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311화 (31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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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날레를 장식하다

자이언츠의 정규 시즌 우승이 확정된 후 하루가 지나 있었다.

선수단과 자이언츠 팬뿐만이 아니라 부산시에 자리하고 있는 각 기업들과 부산, 경남권 출신 연예인들, 정치인들까지 자이언츠의 우승을 축하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각자의 목적은 달랐지만, 자이언츠의 창단 이후 첫 정규 시즌 우승이라는 기념비적인 사건에 흥분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특히 자이언츠의 우승이 확정 된 이후 보도 자료를 낸 부산 시장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자이언츠의 우승은 부산시의 시장된 입장으로 매우 기쁜 일입니다. 앞으로 진행될 자이언츠의 모든 일정에 시 차원에서의 적극 지원이 있을 겁니다. 단지 올해의 포스트 시즌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내년, 내후년에도 시 차원이 지원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서충식 부산 시장은 보도 자료를 통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실 그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자이언츠 우승으로 인한 시민들의 관심을 조금이나마 자신에게 돌려 다음 번 총선 때 부산을 지역구로 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의도가 좋지 않았지만, 시민들의 환심을 사기에는 충분한 코멘터리이기는 했다.

문제는 서 시장의 보도 자료를 시민들만 본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자이언츠의 구단 사장인 지정만 사장 역시 서 시장의 보도 자료를 확인하고 있었다.

팀 창단 이후 정규 시즌 첫 우승을 달성한 직후여서 몸이 열개라도 부족한 상황에서도 지 사장은 서 시장의 발언에서 포착한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이것 보게? 부산 시장이라는 양반이 우리 구단의 우승을 이용해서 포퓰리즘(populism)성 발언을 했네. 허허, 재밌는 양반일세. 허 실장. 자네는 어떻게 생각해?"

지 사장은 곁에서 함께 일정을 진행하고 있는 허 실장에게 질문을 돌린다.

바쁜 와중에도 구단에 관련된 소식들을 챙겨보던 지 사장은 우연히 보게 된 서충식 시장의 보도 자료를 통해 무언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중이었다.

혹시 곁에 있는 허 실장도 지 사장 본인이 떠올린 아이디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그런 지 사장의 기대와는 다르게 허 실장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제 생각을 물으신다면 저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어제 새벽 3시까지 야근하고 오늘 아침 일곱 시에 출근해서 피곤해 죽겠는데 무슨 생각이 있겠습니까? 굳이 한 가지를 꼽자면 퇴근 생각입니다.'

지 사장의 물음에 대한 허 실장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허 실장은 본인이 책임자로 있는 기획실의 일에 지 사장의 수행비서 역할까지 도맡고 있다 보니 최근 구단 프런트 중에서 가장 바쁜 인물로 손꼽힐 정도였다.

마음 같아서는 근처 사우나라도 가서 단잠을 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한숨짓고 만다.

'회사 생활이 다 그렇지, 뭐.'

그렇게 푸념하며 허 실장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래도 입으로는 순간 드는 생각을 꺼낼 생각이었다.

지 사장의 성격 상 아무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질 것은 뻔했기 때문이다.

"시장의 발언을 이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허 실장은 아무런 맥락 없이 그렇게 되묻고 만다.

뒤는 생각하지 않고 당장 떠오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낸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지 사장이 관심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이용해야지. 어떻게 이용하면 좋겠어?"

지 사장은 본인이 정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허 실장을 독촉한다.

그 질문에 잠시 머리를 굴려본 허 실장이 대답을 이어나간다.

"듣기로는 서 시장이 다음 총선에 출마할 거라는 얘기가 있던데, 그런 부분을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요? 서 시장이 포퓰리즘 적인 발언을 한 것은 결국 시민들의 이목을 끄려는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부산시의 유권자만 3백만 명이 넘으니까요. 이 기회에 그 표심을 조금이라도 가져오려는 생각이겠죠. 저희 구단의 우승을 칭찬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더 알리려는 속셈이니까 그런 서 시장의 생각을 역으로 이용하는 겁니다."

허 실장은 말을 하면서 자연스레 설명을 풀어나가고 있었다.

