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331화 (331/335)

0331 / 0335 ----------------------------------------------

레드삭스의 4번 타자

시간과 장소는 레드삭스가 홈경기를 준비하고 있는 클럽하우스로 옮겨진다.

아직은 경기 시작까지 시간이 꽤 많이 남아 있는 관계로 선수들은 각자의 일정에 맞춰 개인 훈련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등 자유분방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항상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강호 또한 개인 훈련을 위해 자신의 장비를 챙겨드는 모습이었다.

그 때 강호의 시선을 끄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더 정확히는 음정박자를 무시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여러 선수의 불협화음이 강호의 청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I gotta feeling(느낌이 들어)~ That tonight's gonna be a good night(오늘밤은 멋진 밤이 될 거라는)~ That tonight's gonna be a good night(오늘밤은 멋진 밤이 될 거야)~~That tonight's gonna be a good, good night(오늘밤은 멋진 밤이 될 거야)~~~"

긴장을 한 것인지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괴롭겠지만, 듣는 사람 역시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강호는 노래를 부르는 주인공들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특이한 복장을 한 채로 춤을 추며 노래하는 루키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나 21살의 루키인 몬타나의 복장이 압권이었다.

그는 흑인 특유의 탄력 있는 상체 근육을 드러낸 상태로 넥타이와 짧은 반바지만을 착용한 모습이었다.

그의 브레이킹 댄스와 노래가 이어진다.

"Tonight's the night(오늘이 그 밤이야), Let's live it up(우리 신나게 놀아보자)!

I got my money, I'll pay(나 돈이 있거든, 내가 낼테니까) Let's spend it up(우리 그 돈을 다 쓰자구)!"

몬타나는 잔뜩 긴장한 다른 루키들과는 다르게 지금의 상황을 즐기는 듯 했다.

화려한 브레이킹 댄스를 추면서도 R&B창법을 가미한 그의 목소리는 불협화음 중에서 그나마 들을만한 노래라 할 수 있었다.

"오오~ 몬타나 더 흔들어!"

"큭큭, 몬타나가 제법인데?"

"퍼포먼스를 아는 친구라니까~ 최고다!"

루키들의 재롱을 바라보는 다른 선배 선수들이 킥킥 거리며 웃는 와중에도 몬타나에게는 엄지를 척하니 내밀어 보이는 모습이다.

강호는 그런 동료 선수들의 모습에 고개를 내젓고는 자신의 장비를 챙겨 훈련장으로 이동한다.

그러다 클럽하우스 장인 호세 존스와 눈이 마주치자 짧게 한 마디 말을 내뱉는다.

"저는 먼저 훈련하러 갑니다."

"벌써? 이 재밌는 광경을 좀 더 구경하지 그래?"

"제 정서에는 익숙하지가 않네요. 먼저 갑니다."

강호는 더 구경하고 가라며 웃어 보이는 호세 존스의 말에 그렇게 대꾸한 후 라커룸을 나선다.

강호가 라커룸을 떠난 후에도 루키들의 재롱은 계속되었고, 클럽 하우스 장인 호세 존스가 '됐어, 이제 그만해도 돼'라고 말한 후에야 루키들은 굴욕적인 순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제야 낯 뜨거운 신고식을 치르던 루키들이 옷을 갈아입기 위해 행동을 서두른다.

그 모습마저도 재미있게 느껴졌던지 선배 선수들의 목소리가 줄을 잇는다.

"오오~ 후반기에 합류한 루키들은 행동이 재빠른데? 후반기 도루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그런 반면에 노래 실력은 형편없어. 몬타나를 제외하고는 고막에 피가 날 지경이었다니까."

"학창 시절에 야구만 했던 모범생들이었나 보지, 뭐."

"좋은 구경 잘했다. 루키들~"

선배 선수들은 급히 옷을 갈아입고 있는 루키들을 향해 격려 아닌 격려의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에 괜스레 울컥한 루키들 중 누군가가 입을 연다.

자신의 유니폼을 갈아입자마자 항변하는 선수는 22살의 신예 내야수, 저스틴 데이비슨이었다.

"그런데 왜 백은 신고식을 안 하는 겁니까? 그도 엄연히 루키잖아요!"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하는 데이비슨의 말에 순간 라커룸의 분위기가 바뀐다.

