수지를 직접 찾아가 설득했다.

그리고 그게 통했다.

“그냥 대표님한테 말씀드린 대로 그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그걸로 설득되었다고?”

“네.”

서지우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자, 아리는 한마디 덧붙였다.

“사람들이 다 대표님처럼 ‘엘사’스럽지는 않습니다.”

지금 자기 앞에서, 이 순간 ‘엘사’스럽다는 표현을 정중하게 하는 막내. 신기하게도 밉지가 않다.

남수지를 만나러 가기 전, 아리는 남수지에 관해 많은 것을 공부했다. 포털 사이트에 나와 있는 정보들과 오래된 영상들까지 유튜브를 통해 찾아보았다.

무명 시절이 길었던 만큼 인기의 소중함을 잘 알고 오래된 팬에 대한 고마움도 갖고 있었던 남수지는 자신을 도와주었던 <해결>의 젊은 변호사가 자신의 팬이라는 사실에 살짝 놀랐고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아리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었다. 그리고 아픈 소녀의 마음까지도 헤아릴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해주었다.

어떻게 설득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서 질문한 서지우였지만, 더 들을 필요 없었다. 방금 막내 파트너가 한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저번에도 느꼈던 거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 있어 묘한 재주가 있는 놈(?)이다.

“알았어. 그럼 이따 여섯 시에 나가자고.”

“넵.”

“김.”

“예.”

“잘했어.”

첫 칭찬이었다.

막내는 고개를 넙죽 숙여 인사하고 대표변호사의 방을 나왔다.

그가 나가고 작은 환호가 들린 것도 같다.

서지우는 피식 웃는다.

---*---

징징- 징징-

「세상 하나밖에 없는 우리딸」

“응, 예나야. 아빠가 지금 회사라서···.”

-아빠, 나 이제 어떡해?

울먹이는 딸의 목소리에 세상 무서운 것이 없는 최성태도 순간 긴장을 한다.

“왜? 무슨 일이야?”

-아무래도 내가 잘못한 거 같아. 그냥 무시했어야 했는데···흑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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