허 실장의 말은 마치 미리부터 이 일에 대해 꽤나 고심한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지만, 사실은 지 사장의 질문에 즉흥적으로 대답한 내용이었다.

말을 이어가는 허 실장 본인도 스스로의 말이 그럴 듯하다는 생각을 가질 정도였다.

'나는 천재가 아니었을까?'

유치한 생각을 해보며 지 사장의 얼굴을 살펴본다.

허 실장이 확인한 지 사장의 얼굴은 '오오~'하는 탄성을 내뱉는 듯한 얼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소리를 직접 낸 것은 아니었지만, 꽤나 감명을 받고 있는 듯했다.

왜냐하면 허 실장이 포괄적으로 설명한 내용이 지 사장의 생각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더 해봐. 구체적인 방법이 뭐가 있겠어?"

지 사장의 재촉에 허 실장은 잠시 생각을 정리해보다가 오랜 기억 속에 남아있던 한 가지 사안을 떠올린다.

'그래, 그걸로 말해보자. 어차피 내가 말한다고 해서 추진되는 내용도 아니잖아?'

허 실장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자이언츠 구단이 오랫동안 묵혀두고 있던 현안 하나를 입 밖으로 꺼낸다.

"저희 같은 기업인들은 상대에게 하나를 줄 때 본인은 세 배 이상의 마진을 챙겨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서 시장이 저희 구단을 이용하려 한 대가로."

거기까지 말한 허 실장은 잠시 말을 멈춘 채, 입술을 들썩인다.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현안을 발언하기가 부담스러워진 까닭이었다.

그러나 망설임은 잠시, 자신의 얼굴을 뚫어버릴 듯이 응시해 오는 지 사장의 눈길에 결국 입을 열게 된다.

"구장 신축을 협의했으면 합니다. 2년 전 쯤에 부산시와 검토를 하다가 무산된 적이 있는데, 그 안건을 다시 내미는 겁니다."

허 실장은 그렇게 말한 후 지 사장의 눈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과감한 심정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지 사장의 불호령이 떨어질까 우려된 것이다.

말도 안 된다며, 그게 협의가 되겠냐며 호통칠 지 사장의 모습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 사장은 허 실장의 예측과는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허 실장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리는 것이 아닌가.

"허 실장, 이 친구! 선수 다 됐구만!"

지 사장의 격한 칭찬에 허 실장은 본인도 모르게 '예에?'하고 되묻고 만다.

그런 허 실장의 반응에도 지 사장은 화통하게 웃어 보인다.

"그렇지. 그 정도는 얻어내야지! 올 시즌에 우리 구단이 벌어들인 돈이 얼만데 시에서 해주려는 지원이 도움이 되기나 하겠어? 지방 정부의 어설픈 지원은 없느니만 못해! 괜히 쥐꼬리만 한 지원받고 간섭 받지 않으려면 웬만한 일은 우리 구단 예산으로 처리하는 게 옳아! 올 시즌 수익으로 예산도 풍부한 상태고 말이야."

지 사장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사실 지 사장도 구장 신축 문제를 염두 해두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진행시키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고 여겼는데, 조금 전 허 실장의 발언을 통해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

'허 실장 같이 평범한 사람이 생각할 수 있을 정도면, 구장 신축 문제를 들고 나왔을 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을 거야. 시기도 적절하고, 서 시장 본인의 발언도 있고. 특히나 2년 전에 검토를 해본 적이 있다고 하니까 여론을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아!'

그렇게 생각한 지 사장은 곧바로 행동에 나선다.

사직구장은 역사와 전통이 깊은 경기장이기는 하지만, 그만큼이나 낡았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관중석의 의자는 좁고 불편했고, 편의 시설도 낡아 있었다.

몇 년 전 전광판을 새로 설치하기는 했지만, 교체한 전광판을 제외한다면 모든 시설이 낙후되어 있는 상태였다.

지 사장은 이 기회에 그 모든 것들을 바꿀 결단을 내린다.

'이건 기회야! 서 시장 같은 정치인에게는 일회성 포퓰리즘 발언이겠지만, 나 같은 기업인에게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좋은 기회야. 이번 기회를 반드시 붙잡아서 사직구장을 부산시의 새로운 랜드 마크로 만들어야겠어!'

