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321화 (321/335)

0321 / 0335 ----------------------------------------------

승패의 갈림길

딱.

터업.

두 번의 소음과 함께 6번 타자 강민수가 때린 타구가 상대 투수의 글러브에 빨려들고 있었다.

캡틴 강민수는 잘 맞은 타구를 때려내는데 성공했지만, 얼떨결에 글러브를 내민 베어스의 투수 홍이삼에게 라인드라이브 성 타구를 날려 보낸 결과가 나와 버린다.

그로 인해 8회 말은 강호를 포함한 두 명의 잔루를 기록하며, 9회 초로 넘겨지고 만다.

8회 초 공격에서 허경빈의 쓰리런을 앞세운 베어스의 우위 상황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베어스가 9대 8, 한 점 차로 앞선 가운데 이제 정규 이닝의 마지막이 될 9회가 다가와 있었다.

강호는 긴장된 마음으로 벤치에 앉아 9회 초가 아무런 상황 없이 흘러가 주기를 바란다.

'이제 9회라고 해도 점수 차는 한 점 차에 불과해! 9회 말 공격이 나한테까지 연결되기는 힘들어 졌지만, 재역전의 기회는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야.'

강호는 남아 있는 타순 상황을 헤아리며 9회 말 공격에서 팀이 역전에 성공해 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역전이 어렵다면 동점이라도 좋았다.

9회 말은 7번 타자인 황제인의 타석부터 출발하게 된다.

강호 본인까지 연결되기 다소 힘들어 보이는 9회 말 공격에서 팀이 다시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런 강호의 바람대로 9회 초는 주자를 두 명이나 내보내는 위기 속에서도 추가 실점 없이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무사 주자 2, 3루가 된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자이언츠 마운드를 구원한 투수는 다름 아닌 박상현 투수였다.

"박상현 최고다!!"

"그래! 노장은 죽지 않아! 단지 나이 들 뿐이야!"

우레와 같은 팬들의 환호 속에 마운드 위에 선 상현이 글러브를 낀 오른손을 높이 쳐든다.

강호는 만약 오늘의 경기가 승리로 끝을 맺게 된다면 상현이 만들어낸 지금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에 하나가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강호의 그런 생각 속에 9회 말 자이언츠의 정규 이닝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고, 선두 타자인 황제인의 허무한 내야 뜬공으로 인해 자이언츠에 소속된 모든 이들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아웃!"

1루심의 아웃 판정에 내야 뜬공을 친 황제인이 땅이 커져라 한숨을 내쉰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 버린다면 자신이 대역 죄인이 된 죄책감을 씻기 힘들 것 같았다.

다행히도 그런 황제인의 우려는 아직 이른 것이었다.

딱.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벤치에 숨죽여 앉아 있던 황제인의 얼굴이 밝아진다.

8번 타자인 전준오가 상대 투수와 9구째까지 이어지는 승부 끝에 안타를 때려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비록 1루타에 그친 단타였지만, 발 빠른 주자 전준오가 1루 베이스를 밟았다는 사실에 작지 않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의미는 다음 타자 오진택의 타석이 돌아왔을 때 빠르게 퇴색되어 버린다.

손 감독은 4회 말에 홈런포를 쏘아올린 오진택의 타격감을 고려해 승부처임에도 불구하고 대타를 기용하지 않았고, 그에게 징검다리 역할을 고스란히 맡긴 상황이었다.

그런 손 감독의 믿음은 결과적으로 패착이 되고 만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의 삼진 판정에 아쉬움이 가득 담긴 탄성이 사직구장을 가득 채운다.

상황을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 보려는 욕심이 컸던 진택이 그만 과욕을 부리고 만 것이었다.

상대 투수의 4구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는 진택을 바라보며 손 감독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아니, 아직은 끝난 게 아니야!'

손 감독은 가슴을 짓누르는 아쉬움 속에서도 경기를 포기하지는 않고 있었다.

팀이 한 점 차로 뒤지고 있는 9회 말 2사 상황, 주자가 1루를 밟고 있다는 사실이 손 감독을 끝까지 싸우게 만든 것이다.

"대타를 내게."

손 감독은 결국 아껴두고 있던 대타 카드 중 하나를 경기 종료가 임박한 상황에서 꺼내들고 있었다.

곁에 있던 김 수석은 손 감독의 대타 결정이 다소 늦었다고 여기며 습관적으로 되묻는다.

"누구를 대타로 낼까요?"

"채중석."

