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빠른 남자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김인경 씨 아시죠?
“네.”
-김인경 씨와 토요일 새벽 호텔 클라우드에 가셨습니까?
상대가 변호사여서 그런지, 경찰관은 정중했다. 그와 상관없이, 정도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한다.
“네, 그런데요.”
-김인경 씨가 변호사님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하셨습니다.
“네?!”
순식간에 뒤바뀐 태도에 기분이 싸하기는 했지만, 설마 이런 짓까지 할 줄이야. 기가 찬 정도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 사람이 절 무얼로 고소했다고요? 성폭행이요? 하- 참나.”
-네.
“김용주 형사님이라고 하셨나요? 그거 무고입니다. 저한테 술집에서 일하는 사실을 들키고 괜히 화풀이하려고 하는 모양인데, 형사님, 혹시 호텔 CCTV 기록은 확보하셨나요? 거기 보시면 제가 절대 강요한 적은 없습니다.”
-호텔 CCTV는 지금 확보 중입니다.
“그러니까, 그걸 검토하시면 이게 다 무고···.”
-변호사님.
변호사라고 해도 다를 것 없다. 갑자기 억울한 일을 당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부끄러워할 일은 없었어도 말이 빨라지고 톤이 올라간다.
경찰 역시 피의자가 변호사라고 해서 달리 행동해서는 안 된다. 강남서 여성범죄수사부 김용주 형사는 하소연하는 식의 말투로 바뀐 그의 말을 끊었다.
“···네.”
-변호사님이니까 잘 아시겠지만, 일단 신고가 접수된 이상 저희는 조사해야 합니다. 유선으로 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니까, 다음 주 수요일 오전 10시까지 강남서 여성범죄수사부실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서로 법과 절차를 잘 알기에 더 말이 길어지지는 않는다.
지금 누구보다 억울한 정도였지만, 형사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수요일 오전 10시에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딸깍.
통화를 끊은 정도는 한동안 아무것도 못 한 채, 머릿속으로 그날 일만 계속 되뇐다.
---*---
강남역과 역삼역의 한 골목.
일요일 저녁인데도 계속해서 고급 차들이 멈춰서고 차에서 내린 남자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가게로 들어간다.
아무도 없었던 것 같은데, 차가 멈추어 서거나 누군가 들어가려 하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한 남자가 나타나 묻는다.
“어떻게 오셨어요? 누구 찾아오셨어요.”
그곳이 김인경과 정윤하가 ‘젬마’와 ‘하이디’라는 이름으로 일하는 술집 <라운딩>이다.
까톡.
하루가 지났지만, 윤하는 어제 만난 ‘김아인’ 변호사가 자꾸 생각난다. 전에 한 헤어샵에서 같이 일했던 언니를 많이 닮아서이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자꾸 보고 싶다.
[윤하: 언니 오늘 안 나와요?]
[인경: 응. 몸이 좀 안 좋아서.]
[윤하: 아, 그렇구나. 많이 아파요? 도대체 토요일날 그 변호사 오빠랑 얼마나 찐하게 놀았으면 ㅎㅎ]
[인경: 그런 거 아니야. 가게 손님 많아?]
[윤하: 네. 일요일인데도 오늘 좀 많아요.]
[인경: 그럼, 고생해.]
[윤하: 언니.]
[인경: 왜?]
[윤하: 혹시 그때 그 변호사 오빠 카톡 아뒤 좀 알 수 있어요?]
[인경: 누구 그 옆에 따라온 사람?]
[윤하: ㅇㅇ]
[인경: 진상이었다며? 카톡 아뒤는 왜?]
[윤하: 그냥 처음에는 좀 킹받았는데 조금 멋진 거 같기도 하고. ㅎㅎ 그래서 톡이나 좀 해보려고요.]
답장이 빠르게 날아오던 인경이었는데, 마지막 톡 이후로 잠시 공백이 있다.
[윤하: 언니?]
[인경: 이디야, 나 사실 그 변호사 고소했어.]
[윤하: ????? 고소했다고요? 왜요?]
[인경: 너만 알고 있어.]
[윤하: 물론이죠.]
[인경: 아, 시발. 평소에 연락하면 맨날 읽씹하던 놈이 하필이면 그때 문자칠 게 뭐야.]
[윤하: ??]
[인경: 운남 오빠라고 작전하는 오빠 하나 있거든, 옛 가게에서 만난 오빤데. 내가 주식 정보 얻어볼까 해서 자주 연락하는 오빠. 근데 하필 그 오빠가 그 타이밍에 문자를 친 거야, 이 시발놈이. 그 변호사랑 호텔에 있는데.]
