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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지
비행기에 몸을 실은 강호의 최종 목적지는 보스턴이었다.
하지만 인천에서 보스턴으로 곧장 날아가는 직항편이 없는 관계로 그를 태운 비행기는 시카고를 경유해야만 했다.
총 15시간이 넘게 걸리는 일정에 지루할 법도 했지만, 강호는 지루한 기분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창가로 보이는 태평양 바다를 내려다보기도 하고, 곁에 앉은 일행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긴 비행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비행기가 국내 대형 운항사의 국적기이다보니 강호를 알아보는 승객들과 승무원들이 많았지만, 크게 소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강호를 알아본 승객들이 눈인사를 건네 온다거나 일부 승무원이 과한 친절을 베풀어 오기도 했지만, 그 모든 관심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강호였다.
곁에 앉은 일행이 그런 강호의 모습을 낯설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완전 스타네."
약간은 퉁명스러움을 담은 친근한 말투였다.
아직은 앳되게 느껴지는 여자의 목소리는 보통의 남매 사이가 그러하듯 상당한 애증과 불친절함을 담고 있었다.
강호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말투로 대답한다.
"이제 알았어? 나 스타인 거."
"야구장 안에서나 유명한 줄 알았지, 시카고 가는 비행기 안에서까지 오빠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 누가 알았겠어?"
진주의 말투는 퉁명스러웠지만, 그 속에는 진심으로 놀란 마음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친 오빠를 다시 보게 되는 장면이기도 했다.
강호에게 항상 틱틱거리기 일수였던 진주의 표정이 바뀌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강호를 바라보는 진주의 얼굴에 담긴 일말의 감정은 존경이었다.
"뭘 그렇게 봐?"
강호는 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진주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인지 괜한 말로 그녀에게 트집을 잡게 된다.
"네 나이에 미국 유학이라니, 가당키나 한 일이야? 너도 이제 20대 후반이다."
진주를 타박하는 강호의 말투는 팀 동료였던 문표를 닮아 있었다.
매사에 진지하기만 한 강호이지만, 간혹 장난스러운 말이나 농담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문표의 말투가 튀어나오고는 했다.
문표가 덕아웃에서 장난을 가장 많이 걸던 사람이 강호였던 까닭에 어느새 그의 너스레와 장난스런 말투가 옮겨와 버린 것이다.
과거 어두웠던 강호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긍정적인 변화라 할 수 있었다.
"아직 나 20대 중반이거든!"
진주는 오빠의 타박에도 크게 기죽지 않는 모습으로 응수하고 있었다.
동생의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도 있는 타박이었지만, 진주는 크게 서운하지 않았다.
몇 년 간의 호주 생활을 통해 강단이 생긴 진주에게는 그저 오라비의 따뜻한 걱정같이 느껴질 뿐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진다.
"중반이면 괜찮다는 소리야? 미국 대학생들 나이 생각했을 때 걔네들 기준으로는 너는 아마 할머니일 거야."
"남 얘기 하시네! 파릇파릇한 메이저리그 루키들 사이에서 스물아홉 살의 동양계 루키가 나한테 할 소리야?"
"응, 할 소리야. 나는 미국에 돈 벌러 가는 거고, 너는 돈 쓰러 가는 거잖아."
"치사하게 학생한테 돈 이야기를..."
"누가 그 나이에 학생 하라고 했어?"
남매의 대화는 다소 유치한 내용을 담고 있었고, 진주는 오빠의 마지막 말에 입을 굳게 다문다.
토라졌다거나 삐진 것은 아니었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쳇, 강호 오빠는 원래 말싸움 같은 거 잘 못했었는데, 언제 이렇게 말을 잘하게 된 거야?'
진주는 자신을 몰아붙일 정도로 입담이 좋아진 오빠의 변화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과거에는 남매간의 설전이 벌어졌을 때 승리하던 쪽은 항상 진주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지나 역전되어 버린 것 같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아, 지나간 세월이여~ 순수하고 바보스러웠던 내 오빠를 돌려다오.'
진주는 강호가 들었으면 절대로 납득할 수 없는 생각을 떠올리며 과거를 회상한다.
강호와 자신의 옛 기억들을 떠올리다보니 문득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난다.