루키들의 재롱에 유쾌해졌던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었던 것이다.

곁에 있던 외야수 루키, 몬타나가 분위기를 읽고 팔꿈치로 데이비슨의 옆구리를 찔러봤지만 데이비슨은 물러나지 않는다.

"그렇잖아요? 올해가 1년 차인 루키들이 전부 신고식을 해야 하는 거라면 백도 같이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호기롭게 항변하던 데이비슨의 목소리는 선배 선수들이 뿜어내는 기세에 점차 작아져가고 있었다.

당당하게 따지고 나선 데이비슨도 자신을 응시하는 선배 선수들의 눈빛이 좋지 않음을 감지한 것이다.

"에휴~"

곁에 있던 몬타나가 한숨을 내쉬며 데이비슨에게서 한 발짝 멀어지고 있었다.

이미 올 시즌동안 세 번째 신고식을 치루고 있는 몬타나에게는 낯설지 않은 광경이었던 것이다.

그의 예감대로 따져 묻는 데이비슨을 향해 선배 선수들의 질타가 이어진다.

"이봐, 모르면 가만히 있던가, 아니면 물어보던가. 왜 가만히 있는 백을 걸고넘어지는 거야? 혼나고 싶어?"

유니폼 소매를 걷으며 나서는 사람은 팀의 에이스 투수인 애덤 잭슨이었다.

한 때 강호를 오해하기도 했던 잭슨은 이제 강호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 상태였다.

서른 살, 동갑내기라는 사실이 두 사람을 더 가깝게 만든 이유이기도 했고, 개막전 경기를 통해 강호에게 동질감을 느낀 잭슨이 강호에게 먼저 살갑게 군 까닭도 있었다.

팀의 에이스인 애덤 잭슨이 나서자 데이비슨이 주춤하며 물러섰고, 그동안 다른 선배 선수들이 가세한다.

"그럼 너도 백 정도 되는 활약을 하던가?"

"풋, 이봐 토미. 저 애송이가 백 정도 되는 활약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야? 백은 처음부터 루키가 아니었던 거야. 데뷔 전 이후 세 경기 만에 홈런 열 개를 쏘아올린 타자한테 루키 대접이 어울리기나 해?"

"애송아, 백을 걸고넘어지려면 30홈런부터 먼저 찍고 와라."

토미 미첼과 브랜든 마우어, 에드윈 쉼프 등 메이저리그 경력이 5년이 넘는 선배 선수들의 이어진 말이었다.

그들은 강호를 걸고넘어지는 데이비슨의 말에 분개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선배들의 반응에 호기롭게 나선 데이비슨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잠자코 있던 클럽하우스 장, 호세 존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연다.

"어이, 꼬맹이(kid). 팀의 영웅과 루키의 대접이 같을 수는 없는 거야.'

호세 존스의 어조는 부드러웠지만, 그 내용은 결코 부드럽지만은 않았다.

메이저리그 연차가 12년이 넘는 베테랑 야수, 호세 존스의 꾸지람에 데이비슨이 조금은 주춤하게 된다.

호세 존스의 말에서 강호를 신뢰하는 그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보고 있는 눈이 많아서 데이비슨도 이대로 물러서고 싶지는 않았다.

'영웅이라니? 백이 아무리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다지만, 그도 결국 메이저리그 1년차 루키일 뿐이잖아!'

데이비슨은 자신을 분개하게 만든 사실 하나를 떠올리며 다시 한 걸음 나서고 있었다.

"하지만!"

데이비슨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호세 존스가 말을 자르고 들어온다.

그의 이어진 말에 데이비슨은 더 이상 항변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리고 네가 아직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백은 이미 4월 달에 신고식을 했었다고."

호세 존스의 말에 데이비슨이 입을 다무는 사이 주변에 있던 선배 선수들이 다시 대화에 참여한다.

그들은 몇 달 전 있었던 강호의 신고식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강호가 신고식에서 불렀던 노래는 그만큼 인상적이었던 까닭이었다.

"솔직히 조금 놀랐었지. 백이 노래를 그렇게 잘 하는 줄은 몰랐으니까."

