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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의 결과
2019년 정규 시즌 일정이 모두 종료되었다.
그로 인해 당장 오늘인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포스트 시즌 일정이 모두 짜여 지게 되었다.
10월 7일 월요일인 오늘부터 5위 팀 히어로즈와 4위 팀 타어거즈 간의 와일드카드 일정이 진행되게 된다.
이쯤 되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팬들의 관심은 야구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올 시즌은 달랐다.
여전히 많은 야구팬들이 야구계의 동향과 포스트시즌의 향방에 커다란 관심을 내보이고 있었다.
야구팬들의 시선을 여전히 야구장으로 돌리고 있는 힘은 단 한 선수로 인한 것이었다.
와일드카드 전이 시작되기 이전, 인터넷 스포츠 기사란을 뒤덮고 있는 기사는 바로 강호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백강호, 시즌 최종 타율 4할 4푼 5리 달성! 메이저리그 휴 더피(Hugh Duffy)의 기록을 넘어서다!]
[백강호, 단일 시즌 4할 타율 70홈런-70도루, 200타점-200득점 클럽을 열다!]
[백강호, 2019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다. 야구 역사에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타자가 등장하다!]
언론에서는 강호에 관한 각종 기사와 보도 자료들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그 기록이 여태껏 한국 야구사는 물론이거니와 세계 야구 역사에 없는 기록이었기에 시즌 종료와 함께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강호의 모든 기록이 완성되는 것을 기점으로 그에 대한 관심은 이제 야구계를 넘어 국내 사회의 중요한 흐름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기업들과 광고계에서 이런 대세를 놓칠 리가 없었다.
"이번 회사 프로모션에 백강호 선수를 모델로 쓰는 게 좋겠습니다. 기록도 기록이거니와 백강호 선수의 이미지가 좋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6개월 계약으로 하기에 적합해 보입니다."
"6개월이라니? 이참에 장기 전속 계약을 하는 게 어때? 백강호 정도 선수면 포스팅 받고 메이저리그로 진출할 거 아냐? 미리 좋은 관계를 맺어 놓으면 백강호 선수가 메이저리그로 갔을 때도 계약을 유지할 수 있는 거잖아?"
광고계에서는 강호를 서로 모셔가기 위한 경쟁이 벌어질 정도였다.
광고 계약 모델 금액으로 1년에 3억 원에서 5억 원까지의 몸값이 형성될 정도로 강호의 가치는 빠르게 높아져 간다.
"백강호 선수는 대체 어딨는 거야? 왜 휴대폰을 안 보는 거야?"
"자이언츠 구단에 요청해 봐! 3개월에 1억 계약이면 업계 최고 수준인데 왜 응답이 없는 거야?"
"B기업 측에서 1년 5억 계약을 제안했답니다."
"뭐? 젠장! 지금 당장 사장님께 업무 보고 올려! 계약 기간하고 금액 상향해 달라고 요청 해!"
"저희 쪽 결제도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백강호 선수와 연락이 안 된다는 겁니다. 자이언츠 구단 측에서도 백강호 선수의 일정이 바쁜 점을 양해해 달라고 답변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백강호 선수와의 CF계약 놓치면 타격이 얼마나 큰 줄 알아? 지금 당장 부산으로 달려가서! 아니, 내가 지금 부산으로 내려갈 테니까 사장님께 보고서 올려 놔. 내가 부산으로 내려가면서 사장님과 통화할 테니까!"
수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강호와의 계약을 위해 부산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강호와의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사직구장과 사직동 집, 김해에 위치한 강호의 독신자 숙소까지 찾아가며 공을 들일 정도였다.
강호와의 계약이 그만큼 중요한 이유도 있었지만, 강호가 부재중 전화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이유가 더욱 컸다.
4위 팀과 5위 팀의 와일드카드 전이 타이거즈 전의 승리로 끝이 나는 와중에도 강호는 외부와의 연락을 단절한 채 팀 훈련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규 시즌이 종료되고, 자이언츠의 포스트시즌인 한국시리즈까지는 아직 여유가 남은 상황.
그런 상황에서도 강호가 훈련에만 전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제 프리마켓의 행운은 사라져 버렸어. 경기 중에 언제든지 부상을 입을 수도 있고, 때때로 슬럼프가 찾아오게 될 거야. 안타가 꼭 필요한 상황에 삼진을 당할 수도 있고, 타점이 필요한 상황에 범타로 물러날 수도 있어. 프리마켓의 도움으로 달라진 스탯들, 그리고 영구 적용된 스킬들은 여전히 남아있겠지만, 거기에 만족하다보면 자연스레 도태되고 만다!'
