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33)
  • 자꾸만 쓰게 되는 능력 (1)

    법무법인 해결 3F, 대회의실.

    매주 월요일, 법무법인 해결의 변호사들은 대회의실에 모여 한 주간 처리해야 할 사건이나 새로운 사건 그 외 중요한 스케줄을 공유한다.

    “YGP 신인 그룹 표절 사건 재판 기일이 이번 수요일에 잡혔습니다.”

    “증인 신문 기일이었던가?”

    “예.”

    “준비는 다 했고?”

    “예. 신문 사항하고 증인진술서는 법원에 제출했고, 상대방에도 어제 송달되었습니다.”

    “반대 신문은?”

    “예상되는 반대 신문 질문들 추려서 이동환 씨에게 전달했고, 내일 사무실로 나와 기일 전 사전미팅 하기로 했습니다.”

    “그때도 얘기했지만, 기술적인 부분에 너무 치우치지 말고 YGP 작곡가가 의뢰인의 곡을 들어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라고. 어차피 저쪽에서는 ‘머니 코드’니 하는 주장으로 유사한 가락의 곡들을 들고나올 거야. 두 곡이 비슷한 건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니까, 무의식적으로 표절했을 거라는 점을 강조하는 게 중요해.”

    “예, 알겠습니다.”

    “다음. 중국 펑야오 픽처스 건. 지난주에 합의서 초안 들어온 거 다들 검토했어? 합의금 지급 부분이 이상하던데? 전문에도 우리 쪽에서 요청한 것 중의 빠진 것들이 몇 보이고.”

    특정 업계의 법률 시장이 크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성장하는 업계여야 하고, 둘째, 경쟁자들이 많아야 한다.

    성장하지 못한 업계는 높은 법률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미 다 성장해버린 업계는 논쟁거리가 될만한 새로운 이슈들이 없다. 고로, 변호사가 필요 없게 된다.

    경쟁이 없는 업계도 마찬가지다. 큰 회사 한둘이 업계를 쥐락펴락하고 있어도 해당 업계의 법률 시장은 크지를 못한다. 법보다 그들의 협상 파워가 훨씬 더 큰 영향력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법률 시장이 형성되기 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을 통해 국내 아티스트들과 국산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증폭했고, 기존 플레이어들을 흔들만한 세계 거대 자금이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눈치 빠른 대형 로펌 몇 곳이 업계에 뛰어들었지만, 아직 승자는 없다.

    그게 서지우가 이 업계에 뛰어든 이유였다.

    이 사냥터는 아직 주인이 없기에.

    “변호사님, 김앤강 황재수 변호사가 계속 연락이 오는데 어쩌죠?”

    “무시해.”

    “그러고는 있는데 저번 주에는 다른 사건 기일까지 찾아와서 귀찮게 해서요.”

    “원하는 게 뭐래? 합의?”

    “네. 기존에 제시한 합의금에 플러스 진정성 있는 사과까지 하겠다고 합니다.”

    “피해자 앞에서 그랜절이라도 하겠대?”

    “네?”

    “그 정도도 못 할 거면 진정성이라는 말 가져다 붙이지 말라고 해.”

    “넵, 알겠습니다.”

    그리고 주인 없는 사냥터에서 이름을 알리려면 독종이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

    “자, 그럼 된 건가? 이번 한 주도 바쁘네, 수고들 하라고.”

    “저기, 변호사님.”

    “뭐 더 있어?”

    “사건은 아니고요. 이번 주 목요일에 최 변 환송회 있는 거 잊으시지 않으셨죠?”

    “응, 안 잊었어. 장소가 <마코토>라고 했지?”

    “넵, 맞습니다.”

    “오케이. 나는 그날 <영화사 청아> 대표님이랑 미팅이 있어서 거기서 바로 갈게.”

    “네.”

    “됐어?”

    “아, 그리고 하나 더. 내일부터 새로 뽑을 변호사들 인터뷰 일정 있습니다.”

    “그래?”

    “네, 이번 주하고 다음 주 1차 면접 보고 맘에 드는 사람이 없으면 다시 추려서 그다음 주에 2차 보려고 합니다.”

    “알았어. 내 스케줄 유 대리하고 확인해서 업데이트해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좀 있다가 Zoom 엔터에서 남수지 씨 계약 해지 관련해서 사무실에 온다고 했으니까, 같이 들어가자고.”

