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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삭스의 4번 타자
매건 감독이 강호를 중심으로 한 시즌 계획을 수립하는 동안 경기는 이미 종료되어 있었다.
레드삭스는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강호의 맹활약 덕분에 숙적 양키스를 14대 5로 대파하며 개막전 승리를 손쉽게 가져오게 된 것이다.
강호는 이날 경기에서 5타석 모두를 홈런으로 장식하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화려한 데뷔전을 치룬 선수로 기록된다.
5타수 5홈런, 11타점 5득점을 기록하며 자신을 향한 우려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단 한 경기 만에 증명해 보인 것이다.
그로 인한 여론과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우선 MLB.COM의 메인페이지를 장식하는 기사를 통해 강호에게 쏟아지는 관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펜웨이파크에 한국산 외계인이 착륙하다. 레드삭스의 특급 루키 백강호, 사이클 홈런과 5연타석 홈런 동시 달성!]
강호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기사는 개막전 경기의 영상을 첨부하고 있었다.
메이저리그를 사랑하는 대다수의 야구팬들은 그 영상을 통해 '백강호'라는 이름을 깊게 각인하게 된다.
"사이클 홈런이라고? 그것도 5연타석 홈런으로?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대체 이런 타자가 어디서 갑자기 솟아난 거야? 작년에는 못 본 것 같은데."
"못 본 게 당연하지. 기사 내용을 자세히 좀 읽어보라고. 개막전 경기가 데뷔 경기였다잖아."
"말도 안 돼! 데뷔 경기에 사이클 홈런이라니!"
"이봐, 5연타석 홈런도 같이 달성했다잖아. 잊지 말라고."
"레드삭스가 올 시즌에는 대박을 터트렸어! 데뷔 경기에서 사이클 홈런이 가능한 슬러거라니."
수많은 메이저리그 야구팬들의 뇌리 속에 강호의 이름이 새겨지고 있었다.
아직은 개막전 한 경기일 뿐이지만, 누군가의 의견이 많은 팬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있었다.
"나는 백강호가 뭐하는 선수인지는 잘 몰랐지만, 어쨌든 그가 받은 9천만 달러가 껌 값처럼 느껴지는 경기였다는 건 분명해."
이것이 강호의 데뷔 경기를 지켜본 현지 팬들의 대표적인 의견이었다.
아직 레드삭스가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강호가 데뷔 경기에서 보여준 임팩트가 현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부정적인 여론은 여전히 존재했다.
"레드삭스의 9천만 달러는 홈런 다섯 개로 충분한가 보죠? 이제 개막전 한 경기인데 너무 설레발 아닌가?"
"신인의 행운일 뿐이라고. 두고 봐. 시즌이 중반만 진행돼도 우리는 백강호라는 선수의 이름을 기억조차 못하게 될 테니까."
"맞아. 다른 한국산 타자들처럼 시즌 후반이 되면 라인업에서 제외되겠지. 백강호도 별 수 없을 거라고."
강호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즌이 계속 진행되면서 그런 여론은 빠르게 자취를 감추어 간다.
개막전이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에도 계속되는 강호의 맹타는 식을 줄을 몰랐던 것이다.
따악!!
트로피카나 필드에 울려 퍼지는 타격음이 모든 이들의 시선을 외야로 이끌고 있었다.
템파베이 레이스의 캐스터인 제레미 캐시는 또 다시 터져 나온 강호의 홈런에 한숨짓는다.
"오늘 이 타자를 조심해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었는데 또 다시 홈런을 허용하고 마네요. 백강호, 멀티 홈런."
캐스터인 제레미 캐시의 풀죽은 목소리에 곁에 앉은 해설자가 설명을 덧붙인다.
해설자의 목소리 역시 기운이 없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경기가 아직 5회 초일 뿐인데 홈 팀인 템파베이 레이스가 3대 9로 크게 뒤지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템파베이 레이스는 오늘 경기에서 이 타자에게만 벌써 6타점을 허용하고 맙니다. 이쯤 되면 차라리 내일 경기를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시리즈 스윕 만은 막아야하지 않겠습니까?"
해설자 케빈 맥카시의 대답은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강호의 멀티 홈런으로 레드삭스에게 완전히 넘어가 버린 분위기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해설자로서의 본분은 잊지 않은 채 강호의 이번 홈런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덧붙인다.
"레드삭스의 백강호, 지금의 쓰리런이 시즌 30호 째 홈런입니다. 축하할 일이네요. 상당히 빠른 페이스에요."
해설자인 맥카시는 강호의 시즌 30호 홈런을 축하하면서도 목소리에는 별다른 성의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응원하는 홈팀이 크게 지고 있는 까닭이었다.
