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332화 (33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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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 융화되다

"큰일 날 뻔 했다니까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브루어 코치의 말이었다.

인터뷰 준비를 위해 자신의 복장을 정비하고 있던 매건 감독이 관심을 가지게 된다.

"무슨 일인데 그래? 요즘 우리 레드삭스에 큰 일 날 일이 뭐가 있어?"

매건 감독은 브루어 코치의 말에 되묻다가 한 가지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승률 6할 3푼으로 지구 1위를 달리며 잘 나가는 레드삭스에게 큰일이라고 할 만한 일은 한 가지 밖에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헉! 설마? 우리 강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아니겠지? 부상이라도 온 거야?!"

브루어 코치에게 묻고 있는 매건 감독의 표정이 다급해 보인다.

그는 강호를 일컬어 '우리 강호'라고 친근하게 칭하고 있었다.

미국 정서상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성을 부르는 경우가 흔했고, 친한 이들에게는 이름을 부르고는 했다.

매건 감독은 강호의 이름 앞에 '우리'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개막전 전까지만 하더라도 강호를 크게 우려하고, 차별하던 매건 감독은 이제 없었다.

그는 시즌 4할의 타율과 메이저리그 최초로 50-50을 달성한 강호에게 무한한 애정을 내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서 아니라고 말해! 강호의 일이 아니라고 말하라고!"

매건 감독은 브루어 코치의 양어깨를 쥐고 흔들며 소리치고 있었다.

그의 그런 태도가 이해되는 이유는 올 시즌 강호로 인해 레드삭스가 승리한 경기 수가 무척이나 많았기 때문이다.

단지 기여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강호는 팀이 박빙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김없이 적시 타점을 생산해내며 레드삭스의 역전승을 이끌어내고는 했다.

끝내기 홈런을 포함해서 강호가 만들어낸 끝내기 안타가 일곱 경기나 되었던 것이다.

아직 시즌이 중반 정도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승리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팀의 총사령탑인 매건 감독이 그를 애지중지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아니, 저...뭐..강호의 일이 맞습니다만."

"안 돼!!"

브루어 코치는 진땀을 흘리며 강호의 이름을 입에 올렸고, 그 말에 매건 감독은 본인도 모르게 비명을 토해내고 만다.

그 모습에 브루어는 얼른 말을 덧붙이며 매건 감독을 안심시킨다.

"별 일 아니에요. 부상은 아닙니다!"

"그럼 뭔데? 큰 일 났다며? 선수에게 부상이 아닌 큰 일이 또 뭐가..?"

매건 감독은 부상은 아니라는 브루어의 말에 순간 눈을 크게 떠 보인다.

선수에게 부상이 아닌 큰 일 몇 가지가 그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 것이다.

"설마 스캔들인 거야? 우리 강호는 술은 안마시니까 음주 운전 같은 건 아닐 테고, 스캔들이 맞는 거야?"

"아니...그게..."

"어서 아니라고 말해! 강호에게 아무 일 없다고 말해 달라고!!"

브루어 코치는 자신의 어깨를 잡고 흔드는 매건 감독의 다급한 표정에 얼른 말을 뱉어낸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요!"

브루어 코치의 대답에 매건 감독은 그제야 붙들고 있던 그의 어깨를 놓아준다.

그러면서 '나쁜 일 아냐?'라는 말을 뱉어내며 심하게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밝게 웃어 보이며 자신으로 인해 잔뜩 구겨진 브루어 코치의 유니폼 어깨 부분을 손으로 매만져준다.

올해로 예순여섯 살의 매건 감독이 보여주는 변덕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허허허, 나쁜 일만 아니면 된 거지. 그래, 우리 강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볼까?"

매건 감독은 그렇게 웃어 보이며 이제는 침착하게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제스쳐를 해보인다.

브루어 코치에게 양팔을 펼치며 어서 말해보라는 시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브루어는 일단은 한 발짝 물러난 상태로 입을 연다.

"강호가 타격 폼 수정을 원하더라고요."

브루어 코치의 말에 겨우 진정됐던 매건 감독의 표정이 급변한다.

브루어 코치가 물러나 있던 한 발짝은 어느새 다시 좁혀져 있었다.

"뭐?! 말도 안 되는 소리! 4할에 50홈런을 치는 타자의 폼을 누가 수정할 수 있다는 말이야? 설마 자네... 강호의 그 말을 들어준 건 아니겠지?"

"물론 좋은 말로 거절 했습니다."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던 매건 감독은 브루어 코치의 대답에 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러면서 당부를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당연히 그래야지!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강호의 타격폼을 수정해줄 수 있는 코치는 존재하지 않아."

매건 감독은 그렇게 말한 후 설명이 조금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또 다른 말을 덧붙인다.

