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133)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여자 (3)

학창 시절, 얼굴 윤곽이 또렷하고 머리카락까지 짧다 보니, 밸런타인데이에는 여자 후배들이 놓고 간 초콜릿과 편지로 책상 위가 가득했다.

엄마는 그것마저 못마땅해했다.

사실 딱히 중성적인 매력이 있는지도 몰랐다. 일부러 부각하려고 한 적도 없고.

하지만 엄마가 그럴 때마다 일부러 더 머리를 짧게 자르고 털털하게 행동했다.

엄마는 왜 그렇게 내가 못마땅했을까?

“일찍 오셨네요.”

벌써 세 번째지만, 올 때마다 참 예쁜 빌딩이라는 생각이 든다. 빌딩뿐만이 아니다. 이곳에 일하는 남자들은 참 다 반듯하게 생겼다.

“안녕하세요.”

“헤어스타일 바꾸셨네요.”

“네? 네.”

대한민국 남자의 반이 하고 다니는 ‘투블럭’ 스타일을 했다. 클리퍼로 옆머리를 바짝 밀고, 포마드를 발라 7:3으로 가지런히 정리했다.

비비크림은커녕 선블록도 바르지 않았고, 로션만 바른 얼굴에 아인이 쓰던 검은 테 안경을 썼다.

혹시라도 여자인 걸 들킬까 봐 걱정했는데, 모르는 듯했다. 적어도 이상하게 쳐다보지는 않는다.

“안경도 안 쓰셨던 것 같은데. 한주 만에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셨네요.”

처음 면접을 보러 이곳에 왔을 때는 맞지도 않는 오빠의 양복을 입고 구두 안에 휴지를 말아 넣어 신고 왔다. 쇼트커트 머리는 포마드를 발라 올백으로 넘겼고, 그때 역시 화장기 없는 초췌한 얼굴은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넘어갔을까?

신기한 일이다.

어찌 됐건 지금은 그때와 외모뿐만이 아니라 마음가짐도 다르다.

나는 남자다.

그리고 남자들끼리는 이런 이야기할 때는 쿨하게 받아쳐야 한다.

「-커뮤니티 게시판-

Q: 학교 연극에서 남자 역할을 맡았는데 진짜 같아 보이려면 어떤 말투를 써야 하나요?

└ 별거 없어요. 그냥 형용사 쓸 때는 ‘존나’라는 말을 붙이고, 부를 때는 ‘이 새끼’, ‘저 새끼’라고 하면 돼요.

└ 회사에서 직장동료들끼리도 쓰나요?

└ 우리 회사 남자 대리님하고 과장님들도 서로 다 그렇게 해요. 회의할 때나 윗사람 있을 때는 조심하지만, 어느 정도 친해지면 사적인 자리에서는 ‘존나, 존나’ 하면서 서로 편하게 말하더라고요.」

“존나 어울리나요?”

자연스럽게 받아쳤다고 생각했는데,

“네? 아·········. 네. 김 변호사님이 쓰실 사무실은 이쪽입니다.”

남자 비서의 표정이 영······.

첫날부터 너무 친한척한 건가?

---*---

YGP 엔터테인먼트 소속 작곡가 표절 사건 관련으로 서지우와 윤정도는 월요일 아침 법무법인 광현의 사무실을 찾았다.

“무슨 속셈일까요?”

YGP 엔터의 소송대리인인 광현이 음원 두 개를 보내왔다.

하나는 해결이 대리하는 싱어송라이터 ‘라임트리’가 몇 년 전 발표한 노래였고, 다른 하나는 해외의 모 작곡가가 그보다 전에 발표한 노래였다.

두 음원은 일반인이 듣기에도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의뢰인하고는 이야기해봤어?”

“네.”

“뭐래?”

“들어본 적이 없는 노래랍니다.”

북유럽 작곡가가 발표한 노래였다. 네델란드와 덴마크에서는 꽤 유명했던 곡이었다.

“근데 본인도 비슷하다는 건 인정한답니다. 다만, 스윙 장르에서는 흔히 쓰이는 멜로디이기 때문에 비슷하게 들릴 뿐이지, 코드 진행이 다르다고 합니다.”

장르의 유사성, 비슷하지만 다들 쓰고 있기에 저작권을 보호해 줄 만한 ‘창작성’이 없다는 주장.

표절 시비를 가리는 데 있어 가장 흔하게 쓰이는 디펜스이지만, 가장 모호한 디펜스이기도 하다.