지 사장은 그렇게 판단을 내리며 곧바로 걸음을 옮긴다.

"어, 어~ 어디 가십니까? 10분 후면 회의 시작됩니다."

"지금 회의가 중요해?! 이건 시간 싸움이라고! 지금 당장 서 시장 보도 자료에 호응하는 구단 보도 내보내고, 우리 구단에 호의적인 기자들 당장 불러 모아! 2년 전에 부산 시와 구단 신축 협의할 때 준비했던 자료들 가져오고, 태스크포스 팀 꾸려서 당장 경기장 실질 조사에 들어가! 아니, 그 전에 신축에 필요한 예산부터 책정하고."

"네, 네! 예산 책정이요."

"시간이 없어! 서 시장의 발언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구장 신축 문제를 공론화시켜야 하니까! 일해라, 일! 우리 사직구장 한 번 제대로 다시 만들어보자!"

지 사장은 그렇게 공언하며 구장 신축 문제를 위해 바쁘게 행동에 나선다.

그런 지 사장의 곁에는 허 실장이 함께하고 있었고, 잠시 후 서 시장의 보도 자료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또 다른 몇 개의 기사들이 자이언츠 팬들의 이목을 이끈다.

[우승 후의 거인의 행보, 사직구장 신축 예산안 편성]

[사직구장 신축 계획, 돔이냐? 개방형이냐?]

자이언츠 팬들은 정규 시즌 우승이 달성된 바로 다음 날에 거론되기 시작한 기사들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낸다.

일부 부정적인 여론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자이언츠 구단의 구장 신축 의지에 적극적인 찬성의 의사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런 여론들은 오후가 되었을 때 온라인상을 더욱 뜨겁게 달구어 놓고 있었다.

마지막 경기 준비에 여념이 없던 자이언츠의 일부 선수들 역시 이 소식을 전해듣게 된다.

장소는 선수들이 경기를 준비 중인 사직구장의 그라운드 위로 이동한다.

"강호 선배님, 기사 보셨습니까? 어쩌면 내년에 우리 구장 신축할 수도 있다는 데요?"

백업 좌익수 한택근의 말이었다.

택근은 훈련 중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이런저런 구단 기사들을 검색해본 모양이었다.

팀이 정규 시즌 우승을 달성한 다음날이었기에 구단 기사에 대한 반응을 궁금해 하는 택근의 모습은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강호는 그 말에 동조하지 않으며 수비 훈련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안 봤어."

"선배님, 지금 난리도 아닙니다. 댓글 읽어보니까 우리 구단 사장님이 시청으로 가는 모습을 봤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에요. 사장님이 직접 움직일 정도면 꽤나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택근의 말에 강호는 잠시 수비 훈련을 멈추고, 택근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강호는 좀 전까지만 해도 택근의 말에 답하면서도 시선은 자신을 향해 굴러오는 야구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택근의 말에 제대로 대답하기 위해 잠시 훈련을 멈춘다.

강호의 단호한 성격과 야구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택근으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아, 번지수를 잘못 찾았네. 내가 왜 강호 선배한테 왔을까? 차라리 문표 선배한테 가서 이야기할 걸.'

택근은 자신을 응시하는 강호의 눈빛에 후회를 하게 된다.

하지만 늘 그렇듯 후회는 늦은 것이었다.

택근을 향한 강호의 당부가 쏟아진다.

"택근아, 오늘 시즌 마지막 경기다. 아무리 팀 우승이 확정됐어도 긴장은 유지해야지. 우리가 프런트도 아니고, 구단이 결정할 구장 신축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어. 어차피 당장 진행 될 사안도 아니잖아?"

"네, 그렇기는 하죠. 생각해보니까 예산 문제도 있고, 내년에도 경기는 해야 되니까 내년 시즌에 신축 공사에 들어가는 건 무리겠네요."

"그래, 아직 우리가 관심을 가질 문제가 아닌 거야. 그러니까 경기 외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보다 오늘 경기에 집중하자. 그런 이야기는 오늘 경기가 끝난 후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생각보다 부드러운 어조로 말해오는 강호의 태도에 택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실책을 인정한다.

