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317화 (317/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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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진을 치다

한국시리즈가 5차전까지 진행되면서 격렬한 반응과 여론들이 형성되고 있었다.

5차전까지 진행된 한국시리즈 경기에서 자이언츠는 홈에서 두 경기를 먼저 내준 후 원정 구장인 잠실에서 3연승을 따낸 상황이었다.

기대 어린 열기로 차오른 양 팀 팬들에게는 냉정을 되찾게 해주는 다섯 번의 경기였다.

한국시리즈를 5차전까지 진행하면서도 자이언츠와 베어스, 양 팀 모두 홈경기를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대한 비판의 여론이 형성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공중파나 케이블 야구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그나마 수위를 조절하고 있었지만, 아프리카 TV등의 인터넷 방송 VJ들에게 수위조절이란 있을 수 없었다.

5차전까지 종료된 상황에서 아마추어 야구 전문가들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 사람은 한국시리즈 내내 강호에 대한 고의사구를 최종 결정한 구형태 감독이었다.

"자, 거르네요. 베어스가 한국시리즈에서도 백강호를 거르기로 한 모양입니다."

"또 거릅니다. 이번에도 거르네요."

"아니, 또 걸렀어요! 지금은 1사 주자 없는 상황인데도 거릅니다. 이것 참."

"오늘도 거르네요! 이렇게 되면 백강호 선수를 리드오프로 세운 자이언츠의 선택이 변수를 만들어낸 셈이에요."

"또 고의사구를! 여러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경기가 한국시리즈 경기가 맞는 겁니까? 동네 야구에서도 이런 야구는 안 할 겁니다. 아무리 우승이 중요해도 이건 아니죠! 이게 야구 맞습니까?!"

한국시리즈 경기가 진행될수록 사설 방송을 진행하는 VJ들은 극도로 흥분하는 모습을 내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VJ뿐만 아니라 베어스를 응원하는 VJ들마저도 강호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구 감독의 선택을 맹비난하고 나선다.

"저게 무슨 야구입니까?! 구형태 감독은 2군 감독 시절에는 백강호 선수를 방출해 버리더니 상대 팀 타자로 상대할 때는 아예 무시해 버리네요.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요?! 저 정도면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거 아닐까요?"

"제보 받겠습니다. 구형태 감독과 백강호 선수의 개인 사정에 대해 아시는 분은 제보 주세요. 저건 해도 너무한 겁니다. 구형태 감독은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저런 야구를 하는 겁니까? 저렇게 비겁한 모습으로 우승하면 우리 베어스 팬들이 기뻐해야하는 겁니까?!"

"구형태 감독이 저렇게 경기해서 우승을 할 것 같지도 않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에 진짜로 우승을 해도 이건 역대급 치욕입니다!"

처음에는 자이언츠 팬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비판적인 여론은 이제 구 감독을 응원해야할 베어스 팬들에게로 옮겨지고 있었다.

베어스 팬들은 강호와의 승부를 회피하기만 하는 베어스 투수들에게 실망하고, 또한 그런 지시를 내린 팀의 총사령탑, 구형태 감독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베어스 구단 홈페이지에 찾아가 비난과 비판을 쏟아내다 구단 홈페이지를 다운시켜 버리기도 한다.

"홈페이지가 터졌네? 진짜 가지가지 한다."

"베어스 구단 전화번호가 몇 번이야?! 홈페이지 터지면 끝날 줄 알았지? 내가 가만 안 둔다!"

베어스 팬들의 분노는 온, 오프라인의 경계를 가리지 않고 있었다.

여기에 일부 자이언츠 팬들과 한국시리즈를 관전하던 다른 팀 팬들마저 가세하며 이제 여론은 폭발 일보 직전의 상태로 끓어올라 있었다.

만약 시리즈 6차전까지 강호와의 승부를 피해버린다면 베어스 구단과 투수진, 그리고 최종 결정권자인 구형태 감독에게 쏟아지는 분노를 감당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여론의 힘이라는 것은 그토록 무서운 것이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자 베어스 구단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구 감독!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그렇게 경기할 거면 한국시리즈를 빨리 끝내버리던가! 왜 이기지도 못할 시리즈에서 원성을 자처하는 겁니까? 팬들이 내 휴대폰 번호까지 알아내서 문자 테러를 해오고 있어요!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성난 목소리에 구 감독은 입을 다물었다.

한국시리즈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구단 사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온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2연속 통합우승을 달성한 우리 구단이 이렇게 비열한 방법으로 한국시리즈를 가져 온다고 해서 그 명성이 높아지겠습니까?! 기껏 쌓아 놓은 명성이 죄다 날아가 버렸어요! 구 감독은 이 사태를 어떻게 할 겁니까?!