'그 때는 참 많이 힘들었는데. 나뿐만 아니라 강호 오빠도, 강수 오빠도. 그리고 엄마도....'
진주는 스쳐가는 기억 속에 아련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 시절, 그 때를 떠올려본다면 다시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힘겨웠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때의 기억이 아니라면 엄마와 함께 했던 추억은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그 것이 진주가 잊혀져가는 과거를 억지로 떠올리려는 이유였다.
"야, 너 지금 내 얘기 안 듣고 있지? 남의 말 안 듣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네."
문득 들려오는 오빠의 목소리에 다시금 강호의 얼굴을 바라본다.
진주의 속내를 알 리 없는 오빠는 여전히 장난스러운 말로 그녀를 타박하고 있었다.
그러다 동생의 표정이 좀 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는지 강호가 입을 닫고 있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르고.
진주는 오빠를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괜히 앞좌석을 바라본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먼 곳으로 떠나는 오빠에게 응원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괜한 쑥쓰러움에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진주는 한참을 망설인 후에야 눈을 질끈 감은 채 오빠를 향해 입을 열 수 있었다.
"오빠."
한참 만에 입을 연 동생의 부름에 강호 역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분위기가 어색하게 바뀌는 게 싫어 괜한 말로 동생의 말을 막으려 한다.
"왜? 딴지 걸 거면 잠이나 자라."
본심과는 다르게 튀어나온 자신의 말에 강호는 스스로의 무뚝뚝함을 탓하며 입을 다문다.
진심은 그게 아니었는데 중요한 순간에 발휘된 경상도 남자의 무뚝뚝한 기질을 스스로 나무라게 된다.
하지만 진주는 그런 강호의 반응에도 오히려 작게 미소 짓고 있었다.
강호의 무뚝뚝한 말을 통해 과거의 추억들이 되살아나 지금과 연결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엄마는 다시 볼 수 없어도 엄마를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오빠들이 있으니까, 그걸로 층분한 거야.'
진주는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슬픔 하나가 사라짐을 느낀다.
그것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고 있었다.
본인이 의도한 것은 아닐 테지만, 자신감을 심어준 오빠를 향해 진주는 자신이 가지게 된 밝은 마음을 꺼내 보인다.
"잘 하고 와. 오빠."
강호를 향한 진주의 응원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진심을 전달하기에는 충분한 감정을 담고 있었기에 그것을 전달받은 강호 역시 작게 미소 지을 수 있었다.
"그래, 너도 공부 잘하고."
진주와 마찬가지로 짧게 대답한 강호의 목소리에는 깊은 온정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강호와는 다르게 진주는 짧은 대답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메이저리거가 된 오빠의 바빠질 일정을 생각한다면, 두 사람 다 미국에 머문다고는 하지만 오빠를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주는 옛날부터 무뚝뚝했던 오빠의 응원을 조금 더 듣고 싶어진다.
"해줄 얘기가 그것밖에 없어? 조금 더 살가운 말 한마디 해주면 안 돼?"
장난스럽게 따져 묻는 진주의 물음에 강호는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해주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마음에도 없이 괜스레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없어, 나한테 뭘 기대하는 거야?"
툭하며 내뱉은 강호의 말에 진주는 '그래, 그게 차라리 오빠답네'라고 말하며 웃어 보인다.
그녀의 쌈박한 반격을 기대했건만, 왠지 맥 빠지는 진주의 반응에 강호는 생각이 깊어진다.
'나도 나지만, 진주도 낯선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을 해나가려면 힘든 일이 많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은 당찬 성격을 가지게 된 동생의 과거를 떠올려 본다.
어렸을 적 진주는 유난히 눈물이 많고, 강호 자신을 많이 따랐었다.
그녀에게 사춘기가 찾아와 머리가 굵어지기 전까지는 잔소리가 심한 엄마나 강수를 피해 항상 본인 편을 들어주는 강호를 찾곤 했던 것이다.
강호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살며시 미소 짓는다.
'그래, 그런 시절도 있었구나.'
문득 강호는 어린 시절 자신의 감성을 돌이켜 본다.
그리고 그 때 철없던 동생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지금도 따뜻한 당부와 응원의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언제고 형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마법과도 같은 그 말을 동생에게 전해주려 한다.
