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69/133)

악플러 (2)

“Are you saying that she is taking a sabbatical?”

(그녀가 안식년을 신청했다는 말인가요?)

필라델피아 출장 후, 계속해서 태이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그녀는 답장을 주지 않았다.

가처분 신청은 취하되었고 더 이상의 표절 시비는 없었지만, 그녀와 나 사이에는 풀어야 할 오해가 남아있었다.

나는 그녀의 로펌에 전화를 걸었다.

-(네.)

“(이렇게 갑자기 말입니까?)”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원래 내년에 예정되어 있던 거였어요. 태이가 조금 앞당겨 달라고 부탁했고, 로펌에서 요청을 들어주었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그녀가 안식년을 어디서 보내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보통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은 사바티컬(sabbtical)이라 하여 5~7년 차가 되면 안식년을 받게 된다. 안식년 기간에 꼭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로펌 내규에 규정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그 기간 학교로 돌아가 학위를 취득하거나 그게 아니면 다른 학문적인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물은 거였다. 태이가 간 학교가 어디인지.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미안해요. 우리도 몰라요. 지금은 그냥 휴가를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른다였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딸깍.

*

전화를 끊은 서지우는 당장 로스앤젤레스로 날아가 그녀가 있을 만한 곳을 전부 찾아다니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날 그 호텔 방에서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여준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이야 어찌 됐건 한때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리고 실수였을망정 두 번째 아내이기도 하고.

오해를 풀고 싶었다.

그녀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

띠리링- 띠리링-

“네.”

-변호사님, 이동주 대표님께서 전화하셨습니다.

징징-

이동주 대표한테서 들어온 「부재중 전화」 메시지.

태이 생각을 하느라 책상 위 휴대폰이 진동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연결해.”

-네, 연결하겠습니다.

띠.

“네, 대표님.”

-서 변호사, 이번에 일 처리는 서 변호사답지 않은 거 같아. 우리 이야기했잖아, 악플러들한테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기로. <해결>의 김 변호사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는데, 수지가 곤란해하고 있대. 돈이 안 되는 사건이기는 해도 이런 거는 민감한 거라고. 서 변호사도 알잖아. 그래서 비싸도 <해결>에게 일임하는 거고.

인천에 악플러를 만나러 간 막내 파트너가 사고(?)를 쳤다.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딸깍.

이동주 대표와 전화를 끊은 서지우는 곧바로 비서를 호출했다.

띠리링- 띠리링-

-네, 변호사님.

“김아인 변호사 들어왔나?”

-아직 외부 일정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서지우는 시계를 확인한다.

인천에서 벌써 돌아왔어야 할 시각이다.

“최 부장님은?”

-잠시만요······. 최 부장님도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흠···.

“전화해봐. 지금 어딘지 물어보고 들어오면 바로 내 방으로 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

징징- 징징-

배우 남수지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

퇴근 시간과 맞물리는 바람에 도로 위에 차가 많다.

징징- 징징- 징징-

거치대에 올려놓은 최성태의 휴대폰이 좀 전부터 진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세상 하나밖에 없는 우리딸」

최성태의 우락부락한 외모 그리고 과묵한 성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연락처 저장 이름에 아리의 입술이 초승달 모양을 짓는다.

“받으세요. 전 괜찮아요.”

옆자리에 앉은 아리가 말했지만,

“아닙니다. 나중에 전화하면 됩니다.”

얼굴이 붉어진 최성태는 연신 괜찮다고 하며 들어오는 전화를 다시 거절했다.

틱.

“받으셔도 되는데···.”

최성태는 이상했다.

<해결>에서 일한 지 5년이 넘었다. 그전 강력반 형사로 재직했을 때도 수많은 변호사를 상대해봤다.

변호사라는 양반들은 숨기려고 해도 그 특유의 거만함이 있다.

그건 연차와 상관없이 나오는 일종의 아우라 같은 거였다. 물론 개인마다 차이가 있고 성격에 따라 강약이 있었지만···.

하다못해 최성태가 가장 존경하는 변호사 서지우 역시 그러한 거만함이 있었다. (사실 서지우는 거만함을 넘어서 위압감에 가깝다.)

남을 무시하고 깔보는 거만이 아니라 자기가 무조건 옳아야 한다는 자기최면에서 나오는 거랄까? 어쩌면 직업병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그렇다는 것일 뿐.

그런데, 지금 옆자리에 앉아있는 <해결>의 막내 변호사는 달랐다.