구단 사장의 호통에 구 감독은 대답할 말을 망설인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으면 구단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여론을 수습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쁜 것이 현실이었다.

구 감독은 그런 모습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해도 내 자리는 없겠구나. 이번 한국 시리즈가 베어스 감독으로서 마지막 무대가 돼버린 셈이야.'

구단의 태도에서 구 감독은 올 시즌을 끝으로 종료되는 자신의 감독직에 대한 재계약은 없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다.

사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기도 했다.

'2군 감독이었던 시절, 강호의 방출을 결정했을 때부터 이미 올 시즌 나에 대한 면죄부는 사라진 셈이니까.'

구 감독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과거 자신이 2군 감독이었던 시절, 강호를 방출하라던 구단 수뇌부의 지시를 몇 번 더 막아주었더라면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후회도 들었다.

하지만 후회는 항상 늦은 것이다.

구 감독은 결국 준비하고 있던 말을 꺼내게 된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구 감독의 대답에도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가라앉지 않는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겁니다! 우승을 하더라도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보도록 하세요. 만일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불명예를 얻고도 우승하지 못한다면 구 감독이 모든 책임을 지셔야 할 겁니다!

구단 사장은 그 말 후에도 한동안 호통을 멈추지 않다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는 모습이었다.

구 감독은 그 모습에 피식 웃음 짓는다.

"우승하더라도 베어스에서 내 자리는 이미 없지 않습니까?"

구 감독은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들고 있던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지금 실내에는 구 감독 혼자 있었기 때문에 그의 혼잣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되면 6차전 경기는 강호와의 승부를 피할 수 없게 됐구나."

구 감독은 더 이상 강호와의 승부를 고의사구로 회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생각하자 올 시즌 들어 계속해서 찾아오는 심마가 또 다시 찾아드는 것을 느낀다.

'결국 내 야구 철학이 틀린 것인가?'

구 감독은 올 시즌 들어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베어스의 2연속 통합 우승을 완성시키며 탄탄대로를 걸었기에 자신의 야구 철학이 틀렸다는 생각은 가져본 적 없었다.

그런데 올 시즌 들어 본인이 가지고 있던 확고한 야구 철학이 근본부터 뒤흔들리는 것을 자주 느끼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강호로 인한 것이었다.

'정말로 강호를 방출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구 감독은 수천 번 이상을 스스로 되뇌었던 물음을 또 한 번 심중에 품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확신은 흔들릴 지언정 무너지지는 않는다.

'아니야, 틀리지 않았어. 그 때 강호를 방출했던 나의 판단은 옳았어. 내가 보았던 강호의 재능은 딱 거기까지였으니까.'

구 감독은 자신이 보았던 강호의 재능이 뚜렷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여겼었다.

그렇기 때문에 올 시즌 강호가 보여준 모습으로 인해 구 감독 본인의 믿음이 계속해서 시험받고 있는 것이다.

구 감독은 이제 올 시즌 내내 본인을 괴롭힌 시험대에서 그만 내려와야 할 때라는 것을 느낀다.

'내 야구 철학을 입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강호와의 승부를 통해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겠어.'

구 감독은 더 이상 강호와의 승부를 피하지 않기로 한다.

강호를 고의사구로 걸러 의도적으로 승부를 피한 것은 팀을 한국시리즈에서 또 한 번 우승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단이 자신을 내치기로 결정을 내린 마당에 더 이상 팀을 위해 오욕을 감당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 감독은 자신이 걸어왔던 야구 인생에 대한 확신을 위해 미뤄두었던 결정을 내린다.

'6차전에서 백강호와 승부를 본다!'

시즌 내내 흔들리던 구 감독의 눈빛은 그를 명장이라 불리던 시절의 강렬한 눈빛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한편, 구 감독이 생각의 방향을 바꾸고 있을 때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적장이라 할 수 있는 손성조 자이언츠 감독이었다.

"구형태 감독은 내일 경기에서 강호와의 승부를 피하지 않을 게야."

손 감독의 갑작스러운 말에 곁에 있던 김 수석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내일 경기의 라인업 구상을 위해 최종 점검에 나선 두 사람은 강호의 자리를 두고 고심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김 수석은 강호에 대한 베어스의 견제가 내일 경기까지 이어질 거라 내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손 감독의 말을 되묻게 된다.

"다섯 경기를 걸렀는데 내일 같이 중요한 경기에서 강호하고 승부 보려 할까요?"