김 수석의 물음에 손 감독은 짧게 대답했고, 그의 대답에 김 수석은 별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은 채 손 감독의 대타 결정을 따르기로 한다.

그리고 그런 대타 결정은 결론적으로 성공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볼넷, 베이스 온 볼."

10구째까지 이어진 중석의 승부는 결국 주심의 볼넷 선언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

그 모습에 손 감독의 표정이 밝아지고, 김 수석을 향한 다음 지시가 이어진다.

"1루에 대주자를 내. 황인태를 내고, 리드 폭은 짧게 가져가라고 지시를 내리게."

"알겠습니다."

손 감독의 지시에 김 수석은 이번에도 크게 토를 달지 않으며 지시를 따르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손 감독의 지시를 통해 한 가지 의중을 짐작하게 된다.

'감독님은 연장전은 염두 하지 않으시는구나.'

김 수석은 손 감독의 대주자 결정을 통해 그의 생각을 읽어내고 있었다.

우익수인 유성철의 타석에서 대타로 채중석을 내고, 다시 채중석을 2루수 황인태로 교체하는 선수 운영은 연장을 고려한다면 적절하지 않은 전략이었다.

그로 인해 손 감독이 지금의 9회 말 상황에서 역전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한 일부 선수들 역시 그런 손 감독의 생각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감독님이 승부를 걸었어!'

강호는 대주자 황인태가 1루로 향하는 모습을 확인하며 흐름을 읽어 나간다.

지금 상황에서 외야로 향하는 안타 하나만 나와 준다면 경기 종료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손 감독이 9회 말에 모든 것을 걸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강호는 문득 손 감독의 내심이 궁금해진다.

'혹시.'

강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을 이어가는 동안, 그라운드는 또 다른 변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파핫!

타석에 선 2번 타자 최훈의 옷깃을 스치는 소리에 모든 이들의 표정이 급변한다.

주심이 최훈의 옷깃을 스치는 투수의 공이 사구가 되었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자 1루로."

주심의 출루 지시에 사구를 맞은 최훈의 표정이 밝아진다.

9회 말, 한 점 차로 뒤지고 있는 2사 주자 1, 2루 상황에서 출루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공이 피부를 스친 통증마저 잊게 만든다.

자이언츠 팬들 역시 최훈의 출루로 만들어진 만루 상황에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지! 끝까지 가보자!"

팬들의 힘찬 환호가 그라운드를 뒤흔든다.

그런 팬들의 함성을 안고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는 3번 타자인 문표였다.

문표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엄청난 중압감을 느끼며 타석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왜 내 타석에서 이런 기회가 온 거야?!'

문표는 올 시즌 한국시리즈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에 타석에 서게 된 자신의 상황을 오히려 원망하고 있었다.

긴장되는 마음에 자신이 배트를 제대로 들었는지, 거꾸로 들었는지를 손으로 더듬어 확인해볼 정도였다.

'그래도 배트는 제대로 들었구나. 하지만 타격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문표가 떨리는 마음을 수습하기 힘겨워 하는 동안 베어스 쪽에서도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만루를 허용한 투수를 내리고, 다음 투수를 마운드에 올린 것이다.

베어스가 꺼내 든 마지막 불펜 카드는 의외의 얼굴이었다.

중계석에도 놀란 목소리를 감추지 못한다.

"지금은 니퍼드 투수가 마운드로 향하네요!"

"오늘 경기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이런 투수 운용이 가능할 거라는 말씀을 드렸었는데, 베어스가 결국 니퍼드 투수를 결정하네요. 저는 내일 경기의 선발 투수로 니퍼드를 생각했었는데 베어스 구형태 감독 입장에서는 오늘 경기를 내주면 내일 경기도 없을 거라는 판단 같습니다."

염 캐스터의 말에 이어진 이 위원의 설명대로 구형태 감독은 오늘 경기를 어떻게 해서든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기에 내일 선발 투수로 고려하고 있던 니퍼드를 아웃 카운트 하나를 남겨둔 상태에서 마운드에 올린 것이다.

'어차피 오늘 경기가 뒤집혀 버리면 내일 경기는 없는 거야!'

니퍼드를 마운드에 올린 구 감독의 진심이었다.

그런 구 감독의 시선 속에 베어스의 에이스 투수, 니퍼드가 마운드로 오른다.

니퍼드는 몇 개의 연습 구를 던진 후에 차가운 시선으로 문표를 응시한다.

문표는 그런 니퍼드의 시선을 받으며 마른침을 삼켰고, 곧 두 사람 간의 승부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모두가 예상치 못한 장면이 만들어지게 된다.