그런 거만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당장 왜 옆자리에 앉아있는 거지?’

너무나 당연하게 뒷좌석이 아닌 조수석에 올라타기에 처음에는 자연스럽기까지 했다. 최성태는 출발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가 자신의 옆자리에 있다는 것을.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까 인천 병원에서도 그는 다른 변호사와 달랐다.

상대방의 사정을 그렇게 자세하게 들어주는 변호사는 처음 봤다.

물론 경험이 없으니까 그런 것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치부하기에 그의 태도는 너무나 진지했고, 그가 보여준 다음 행동 역시 단순히 초보 변호사가 어찌할 줄 몰라 끌려다닌 거라고 하기엔 확실했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처음에는 뭔가 상황이 잘못 돌아가는 것 같아 끼어들려고 했던 최성태는 그의 행동을 묵묵히 지켜봤다.

“따님이신가 봐요?”

“···예.”

“자녀분이 따님 하나세요?”

“예.”

“되게 귀여우시겠다.”

“······.”

“따님이 몇 살이세요?”

“···올해 스물넷입니다.”

“그럼 아직 학생인가요?”

“······.”

나름 친해지기 위해 건넨 질문들. 그러나 최성태는 불편했다.

“죄송해요. 저는 그냥 야유회 때 부장님하고 대화를 많이 못 나눠본 것 같아서···.”

“······.”

살갑게 말을 걸어주는 어린 변호사에게 무안을 주려고 한 건 아니었다. 단지, 자신을 향한 예상치 못한 관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를 뿐.

그런 사람이었다. 일은 잘하지만, 사회성이 부족한.

아내를 잃고 나서 더 그렇게 된 것 같다. 아닌가, <해결>에 들어와서 더 그렇게 된 건가···.

“···유튜브인가 그런 거를···합니다.”

최성태는 용기를 내어 대답했다.

왜 그랬을까?

딸을 향한 그의 사랑 때문이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딸이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데, 도와주고 싶은 마음.

그래서 사회성 없는 그가 나름의 홍보라는 걸 하는 거였다.

그리고 옆에 앉은 변호사 같지 않은 신임 변호사라면 부끄러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도···.

“아, 진짜요? 무슨 유튜브요.”

“···미···.”

띠리링- 띠리링-

하지만, 얄궂게도 아리가 휴대폰을 들어 찾아보려는 순간, 사무실에서 전화가 들어온다.

“어. 회사네요. 잠시만요. 여보세요? 아, 유 과장님.”

-변호사님, 지금 어디세요? 서 변호사님이 찾으시는데···.

수화기 너머로 유 과장의 목소리를 들은 최성태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

인천 병원에 악플러의 보호자를 만나러 간 김아리는 받은 지시대로 하지 않았다.

그녀가 정도로부터 받은 지시는 민·형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압박하여 다음에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경우, 보호자가 악플러의 행위에 대해 연대책임지겠다는 각서를 받아오는 것이었다.

아리가 보기에는 그건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아니었다.

악성 댓글을 다는 여학생은 심한 학교폭력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매우 아픈 상황이었고, 뭐가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수 없는 상태였으며, 그녀의 유일한 보호자인 엄마는 보험설계사 일을 해서 겨우 딸의 병원비를 충당하고 있었다.

각서를 받아와봤자, 벌어질 미래는 뻔했다. 일에 바쁜 엄마가 24시간 딸을 단속할 수 없어 다시 악플을 다는 일이 벌어지거나, 아니면 24시간 단속하느라 일을 할 수가 없어 딸의 치료를 그만둘 수밖에 없거나.

그래서 아리는 다른 결정을 내렸다.

“누가 마음대로 그런 결정을 내리라고 했지?”

서지우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정말이지 차가울 때는 한도 끝도 없이 냉정한 그였다.

“각서에 사인을 받아와봤자, 미래에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지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의뢰인을 찾아가 선처를 빌었다? 김 변은 지금 누구의 변호사지?”

사실이었다.

아리는 남수지를 찾아가 선처해줄 것을 빌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리는 남수지에게 악플러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까지 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실체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그러면 악성 댓글을 다는 행위를 삼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파일은 봤어?”

“네?”

“남수지 씨 기사에 악플 달린 것들이랑, 악플 다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봤냐고?”

“네, 봤습니다.”