    “넵, 알겠습니다.”

    ---*---

    남수지

    탤런트

    신체: 164cm

    소속사: Zoom 엔터테인먼트

    데뷔: 2012년 SBC 드라마 ‘야매검사’

    수상: 2020년 제16회 한국드라마어워즈 여자연기자상

    2021년 KBC 드라마 연기대상 대상

    2021년 제56회 백장예술대상 TV부문 대상

    사이트: 공식사이트, 인스타그램

    작품: 방송, 영화, 기타

    데뷔 8년 만에 얻은 인기였다.

    2020년, MBS 드라마 편성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펑크난 2주를 메우기 위해 제작된 4부작 초미니시리즈에 캐스팅이 되었다.

    그게 대박이 났다.

    그 뒤로 주연급 배우로 발탁되었고 광고도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다행히 그게 끝이 아니었다.

    8년의 긴 무명 세월을 한꺼번에 보상이라도 해주겠다는 듯, 좋은 작품들이 밀려들었고 결국 2021년 그해 최고 인기 드라마 ‘이혼 후 또 이혼’으로 KBC 드라마 연기대상 대상과 백장예술대상 TV부문 대상까지 거머쥐었다.

    개런티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고 언론은 이제 그녀의 이름 앞에 ‘탑’이라는 수식으로 붙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리로 재계약한 소속사 대표가 2년간 그녀의 수익을 가로채고 있었으며 그녀의 명의로 가상화폐 투자를 하고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다른 소속사를 찾기로 마음먹은 남수지는 케이 엔터 이동주 대표로부터 서지우를 소개받았고, 현 소속사인 Zoom 엔터테인먼트와의 전속계약 해지 업무를 그에게 위임했다.

    “계약 해지 통지서 잘 받았습니다. 오늘 저희가 찾아온 이유는 남수지 씨가 해지를 철회할 생각이 없으신가, 변호사님하고 얼굴 보고 진솔하게 대화를 나눠보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월요일 오후, Zoom 엔터 대표 정현택과 같은 회사 이윤성 이사 그리고 그들의 변호사가 법무법인 해결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지난주 해결에서 보낸 전속계약 해지 통지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요청한 미팅이었다.

    “그런 거라면, 굳이 찾아오시지 않더라도 제가 전화로 얼마든지 확인해 드릴 수 있었을 텐데요.”

    말투와 태도는 예의 바르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아- 그래도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면 오해가 풀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한 방 맞은 상대방 변호사는 얼굴이 붉어졌다.

    “저희 의뢰인의 의사는 명확합니다. Zoom 엔터와의 분쟁 없는 계약 해지를 원할 뿐입니다.”

    “그러면 저희도 어쩔 수 없는데요. 이건 명백한 계약 위반이고 남수지 씨를 상대로 법원에 계약 이행 청구를 요청할 겁니다.”

    상대방 변호사의 얼굴을 바라보던 서지우는 아까부터 썩은 미소를 짓고 있는 정현택에게 눈길을 돌렸다.

    “하시죠.”

    정현택은 자신보다 열 살 넘게 어린 상대방 변호사의 딱딱한 태도가 아니꼽다.

    “변호사님은 우리 수지를 어떻게 아시나요?”

    느끼한 말투.

    한눈에 봐도 양아치다.

    “TV에서 봤습니다.”

    “팬이에요?”

    “뭐가 궁금하시죠?”

    “아니, 뭐, 저도 들은 게 좀 있어서···. 걔가 어떻게 변호사를 찾아왔나 궁금해서요. 변호사님, 케이 엔터 이동주 대표랑 친하죠?”

    딱히 숨길 내용은 아니지만, 묻는 태도가 기분 나쁘다. 서지우는 무표정한 얼굴을 정현택을 바라봤다. 서지우의 무표정에는 묘한 시크함이 서려 있다. 경우 따라서는 깔보는 뉘앙스도 살짝 풍긴다.

    “저희 쪽 의사는 분명히 밝혔고. 딱히 더 할 말 없으시면, 일어나시죠.”