터억.

"어?!"

니퍼드의 초구를 받던 포수 양희지가 놀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초구로 요구한 체인지업이 생각보다 일찍 꺾여버리면서 원바운드가 되어버린 까닭이었다.

급하게 자세를 바꿔 뒤로 빠지는 공을 막아보려 했지만, 글러브 끝에 살짝 걸린 공은 결국 뒤로 빠져나가고 만다.

리그 최정상급 수준인 양희지 포수의 수비력과 니퍼드 투수의 제구력을 생각했을 때 너무도 어이없는 폭투가 만들어지고 만 것이다.

그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던 문표가 급히 고개를 돌리며 소리를 내지른다.

"들어와! 들어와!!"

문표의 외침에 만루를 채운 주자들이 재빨리 몸을 움직인다.

그들이 서두르는 것만큼 공을 빠뜨린 포수 역시 급하게 움직였고, 뒤로 빠진 공을 줍는 것과 동시에 홈플레이트에 도착해 있던 투수를 향해 빠르게 공을 던진다.

그리고 이어진 홈 승부에 모든 이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세이프! 세이프!!"

주심은 두 번이나 양 팔을 펼쳐 보이며 세이프를 선언하고 있었다.

그 판정 결과에 모든 자이언츠 팬들이 만세를 내지른다.

"만세!!"

"동점이야, 동점!"

"경기가 어떻게 이렇게 되는 거야?! 대박이다!"

"자이언츠, 끝까지 가자!"

팬들의 뜨거운 함성이 사직구장을 휩쓸고 지나간다.

이제 점수는 9대 9 동점이 된 가운데, 2사 주자 2, 3루가 된 상황.

문표의 타격 여부에 따라서 오늘 경기의 끝이 결정될 수 있는 순간이었다.

타석에 선 문표는 조금 전과는 또 다른 부담감을 안은 채 배트를 짧게 쥔다.

'내가 끝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투수가 니퍼드야. 폭투 한 번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문표는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며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결론짓고 있었다.

'무대는 이미 마련되었지만, 그 무대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야.'

문표는 다음 타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작게 미소 짓는다.

그리고 그런 문표의 끈질긴 승부가 이어진다.

틱, 딱! 틱.

이어지는 타격음에 사직구장이 함성과 탄성으로 들끓는다.

문표의 타격은 니퍼드의 공을 정면으로 타격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조금은 타이밍이 늦거나 스윙 궤적이 엇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카운트를 채울 동안 끈질긴 승부를 이어가며, 추격의 불씨를 끝까지 꺼뜨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무려 12구째까지 이어지는 승부 끝에 두 선수의 치열한 승부가 끝을 맺고 있었다.

"볼넷, 베이스 온 볼."

주심의 볼넷 판정에 니퍼드 투수가 껑충 뛰어 오른다.

보기에 따라서 스트라이크로 판정해도 될 공을 주심이 볼로 판정했기 때문이다.

니퍼드는 다소 흥분한 표정으로 항의를 해보지만, 그의 목소리는 주심에게 닿지 않고 있었다.

자이언츠 홈팬들의 뜨거운 함성이 니퍼드의 목소리를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와아아!!!"

"백강호다, 백강호! 이번 타석 백강호라고!!"

"나도 알아 이 자식아!!"

자이언츠 팬들의 뜨거운 함성이 다음 타자의 등장을 알린다.

9대 9, 동점이 된 가운데 9회 말 2아웃 주자 만루의 상황에서 타석에 선 타자는 다름 아닌 강호였다.

팬들은 마치 드라마와 같이 찾아온 지금의 장면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백강호!! 날려라!!!"

하나가 된 팬들의 함성이 타석 위의 강호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강호는 그런 팬들의 함성을 온몸으로 받으며 배트를 높이 세운다.

그런 강호의 시선에 문득 1루 쪽 관중석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배트 끝을 주시하며 마인드 컨트롤에 들어갔던 강호는 왜 결정적인 순간에서 관중석으로 눈이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우연한 순간으로 인해 강호는 익숙한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형!'

강호는 관중석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형의 얼굴을 확인한다.

그리고 형의 곁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는 또 다른 얼굴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오빠!!"

그녀는 분명 자신을 향해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자이언츠 팬들의 뜨거운 함성에 가려 그녀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강호는 강수의 곁에 선 진주가 자신을 향해 그렇게 소리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진주가... 돌아왔구나.'

강호는 3년 만에 시선을 마주한 동생의 모습에 웃음 짓고 있었다.

