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133)

데스티니 (2)

“아아아악—!”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쌍둥이 오빠.

그의 엉덩이에 난 욕창을 치료하던 아리는 소리를 질렀다.

새벽부터 나가 아르바이트를 뛰었고, 짬이 날 때는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에 돈을 구걸했다. 그리고는 요양병원에 들러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엄마를 체크한 뒤, 이제 들어왔다.

하루종일 식사는커녕 제대로 씻지도 못했으나, 방에 누워있는 환자가 먼저다. 얼른 손만 씻고 들어와 잘못된 곳은 없나 몸 이곳저곳 살피던 중 엉덩이 쪽에 난 욕창을 발견했다.

아침저녁으로 몸을 닦아주고 있지만, 욕창이라는 것이 두세 시간마다 환자의 체위를 변경시켜주지 않으면 근절하기가 불가능하다. 커지면 관리하기가 더 어려워지기에, 아리는 곧바로 따뜻한 식염수와 드레싱, 소독약 준비했다.

기저귀를 내리고 재빨리 고름을 닦아낸다. 환부를 깨끗하게 닦은 후, 드레싱을 적용했고 주위에 연고를 발랐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는 줄 몰라 오래 걸렸는데, 이제는 나름 익숙해졌다.

그래도 집에 들어온 지 벌써 한 시간.

이왕 시작한 거 다른 곳도 닦아주는 게 효율적이겠지만, 너무 힘이 든다.

뭐라도 하나 먹지 않으면 정말 그대로 쓰러질 것 같다.

치료를 끝낸 아리는 새 기저귀를 챙기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일어나기가 무섭게 말라비틀어진 개불 같은 그의 고추에서 노란 물이 흘러나왔다.

머리에선 ‘재빨리 뭐라도 집어 들어 당장 틀어막아!’ 명령을 쏘아댔지만, 지칠 대로 지친 그녀의 몸뚱아리는 굳어버린 석고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명령체계가 고장 난 몸이 상황을 파악하고 수건을 집어 들었을 땐 이미 노란 물이 그의 다리를 타고 흘러 밑에 깔린 이불을 다 적신 상태였다.

“아아아악—!”

참아왔던 절규가 터져 나왔다.

“야아아아—, 그냥 죽어버리지, 그랬어! 이렇게 살 거면, 왜 살아있는 건데! 다 너 때문이잖아! 네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거고, 너 때문에 엄마도 그렇게 된 거잖아. 왜 니가 싼 똥을 내가 치워야 하는 건데! 아아아악—! 김아인! 김아인—! 죽어버려! 당장 죽어버리라고! 아아악—!”

---*---

한바탕 쏟아부었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원망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같이 죽고 싶은 마음은 진정됐다.

아리는 머리를 뒤로 질끈 묶었다.

오빠의 몸을 옆으로 밀어놓고 이불을 걷어낸다.

젖은 바닥을 훔쳐낸 뒤, 새 이불을 깐다.

이렇게 된 거 그의 몸을 수건으로 구석구석 닦고 드레싱을 다시 한다. 재빨리 기저귀를 씌우고는 새 이불 위로 그를 밀어 올렸다.

새벽 한 시.

죽을 것 같았던 허기가 사라졌다.

위가 사라진 느낌이다.

부엌까지 가기도 힘들다.

지친 아리는 그 자리 주저앉아 벽에 기댔다. 눈이 절로 감긴다.

「“우리 아리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나는 스타가 될 거야?”

“스타?”

“응.”

“가수?”

“아니.”

“그럼 배우가 되고 싶은 거구나?”

“아니. 스타가 될 거라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

“그래, 우리 아리는 커서 아주 멋진 스타가 될 거야. 아빠가 약속해.”

“진짜?”

“응.”」

까톡.

‘아빠?’

까톡.

‘아빠······.’

까톡. 까톡.

오랜만이다. 아빠가 꿈에 나온 거.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까톡. 까톡.

그녀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언니]

[내가 지금 여기 마담 언니한테 물어봤는데]

[언니가 매력 있게 생겨서 나이 상관없을 것 같대요. 뽀샵 아니냐고 그래서? 내가 절대 아니라고 실물이 훨 더 예쁘다고 했더니, 언니더러 가게 한번 나오래요.]

[울 마담 언니 꽤 좋아요. 아는 손님도 많고.]