"노래를 잘한 것도 있지만, 감성이 좋았다고 할까?"

"그래, 맞아. 이 친구들이 부른 블랙 아이드 피스의 노래도 재밌었지만, 백이 불렀던 데스페라도(Desperado)는 특별한 감성이 있었어."

토미 미첼과 선배 선수들은 강호의 신고식을 떠올리며 그 때의 여운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 때는 이렇게 라커룸에서 신고식을 했던 것이 아니라 이동하는 원정 버스 안에서 유니폼을 입은 강호가 노래를 불러 주었었다.

원거리 이동 때는 구단의 전용기로 이동을 하기도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의 원정지로 이동할 때는 원정 버스를 이용하기도 했던 것이다.

호세 존스와 애덤 잭슨 역시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뭐랄까? 백이 부른 데스페라도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가 느껴졌달까?"

"오, 존스! 표현 좋은데요? 맞아요. 백이 부른 노래는 묘한 구석이 있었어요."

호세 존스와 애덤 잭슨까지 나서서 강호의 노래를 칭찬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자신이 끼어들 타이밍 만을 노리고 있던 데이비슨이 얼른 질문을 던져본다.

"데스페라도라는 노래가 한국 노래입니까?"

갑작스런 데이비슨의 질문에 호세 존스가 버럭 소리친다.

"무슨 멍청한 소리야? 이글스(The Eagles)는 미국 록 밴드라고!"

호세 존스의 호통에 데이비슨은 선배 선수들과의 대화를 포기하게 된다.

'미국 록 밴드의 노래를 부른 백에게서 느껴지는 한국인 감성이라니? 에이 씨, 뭔 소리인 줄 모르겠다. 나는 이제 그냥 찌그러져 있자.'

데이비슨이 또 다시 꾸지람을 듣고 물러서자 근처에 있던 몬타나가 다가서며 귓속말을 해온다.

그는 데이비슨이 강호를 트집 잡고 나섰을 때 팔꿈치로 데이비슨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렸던 장본인이었다.

"더 이상 나서지 않는 게 좋아."

선배들에게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목소리를 잔뜩 줄인 몬타나의 속삼임이었다.

데이비슨은 몬타나의 말에 곧장 되물어본다.

"왜? 너무하잖아. 같은 루키인 우리들은 수모를 당하고 있을 때 백강호만 너무 특별대우를 받는 거 아냐?"

또 다시 시작된 데이비슨의 항변에 몬타나가 얼른 선배들의 표정을 살펴본다.

데이비슨의 목소리가 크지 않았는지 다행히도 선배들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몬타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데이비슨이 모르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입을 연다.

"백에게만 특별대우를 하는 게 아니야. 백은 이미 4월 달에 신고식을 했으니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는 거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몬타나, 너는 벌써 신고식만 세 번째나 하고 있잖아? 카를로스도 두 번째이고."

"그건."

데이비슨의 항변에 대답을 하려던 몬타나는 선배들의 시선이 어느새 자신들을 향하는 모습에 '어흠'하고 헛기침을 해 보인다.

그 후 라커룸의 구석진 곳을 향해 데이비슨을 데려가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잘 들어, 데이비슨. 우리 레드삭스는 1년 차 루키들에 대한 신고식이 혹독한 편이야. 새로운 루키가 빅 리그에 올라오면 어김없이 신고식을 하는 거지."

몬타나의 설명에 데이비슨은 '그게 뭐가 혹독해? 일반적인 신고식 룰이잖아.'라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자 몬타나는 '얘가 뭘 잘 모르네'라고 입을 떼며 설명을 계속한다.

"내가 혹독하다고 말한 이유는 빅 리그에서 마이너로 갔다가 다시 빅 리그로 올라왔을 때, 신고식을 다시 해야 한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카를로스는 이번이 올 시즌 두 번째 빅 리그 콜 업이라는 말이지."

몬타나의 친절한 설명에 데이비슨은 그제야 '아~'하는 탄성을 내뱉는다.

그러다 무언가 한 가지를 깨닫고는 몬타나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자신을 바라보는 데이비슨의 시선에 몬타나는 한숨과 함께 실토를 하고 만다.