곁에 앉은 캐스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직 6월도 다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30-30을 달성한 백강호입니다. 이렇게 되면 백강호 선수가 나머지 시즌을 놀고먹어도 신인왕은 확정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레드삭스에게는 축하할 일이로군요."
캐스터, 제레미 캐시는 그렇게 말을 덧붙이다 별안간 울컥하는 기분이 든다.
왜 자신의 홈팀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에서 상대 팀 타자를 칭찬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 제레미 캐시의 노여움은 단지 오늘 경기만을 놓고 드는 감정은 아니었다.
시즌 출발부터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꼴등 자리를 이어오고 있는 템파베이의 성적이 지금의 분노를 이끌어낸 것이리라.
"망할(Damn it)! 왜 우리가 원정 팀 타자의 홈런 기록을 축하해야하는 걸까요?"
방송에 부적합한 욕설을 뱉어내는 캐스터 제레미 캐시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에 곁에 앉은 맥카시가 재빠르게 제레미의 마이크를 손으로 가린다.
그러면서 마이크에는 담기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다.
"뭐하는 거예요? 제레미! 지금 방송 중이라고요!"
"뭔 상관이야? 어차피 템파베이 팬들은 이 방송을 듣지도 않을 건데. 13연패 중인 팀의 라디오 방송을 누가 듣기나 하겠어?"
마이크를 가리고 탓해오는 해설자 맥카시의 물음에 캐스터인 제레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되묻고 있었다.
올해 나이 칠십을 넘긴 베테랑 캐스터는 더 이상 뵈는 게 없었다.
하지만 이제 갓 마흔을 넘긴 맥카시로서는 캐스터와 함께 해고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팬들은 안 듣겠지만, 구단주는 듣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럼 이 참에 구단주한테 물어봐야겠는데? 왜 우리는 백강호를 영입하지 않은 거냐고!"
캐스터인 제레미의 발언은 강호를 영입하지 않은 구단주에 대한 질타로 이어지고 있었다.
템파베이 역시 작년에 진행된 강호의 영입 전에 입찰을 했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영입을 철회한 구단주의 결정이 제레미의 머릿속에 가시처럼 틀어박혀 있는 것이다.
제레미 캐스터의 그런 부러움은 단지 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레드삭스와 템파베이의 시리즈가 레드삭스의 스윕 승으로 끝이 나고, 강호를 4번 타자로 기용한 레드삭스의 고공행진이 이어질수록 모든 구단 관계자들이 강호를 9천만 달러라는 합리적인 가격에 영입한 레드삭스의 결정을 진심으로 부러워하게 된 것이다.
그런 분위기는 강호의 시즌 홈런 개수가 40개를 돌파했을 때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었다.
"40홈런이라니! 이 홈런 개수가 시즌이 절반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더 놀라운 일은 백강호가 타율 4할을 유지하면서도 40개의 홈런을 쳤다는 거죠. 이건 사람의 기록이 아니에요. 그는 분명 외계인이 맞을 거라고요!"
"외계인이든 뭐든 그를 우리 구단에 영입해야 해! 듣자하니 레드삭스와의 계약 옵션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던데. 데뷔 시즌 신인왕과 홈런왕을 모두 달성하면 2년 후 이적이 가능하다면서?"
레드삭스를 제외한 모든 구단들이 강호를 주시하고 있었다.
특히나 레드삭스와 강호와의 계약 내용에 대해 알고 있는 일부 구단들은 벌써부터 그를 영입하기 위한 캐시를 준비하고 있기까지 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일부 스포츠 매체들은 강호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킬 기사들을 양산해 나간다.
[레드삭스의 슈퍼루키, 백강호. 데뷔 시즌 50-50에 도전하다!]
[한국산 외계인, 백강호. 왜 우리는 그를 막을 수 없는가?]
[레드삭스의 백강호, 시즌 타율 0.432로 팀의 레전드인 테드 윌리엄스를 넘보다.]
[다시 4할 타자의 시대가 열리는가?]
강호의 이름을 타이틀로 한 기사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것은 7월 13일로 예정된 올스타전에 강호의 이름이 아메리칸 리그 유격수 자리에 올라감으로써 더욱 증폭되어만 간다.
더불어 강호는 아메리칸 리그 뿐만 아니라 올 시즌 메이저리그 홈런 선두를 달리며 홈런왕 더비에도 초청받는 영예를 얻을 수 있었다.
올해가 강호의 데뷔 시즌인 것을 생각했을 때 그야말로 광속 행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올스타전 현장을 찾은 모든 야구팬들과 전문가들의 시선이 강호에게 모여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에 관중들의 입에서는 연신 '오오~'하는 탄성이 흘러나온다.
아무리 홈런왕 더비라고는 하지만, 네 번 역속이나 터져 나온 대형 홈런에 올스타전 현장을 찾은 모든 이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TV로 볼 때도 대단하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이렇게 직접 보니 차원이 다른 수준인데?"