[윤하: 호텔?]
[인경: 아니, 그날 너희들 가고, 실내골프장 갔다가, 클럽에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날은 춤출 기분이 아니라서. 그리고 배란일이라서 그런지 나도 좀 하고 싶기도 하고 해서 호텔에 갔어.]
[윤하: 둘이 했어요?]
[인경: 하지 그럼 호텔 가서 뭐 해?]
[인경: 그래서 한번 하고, 들어가자마자 씻지도 않고 한 거라, 조금 찝찝해서 씻으러 들어갔다.]
그런데, 그 사이에 ‘운남 오빠’한테 문자 온 것이었다. 그것도 발뺌할 수 없게 너무나 확실히,
-야, 뭐하냐? 오늘 일해? 나 지금 펜타곤인데 술 마시러 나올래? 일하면 내가 애들 데리고 너네 가게로 가고. 주말인데 괜찮은 애들 많이 출근했어?
[인경: 솔직히 남의 핸드폰 본 그 새끼가 잘못한 거 아니야?]
[윤하: 그래서요?]
[인경: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왜 남자 새끼들 그 눈빛 있지? 술집에서 일한다고 하면 존나 무슨 더러운 년 보는 것처럼 거. 존나 지들이 더 걸레면서.]
[윤하: 그 오빠가 그랬어요?]
[인경: 아- 진짜 이 새끼가 존나 그런 눈빛을 보내는 데 시발. 존나 빡치는 거 있지? 지는 인제 물 한번 뺏다 이 거지. 시발새끼.]
[윤하: 근데 고소는 무슨 얘기예요?]
[인경: 그렇게 빡쳐서 집에 왔는데, 존나 화가 나는 거야. 솔직히 헌팅할 때는 원나잇하려고 술집 애들 같이 생긴 애들만 골라서 집적거리면서. 그래서 다음 날 아침에 바로 경찰에 가서 신고했어. 성폭행으로. ㅋㅋ 그 새끼 이제 월요일 되면 존나 똥줄 좀 탈 거나.]
[윤하: 그래도 돼요?]
[인경: 그냥, 사과만 받으면 신고 취소해줄 거야.]
[윤하: 언니, 그러다가 괜히 언니 감옥 가면 어떻게요? 상대가 변호사잖아요.]
[인경: 야, 이디, 너 입조심해라. 감옥은 누가 가. 내가 당했는데.]
[윤하: 아니, 저는 그냥 언니 걱정돼서.]
[인경: 변호사면 다야? 변호사면 사람 막 무시해도 돼? 남의 전화기 막 봐도 돼?]
[윤하: 아니···요.]
[인경: 어차피 경찰이 누구 말을 믿느냐인데, 이런 상황에서 거의 백퍼 여자 말 믿어. 나 해본 적 있어. 아, 맞다. 내가 신고할 때, 네 이름은 말하지 않았거든. 그냥 아는 동생이랑 같이 술 먹었다고 했어. 그러니까, 너는 그냥 조용히 있으면 돼.]
[윤하: 네.]
[인경: 혹시 경찰한테 연락 오면 나한테 말하고. 그럴 것 같진 않지만. 이디야, 이거 당분간 가게 애들한테는 비밀이다. 마담 언니한테도 말하지 말고.]
[윤하: ···네.]
술집에 일한다고 다 손님 공사나 치고 남자들 등쳐먹을 궁리만 하는 건 아니다.
소개팅 자리에서 남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 필라테스 강사라고 속이는 것과 누군가를 허위로 고소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일다.
본인이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윤하는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
「“CCTV 확인해보셨어요?”
“네, 확인했습니다.”
“보셨으면 아실 거 아니에요. 동의하에 들어간 거예요.”
“들어갈 때는 그런데, 한 시간쯤 뒤에 여성이 당황에서 혼자 허겁지겁 나오는 영상이 있습니다.”
“그건 말씀드렸잖아요. 그 여자가 술집에 일한다는 사실을 저한테 들켜서···.”
벌써 몇 번이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지만, 김용주 형사는 해당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수밖에 없음을 고지했다.
“변호사님 입장은 알겠는데요. 요새 이런 사건 잘못 처리했다가 징계 먹는 형사들이 많아서요. 저희는 일단 검찰에 송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그러면 확인은 해보셨어요? 그 여자 다닌다는 술집? 가보시면 아실 거 아니에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설사 진짜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자라고 해도 성폭행 신고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 진짜 이거 무고입니다. 쪽팔려서 반발심에 그러는 거라고요.”