프리마켓이 종료되며 강호는 새로운 기로에 놓여 있었다.
여전히 프리마켓으로 변화된 부분이 적용되고 있었지만, 아이템의 혜택이나 경기 중에 부상을 입지 않는 기적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로 인한 슬럼프나 기량 하락을 예측한다면 프리마켓의 덕으로 얻게 된 타격감이 유지되고 있을 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강호는 그런 생각으로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오직 훈련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며칠 뒤에 강호를 찾은 허 실장으로 인해 그런 생각이 조금은 바뀌게 된다.
준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타이거즈가 3위 팀 다이노스에 1대 1 박빙의 전적을 유지하고 있을 무렵, 허 실장은 사직구장에 틀어박혀 훈련에만 집중하고 있는 강호를 찾아왔다.
"백강호 선수, 시즌이 끝났는데도 고생이 많으십니다. 한국시리즈 일정을 생각한다면 조금 휴식하시는 것도 괜찮아 보이는데 백강호 선수는 쉬지 않으시네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허 실장은 훈련 중인 강호를 찾아와 찬사의 말을 꺼내며 대화를 시작한다.
그가 아무리 구단 고위 인사라고는 하지만, 훈련 중인 선수를 함부로 독대하기는 힘들었다.
특히나 강호는 자이언츠를 넘어 한국 야구계의 새로운 전설이라 할 수 있었다.
팀의 사령탑인 손 감독의 허락이 없다면 허 실장이라고 해도 강호를 만날 수는 없다.
그 점을 고려한 강호는 전념하고 있던 타격 훈련을 멈추고, 배트를 내려놓는다.
"안녕하십니까? 허 실장님도 많이 바쁘실 텐데 경기장에 오신 걸 보면 저하고 관련된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강호는 추측에 가까운 말을 하고 있었지만, 이미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훈련에 집중하느라 프런트의 일은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선수단을 지원해 주는 직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최근 구단 프런트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허 실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런 허 실장이 단순히 인사 차원에서 자신을 찾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허 실장의 이어진 대답에서 강호의 추측은 사실로 드러난다.
"하하하, 백강호 선수가 경기할 때 모습을 보면 총명한 선수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제 생각이 옳았네요. 맞습니다. 구단 차원에서 백강호 선수에게 제안할 일들이 있습니다. 물론 백강호 선수에게 손해가 되는 일은 아닐 겁니다. 아주 도움이 되는 일들이죠."
허 실장은 강호의 총명함을 칭찬하며 환하게 웃어 보인다.
정규 시즌 일정이 끝나고, 구단 차원의 프로모션 행사를 통해 허 실장과 강호가 접촉했던 일이 종종 있었다.
그 때도 강호의 머리가 좋다는 것을 느꼈지만, 허 실장은 강호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그의 머리가 단지 스포츠 선수로만 머물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총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공부를 했어도 좋을 머리인데, 언젠가는 우리 백강호 선수의 총명함이 사람들에게 알려질 날도 오겠지.'
허 실장은 강호의 총명함이 언젠가는 빛을 발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다가 스스로의 생각에 실소를 머금고 만다.
'벌써 알려진 셈인가? 4할 타율에 75홈런이나 때린 타자를 어리석다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그런 엄청난 기록에는 백강호 선수의 이런 총명함도 포함이 되어 있는 거잖아?'
허 실장은 스스로의 생각을 정정하며 피식 웃음 짓는다.
강호는 그런 허 실장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응시하는 중이었다.
"우리 백강호 선수에게 기쁜 소식을 전달할 생각에 웃음이 나네요. 바쁘시니까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구단에 백강호 선수와의 광고 체결을 원하는 문의가 줄을 잇고 있어요. 몇몇 업체는 이미 백강호 선수와 만난 적도 있다고 하던데요?"
허 실장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강호는 '아'하는 짧은 탄성을 내뱉는다.
며칠 전, 사직동 집 근처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이상한 사람들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대체 어떤 광고회사 직원이 남의 집 앞에서 계약서를 들고 기다린단 말이야? 당연히 사기꾼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 때의 강호는 저녁 아홉 시가 훌쩍 지난 시간에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 강호의 앞을 가로막고 선 사람은 본인을 광고 기획사 실장이라 설명했다.
함께 광고 계약 체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냐고 물어온 그에게 강호는 '죄송합니다'라고 짧게 답한 후 곧바로 집으로 들어갔었다.