“국내에도 발표됐어?”

“신기하게도 찾아보니까 2011년 발표되었더라고요.”

그렇다는 말은 법원이 표절을 판단하는 세 기준 중 둘인 ‘의거성’과 ‘실질적 유사성’을 인정할 것이라는 의미.

만약 해당 음원 관련으로 소송이 재개된다면, 현재 <해결>이 YGP를 상대로 낸 소송과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될 확률이 높다.

“근데 외국 작곡가가 10년도 전에 발표한 음원을 가지고 광현은 뭘 하려는 걸까요?”

윤정도는 의도가 궁금했다.

저작권 침해 소송은 피해자가 하는 소송이다. 해당 외국 원곡의 저작권이 YGP에 귀속되지 않았는 한, YGP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혹시 기일에서 뭐 ‘원고도 이렇게 다른 곡을 표절했습니다. 그래놓고 누가 자기 곡을 표절했다고 억지 주장하며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항변을 하려는 걸까요? 그런 거면 이렇게 미팅을 하자고 하는 것보다 법원에서 서프라이즈 어택하는 게 더 나은 전략이 아닐까요?”

광현은 동네 변호사가 아니다. 변호사 수만 400명이 넘는 대형 로펌이다. 그리고 YGP 엔터는 국내 5대 음반 제작사 중 하나이다.

판사의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은 아마추어나 쓰는 방식이다.

“만나보면 알겠지.”

서지우는 왠지 해당 외국 원곡의 저작권이 YGP에 넘어갔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해결에서 변호사님들 오셨습니다.]

비서가 손님의 도착을 사내 메신저로 알려왔을 때, 한소희는 해결의 웹사이트를 체크하고 있었다.

“김아인···.”

자신이 이력서를 낸 그곳에선 이미 다른 변호사를 채용했다는 공지를 내걸고, 사진과 함께 해결의 세 번째 파트너를 홍보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자신보다 나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자였고, 다른 점이 있다면 딱 하나.

남자라는 점이었다.

솔직히 면접이라도 봤으면 이렇게 화가 나지 않을 것 같다.

2022년 대한민국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이렇게 대놓고 차별을 당하고 가만히 있다면 안 될 것 같다.

한소희는 서지우에게 증명해 보일 생각이다. 그녀의 능력을.

똑똑똑.

“한 변, 들어가자고?”

“네.”

면접을 통해 할 수 없었다면, 소송의 상대가 되어서라도.

---*---

법무법인 광현, 회의실.

서로 명함을 주고받은 변호사들을 같은 급끼리 마주 보고 앉았다.

서지우와 윤정도는 한소희를 바로 알아봤지만, 아는 척하지 않았다.

그것이 예의였다. <해결>에 이력서를 냈다고 현 직장의 파트너 변호사가 있는 자리에서 아는 척을 할 수 없지 않은가. 해서도 안 되는 것이고.

한소희 역시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예의를 갖춰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스포츠맨십은 거기까지였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양측은 서로를 향해 손톱과 이빨을 드러냈다.

“들어보셔서 아시겠지만, 해결 측 의뢰인이 5년 전에 작곡한 노래 ‘Drive Away’는 네덜란드 가수 아일린 펠로이의 ‘Dream While I Dream’이라는 곡을 표절했습니다.”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수밖에 없겠네요.”

“지금 YGP 엔터가 해당 음원의 저작권자인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네, 맞습니다.”

“소송을 목적으로 한 채권양도는 무효라는 건 잘 아실 텐데요?”

“권리를 양도받은 건 아닙니다.”

네덜란드 가수 아일린 펠로이를 영입했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한국 내 활동과 관련해서 YGP 엔터테인먼트가 그녀의 매니지먼트 역할을 맡기로 계약한 것이다.

서지우의 추측이 맞았다. 한소희의 맞서 강하게 반박하던 정도는 한 방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표절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합의할 의사도 있었는데, 조금 전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라고 워낙 확고하게 말씀하셔서···. 민·형사 동시에 진행할 생각입니다. 이 일과 관련해서 원작자인 아일린 펠로이 씨가 YGP 엔터에 모든 업무를 위임했고, YGP는 저희를 대리인으로 선임했거든요.”

이거였다.

