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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스의 천적이 되다
7회 말, 양키스의 투수 교체가 단행되고, 강호가 타석에서 바뀐 투수의 연습 투구를 지켜보는 동안 시선은 잠시 관중석으로 옮겨 간다.
개막전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강호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우려가 가득했었다.
그러던 것이 단 세 타석 만에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도 홈런은 아니겠지?"
홈팬들이 자리한 관중석에서 던져진 누군가의 물음에 많은 대답들이 들려온다.
"나는 왠지 홈런일 것 같아. 백강호가 1회에 때린 장외 홈런이나 3회, 5회에 때린 대형 홈런을 떠올려 봐. 투수가 화이트에서 불펜 투수로 바뀌었으니까 홈런 확률이 더 높아진 게 아니겠어?"
"그건 모르는 거야. 백강호가 유독 강속구 투수에게만 강한 것일 수도 있잖아?"
"지금 네가 하는 말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생각해보라고. 100마일의 강속구를 장외로 날려 보내는 타자가 95마일짜리 공에 삼진을 당하겠어?"
"듣고 보니까 이번 타석에도 왠지 홈런이 가능할 것 같은데?"
레드삭스 팬들은 강호의 이번 타석까지 그의 홈런 기록이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 모습을 통해 강호의 구상이 성공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홈팬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강호는 세 번의 타석 모두를 홈런 아이템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강호의 그런 결정은 홈팬들의 우려를 씻어내는 것은 물론, 상대 팀인 양키스 팬들의 시선마저 바꿔 놓게 된다.
"불안한데... 차라리 화이트로 가는 게 낫지 않나?"
"아냐. 화이트가 백강호게만 약한 것일 수도 있어. 테세이라의 작년 기록이 좋으니까 백강호를 막아낼 수 있을 거야."
"나는 왠지 불안해. 백강호의 저 눈 좀 보라고. 이번 타석에도 일을 터뜨릴 것 같단 말이야."
"닥쳐! 부정타게시리. 4연타석 홈런 기록이 어디 흔한 건 줄 알아? 메이저리그 역사 전부를 뒤져봐도 스무 명도 안 되는 기록이라고!"
"이봐, 그런 기록을 지금 레드삭스의 신인 타자가 갱신하기 직전인 거잖아? 전혀 위안되는 얘기는 아니니까 너나 입 다물고 있으라고."
양키스의 원정 팬들은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데뷔 경기 3연타석 홈런이라는 말도 안 되는 출발로 자신의 메이저리그 야구 커리어를 시작한 강호가 본인들이 응원하는 양키스를 상대로 또 다른 기록을 수립할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만약 강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독보적인 경력을 가진 선수였다면 오히려 지금처럼 우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경험이 전무한 신인 타자에게 개막전부터 대기록을 헌납해 버린다면 올 시즌 우리 양키스의 리그 우승은 물 건너 가버리는 거라고."
양키스의 팬들은 강호의 기록 달성이 양키스의 불운으로 연결되지는 않을지 우려하고 있었다.
강호는 어느새 자신을 향한 우려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펜웨이파크를 가득 채운 레드삭스 팬들과 라이벌인 양키스 팬들에게 선사하는 임팩트 있는 등장.
메이저리그를 지탱하는 거대 세력 중 수위를 다투는 두 팀에게 충격을 선사하며 등장하는 구상은 이미 강호가 새로운 프리마켓 시스템을 적용받는 순간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다.
하지만 강호의 그런 구상을 알지 못하는 중계석에서는 지금의 승부를 예측해보기에 바쁜 모습이다.
"양키스가 백강호 타자의 타석에서 투수를 교체합니다. 이런 투수 교체를 어떻게 보십니까?
캐스터인 디킨스는 강호의 타석을 앞두고 투수를 교체하는 양키스의 결정에 묘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팀의 에이스인 화이트를 내리고, 작년 시즌 양키스의 불펜에서 가장 강력한 모습을 보였던 테세이라의 등판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여긴 것이다.
그의 물음에 답하는 개리 스캇의 해설이 이어진다.
"양키스가 그만큼 백강호 타자의 오늘 타격감에 경계심을 가지게 됐다는 거죠. 투수를 교체해줌으로써 타격감에 물이 오른 백강호 타자의 흐름을 끊어주겠다는 건데, 백강호 선수가 오늘이 메이저리그 데뷔 경기인 것을 고려한다면 양키스의 결정이 적절해 보입니다."
개리 스캇의 말이었다.