강호는 그런 택근에게 웃어 보이며 여전히 부드러운 어조로 당부하는 모습이었다.

"택근이 너도 오늘 경기에 출장할 확률이 높아. 그러니까 경기 준비 잘 하고, 파이팅 하자."

강호는 그렇게 말한 후 다시 수비 훈련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어느새 강호도 캡틴 강민수나 다른 선배들처럼 후배들을 부드럽게 다독일 정도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시즌 전만 해도 자신의 생존 경쟁에 불안해하던 강호는 시즌이 끝날 무렵, 팀을 대표하는 거인으로 성장해 있었다.

강호의 이런 변화를 2군 시절부터 지켜봐온 택근으로서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강호 선배 말이 옳아. 구장 신축 문제가 지금의 나랑 무슨 상관이 있겠어? 그런 일은 구단이 알아서 하는 거고, 선수인 나는 경기에만 집중하도록 하자.'

택근도 강호의 말에 100%동감하고 있었다.

다만 오늘 경기가 올 시즌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하니 괜히 긴장이 되어 그 긴장을 좀 풀어볼까 대화 주제를 꺼내본 것이었다.

'강호 선배는 긴장이 전혀 안 되는 모양이네. 역시 대단한 선배라니까.'

택근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글러브를 찾아 손에 쥔다.

그러면서 올 시즌 한국 야구 역사의 정점을 찍은 강호의 모습 이면에는 이토록 야구를 신성하게 여기는 야구에 대한 강호의 진심이 결과로 드러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그러고 보니까 대우가 강호 선배랑 원정 숙소를 같이 쓰면서 성적이 좋아진 것도, 선배들이 강호 선배 주변에서 항상 머무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택근은 속으로 질문을 던지며 훈련에 몰두하고 있는 강호의 모습을 시야에 담는다.

어쩌면 저 모습이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아야하는 야구 선수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그러면서도 조금 전 강호가 했던 말 중에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내가 오늘 경기에서 출장할 확률이 높다고? 좌익수 자리에는 시즌 30홈런을 때린 스팅도 있고, 스팅이 아니어도 외야수 자리에는 공백이 없는 상황인데. 강호 선배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택근은 문득 강호가 해준 말에 의문이 들었다.

좌익수 자리는 외국인 선수인 스팅과 현재 중견수를 보고 있는 유성철이 경쟁 중이다.

유성철은 시즌 내내 중견수와 좌익수를 오고가고 있었는데 베테랑 중견수인 전준오가 라인업에 들었을 때는 좌익수를 책임지고, 그것이 아닐 때는 주로 중견수를 전담하고 있었다.

시즌 3할의 타율과 100득점을 기록하고 있는 유성철이 예비 멤버로 있는 좌익수 포지션에 택근 본인이 파고들 틈이 있단 말인가.

'어렵지 않을까? 우리 팀의 우승이 확정됐다고는 해도 감독님의 성격을 고려해 보면 오늘 경기에서도 주전 선수들로 라인업을 꾸리실 것 같은데.'

택근은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 경기에서 자신의 출장 가능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었을 때 택근은 강호의 예측대로 주전 좌익수로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파핫!

그라운드에 몸을 날리는 수비로 타구를 막아낸 택근은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덕아웃으로 걸음을 옮긴다.

8회 초, 9대 2로 자이언츠가 크게 앞선 상황에서 나온 호수비 장면이라 큰 호응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관중석을 가득 채운 홈팬들은 택근의 호수비를 칭찬해 주고 있었다.

"잘 했다, 한택근!"

"수비 좋네! 내년에는 주전 경쟁가자!"

택근은 기분 좋은 팬들의 격려 속에 덕아웃으로 들어선다.

홈팬들의 반응으로 강호가 왜 자신의 출장을 확신했는지 조금은 깨달을 수 있었다.

'축제같은 느낌이다. 감독님의 내심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이런 팬들의 분위기를 예측하고 신인 선수들 위주로 라인업을 짜신 게 아닐까?'