누군가의 탄성 섞인 말에 주변에 자리한 사람들이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은 타석에 자리한 강호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강호는 자신에게 쏠린 시선에 부담스러울 법도 하건만,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으로 또 다시 큼지막한 타구를 담장을 향해 날려 보낸다.
따악!!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강호의 홈런은 연속 다섯 번으로 늘어나 있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팬들의 '오오~'하는 감탄사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파워 하나는 진짜 제대로 타고 났는데? 지금 장외로 넘어가는 거 봤어?"
"어디 파워뿐이겠어? 아무리 배팅 볼이라지만, 다섯 개를 연속으로 넘긴 거잖아?"
"파워도 파워지만, 컨택 능력이 상상 이상이야! 4할 2푼이 넘는 시즌 타율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라고."
강호의 홈런 행진을 바라보는 야구팬들은 절로 나오는 감탄사를 멈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시즌 40홈런 달성이나 40-40클럽에 가입한 강호의 활약상을 미디어로 전해 들었을 때만 해도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홈런 더비에 참가한 강호가 연달아 쏘아 올리는 대형 홈런이 그에 대한 인식을 뒤바꾸어 간다.
인식의 변화는 단지 팬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아메리칸 리그에 저런 괴물이 있었다는 거야?"
알렉스 터너의 물음은 순수한 호기심과 감탄을 담고 있었다.
그는 LA다저스 소속으로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를 대표하는 슬러거 중 한명이었다.
터너의 물음에 답한 사람은 시즌동안 레드삭스와 자주 격돌했던 라이벌 팀 양키스의 타일러 기븐스였다.
기븐스는 양키스의 1루수겸, 4번 타자를 도맡고 있는 아메리칸 리그의 대표적인 슬러거라 할 수 있었다.
올 시즌 3할 5푼 7리의 타율에 26개의 홈런과 52볼넷, 74타점을 쓸어 담고 있는 그는 올 시즌 전성기에 돌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강타자였다.
그런 기븐스의 올 시즌을 가리켜 'A타입의 슬러거로 성장했다'라는 전문가들의 평이 있었지만, 4할 2푼 7리의 타율에 45홈런을 때려내고 있는 강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강호는 이미 전문가들 사이에서 A타입을 뛰어 넘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기븐스는 강호의 올 시즌 기록을 떠올려보며 터너의 물음에 답한다.
"있었던 건 아니지. 갑자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뚝하고 떨어진 거지."
"한국? 그게 어디 있는 나라야? 안드로메다에 있는 외계인 국가인 거야?"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니까. 백의 한국 기록을 찾아보니까 올 시즌 그의 기록이 아예 이해불가인 건 아니야."
기븐스와 터너의 대화를 통해 다른 메이저리거들이 강호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강호는 괴물들만 존재한다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특별한 선수로 인식되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포지션이 유격수라며? 저런 선수가 우리 내셔널 리그에 없다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야."
터너는 타석에 선 강호가 연달아 대형 홈런을 날려 보내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곁에 있던 기븐스의 말이 그의 표정을 굳게 만든다.
"지금은 그렇지만, 인터리그 때는 생각이 달라질 걸? 아직 다저스는 레드삭스와 맞붙은 적이 없지? 그 때 제대로 한 번 느껴봐. 백강호가 얼마나 골치 아픈 타자인지를. 그는 심지어 리키 핸더슨의 전성기 시절보다 발도 빠르다고!"
강호와 직접 맞붙어 본 기븐스의 말에 터너의 입이 다물어진다.
그 후에도 기븐스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장담하건데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우승은 백강호를 보유한 레드삭스의 몫이 될 거야. 다저스가 올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을 목표로 한다면 마지막 순간에 결국 그와의 혹독한 승부를 피할 수 없을 걸?"
기븐스의 말은 확신을 담고 있었다.
그의 어조에서 이미 양키스가 지구 우승에서 멀어졌다는 사실 또한 추가로 알 수 있었다.
동부 지구 3위까지 쳐진 양키스가 승률 6할을 넘긴 레드삭스를 따라잡을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고 보는 것이다.
과연 기븐스의 그런 예언대로 올스타전 이후 시작된 후반기 출발과 함께 레드삭스의 고공행진은 계속된다.
언론은 동부 지구에서 독주를 벌여나가는 레드삭스의 행보에 지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왜냐하면 올 시즌 가장 유력한 월드시리즈 진출 팀으로 레드삭스가 거론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드삭스의 고공행진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레드삭스를 분석하다 못해 근본까지 파고드는 각종 기사들이 연이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4할 2푼 3리의 타율과 50홈런-50도루를 달성하며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나가는 팀의 4번 타자, 강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