"구 감독도 여론이 이 정도까지 나빠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아니면 예측을 했으면서도 무시하고 있었던지 말이야. 만에 하나의 경우에 베어스가 우승한다고 해도 베어스는 우승으로 인한 더 큰 비난에 직면해야 할 게야."

손 감독은 지금의 상황을 어렴풋이 예측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베어스의 회피 전략에도 강호를 라인업에서 제외하지 않은 것이다.

'구 감독은 강호를 회피하면서 생겨날 좋지 못한 여론을 염두 했어야 됐어.'

구 감독에 대한 손성조 감독의 솔직한 판단이었다.

손 감독은 강호를 회피한 구 감독의 선택이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구 감독의 입장이라고 해도 한국시리즈 같이 중요한 시리즈에서 강호 같은 타자와 제대로 승부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강호를 무턱대고 거른 구 감독의 결정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강호를 계속 거를 생각이었다면 베어스는 4차전까지의 모든 경기를 이겼어야 했어. 단 한 경기라도 패했을 때 그에 대한 비난의 여론은 들불처럼 확산되어 갈 테니까. 마치 지금처럼 말이야.'

손 감독은 구 감독의 선택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그로 인한 반대급부에 대해서 외면한 것이 지금의 사태를 야기한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로 인해 자이언츠에게 기회가 생겨났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7차전은 없어. 내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여기고, 총력전에 돌입해야 해!"

손 감독은 그렇게 선언하고 있었다.

팀이 3승 2패로 앞서고 있는 상황이라 한 경기 정도의 여유는 있었지만, 내일 경기를 절대 내주지 않을 거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내일의 경기는 자이언츠뿐만 아니라 강호와 나,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일전으로 작용될 게야. 팀을 위해, 나를 위해, 그리고 내 야구 인생을 대신 증명해 준 강호 녀석을 위해서라도. 나 역시 승부를 건다!'

각오를 다지는 손 감독의 의지를 온몸에서 느낄 수 있었다.

손 감독은 내일 경기를 물러설 수 없는 일전으로 여기고 모든 것을 걸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비슷한 시각.

구 감독과 손 감독, 그리고 한국시리즈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을 들끓게 만든 장본인 또한 자신만의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장소는 강호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내일 경기에서만큼은 나를 회피할 수 없을 거야. 구형태 감독님도 더는 물러설 곳이 없을 테니까.'

강호 또한 자신을 중심으로 형성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나를 외면한 구 감독님의 결정은 나쁘지 않았어. 하지만 완벽에 가까운 이론을 따르더라도 결국 감성을 외면할 수 없는 법이야. 구 감독님은 대중의 분노를 외면하고 말았어.'

강호는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로 인해 내일 있을 6차전에서 더 이상 자신에 대한 고의사구가 없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다.

'우리는 컴퓨터나 기계가 아닌 인간이니까. 구 감독님도 더는 이 거대한 여론을 무시할 수 없어. 6차전에서 승부를 봐야만 할 거야.'

강호는 시류를 정확히 읽고 있었다.

내일 있을 한국시리즈 6차전이 올 시즌의 종지부를 찍을 최종 관문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과거 내가 가졌었던 재능은 구 감독님의 생각대로 볼품없는 것이었어. 하지만 야구에 대한 나의 진심과 간절함이 부족했었는가?'

강호는 마지막 관문을 앞에 두고 스스로를 향한 질문을 던져 본다.

내일의 경기는 자신의 과거를 입증하는 경기가 아니라 백강호라는 선수가 앞으로도 생존할 자격이 있는 지를 증명하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정면 승부가 예상되는 내일의 경기에서 아무런 결과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올 시즌 강호 본인이 기록한 모든 것은 결국 프리마켓이 가져다 준 행운의 결과일 뿐이다.

'야구에 대한 간절함은 절대 부족하지 않았어! 그렇다면 나는 행운이 없어도 생존할 자격이 있는가?'

강호는 스스로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져보며 눈을 감는다.

내일의 경기는 구형태 감독이 수십 년을 쌓아온 야구 철학과 생존을 위해 투쟁했던 강호 자신의 야구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전장이 될 것이다.

강호는 올해의 마지막을 패배고 끝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절대 지지 않겠어. 기필코 팀을 승리하게 만들겠어. 내일의 경기는 과거의 나를 탈피하고, 새로운 야구 인생을 만들어나갈 중요한 일전이 될 거야. 그러니까 내일 경기는.'

어느새 결론을 내린 강호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올 시즌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각오를 가슴 깊이 새긴다.

'반드시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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