그런 강호의 미소는 중계 카메라를 통해 TV전파를 타고 있었지만, 강호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길게 이어진 오늘의 경기에서, 왜 하필 지금 이 순간에 진주의 얼굴을 보게 된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이유가 결코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 우연이든 필연이든 거기에서 지켜보도록 해.'

강호는 그쯤에서 진주를 향해있던 시선을 거둔다.

지금은 동생과의 재회보다 올 시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승부에 집중해야만 했다.

한 손으로 들어 올렸던 배트를 내려 양손으로 쥐고, 특유의 눈빛으로 투수의 눈을 응시한다.

강호의 시야에 들어온 투수는 여전히 니퍼드 투수였다.

하나의 폭투와 문표에게 내준 볼넷에도 불구하고, 베어스의 구형태 감독은 끝까지 니퍼드로 밀어붙이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다른 투수로 교체해 봐야 별 수 없다는 건가? 아니면 나를 상대하기에는 니퍼드가 제일 낫다는 뜻일까?'

강호는 문득 구 감독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하지만 길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구형태 감독의 생각이 아니라 마지막 타석 기회가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기회는 주어졌어. 나는 지금의 기회를 결과로 만들어낼 자격이 있는가?'

강호는 자신을 향한 마지막 질문을 던지며 니퍼드의 초구를 기다린다.

파항!

니퍼드의 초구가 묵직한 파공음을 만들어내며 포수의 미트를 파고들고 있었다.

강호는 니퍼드의 초구를 통해 자신을 제대로 상대해보겠다는 의지를 전달받게 된다.

왜냐하면 니퍼드의 초구는 스트라이크 존을 꽉 차게 들어온 완벽한 코스의 공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역시 주심이 스트라이크로 판정해도 손색이 없는 공이었다.

"스트라이크!"

주심의 이번 판정은 스트라이크였다.

문표를 볼넷으로 내보낸 코스와 거의 같은 코스였지만, 조금 전 니퍼드의 항의가 마음에 걸렸던 것인지 주심은 비슷한 코스의 공에 스트라이크를 주고 있는 것이다.

조금은 손해 보는 감이 없지 않았지만, 강호는 담담히 받아들이며 타석에서 한 걸음 물러선다.

오히려 덕아웃에 있던 동료 선수들이 흥분하는 모습이었다.

"그게 어떻게 스트라이크야?!"

"왜 강호 타석에서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져?! 똑바로 해라!"

동료 선수들은 지나칠 정도로 흥분한 모습을 보이며 항의의 목소리를 토해낸다.

그런 자이언츠 선수들의 목소리는 주심에게 닿지 않는다.

강호를 향한 팬들의 함성 소리에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날려라!"

"백강호! 날려라!!"

팬들은 강호의 안타로 오늘 경기가 끝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외치고 있었다.

이왕이면 이번 타석에서 강호가 홈런을 때려내어 한국 시리즈 우승을 만루 홈런으로 완성시켜 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앞선 타석에서 1, 2, 3루타를 모두 때려낸 강호가 만약 이번 타석에서 홈런을 때려낸다면 한국 시리즈 우승을 사이클 히트로 장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팬들은 불가능 할만 것 같은 기대감을 감추지 않으며 강호의 홈런을 기대한다.

그런 팬들의 기대 속에 니퍼드와 강호, 두 선수의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은 6구째까지 이어지고 이제 승부는 마지막 7구째 승부에 도달해 있었다.

강호는 니퍼드의 6구째 공을 골라낸 후 앞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의 결론을 낸다.

'비록 행운으로 만들어진 기회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기회를 단단히 붙잡았어. 자격은 충분하다!'

강호는 마지막으로 남은 심마를 거둬버리며 배트를 힘껏 쥔다.

전신을 통해 강렬한 기운이 전달되고 있었고, 배트를 쥔 손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그리고 6구째까지 승부가 이어지는 동안 긴장된 마음도 사라짐을 느낀다.

강호는 마지막 순간이 되어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완벽한 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때린다.'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니퍼드의 손끝에서 공이 떠나는 모습이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준비하고 있던 익숙한 동작으로 강호의 몸이 회전에 들어간다.

배트는 지나치게 가벼웠고, 그것을 쥔 강호의 손에는 그 어느 때보다 힘이 넘쳐흘렀다.

강호는 완벽한 몰아일체의 순간에서 자신이 때려낼 타구가 어디로 향할 것인지를 확신하게 된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사직구장이 순간 침묵에 잠긴다.