“들어보면 다 이유가 있어. ‘진짜 팬이었는데, 소문을 듣고 실망해서 그랬다.’ ‘이게 이렇게 큰 범죄인 줄 몰랐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애가 한 거다. 봐달라.’ ‘삶이 팍팍해서 어디다 풀 때가 없어서 그랬다.’ ‘실수다. 술 먹고 순간 욱해서 단 거다. 남수지 씨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그중에 정신병 핑계를 대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의외로 많다.

“수경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읽어봤냐고?”

“네, 다 읽어봤습니다.”

조심스럽게 대답하던 아리의 목소리가 갑자기 단단해졌다. 서지우의 냉정함이 그녀를 불편하게 했다.

서지우도 자신 앞에 있는 막내 변호사의 단호해진 목소리를 눈치챘다.

“뭐가 다르지?”

“대표님이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습니다. 하나둘씩 봐주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는 거. 기준을 정하기도 어렵다는 것도요. 하지만, 제가 만난 아이는 분명 아픈 아이였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핸드폰을 주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닌가?”

“보호자라고는 엄마밖에 없어서 엄마에 대한 집착이 심한 아이입니다. 전화기도 없으면 불안해서 어찌할 줄 모르는 환자이고요. 그런 아이를 두고 주말에도 일을 나가야 하는 박순애 씨 역시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주는 거였습니다. 병원에서도 갑자기 휴대폰을 압수하는 거는 좋지 않다는 판단하에, 하루 사용 시간을 제안하는 방법으로 절충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까지는 서지우도 몰랐다.

악플러 한 명, 한 명에 일일이 신경 쓸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심신장애가 있는 아이가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자는 거야? 그건 아니지. 부모가 책임을 져야지. 손발을 묶어놓는 한이 있어도. 악플은 잡초와 같아. 하나둘 내버려 두면 우후죽순 늘어나. 결국 밭 전체를 망쳐.”

“저는 수정이가 잡초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악플은 그 아이가 세상에 할 수 있는 유일한 항변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아이가 보기에는 너무나 불공평한 이 세상에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그 아이의 외침 같은 거라고···.”

“그게 무슨 말이지? 그 아이가 쓰는 댓글이 정당하다는 말이야? 그 논리라면 정신병이 있는 가해자가 저지른 범죄도 정당화해야 한다는 말이 돼.”

“정당하다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 경우는 다른 케이스들과 다르고 그래서 좀 다르게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어찌 됐건 법에도 심신장애는 처벌할 수 없는 거로 되어 있지 않나요.”

“그건 가해자 측 변호사가 할 주장이지.”

“합당한 주장이라면 피해자 측 변호사도 무조건 반박만 할 게 아니라 귀 기울여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린 피해자 측 변호사지 판사가 아니야. 사연이 안타까워도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 의뢰인의 이익이야.”

“그러면 변호사법 제1조에는 왜 그렇게 쓰여있는 건가요?”

「제1조(변호사의 사명) 1항-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2항-변호사는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사회질서 유지와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하여야 한다.」

‘뭐? 변호사법 1조?’

막내 변호사의 발언에 서지우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기분이 나빴다기보다는 이 상황에 변호사법 1조를 들먹일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정말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놈.

황당한 대꾸에 서지우는 잠시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김 변의 해결 방법이 선처인가? 내가 보기에는 그건 해결이 아닌데.”

“선처를 부탁한 거는 맞지만, 단순히 선처해주는 것이 아니라···.”

띠리링- 띠리링-

아리가 설명을 끝내기 전, 책상 위 서지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리는 하던 말을 멈추고 그가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조용히 했다.

“네, 대표님.”

이동주 대표로부터 온 전화.

-서 변호사, 아까는 내가 담당 로드매니저한테 제대로 보고를 듣지 못해서 화를 냈는데,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아. 들어보니까, 꽤 괜찮은 방법인 거 같아. 퍼블리시티 효과도 좋을 것 같고. 무엇보다도 수지가 하고 싶다네.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 한 제안이라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는데, 가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자기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대. 하면 좋을 것 같대. 그러니까, 그 김 변호사님이 제안한 대로 그 학생이랑 만남을 좀 주선해주면 좋겠어. 아무래도 우리 쪽에서 직접 하는 것보다 <해결>에서 해주면 모양새가 더 나을 것 같아.

수화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이동주 대표의 말을 듣고 있는 서지우의 이마에 주름이 잡힌다.

‘도대체 무슨 제안을 어떻게 했길래···?’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신기하다.

정말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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