“더 잘 아실 텐데요. 몇 해 전 그런 업소에서 일하는 여자가 업소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사건. 솔직히 개인적으로 말도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때 기사 뜨고 나서 초동 수사 제대로 안 했다고 선배들 몇몇 징계 먹는 거 봤습니다. 억울한 점이 있으면 검사님하고 이야기하시죠.”」
수요일 오전 경찰조사를 받고 돌아온 정도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다른 것보다도 이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고 로펌 변호사가 성폭행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는 기사나 소문이 나돌게 되면, 회사에 끼칠 해가 걱정되었다.
똑똑똑.
점심을 먹고 돌아온 아리는 정도의 사무실을 노크했다.
“잘 다녀오셨어요?”
지난 월요일 강남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을 때, 곁에 있었던 그녀였다.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정도는 후배에게 상황을 털어놓았다.
“생각보다 안 좋아. 이거 완전히 말리게 생겼어.”
“왜요?”
“아마도 나 엿먹이려고 이러는 것 같은데, 말로 해결해보려고 전화했더니. 그새 전화번호를 바꿨더라고.”
“진짜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느낌상 검찰로 넘어가는 걸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무혐의 처분 내려지게 하는 게 현재로는 최선이야.”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면, 해당 사건을 법원에 기소해 판단을 받을 건지, 말 건지 결정하는 권한은 검찰에 있다. 이게 바로 기소권이다.
범죄행위 관련해서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은 판사의 독점 권한이지만, 혐의가 있고 없음을 판단하는 건 검사다.
무혐의 처분은 두 가지 경우에 내려지는데, 하나는 범죄가 인정 안 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증거가 불충분할 때 내려진다.
“혹시 제가 경찰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그날 일을 설명해볼까요?”
“아니야. 그럼 로펌 꼴이 우스워져. 그렇잖아, 같은 로펌 변호사 둘이 술집 여자들하고 소개팅하고 이런 누명이나 썼다는 게 알려지면···. 안 돼. 저쪽에서도 김 변 이야기는 안 한 거 같고 경찰도 별도로 증인 출두 요청 안 했으니까. 김 변은 그냥 가만히 있어.”
“어떻게 하시려고요?”
“아는 동기한테 부탁하기로 했어. 거기가 검사 출신이라 통이거든.”
정도의 표정이 씁쓸하다. 그날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괜히 미안해지는 아리, 도움이 될 수 있음 좋겠는데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김 변.”
“네.”
“말 안 해도 그럴 사람 아니란 거 알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거니까···. 말해야 할 상황이 오면 내가 말할 테니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네, 알겠습니다.”
“특히 서 변호사님한테는 더 조심해 줘. 워낙 눈치가 빠른 분이셔서.”
“네, 조심할게요.”
---*---
서지우가 눈치가 빠르다는 정도의 말은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퇴근 무렵, 서지우는 막내 파트너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다.
“무슨 일이야?”
“네?”
아리는 정말 모른 척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강남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며?”
‘그걸 어떻게···?’
“저한테요?”
“윤 변.”
“아···모르겠는데요.”
서지우는 특유의 냉철한 눈으로 막내 파트너를 쳐다봤다.
“진짜 몰라?”
“네. 전혀···.”
“유 과장 말이 월요일 날 회의 끝나고 강남경찰서 김용주 형사라는 사람한테서 윤 변을 찾는 전화가 왔다고 하던데, 그때 윤 변호사 사무실에 같이 있었던 거 아니었어?”
“아···있었나? 아, 있었어요. 근데 바로 나갔는데···요.”
“그래?”
“네. 개인적인 일 같아서···요.”
서지우는 아리는 내보내기 전 다시 한번 그의 눈을 쳐다봤다.
“알았어. 나가 봐.”
“네, 알겠습니다.”
“나가면서 사무장님 좀 불러줄 테야?”
“최성태 사무장님이요?”
“우리 펌에 사무장님이 둘인가?”
“아···아니죠. 한 분이죠. 하하. 네, 그럼···.”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막내 파트너 변호사가 나가고, 잠시 후, 자신의 키보다 작아 보이는 최성태 사무장이 서지우의 방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사무장님, 뭐 좀 조사해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인 부탁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말씀하십시오.”
“윤 변호사 관련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