그런데 이어진 매건 감독의 말에서 그가 강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설령 테드 윌리엄스나 조 디마지오가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그들에게 강호의 타격을 손보게 하지는 않을 거야. 나는 강호가 윌리엄스나 디마지오보다 타격 능력이 떨어진다고 보진 않아."

매건 감독의 말은 확신을 담고 있었다.

그는 전설적인 타자인 테드 윌리엄스나 조 디마지오보다 강호를 더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시즌 초만 하더라도 강호의 타격 능력을 의심했던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상당한 인식 변화가 분명했다.

'이거야, 원. 개막전에서 본인이 했던 말은 기억나지 않는 건가?'

브루어 코치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따름이다.

한 때는 강호의 타격 능력에 끊임없이 의구심을 보냈던 매건 감독이 이제 강호를 찬양하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저도 동감입니다."

"그렇지? 강호가 그들보다 못할 것이 없다고. 그러니까 강호의 스윙은 그대로 유지 되어야만 해!"

자신의 발언에 동감한다는 브루어 코치의 대답에 매건 감독의 말은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양 주먹을 불끈 쥐며 강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다.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강호의 스윙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전설이 될 그의 스윙 폼을 그대로 유지, 보존하는 거야. 강호는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가장 완벽한 유형의 타자니까 말이야."

강호에 대한 매건 감독의 칭찬은 어느새 극에 달해 있었다.

브루어 코치는 체념한 표정으로 '암요, 여부가 있겠습니까?'라고 동조하는 모습이었다.

지금의 분위기로 봐서는 강호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 마디라도 꺼낸다면 매건 감독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감독이 팀의 4번 타자를 믿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겠지?'

브루어 코치는 그저 그렇게 여기기로 한다.

강호를 향한 매건 감독의 마음이 과한 면이 있었지만, 딱히 그 생각을 수정해줄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시즌 초, 강호를 차별하던 매건 감독을 떠올린다면 오히려 지금의 모습을 권장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강호에 대한 매건 감독의 애정은 갈수록 더해져 간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 한국 기자들이 요청한 인터뷰 자리에서 그런 매건 감독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백의 나라에서 오신 여러분을 환영해요."

어설픈 말투이긴 하지만, 한국 기자들을 맞이해 매건 감독이 사용한 언어는 분명 한국말이었다.

한국어로 환대해주는 매건 감독의 환영 인사에 기자들은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아진다.

시즌 초 강호를 차별했던 매건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기자들로서는 조금은 예상하지 못한 환대였다.

여러 기자들을 대표해서 오썬 스포츠의 허일수 기자가 영어를 사용해 답례한다.

"매건 감독님이 이렇게 한국말을 잘 하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부드러운 어조로 말해오는 허 기자의 칭찬에 매건 감독의 웃음이 깊어진다.

이어진 매건의 말 역시 어설프나마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한국말뿐만 아니라 김치나 삼겹살도 좋아해요. 나는 한국의 문화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 백의 모국이지 않습니까?"

매건 감독은 그렇게 대답하며 웃어 보인다.

기자들은 그동안 매건 감독의 냉소적인 표정만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에게 이토록 환대를 받게 되자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러면서도 매건 감독을 환대를 통해 한 가지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된다.

'백강호 선수가 제대로 인정받고 있구나.'

그런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강호의 올 시즌 기록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와 국적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환영받는다는 사실이 즐겁기만 하다.

그로 인해 일부 기자들은 강호에 대한 판단을 바꾸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순간 백강호 선수의 전성기가 지날 거라는 말은 대체 누가 한 거야? 메이저리그에서 이렇게 잘 나가는 선수를 말이야.'

강호를 향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몇몇 기자들은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이후 그들이 쓸 기사의 내용까지 달라지게 만들었다.

올 시즌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는 강호이지만, 서른 살이라는 나이가 걸림돌이 되어 서서히 하락세를 탈 것이라는 전망을 받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매건 감독의 환대를 통해, 또한 레드삭스 구단이 강호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그런 부정적인 전망을 잊게 된다.

'이런 걸 보고 제 2의 전성기라고 하는 거겠지? 어쩌면 백강호 선수는 KBO보다 메이저리그가 더 잘 맞는 체질인지도 몰라.'

그것이 매건 감독과의 인터뷰를 마친 기자들의 결론이었다.

기자들은 그들의 직업과는 맞지 않게 논리가 조금은 부족한 결론을 내리며 강호에 대한 찬양 일색의 기사를 써내려 간다.

[백강호, 메어저리그를 호령하다!]

[제 2의 전성기, 백강호 레드삭스의 중심에 서다.]

[오브라이언 매건 감독, 백강호는 이미 레전드.]

호평 일색인 기사들이 빠르게 한국으로 전파되어 갔다.

이를 통해서 강호를 응원하는 많은 수의 한국 야구팬들이 메이저리그에서 강호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야~ 백강호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날아다니네."