"맞아. 나는 이번이 세 번째 콜 업이야. 개막전 경기가 끝나자마자 마이너로 내려갔었지. 두 번째로 콜 업 됐을 때는 5월이었는데 그 때는 그래도 2주는 버텼어."

체념한 듯이 말해오는 몬타나의 설명에 데이비슨은 이제야 모든 상황을 깨닫게 된다.

선배들이 강호만 특별 대우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백이 우리와 같이 신고식을 하지 않았던 이유가."

"그래. 백은 개막전 이후에 단 한 차례도 마이너로 내려간 적이 없으니까. 50홈런, 50도루를 달성하고, 타율 4할이 넘는 강타자를 마이너로 내려 보낼 미친 감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데이비슨은 자신의 말을 끊으며 대답해 오는 몬타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이유라면 강호가 자신들과 함께 신고식을 하지 않은 이유는 타당한 것이었다.

신고식만 세 번이나 한 몬타나와 두 번을 한 카를로스 등의 선수들은 그 사실을 잘 알았기에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데이비슨을 흥분하게 만드는 부분이 또 있었다.

"그런 사실을 왜 나한테는 알려주지 않은 거야?"

분개한 표정으로 따져 묻는 데이비슨의 목소리였다.

데이비슨의 그런 태도에 몬타나는 물음에 대한 본질적인 해답을 내어 놓는다.

"네가 안 물어 봤잖아."

몬타나의 대답은 그야말로 짧고 명확한 논리였다.

자신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데이비슨을 향해 몬타나는 씨익 웃어 보이며 이렇게 얘기한다.

"헤이, 키드(hey, kid). 여기는 메이저리그야. 먼저 물어보지도 않은 것을 알려주지는 않는 곳이라고."

몬타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오른손을 들어 데이비슨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러면서 다른 선배들이 해주지 않은 환영의 인사를 전한다.

"이런 메이저리그에 온 걸 환영한다."

어깨를 두드리며 말해오는 몬타나의 목소리에 그제야 멍하니 있던 데이비슨의 눈동자가 그를 향해 움직인다.

데이비슨 자신보다 고작 몇 달 빨리 빅 리그 무대를 밟은 몬타나가 왜 이렇게 커 보이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선배 선수들이 왜 그렇게 자신을 나무랐는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이런 메이저리그에서 데뷔 시즌에 50-50을 달성해버린 백은 대체 뭐하는 사람인 거야?'

강호를 향해 비뚤어진 시샘을 내보였던 데이비슨의 의문은 이제 순수한 호기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데이비슨이 자신의 정체를 궁금해 하는 동안, 그 당사자인 강호는 난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장소는 실내 연습장으로 옮겨진다.

강호는 자신이 던진 질문에 일관된 답변을 내어놓는 브루어 코치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본다.

제임스 브루어는 레드삭스의 타격 코치를 맡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니까 코치 님. 스윙 할 때 테이크 백 동작을 수정해도 된다는 겁니까?"

강호는 벌써 몇 번째 이 질문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는 메이저리그 레전드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역 생활동안 타격 부분에서 명확한 족적을 남긴 브루어 코치에게 타격 노하우를 전수받고자 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가 않았다.

"그래, 물론이지! 강호 너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어. 너는 4할에 50-50을 동시 달성한 타자잖아?"

브루어 코치의 말이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그의 말이 어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웃음기 띤 브루어의 말은 계속 된다.

"하지만 나는 강호의 원래 스윙 동작이 좋아. 뭐랄까...? 장인의 숨결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조금 전에는 예술가의 혼이라면서요?"

"그래! 그런 것도 느껴져! 그러니까 강호는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말이야."

브루어 코치의 대답에서 강호는 또 다시 대화가 원점으로 되돌아 왔음을 느낀다.

'이러다가 끝이 없겠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강호는 결국 브루어 코치에게 원하는 바를 간단명료하게 고백하기로 한다.

"코치님의 타격 기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강호의 부탁에 브루어 코치는 진심으로 기쁜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호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 역시 백은 겸손한 선수야! 나한테 타격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네."

"그럼! 물론이지. 백은 뭐든 다 할 수 있어."

브루어 코치의 대답이 승낙의 뜻이라고 여긴 강호는 살짝 미소 지어 보인다.