강호 자신이 힘들 때마다 힘이 되어주었던 그 말은 앞으로 진주의 삶에도 큰 힘이 되어 주리라.
"서두르지 말고, 아프지 말고."
"뭐?"
진주는 갑작스러운 오빠의 목소리에 되묻게 된다.
강호는 자신을 바라보며 되묻는 진주의 머리 위에 살며시 손을 올려놓는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와 주었던 마법과도 같은 말을 다시금 입 밖으로 꺼낸다.
"서두르지 말고, 아프지 말고. 항상 내가 응원할 테니까."
오빠의 나직한 목소리에 진주는 순간 가슴에서 무언가가 울컥하는 느낌이 든다.
그것은 어린 시절, 진주 자신이 울음을 터뜨릴 때마다 위로해주던 오빠의 따뜻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며 머리를 쓰다듬던 오빠의 손길이었다.
그 시절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던 오빠의 손길은 너무나도 따뜻했기에 그 온기를 다시 느끼게 된 지금 이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기 힘들었다.
진주는 어느새 자신의 뺨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들키지 않기 위해 창가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는 먹먹해진 가슴으로 인해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내어본다.
"....응."
억지로 짜낸 진주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강호는 그런 진주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진심이 온전히 전달되었음을, 형이 자신에게 전해준 마법과도 같은 문장이 동생에게도 전해졌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남매는 오랫동안 서로가 잊고 있던 소중한 추억과 감정을 공유하며 태평양을 함께 건넌다.
그리고 시간은 지나 두 사람을 태운 비행기는 시카고에 도착하게 되고, 이미 작별의 인사를 끝낸 남매는 웃으면서 각자의 길을 향해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강호는 동생의 앞날에 축복이 깃들기를 기원하며 보스턴 행 비행기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잠시 후 강호의 발걸음은 자신의 새로운 개척지가 될 보스턴에 도착해 있었고, 늘 그렇듯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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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레드삭스(Boston Red Sox).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 연고를 둔 역사 깊은 구단으로 미국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시작부터 함께 한 대표적인 메이저리그 구단이라 말할 수 있었다.
전설적인 투수 사이 영과 전설의 타자 베이브 루수가 머물렀던 곳. 강호가 새롭게 야구 인생을 시작할 곳은 바로 그곳, 보스턴 레드삭스인 것이다.
레드삭스는 1901년 아메리칸 리그의 원년 창단 구단답게 메이저리그 구단 중 가장 오래된 구장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한 구단이었다.
보스턴의 홈구장인 펀웨이 파크(Fenway park)는 개장한지 이미 100년을 훌쩍 넘겨 메이저리그 야구 역사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보스턴에 입단하게 된 강호는 지금 펀웨이 파크에 머물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레드삭스에 소속된 모든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지금 2024시즌 스프링캠프를 위해 젯블루 파크(jetBlue Park)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에 모두의 시선이 한 선수에게로 몰려든다.
모두의 시선 속에 젯블루 파크의 담장을 넘기는 타구를 날려 보낸 선수는 다름 아닌 강호였다.
강호는 작년에 비해 하루 일찍 소집된 레드삭스의 스프링캠프 일정에 참여한 상태였고, 거액의 몸값을 받고 입단한 그를 관찰하기 위해 많은 시선들이 강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 중 가장 먼저 감상평을 입 밖으로 꺼낸 사람은 타격 코치인 제임스 브루어였다.
"역시 힘 하나는 제대로인데요? 타격 포인트도 좋고요. 저 정도 슬러거 유형에서 나오기 힘든 컨택 능력일 겁니다."
강호의 타격 능력에 대한 브루어 타격 코치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아직 강호에 대한 검증이 많이 필요했지만, 직접 눈으로 살펴본 결과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의 말을 직접 들은 사람의 생각은 달라보였다.
"1년에 2천만 달러가 넘는 선수인데 파워가 부족하면 되겠나? 그리고 배팅 볼을 때린 거에 불과하니까 스프링캠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나 판단해 보자고."
브루어 코치의 말에 대답한 것은 오브라이언 매건 감독이었다.
매건 감독은 작년에 레드삭스의 새로운 사령탑이 된 연륜 있는 지도자였다.