그가 정상적인 기획사 실장이라면 먼저 전화 연락부터 하고, 방문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오해는 사실 강호가 훈련에 전념하느라 부재중 전화 중에 모르는 번호를 확인해보지 않아 생긴 결과였고, 결국 광고 기획사들의 발걸음은 자이언츠 구단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기획실 실장인 허 실장도 최근 업무가 바빴지만, 강호의 일은 뒤로 미루지 말라는 지정만 사장의 지시로 인해 이렇게 경기장을 찾게 된 것이다.
허 실장의 물음에서 상황을 모두 유추해낸 강호는 맥 빠진 웃음을 지어보이며 이렇게 대꾸한다.
"기억납니다. 설마 집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업체 사람일 줄을 몰랐습니다. 그 사람들이 허 실장님을 귀찮게 한 겁니까?"
"하하, 저를 귀찮게 한 건 아닙니다. 사장님을 조금 피곤하게 했지요. 구단도 결국 사업체다보니 다른 기업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는 거거든요. 백강호 선수께서 구단의 입장을 이해해 주셔서 몇 개 업체와는 계약을 해주시는 것이 좋겠다는 게 구단의 솔직한 바람입니다. 필요한 법률 지원은 구단에서 모두 해드릴 겁니다. 구단에서는 백강호 선수의 계약 체결을 도와드리면서 수수료를 요구하지는 않을 거예요.
허 실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강호를 향해 파일 하나를 건네준다.
강호는 허 실장이 건네준 파일을 펼쳐보며 눈이 번쩍 뜨이고 있었다.
'5억?!'
엄청난 금액에 순간 할 말을 잃고 만다.
1년 계약에 5억의 모델료라니?
이 정도면 연예인 중에서도 톱스타만 받을 수 있는 대우이지 않은가.
강호는 자신이 이 정도 규모의 모델료를 받을 가치가 있는 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했다.
그 사이 허 실장의 말이 이어진다.
"대충 열 개 업체만으로 추렸습니다. 그 중에서 스포츠 용품 업체는 3개인데 우리 백 선수가 적당한 업체 하나를 선택해 주시면 됩니다. 이건 조언으로 드리는 말씀인데 지금 백강호 선수와 프로모션 중인 스포츠 용품 업체도 있으니까 그 분야로는 하나 정도만 추가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 쪽 업계에도 상도덕이라는 게 있거든요. 아, 그리고 나머지 라면 업체나 빙과류 업체, 과자, 식품 쪽은 제가 알아서 추렸으니까 원하시면 모두 다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강호는 허 실장의 말을 들으면서 손에 쥔 계약 제안을 찬찬히 살핀다.
허 실장의 말대로 3개의 스포츠 용품 업체 중 2개를 제외하고 나머지 여덟 개의 업체와 계약을 맺는다면 그 규모만 수십 억대 규모였다.
이게 정말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가 맞는 지 의문이 들 정도로 엄청난 액수였다.
그 내용을 살피면서 강호는 스스로 드는 생각에 실소를 머금게 된다.
'이 계약을 전부 체결하면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도 밥 굶을 일은 없겠구나.'
이제 야구 인생이 시작되고 있는데 벌써부터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니.
스스로의 안일한 생각을 반성하는 동안에도 허 실장의 설명은 이어진다.
"계약을 원하시면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해 드리겠습니다. 구단 법무 팀 중에 이쪽의 전문가가 있거든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허 실장의 질문으로 인해 한국시리즈 전까지 강호의 일정은 약간의 변동을 맞이한다.
원래는 일주일 내내 팀 훈련과 개인 훈련 일정을 잡아두었던 강호였지만, 훈련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광고 촬영 계약을 맺은 것이다.
강호가 계약을 맺은 업체는 모두 여덟 곳.
그 중 전속 계약을 원하는 세 곳과의 모델 촬영은 한국 시리즈 이전으로 잡았고, 나머지 업체와의 업무 진행은 한국 시리즈 이후로 잡게 된다.
모든 업체들이 한시라도 빨리 강호와의 광고 촬영이 추진되기를 원했지만, 한국 시리즈 일정이 남아있는 강호로서는 무리 할 수는 없었다.
다른 팀의 포스트 시즌 일정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정규 시즌 우승 팀인 자이언츠의 훈련 일정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호의 최근 일정이 빡빡하게 진행되는 와중에도 팀 단합을 위한 회식 일정을 잡게 되고, 그 회식의 주관자는 다름 아닌 지정만 사장이었다.
시간과 장소는 준 플레이오프가 타이거즈의 승리로 돌아간 시점의 자이언츠 회식 자리로 이동한다.
"이렇게 우리 선수들의 얼굴을 가까운 곳에서 보게 되니 무척 영광입니다. 정규 시즌 우승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 같아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하하하!"
지정만 사장은 선수단의 회식 자리에 참석해 기분 좋은 표정으로 축배를 들고 있었다.