"그러니까 말이야. 미국 가기 전에 전문가라는 놈들이 3할에 30홈런만 쳐도 다행이라고 떠들던 거 기억나? 그 전문가라는 양반들, 지금 다 뭐하고 있어?"

"다 잠수 탔겠지. 나는 우리 백강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저렇게 잘 할 줄 알았다니까. 괜히 4할 타자겠어? 안 그래?"

"당연하지! 백강호 선수처럼 인성 좋고, 착실한 선수들은 어딜 가서나 성공하게 돼있어. 나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한국의 야구팬들은 메이저리그에서마저도 자신만의 신화를 써나가는 강호의 모습에 진심으로 기뻐한다.

마치 강호의 활약이 자신들의 일인 것 마냥 즐거웠고, 그로 인해 한국 야구의 위상이 한층 더 격상된 것 같아 기쁜 마음이 든다.

그것은 단지 팬들만의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야구장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외국 스카우터들이 왜 이렇게 많아?"

"몰랐어? 백강호 선수 덕분에 한국 리그가 재평가 되고 있잖아. 요즘 메이저리그에서는 일본 쪽보다 우리나라 선수들한테 관심이 많다더라."

"듣자하니 자이언츠 권대우하고, 히어로즈 명길관은 이번 시즌 끝나고 무조건 메이저리그로 간다던데?"

야구팬들은 최근 들어 자주 볼 수 있게 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모습이 어느새 익숙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은 레드삭스에 소속되어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이어나가는 강호에 대한 찬사로 이어진다.

"백강호 선수 덕분에 다른 선수들도 덕을 보는 거라고."

그런 의견들이 야구 커뮤니티를 점령해가고 있었다.

그로 인해 레드삭스의 경기를 챙겨보는 한국 야구팬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고, 그것은 곧 강호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장소는 다시 며칠이 지나 레드삭스의 클럽 하우스로 옮겨진다.

"이게 다 뭐야?"

클럽하우스 장인 호세 존스가 강호의 근처로 다가와 묻는다.

그는 강호의 자리에 잔뜩 쌓여있는 팬들의 선물에 관심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 이게 다 백에게 온 선물인 겁니까?"

올 시즌 합류한 루키, 몬타나가 진심으로 부럽다는 기색으로 물어온다.

강호는 그런 몬타나에게 선물 상자 하나를 열어 팬들이 보내준 한국산 과자 몇 개를 꺼내 건넨다.

"먹을래?"

"나야 감사하죠. 그런데 야구 선수한테 무슨 선물을 이렇게 많이 보내는 거예요?"

과자를 받아들며 좋아하는 몬타나의 물음이었다.

강호는 한국 시절부터 이어져온 팬들의 선물 공세가 이미 익숙해져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한국에선 흔한 일이야."

"진짜? 한국은 야구 선수로 살기 좋은 나라인가 봐요!"

몬타나는 동그란 눈을 크게 떠 보이며 들고 있던 과자를 입에 넣는다.

그러면서 '심지어 맛도 좋아'라고 웃어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 말에 하우스 장인 호세 존스도 다가와 강호에게 손을 내민다.

"뭡니까? 존스."

"나도 하나 줘봐."

"존스는 과자 안 먹잖아요?"

"과자는 강호 너도 안 먹잖아. 그러니까 하나 줘."

평소 무게감 있는 존스의 태도를 생각했을 때 지금의 상황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그 대단한 호세 존스가 과자 구걸이라니.'

강호는 피식 웃음 지으며 과자 박스를 존스에게 건넨다.

그러자 주변을 서성거리던 애덤 잭슨과 토미 미첼, 그리고 며칠 전 신고식을 치렀던 데이비슨 등이 일제히 다가와 과자 봉지를 뜯는 모습이었다.

"한국인들은 과자를 제대로 만들 줄 아는 모양이야."

잭슨이 묘한 감탄사와 함께 말했다.

강호의 입장에서는 그런 동료들의 반응이 더 신기할 뿐이었다.

'이 양반들은 어릴 때 과자도 안 먹고 자랐나?'

그렇게 시답잖은 생각을 가지며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던 강호. 문득 먼발치에서 이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는 후반기 들어 빅 리그에 콜 업 된 불펜 투수 저마일 칸토였다.

저마일 칸토는 스물일곱 살의 적지 않은 나이로 트리플 에이와 메이저리그 사이를 오가는 전형적인 트리플 에이 죽돌이였다.

강호는 자신을 먼발치에서 응시하는 칸토에게 마음의 소리를 담아 시선을 보낸다.

'무슨 볼 일이라도?'

강호의 눈빛에서 의도를 읽은 칸토는 잠시 망설이던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고개를 내젓고는 라커룸에서 나가버린다.

그 모습에 의문이 들긴 했지만, 강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오늘 있을 경기를 준비해 나간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후, 저마일 칸토가 강호에게 말을 걸어온다.

칸토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던 강호로서는 의외의 접근이었다.

"저기, 미스터 백.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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