[그러니까 언니 편할 때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아, 그리고 내가 마담 언니한테 언니 사정 말했더니, 진짜 이 일 할 맘 있으면 마이킹 3천까지 당겨줄 수 있대요.]

예전에 샵에서 같이 일했던 동생이었다.

사방에 돈을 꾸러 다니다가 그녀에게까지 연락하게 되었고, 돈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다 보니 어떻게 그녀가 다니는 술집 이야기까지 듣게 됐다.

한 달의 천만 원씩 버는 그녀의 이야기가 솔깃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혼자 서는 감당할 수 없는 환자 둘에 이제 더는 돈 빌릴 곳도 없었다. 당장 집에 쌀이 떨어진 판국에 그녀가 가릴 수 있는 건 없었다.

[언제가 좋을까?]

[혹시 5천은 불가능할까?]

아리는 답장을 보냈다.

조로록-

눈물방울이 그녀의 큰 눈에서 흘러내렸다. 아까 그 절망적인 순간에도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다.

‘정말 이렇게 끝일까?’ 내 인생······.

그 순간.

방바닥 한편, 충전기에 꽂아두었던 오빠의 전화기가 진동했다.

징징-

혹시라도 그의 친구 중에서 돈을 빌려줄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있을까 찾아보려고, 집을 나가기 전 처박아 두었던 그의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아두었던 것.

아리는 방바닥을 기어가 김아인의 휴대폰을 충전기에서 뽑았다.

‘이 새벽에 누굴까? 혹시 진짜 친한 친구나 지인이 아닐까? 그렇다면 돈을 빌려주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하고 휴대폰을 확인했으나, 광고 문자다.

‘이 인간은 친구도 없나?’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도 많지 않다. ‘쓸모없는 놈. 변호사가 되겠다고 집안 돈은 다 가져다 써놓고.’

그냥 모든 게 싫다.

교통사고 직후 들어온 지인들 문자 몇 개와 광고 문자를 제외하고는 들어온 연락이 별로 없다. 큰 기대를 한 거는 아니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전화기 기록을 살피던 아리는 금세 다시 좌절감이 들었다.

그렇게 그의 전화기를 다시 내려놓으려는 순간,

오늘 들어온 문자 하나가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김아인 변호사님, 법무법인 해결입니다. 지난번에 지원하신 포지션 관련해서 저희 대표변호사님께서 면접을 보고 싶어 하다고 하여 이렇게 연락을 드립니다. 전화를 드렸지만, 받지 않으시기에 이렇게 문자로 고지 드리오니, 괜찮은 시간에 연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이헌 과장-]

---*---

법무법인 해결, 대회의실.

서지우와 윤정도가 지원자의 면접을 보고 있다.

“저는 언제나 대형 로펌보다는 해결처럼 작은 중소 로펌을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기계적인 대형 로펌의 문화보다 가족 같은 중소 로펌에서 일을 배울 수 있다면, 제가 변호사로 성장하는 데 그게 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 같은 로펌일 수도 있는데?”

“네?”

“우리가 엔터테인먼트 전문 로펌인 줄은 알고 지원했나요?”

“네, 물론입니다.”

“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요?”

“꿈이 영화감독이었습니다.”

“그래요?”

“네!”

“그럼 영화감독이 되었어야지 왜 변호사 되었어요?”

“네?”

“꿈이 영화감독이라면서요?”

“아···지금은 아닙니다.”

“그래요?”

“네.”

“알았어요. 내부적으로 회의 좀 해보고 연락줄게요.”

하나같이 뻔한 답변들.

대형 로펌에 들어갈 수 있는 성적이 안 돼 지원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대형 로펌만큼 월급을 많이 준다기에 그냥 한번 지원해 본 사람들.

신입 변호사한테 많은 걸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일말의 총명함이나 간절함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을 <해결>의 ‘막내’ 파트너로 뽑을 수는 없다.

“어때요, 변호사님은?”

“지원 시즌이 아니라서 그런지 별로네.”

“그렇죠! 역시 한소희······.”

“이제 지원자 한 명 남았나?”

“네···김아인 변호사가 남았습니다. 근데 이력서를 보면 그 친구보다···.”

징징- 징징-

한소희 지원자 면접을 다시 추천하려던 윤정도는 하던 말을 멈춰야 했다. 서지우의 전화기가 진동했다.