그런 강호의 미소는 단 1초 만에 깨어지고 만다.

"하지만 나는 백에게 가르칠 게 없어. 4할 2푼에 50홈런을 때리는 타자에게 타격을 가르친다니? 내게 그런 타격 지식이 없다는 게 애석할 따름이야."

브루어 코치는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강호는 그 표정에 할 말을 잃고 만다.

실망하는 강호의 표정에 미안함을 느꼈는지 브루어는 다른 주제를 꺼내들고 있었다.

"그런데 백의 수비실력은 언제부터 그렇게 뛰어났던 거야? 혹시 태어났을 때부터?"

브루어 코치의 칭찬은 과한 면이 있었다.

자신을 향한 그의 칭찬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강호는 무뚝뚝한 어조로 대답한다.

"한국에 있을 때 코치님들께 배운 겁니다."

"코치들에게 배운 거라고? 그럴 리가. 백, 너의 실력은 배운 거라기보다는 타고난 게 분명해."

"아니에요. 분명 2군 시절에 코치님들께."

"역시 백은 겸손해. 동양인들의 겸손함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백은 더 특별해. 하하하."

브루어 코치의 너스레에 강호는 다시금 말문이 막힌다.

자신을 칭찬하는 말로 말을 끊으니 어떻게 다시 말을 시작해야할지 감이 서질 않는다.

그 사이 브루어의 말이 계속 된다.

"그럼 백의 주력은 어떻게 된 거야? 100미터 9초대의 그 주력도 설마 배운 거라고 하지는 않겠지?"

"배운 겁니다. 자이언츠 시절에 기성태 주루 코치님께 배운 거예요."

"하하, 백은 정말 겸손을 몸에 타고 났나 봐. 그런 게 배워서 가능하다면 세상의 모든 기록들은 매일같이 갱신돼버릴 거라고. 100미터 9초대의 빠른 발이 배워서 얻은 발이라니. 우리 백은 지나치게 겸손하군. 아하하하."

강호를 지나치게 오해한 브루어 코치가 크게 웃어 보인다.

그런 브루어의 반응을 통해 강호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안 배워. 안 가르쳐 주겠다는 말을 어렵게도 하시네."

강호는 자신을 지나치게 고평가하는 브루어 코치에게서 결국 가르침 청하기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다른 코치들도 마찬가지여서 주루 코치와 수비 코치를 찾아갔던 강호는 브루어 코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의 대답을 들어야만 했다.

"오오~ 그럼. 우리 백은 뭐든 다 할 수 있지. 그런데 내가 가르칠 게 없어."

"역시 우리 백은 겸손해. 나한테 주루 플레이를 배우겠다고? 나 근데 현역 시절에 최다 도루 기록이 56개야. 백은 올 시즌에 도루를 70개 넘게 하지 않았어? 과연 이런 내가 백에게 가르칠 게 있을까?"

브루어 코치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코치들의 대답이었다.

그들은 강호의 훈련 모습을 참관하며 지켜보기는 해도, 특별하게 지도를 한다거나 가르침을 주는 일은 없었다.

이게 다 자신의 올 시즌 성적이 지나치게 좋은 이유라 결론 내린 강호는 결국 메이저리그 코치들에게 배우는 것을 포기한다.

'그냥 혼자하자.'

강호는 그렇게 결론을 내린 후,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땀을 흘린다.

그런 강호의 땀방울 속에 시즌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태호: 선배님, 메이저리그 코치들한테 많이 배우셨어요?

강호: 아니, 배운 게 하나도 없어.

태호: 왜요? 다른 곳도 아닌 메이저리그 코치들인데, 매달려서라도 많이 배우셔야죠.

강호: 태호, 너는 메이저 오기 전에 한국에서 다 배우고 와.

태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강호: 그런 게 있어. 메이저리그는 그런 곳이니까.

태호: 좀 자세히 알려주세요.

강호: 그럼, 물론이지. 너는 알 자격이 있어. 그런데 내가 알려줄 게 없어.

태호: 네?

강호: 너는 메이저리그에 와서 겸손하지 마라.

태호: 네?

강호: 다음에 다시 전화하자.

뚜뚜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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