한국법상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을 이용했을 경우 저작권 침해로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단, 형사적 책임을 인정받으려면 피고인에게 고의가 있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고의는 증명하기 어려운 요건이다. 설사, 정말 유명한 곡이어서 한번 들어봤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고의를 증명할 수 없다. 피고인의 자백이 없는 한 저작권법 위반에 있어 고의가 인정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YGP 엔터가 아니 한소희가 형사 소송을 하려는 이유는 하나였다. 다른 음원 관련해서 가난한 작곡가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해 압박하겠다는 심산이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억울한 탈옥수가 인질의 머리에 총을 겨눈 채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경찰들에게 비장한 표정으로 외쳐대는 거창한 표현 같지만, 현실은 오히려 심플하다.

변호사들은 잘 안다. 법률 시스템은 늘 돈과 권력에 의해 크게 좌지우지되어왔다는 것을.

돈으로 정의를 살 수 없을망정, 포기할 수 있게 만들 수는 있다.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걸 어렵게 가시려고 하네요.”

조용히 듣고 있던 서지우가 광현의 파트너 변호사를 보고 말했다.

“이번 건으로 소송을 제기해서 공수 포지션을 둘 다 가져가려는 전략이신가 본데, 그건 두 개 중요도가 같을 때 가능한 시나리오죠. 네덜란드 노래의 표절 시비를 레버리지로 삼으시려는 거면 안타깝게도 저희는 그 게임을 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건 두고 봐야 알겠죠.”

한소희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서지우는 그녀를 보지 않고 말을 잇는다.

“저희 의뢰인을 설득해서 오늘 오후 이후 이 음원을 모든 플랫폼에서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란 건 광현 측만이 아니었다. 윤정도 놀랐다. 다만 밖으로 내색하지 않을 뿐이다.

“그 말뜻은 표절인 것을 인정하겠다는 말인가요?”

“사과문도 발표하죠. 고의적인 표절은 아니지만, 두 노래의 유사성을 인정하고 아티스트로서 책임을 지겠다는. 음원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해당 음원으로 벌어들인 수익도 모두 아일린 펠로이 씨에게 양도하겠습니다. 어차피 음원을 내리니까, 큰 의미는 없겠지만, 원하면 한국 저작권협회 사이트에 해당 음원 저작권자를 아일린 펠로이로 변경하도록 조처를 하겠습니다.”

어색한 침묵이 회의실에 흘렀다.

“자, 이 노래에 대해 더 논의할 것이 있나요?”

없다. 만약 그가 말한 대로 모든 조처가 취해진다면, 민사 소송은 물론 형사 소송도 기각당할 것이 뻔했다.

“그러면 이제 YGP 엔터 작곡가님께서 우리 의뢰인의 곡을 표절한 사실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한소희의 오판이었다.

서지우에 대한 사적인 감정이 이번 사건에 대한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서지우의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너무나 크게 본 나머지 그가 대리하고 있는 작곡가가 무명의 작곡가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말았다. 별 인기도 없는 곡에 대해 사과 한 번쯤 한다고 실추될 명예라는 게 없다는 것을, 금전적으로 잃은 것 더 없다는 것을.

그에 반해 YGP 쪽은 잃을 게 너무 많았다.

게다가 서지우가 말한 대로 움직인다면, 이제 사람들의 시선은 YGP 엔터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공격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바람에 치명타를 맞게 생겼다.

---*---

<해결>로 돌아가는 차 안.

“한 방 제대로 먹인 거 같은데요.”

윤정도가 한껏 고무된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그 여자 변호사, 우리 회사에 지원했던 친구 아니야?”

“네, 맞습니다. 거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눈빛은 맘에 드네.”

죽이려고 달려드는 맹수의 눈빛.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고 싶은 눈빛.

서지우는 문득 그녀가 <해결>에 들어왔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만 아니었다면.

징징-

때마침 정도의 휴대폰에 들어온 문자.

광현의 파트너 변호사다.

“합의하자고 하는데요. 수익금 전액 돌려주겠다고 합니다. 다만 비밀 유지 조항에 사인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쪽에서 백기를 들었다.

“그건 어쩔 수 없겠지. 조항에 사인하겠다고 해, 단, 우리 비용 전액하고 손해배상으로 플러스 1억 해서 카운터오퍼 넣어.”

아니다. 괘씸하다.

상대가 맹수라면 그는 맹수 위의 맹수다.

“그러지 말고, 3억 더 달라고 해.”

“3억이요?”

“그리고 2억쯤에서 합의 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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