택근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매사에 철두철미한 손 감독이라면 오늘의 경기도 그냥 버리지는 않을 거라는 예측을 했었다.

그런데 손 감독은 그것을 넘어 오늘 경기를 통해 신인 선수들을 선보이며 팬들에게 내년 시즌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서도 경기를 크게 앞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또한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한 선수의 활약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공수가 교대되고, 팀이 크게 앞선 상황에서 선두 타자로 타석에 선 타자.

지금 사직 구장은 그 선수의 이름을 연호하는 목소리로 가득차고 있었다.

"백강호! 날려라!!"

팬들의 목소리에 그라운드의 공기가 떨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택근은 팬들의 일체된 목소리에 전율이 돋고 있었다.

그 엄청난 환호와 함성, 강호를 향해 쏟아지는 팬들의 기대는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광경이었다.

강호는 그런 부담감을 등에 안은 채 오늘 경기에서 총 세 개의 안타를 때려내었다.

그로 인해 만들어진 타점으로 자이언츠는 경기의 분위기를 쉽게 가져올 수 있었고, 8회 말이 된 지금에는 강호에게 단 하나의 기대를 가지는 팬들이었다.

"날려라!!!"

"사이클링 가자!!"

팬들은 각자의 기대를 담아 응원의 함성을 내지른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강호의 이번 타석에서 홈런이 터져 나오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앞선 타석에서 1, 2, 3루타를 모두 때려낸 강호는 사이클링히트에 홈런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태였다.

경기는 막바지였고, 자이언츠가 크게 앞선 상황이라 라이온즈 배터리가 강호를 고의사구로 내보낼 명분은 전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벤치에 선 채로 강호의 타석을 지켜보는 택근 역시 팬의 입장이 되어 강호의 홈런을 응원하게 된다.

"날려라!!"

강호를 향한 택근의 함성이 자이언츠 덕아웃을 가득 채운다.

그렇다고 해서 선배 선수들이 택근을 나무라지는 않았다.

다른 모든 선수들 역시 강호의 홈런을 응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호 후배! 날려!!"

"강호야, 마음먹고 휘둘러! 하나만 노려!"

"75호 가자!!"

자이언츠 덕아웃에 자리한 모든 선수들과 심지어 코치들까지 한 마음이 되어 강호의 승부를 응원한다.

하지만 그런 덕아웃의 응원은 강호에게 닿지 않고 있었다.

강호는 오직 상대 투수와의 승부에만 집중하고 있었고, 덕아웃의 응원도, 사직구장을 뒤흔드는 팬들의 목소리도 지금의 강호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파핫!

역동적인 와인드업 동작과 함께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난다.

그와 동시에 강호의 배트가 움직인다.

킥킹 동작을 위해 떠있던 왼발이 타석에 닿는 것을 시작으로 테이크백 동작에 들어갔던 강호의 몸이 급격한 회전을 시작한다.

꽈드득!

강호의 스윙 장면에서 마치 근육이 뒤틀리는 듯한 소음이 들리는 듯 하다.

그 과격한 스윙 동작에 무언가를 직감한 라이온즈의 포수가 멈칫하는 사이, 팬들의 뜨거운 함성을 꿰뚫는 타격음이 사직구장을 관통한다.

따악!!

공을 부셔버릴 듯한 과격한 타격음이 잠시 사직구장을 침묵하게 하고, 모든 이들의 시선이 외야 높은 곳으로 떠오른 타구를 향해 이동한다.

그 사이 강호는 배트를 내려놓으며 1루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1루를 향한 걸음을 떼며 타구 방향을 끝까지 살피던 강호는 하늘을 향해 오른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 모습에 사직구장을 찾은 모든 이들이 함성으로 응답하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팬들의 뜨거운 함성이 타구의 결과를 말해주고 있었다.

강호가 쏘아올린 정규 시즌 마지막 타구는 홈런이 되고 있었고, 이 홈런포로 강호의 2019년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는 사이클링히트로 장식되고 있었다.

75호 홈런.

강호의 2019년 시즌 마지막 홈런은 새로운 전설의 등장을 알리는 가장 화려한 피날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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