그는 비록 라이벌 팀이긴 하지만, 강호의 타석에서 투수를 교체하는 양키스의 결정을 칭찬하고 있었다.
언뜻 보면 양키스의 결정이 옳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어진 그의 말에서 그런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에 반해 백강호 선수의 데뷔 경기 3연타석 홈런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없었던 기록입니다. 여기에 백강호 타자가 하나의 홈런만 더 추가하게 된다면 역사상 유례없는 데뷔전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하네요."
개리 스캇은 양키스를 칭찬하는 듯 말을 시작한 후 강호의 기록에 대해 거론하고 있었다.
해설자로서의 연륜이 깊은 스캇이었기에 자신의 팀에 속한 선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캐스터인 월터 디킨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직은 백강호 타자의 타격 모습을 세 타석 지켜본 것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만 봐도 그를 영입한 제프 코너 단장의 결정이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디킨스의 말을 통해 두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개리 스캇과 디킨스는 결국 강호를 영입한 레드삭스의 선택이 옳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에 강호의 추가 홈런이 더해지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람을 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바람이 곧 현실이 되고 있었다.
따악!!
다시금 펜웨이파크를 가득 채우는 타격음에 디킨스와 스캇의 표정이 급변한다.
바뀐 투수인 테세이라의 초구부터 터져 나온 호쾌한 타격음에 자연히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아! 지금 펜웨이파크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 홈런입니다! 테세이라의 초구를 타격한 백강호의 타구가 또 다시 그린몬스터를 넘깁니다! 백강호가 자신의 메이저리그 데뷔 4연타석 모두를 홈런으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어요!"
토해내듯 말을 뱉어낸 디킨스의 외침이 모든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바뀐 투수인 후안 테세이라의 초구를 타격한 강호의 타구가 펜웨이파크의 좌측 담장을 또 다시 넘겨버린 것이다.
강호의 4연타석 홈런을 조심스레 예견했던 개리 스캇은 팔뚝에 닭살이 돋아나는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미스터 디킨스! 제 팔뚝에 닭살이 돋은 것이 보이십니까? 믿을 수가 없군요! 데뷔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레전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백강호 입니다!"
개리 스캇은 본인의 팔뚝을 문질러 보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모습이다.
강호의 4연타석 홈런을 바라기는 했지만, 그가 진짜로 4연타석 홈런을 실현시킬 줄은 몰랐던 스캇이었다.
그렇기에 4연타석 홈런 기록을 가진 선수들 명단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지만, 그는 단 한 선수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당장 뇌리에 떠오르는 선수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며, 스캇은 지금 상황의 묘한 아이러니를 느낀다.
"백강호 타자가 4연타석 홈런으로 루 게릭과 어깨를 나란히 하네요! 이건 아주 멋진 일입니다!"
개리 스캇이 덧붙인 말이었다.
그가 4연타석 홈런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떠올린 인물은 루 게릭이었던 것이다.
루 게릭은 근육위축가쪽경화증, 즉 루게릭병의 주인공이기도 한 인물로 4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대표적인 선수로 거론되곤 한다.
개리 스캇이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루게릭이 다름 아닌 양키스의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슈퍼 루키 백강호가 양키스 투수를 상대로 루게릭과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기가 막힌 일이에요!"
스캇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오늘 경기가 있기 전까지 개막전 상대가 뉴욕 양키스라는 사실에 큰 우려를 표하던 스캇이었다.
그런데 강호의 4연타석 홈런으로 그런 우려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를 찬양하는 말로 해설의 말을 마무리하는 모습이었다.
"할 말이 없군요. 오늘 애덤 잭슨 투수는 백강호 선수에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오늘 경기에서 레드삭스가 올린 7점 모두 백강호의 홈런으로 만들어진 점수니까 말이에요. 만약 오늘 경기에서 백강호 선수가 없었다면 애덤 잭슨은 패전 투수가 될 수도 있었던 거예요."
개리 스캇은 강호의 4연타석 홈런을 칭찬하며 레드삭스의 선발 투수인 애덤 잭슨이 강호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과연 그의 발언대로 1회 초 수비 때까지만 해도 강호를 무시하던 잭슨 투수는 강호가 4연타석 홈런을 치고 덕아웃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앞쪽으로 나와 그를 환영해주고 있었다.
"헤이~ 백! 홈런 기록 축하해."