사직구장에 자리한 모든 이들은 외야 높은 곳을 향해 뻗어져 나가는 강호의 타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강호의 타구가 담장을 넘어 사직구장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을 때, 비로소 강호의 타구가 장외 홈런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잠시 침묵에 잠겼던 사직구장은 곧 다시는 경험하기 힘든 함성으로 물들어간다.

"와아아아아아!!!!"

뜨거운 함성과 함께 시야가 흐려진다.

한국 시리즈 6차전 경기, 9회 말 동점 상황에서 터져 나온 강호의 끝내기 만루 홈런은 자이언츠의 모든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더불어서 숨죽이고 있던 자이언츠 선수단 모두를 그라운드로 불러내게 만드는 결정적 한 방이었다.

"우와아아아!!!"

자이언츠 선수단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목이 터져라 함성을 내지르며 홈 베이스를 향해 내달린다.

그리고는 베이스를 돌고 곧 홈으로 돌아올 강호의 발걸음을 기다린다.

그런 동료 선수들의 기다림 속에 강호의 발걸음은 어느새 3루 베이스를 돌고 있었고, 강호는 홈으로 향하는 그 짧은 순간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 보인다.

"우승이다!!!"

누군가의 외침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강호는 팬들의 환호와 동료 선수들의 환대 속에 홈을 밟았고, 그것으로 자이언츠의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뜨거운 환호와 눈물, 기쁨의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사직구장의 중심에서 강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물겨운 환호를 내지르게 된다.

"이겼다!!!"

강호의 선언에 모든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또한 자이언츠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염원하던 모든 이들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들의 환호와 눈물 속에 자이언츠의 2019시즌 통합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그런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게 된 베어스 선수단은 말없이 고개를 떨군다.

그들의 사령탑인 구형태 감독은 격전 끝에 패배를 떠안게 된 선수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라운드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 구형태 감독의 시선은 잠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자이언츠 선수들을 향해 움직인다.

정확히는 그들의 중심에 선 강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됐구나.'

구 감독은 착잡한 심정으로 강호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하지만 패배의 여파로 쓰라릴지언정 후회는 없었다.

이번 한국시리즈를 통해 구 감독 본인이 가진 역량의 전부를 쏟아내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강호 네가 이렇게 위대한 선수로 성장해 줘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구 감독은 순간 드는 생각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그런 구 감독의 시선은 여전히 강호를 향하고 있었다.

'너에게 직접 이 말을 전한다면 변명같이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그 시절 나는 그저 스스로도 살아남기 힘들어 했던 2군 감독이었을 뿐이야.'

구 감독은 과거, 강호의 방출을 결정했던 당시의 순간을 떠올려 본다.

결국 그 선택이 차가운 비수가 되어 자신의 심장을 찌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결정에 후회는 없었다.

그 때의 상황에서 당시 구 감독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패배의 순간에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짐을 느낀다.

'우리는 야구라는 분야를 통해 어쩌면 각자의 삶을 바라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답을 냈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문제가 주어지는 삶들의 연속이니까. 강호 너는 3년 전 내가 방출을 결정했을 당시의 패배를 통해 오늘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거야.'

지금의 생각이 어쩌면 스스로를 위한 변명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지금 구 감독의 가슴을 가득 채우는 감정은 거짓이 아닌 진심이기 때문이었다.

'서로의 삶이 충돌하는 오늘의 경기에서 오늘은 너와 손 감독이 승리자가 된 거야. 나는 변명할 여지가 없는 선택으로 패배를 한 셈이고.'

생각이 이어지는 동안 강호는 동료 선수들의 무등을 탄 채로 환호하고 있었다.

구 감독은 그런 강호의 모습을 눈에 담기로 한다.

어쩌면 현장에서 강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일 수도 있었기에.

베어스의 한국 시리즈 패배가 결정되었으니 내년 시즌 구 감독 자신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오늘의 패배를 통해서 나는 야구가 아닌 내 생에 남은 또 다른 승리를 위해 움직여야 하겠지. 우리는 패배 속에서 승리를 배우는 프로 선수이니까.'

구 감독은 더 이상의 변명은 필요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제 승리의 주역이 된 강호를 바라보는 구 감독의 생각은 끝을 향한다.

'나는 지금의 패배를 교훈 삼아 딱 한 마디 말을 네게 전하고 싶구나.'

지금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이 한 마디는 언제고 강호에게 직접 전하고 싶은 한 마디일 것이다.

구 감독은 승리의 대업을 일군 강호를 바라보며 지금은 전할 수 없는 마지막 한 마디를 가슴에 담는다.

'백강호, 네가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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