그가 잔을 들어 올림에 따라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모두 가득 채운 잔을 들어올린다.
"자! 우리 자이언츠의 통합 우승을 위해 건배합시다! 위하여!"
"위하여!"
지 사장의 선창에 모든 선수들이 건배를 들었고, 강호 역시 생수가 가득 든 글라스를 들어올리며 지금의 분위기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호의 곁에 앉은 문표는 강호가 술이 아닌 생수를 들이키는 모습에 약간의 불만을 드러낸다.
"강호 후배. 정규 시즌도 우승했고, 내일은 쉬는 날인데 술 한 잔은 마셔야지! 오늘 같은 날에도 술을 안 마시는 거야? 햐아~ 이거 너무 빡빡한 거 아냐?"
문표는 이미 술이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강호를 타박해 온다.
그런 문표의 발언에 근처에 앉아 있던 중석 역시 동참해 온다.
중석 역시 이미 기분 좋게 취해 있었다.
"문펴가 평소에 헛소리를 많이 해도 좀 전에 한 말은 맞는 것 같네! 우리 팀이 시즌 중에 금주를 한 이유가 뭐야? 정규 시즌 우승하려고 술을 절제한 거였잖아? 감독님이 정규 시즌 우승한 날도 회식을 미루셨을 때는 솔직하게 너무하신다는 생각도 했어. 그래도 이렇게 정규 시즌을 우승으로 끝내고 가지는 회식 자리인데 강호도 소주 한 잔 정도는 해야지!"
중석이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잔에 소주를 반쯤 따라 강호에게 건넨다.
그런 중석의 술잔을 받아든 사람은 베테랑 투수인 손명학이었다.
"어허~ 소주가 뭐야? 강호 정도 되는 선수는 술에도 클래스를 맞춰 줘야해. 내가 폭탄주로 제대로 말아줄게."
"오오~ 역시 손명학 선배가 제대로네요! 우리 강호 후배한테 제대로 한 잔 말아주십시오."
명학과 문표, 그리고 중석까지.
고참 선수들은 한 마음이 되어 강호가 회식 자리에 동화되기를 부추긴다.
근처에 앉은 캡틴 강민수도 그 생각에 동감하는지 웃는 얼굴로 강호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선수들은 시즌 내내 탄산음료조차 마시지 않던 강호가 과연 술을 마실지 궁금해 하는 표정으로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본다.
그런 상황에서 명학이 건넨 술잔을 받아든 강호.
그는 선배 선수들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며 자신의 소견을 밝힌다.
"저는 지금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술을 마시지 않을 생각입니다. 취하고 싶은 마음이 없거든요."
강호의 금주 선언에 술을 권유했던 손명학 투수가 되묻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취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니? 취하는 게 얼마나 좋은데?"
강호의 말에 되묻는 명학도 사실 더 이상 강호에게 술을 강제로 권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취기가 올라 술잔을 권하기는 했지만, 팀에 강호처럼 올곧은 선수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강호는 팀의 기둥이자 한국 야구계의 새로운 전설이 될 선수였다.
그런 선수를 술독에 빠뜨린 장본인이라는 오명을 쓰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명학의 그런 생각은 강호의 이어진 말에 확고한 결심으로 바뀌게 된다.
"저는 취하고 싶지 않습니다. 현실이 더 즐겁거든요."
강호의 뜬금없는 고백에 잠시 주변이 침묵하게 된다.
선배 선수들은 강호의 말에 무언가 반박할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강호의 말에 허점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강호가 올 시즌에 기록한 시즌 기록은 즐겁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엄청난 구석이 있었다.
시즌 4할 4푼 5리의 타율에 75홈런, 216개의 안타, 90도루, 284타점, 204득점을 올린 괴물에게 취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리 없었다.
그 사실을 직시하게 되자 강호에게 술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 확 달아나 버린다.
"이 괴물 같은 놈! 너랑은 술 안 마시련다."
결국 강호의 한 마디에 토라져 버린 선배 선수들은 술이 더 달다는 생각을 가지며 빠르게 술잔을 비워 나간다.
그것은 후배 선수들도 마찬가지여서 이날의 회식은 강호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회식 시작 두 시간 만에 만취한 채로 끝이 나고 만다.
그리고 회식이 끝났을 때 누군가의 외침이 모든 선수들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나는 너같은 외계인이 아니라서 현실보다 취하는 게 더 즐겁다고, 이 괴물 같은 강호 후배 님아!!"
문표의 절규에 강호를 포함한 모든 선수들이 웃음 짓는다.
자이언츠 선수단은 그렇게 정겨운 풍경을 연출해내며 한국시리즈 일정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