강호를 대하는 애덤 잭슨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1회 초 수비 상황에서 강호가 연달아 세 개의 호수비를 펼쳤을 때만 해도 그는 강호에게 감사의 제스쳐조차 취하지 않던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은 강호가 1회 말 선두 타자로 나서 홈런을 때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마치 10년 지기 절친처럼 살갑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잭슨의 그런 태도 변화에 당황할 만도 하지만 강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잭슨과의 하이파이브를 받아들인다.
"고맙다."
강호는 잭슨과 손뼉을 마주치며 작게나마 웃어 보인다.
오늘 경기에서 잭슨은 이미 7이닝을 소화한 상태였다.
7이닝동안 양키스의 강타선에게 2실점만을 허용하며 호투 했으니 에이스로서의 역할은 다한 것이다.
그럼에도 덕아웃에 앉아 있던 잭슨의 표정은 좋지 못했는데 그는 특정 누군가에게 적개심을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강호는 그 당사자가 처음에는 자신인 줄 알았다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잭슨이 노려보는 선수는 자신이 아닌 상대 팀 마운드에 있었던 것이다.
'스튜어트 화이트를 싫어하는 모양이야. 하긴, 잭슨의 상황을 생각했을 때 충분히 싫을 만도 하지.'
강호는 우연히 알게 된 애덤 잭슨 투수의 사정을 떠올려 본다.
잭슨은 재작년 시즌 4년 총액 7천만 달러의 몸값으로 레드삭스에 영입된 투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잭슨의 기량은 에이스 급은 아니었기에 3선발로서의 대우를 받고, 레드삭스에 영입되었던 것이다.
그런 잭슨이 작년 시즌 팀의 에이스로 날아오를 것이라는 사실은 대다수의 전문가들도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20승 6패의 성적에 방어율 2.57로 맹활약한 잭슨은 아메리칸 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한 양키스의 스튜어트 화이트에 이어 사이영상 3위에 올라서는 기염을 토해낸다.
그렇기에 몸값 총액 7천만 달러의 비교적 저렴한 애덤 잭슨이 레드삭스라는 명문 팀의 에이스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몸값 비싼 선수에 대한 자격지심.'
잭슨 투수를 바라보는 강호의 최종 결론이었다.
처음에는 잭슨 투수가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가 인종 차별적인 이유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본인보다 몸값이 비싼 선수에 대한 자격지심이 심한 선수였던 것이다.
'잭슨은 내가 받은 9천만 달러의 몸값이 적절한 규모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겠지.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투수로 네 시즌을 활약한 잭슨에게 나는 그저 루키로만 보였을 테니까.'
잭슨이 화이트에게 드러내는 적개심을 통해 강호 자신을 향하던 잭슨의 노여움이 이해되고 있었다.
우습게도 자신을 향했던 잭슨의 노여움은 이제 묘한 동질감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는 잭슨의 표정에서 그의 진심이 느껴지는 듯하다.
'백강호, 당신도 나처럼 제대로 된 몸값을 받지 못하고 이 팀에 합류한 거로군요. 데뷔 경기에서 4연타석 홈런을 날리는 당신에게 9천만 달러는 지나치게 적어보이네요. 우리 같은 부류끼리 한 번 잘해봅시다!'
표정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잭슨의 감정은 동질감이었다.
더불어서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화이트 투수에게 연달아 네 번의 홈런을 날려버린 강호에게 진한 호감을 보내오고 있었다.
강호는 그런 잭슨에게 피식 웃어 보이며 자신의 자리로 걸음을 옮긴다.
그 때 강호는 듣지 못했지만, 감독석 근처에서는 그에 대한 이야기가 분주히 오고가고 있었다.
"대단하네요. 우리 팀 스카우터들이 올해는 대박을 터뜨린 것 같습니다."
제임스 부루어 타격 코치의 목소리였다.
그의 말에 곁에 있던 매건 감독이 잠시의 침묵 끝에 답하고 있었다.
"자네 말이 맞는 것 같군. 좀 전에 당겨 친 홈런은 완벽했어. 4연타석 홈런이라는 기록도 대단한 일이고."
매건 감독은 어느새 강호를 향해 우호적인 감정을 내보이고 있었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은 강호에게 호감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감독의 그런 태도 변화에 브루어 코치가 기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역시 실력행사에는 장사가 없구나. 그나저나 데뷔 경기에서 4연타석 홈런이라니. 올 시즌 우리 레드삭스가 제대로 된 로또를 터뜨렸어!'
브루어 코치는 개막전과 함께 대폭발한 강호의 타격에 만족감을 드러낸다.