    “하! 수지 걔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데···. 변호사님, 내가 걔를 언제 봤는지 알아요? 나 수지 스무 살 때부터 알았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애를 내가 데려다가 연예인 만들겠다고 8년 동안 뒷바라지해서 키워놨더니, 나한테 이런 식으로 나와? 내가 저한테 처바른 돈이 얼만데. 계약 해지? 하하하. 변호사님, 제가 가만히 보내줄 것 같아요? 변호사님이라면 곱게 보내주겠어요? 이제 겨우 손해 복구하고 수익이 나려고 하는데? 말도 안 되지.”

    자기 클라이언트의 말투가 거칠어지자, 상대 변호사가 얼른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우리 정 대표님 말씀은 아직 계약 년 수가 2년이나 남았고, 매니지먼트 측에서 잘못한 게 없으니까, 이런 식의 일반적인 해지는 계약 위반에 해당···.”

    “그렇게 생각하시면 하세요.”

    “네?”

    “그렇게 떳떳하면 소송하시길 권해드립니다.”

    떳떳할 수가 없다.

    검찰과 국세청이 이미 조사 중인 사건이었고, 서지우는 남수지를 통해 이미 증거를 확보한 상황이었다.

    그걸 알기에 그들이 찾아온 것이었다. 아쉬울 게 없었다면, 정현택은 이렇게 찾아오지 않고 여론전부터 펼쳤을 인물이었다.

    “하하하. 그렇게 나오시겠다. 그럼 나도 어쩔 수 없지. 좋게 해결하려고 했더니만, 8년의 세월을 기다려 겨우 찾아온 기회를 이렇게 날려버리시겠다?”

    “협박이신가요?”

    “내 말이나 걔한테 똑바로 전해주십쇼. 이 정현택의 등에 칼 꽂고 이 바닥에서 다시는 얼굴 파는 짓 못 할 줄 알라고. 가자, 윤성아.”

    으름장을 놓은 정현택은 같이 온 이사의 이름을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나가자, 상대방 변호사는 ‘굿 캅, 배드 캅’ 연기처럼 계약 조건을 유리하게 바꿔줄 용의도 있다는 말을 남기고는 뒤따라 나갔다.

    “휴-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이 업계에 저런 인간들이 아직 많네요. 참나-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협박질이야.”

    윤정도는 그들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정현택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괜히 큰소리만 치는 거로 여겼다.

    하지만, 서지우는 괜히 싸한 느낌이 든다.

    “윤 변.”

    “네.”

    “남수지 씨 연락해서 사무실로 오시라고 해.”

    “아···네. 혹시 뭐 걸리시는 게 있으신가요?”

    “물어볼 게 있어.”

    “알겠습니다.”

    “움직이는 게 불편하시면, 양평으로 회사 차 보낸다고 해.”

    “네.”

    그냥 하는 협박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그의 모습이 마음에 걸린다.

    ---*---

    법무법인 해결에서 미팅을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

    “윤성아, 남수지 찾았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정현택은 남수지의 행방을 물었다.

    “아니요. 아직.”

    “야이- 새끼야, 일반인도 아니고 대한민국에 그년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걸 하나 못 찾아!”

    “아파트에도 없고 본가에도 없습니다. 친한 친구들한테도 연락해봤는데,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혹시 해외로 뜬 게 아닐까요?”

    “야, 내가 걔 여권을 가지고 있는데 가긴 어디를 가?”

    “분실 신고하고 새로 신청했을 수도···.”

    “걔가 공항에 떴으면 진작에 기사가 떴어. 분명 한국에 있어. 시끄럽고, 재경이 집에 가봤어?”

    “네.”

    “민주네는?”

    “거기도 가봤습니다.”

    “하- 이게 어디로 숨었지.”

    남수지가 숨을 만한 곳을 골똘히 생각하던, 정현택은 불현듯 한군데 생각났다.

    “이윤성.”

    “예, 사장님.”

    “송세연이 지금 어디 있지?”

    “송 팀장이요?”

    송세연은 예전에 Zoom 엔터에서 매니지먼트 팀장으로 몇 년 전 사표를 쓰고, 시골에 내려가 과수원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거기가 그만두기 전에 수지 걔하고 친했잖아.”

    “네, 좀 친했죠.”

    “송세연이 찾아봐. 아버지 과수원 물려받는다고 회사 그만두고 시골에 내려갔잖아? 아마 양평인가 그럴 거야. 총무과 김 부장한테 인사기록 달라고 해서 찾아가 봐. 거기 있을 수 있어. 아니, 왠지 거기 있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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