“여보세요? 네, 대표님. 네? 이면계약이요? 그걸 이제 와서 알려주시면 곤란한데요. 서면으로 남겨진 것이 아니면 크게 걱정······. 녹음 파일이 있다고요? 흠···알겠습니다. 일단 제가 상대방 변호사와 통화해보고 바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진행하고 있는 케이스에 문제가 생겼다. 이면계약이 있었는데, 서면으로 체결한 내용이 아니었기에 클라이언트가 얘기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방이 해당 구두계약을 녹음한 파일을 들고나온 모양이었다.

“혹시 서연출판사 건인가요?”

“응. 이면계약이 있었던 모양이야.”

“네?”

“나 지금 바로 서연출판사로 들어갈 테니까, 내가 녹음 파일 받아서 전송하면 바로 녹취록 만들어서 보내.”

“알겠습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 서지우는 서둘러 서류 가방을 챙겼다.

“변호사님, 그러면 이따 오후에 김아인 변호사 면접은 어떻게 할까요?”

“윤이 혼자 봐.”

“저 혼자요?”

“응. 보고 쓸만한 거 같으면 내가 다시 보고. 아니면, 새로 이력서들 받아보자고.”

“아···네.”

“그리고, 그때는 한소희 변호사 면접도 보자고.”

여자 변호사와 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여전히 불안한 요소가 있지만, 그렇다고 실력이 떨어지는 변호사를 뽑을 수도 없는 노릇.

서지우는 마음을 바꾸었다. 그만큼 한소희의 이력이 좋은 건 그도 인정한다.

“옙, 알겠습니다, 보스.”

---*---

‘내가 여기 왜 온 건지?’

벌써 삼십 분째 건물 앞에 서 있다.

너무나 예쁜 건물이다.

‘뭐 하는 짓이지? 법도 하나도 모르는 내가 어떻게 변호사 면접을 보겠다고 온 거지?’

어젯밤, 오빠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김아리는 우연히 법무법인 해결에서 보낸 문자를 보았다.

면접을 요청하는 문자.

무심결에 이전에 주고받은 문자와 관련 이메일도 확인했다.

왜 그랬을까?

궁금해서? 아니면 뭐에 홀려서?

모르겠다. 돈이 나오는 곳이라면 맨손으로 시멘트 바닥이라도 팔 수 있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밤새 뒤진 기록. 아인이 <해결>에 보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그 외 여러 로펌에 보낸 이메일들까지.

그리고 법무법인 해결에 관한 기사들. 하나둘씩 찾아보다 보니 어느덧 아침이 되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아인의 양복을 입은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법무법인 해결> 안으로 들어섰다.

“어떻게 오셨죠?”

“면접···보러 왔는데요?”

“김아인 변호사님이신가요?”

“네? 아, 네, 제가 김아인이에요.”

“안녕하세요, 김 변호사님. 그럼, 한층 올라가셔서 유이헌 비서님을 찾으시면, 대회의실로 안내해 드릴 겁니다.”

아리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계단을 올랐다.

---*---

법무법인 해결, 2F.

“유 과장, 아까 말한 서연출판사 이면계약 녹취록 어디 있어?”

“방금 출력해서 드렸는데요.”

“언제?”

“방금···.”

“없는데?”

“어, 분명 좀 전에 드렸는데.”

“그래?”

“네. 분명 좀 전에 대회의실···.”

“알았어. 일단 지금 바쁘니까, 내부 보관용으로 뽑아 놓은 거 있지?”

“네, 지금 막 파일에 철하려고···.”

“그거 줘.”

“아, 알겠습니다.”

서지우의 전화를 받은 윤정도는 다급했다. 두 시간 전, 이면계약 녹음 파일은 받은 그는 서둘러 녹취록을 작성한 뒤 퀵으로 보냈지만, 중간에 문제가 발생하여 문서가 서연출판사에 도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녹취록을 들고 직접 가야 하는 상황이다.

“차는?”

“앞에 대기시켜 놨습니다.”

“알았어. 그럼 갔다 올게.”

“변호사님.”

“왜?”

“김아인 지원자는 어떻게 할까요?”

“아, 맞다! 면접. 아···. 나는 한 시간이면 돌아올 것 같기는 한데···. 만약 기다릴 수 있으면 기다리라고 해. 근데, 바쁜 일 있으면 오늘은 그냥 가고 다음에 다시 연락해준다고 하고.”

“알겠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취소하는 거니까, 면접비는 드리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신없이 지시를 내린 윤정도는 서둘러 주차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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