그런데 강호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강호의 입단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검증되지 않은 선수일 뿐이야. 그런 선수에게 엄청난 거금을 안긴 구단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매건 감독은 강호를 영입한 구단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선 자신이 관여하지 않은 선수 영입이라는 것이 불만이었고, 강호와의 계약에 투자된 거액 역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4년 계약에 9천만 달러라는 영입 비용은 매건 감독으로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부분이었다.
물론 그의 계산에는 오류가 있었다.
강호를 영입하기 위한 9천만 달러의 비용 중, 2천만 달러는 자이언츠 구단에 지불한 양도금 형태여서 강호의 실질적인 몸값은 4년 계약에 7천만 달러가 되는 것이다.
한국 리그를 초토화시킨 강호의 몸값으로는 다소 작아 보이는 규모일 테지만, 그 계약 내용을 살펴본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자신의 실력에 확신이 있었던 강호는 첫해에 구단과 약속한 기록을 달성했을 때 2년 후 이적이 가능하도록 세부 계약 내용을 추가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4년 동안 지급받기로 한 몸값 중 절반 이상을 1, 2년 차에 받기로 계약한 상황이라서 강호 본인의 활약 여부에 따라 신인 선수로서는 받기 힘든 몸값을 받은 후 다른 구단으로 이적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
우연히 강호의 그런 계약 내용에 대해 알게 된 매건 감독은 강호를 영입한 구단의 결정을 속으로 욕하고 있었다.
'옵션이 발동되는 조건이 실현 불가능한 조건이라서 2년 만에 이적할 일은 없겠지만, 아시아에서 온 검증되지 않은 선수치고는 너무 오만한 것 아닌가?'
강호를 바라보는 매건 감독의 솔직한 속내였다.
그가 프런트를 통해 전해 들었던 강호가 내건 옵션은 데뷔 시즌 신인왕과 홈런왕 달성이었다.
그야말로 메이저리그를 무시하는 말도 안 되는 옵션일 것이다.
아시아 야구에 큰 관심이 없는 매건 감독에게 강호는 그저 한국에서나 이름을 떨치던 선수일 뿐이었다.
'지나치게 오만한 생각이야. 왜 구단은 저런 위험 요소를 거액을 주고 끌어안으려는 것일까?'
매건 감독은 강호를 일컬어 '위험 요소'라고 규정짓고 있었다.
강호 본인에게는 합리적인 옵션 사항이지만, 매건 감독이 보기에는 메이저리그를 우습게 아는 오만한 옵션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건 감독이 오해하고 있는 강호의 오만함은 작년까지 좋았던 레드삭스의 팀 본위기를 해칠 수 있는 위험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일단은 지켜보자고."
매건 감독은 강호에 대한 판단을 결국 보류하기로 한다.
그런 매건 감독의 생각은 알게 모르게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사이에 빠르게 퍼져 나갔고, 강호를 바라보는 시선은 서서히 우려의 시선으로 뒤바뀌게 된다.
그런 시선들에 대해 눈치가 빠른 강호가 모를 리 없었다.
'한국에서 5년 동안 결과를 만들어내도 메이저리그에서는 풋내기일 뿐이란 건가?'
강호는 선수단을 가득 채워 나가고 있는 자신을 향한 우려의 시선 속에 조금은 마음이 위축됨을 느낀다.
그를 안타깝게 하는 것은 한국에서 정점을 찍었지만, 미국에서는 루키일 뿐이라는 현실 같은 게 아니었다.
자신에게 거액의 계약을 떠안긴 구단의 결정을 성토하는 목소리들. 그 속에 담긴 시샘과 질투, 그리고 차별 섞인 감정들.
네가 한국에서 대단해봤자 얼마나 대단하겠냐는 듯이 바라보는 시선들을 느끼며 강호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실력이야. 오직 실력만으로 증명해내야만 해!'
강호를 위축되게 만드는 생각의 실체였다.
그동안 한국 무대에서 다져온 스스로의 실력을 믿고 있는 강호이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맞이하게 된 낯선 시선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멘탈이 강한 강호라도 아직은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다.
조금은 조급한 마음을 가진 채 바쁜 스프링캠프 일정을 쫓아가는 동안 시간은 또 흐르고, 날짜 개념도 없이 분주하게 지내던 강호는 문득 2월 18일이 지나는 순간 또 한 번의 행운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강호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던 행운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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