작년 시즌 이렇다 할 4번 타자가 없어 고심했던 레드삭스에 제대로 된 4번 타자 재목이 들어온 것 같아 흐뭇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브루어 코치의 그런 감정은 잠시 후 8회 말 공격이 되었을 때 경악으로 뒤바뀌고 있었다.
8회 말이 되었을 때 이 타자 앞에 만루 상황이 놓이게 되자 레드삭스 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이름을 외치게 된다.
"백! 백! 백!"
그것은 개막전과는 어울리지 않는 뜨거운 열정이었고, 레드삭스 팬들의 열정은 고스란히 타석에 선 강호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강호는 그런 팬들의 함성 속에 자이언츠 시절, 4번 타자로서의 향수가 되살아남을 느낀다.
'오늘의 경기는 단지 양키스 팬들과 레드삭스 팬들만이 보는 경기는 아닐 거야. 한국에서 나를 응원하고 있을 자이언츠 팬들, 그리고 이제는 나를 응원할 수 있게 된 모든 한국 야구팬들을 위해서라도.'
8회 말, 2사 만루의 찬스 상황에서 타석에 선 강호는 온 몸 가득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1회의 첫 타석부터 타격 아이템을 사용해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애쓰긴 했지만, 오늘 경기의 마지막 타석에서 행운처럼 찾아온 만루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기회를 어중간한 결과로 날려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그렇게 거창할 것도 없이 나 자신을 위해. 이번 타석의 결과는 단 한가지여만 해!'
강호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타격에 앞서 자신에게 아이템 사용 여부를 묻는 시스템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그 후 상대 투수의 초구가 던져지고, 스트라이크 존에서 지나치게 빠져나가는 그 공에도 강호의 배트는 망설임 없이 휘둘러진다.
그리고 그 스윙으로 펜웨이파크는 홈팬들의 엄청난 함성으로 가득 차오르게 된다.
따악!!
좌중을 압도하는 타격음이 그라운드를 가득 채우고, 곧 펜웨이파크를 뒤흔드는 함성 속에 모든 주자들이 홈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강호 역시 들고 있던 배트를 내려놓으며 1루를 돌아 홈을 향해 다이아몬드를 돌기 시작한다.
중계석에서는 이 역사적인 장면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여러분, 지금 이곳 펜웨이파크에 한국산 핵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믿어지십니까? 한국에서 온 외계인 타자가 데뷔 경기 다섯 타석을 통해서 5연타석 홈런과 더불어 사이클링 홈런을 만들어 냅니다. 여러분! 이 기록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기록입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디킨스의 외침이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의 곁에 선 개리 스캇 역시 메이저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지금의 상황을 이 짧은 한 마디로 반복하는 모습이었다.
"이건 새로운 역사입니다!"
개리 스캇은 더 이상의 말은 덧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데뷔 경기 5연타석 홈런과 더불어 기록된 강호의 사이클 홈런은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메이저리그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기록인 것이다.
강호는 데뷔 경기를 통해 그동안 메이저리그 역사상 없었던 두 가지 기록 모두를 완성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강호가 앞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써나갈 신화의 시작점에 불과했다.
강호를 바라보는 매건 감독의 달라진 시선을 통해 강호를 중심으로 재편될 메이저리그의 앞날을 예상해 보게 된다.
'어쩌면 그를 통해서 우리 팀은 또 한 번의 우승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매건 감독은 순간 자신의 머리를 가득 채우는 생각에 전율하게 된다.
1920년 전설적인 타자인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서 트레이드 시킨 후, 무려 86년간 계속되었던 '밤비노의 저주'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아주 유명한 일화였다.
2004년 카디널스를 꺾고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함으로써 레드삭스를 괴롭혔던 밤비노의 저주는 사라지게 되었지만, 그후 레드삭스가 경험한 월드 시리즈 우승은 2007년과 2013년 우승이 전부였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문 구단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레드삭스가 100년 동안 경험한 월드 시리즈 우승이 겨우 네 번에 불과했던 것이다.
매건 감독은 개막전부터 신기록을 달성하며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강호의 등장이 그런 레드삭스의 역사를 바꾸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좋아, 백강호를 다음 경기부터 4번 타자로 기용하겠어. 과연 그가 레드삭스의 명운을 결정지을 수 있는 전설이 될지, 아니면 오늘의 신기록이 신인의 행운에 그칠지. 다음 경기부터 판가름해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