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310화 (310/335)

0310 / 0335 ----------------------------------------------

피날레를 장식하다

자이언츠의 창단 후 첫 정규 시즌 우승으로 들뜬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은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 스스로가 이루어낸 우승 당시의 순간을 가족들과 이야기하느라 웃음꽃을 피운다.

강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형인 강수와 함께 평소에 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 자신의 방으로 들어선 강호.

정규 시즌 우승 확정 후 처음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오늘 경기 승리의 해결사 역할을 한 강호였기에 각종 인터뷰와 행사에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해야만 했다.

그 바람에 자정이 다 된 지금 무렵에는 상당한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강호는 별다른 감상이나 개인적인 회포를 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곧바로 잠자리에 들 생각이었다.

'아직 한 경기가 남아 있으니까.'

마음을 다잡기 위해 내일 있을 올 시즌 마지막 경기에 대한 각오를 다진다.

하지만 각오는 각오였고, 몸이 피곤한 것은 사실이라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이때의 시간은 자정을 10분 앞둔 시점이었고, 다른 것을 생각하기에는 오늘 하루가 지나칠 정도로 길었다.

그래서 강호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잠시 잊고 말았다.

강호가 잊고 있던 것은 정확히 자정이 되어서 그를 마지막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2019프로야구 프리마켓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강호는 프리마켓으로 이동해 있었다.

분명 침대 위의 강호는 잠들어 있었지만, 프리마켓으로 이동한 강호는 또렷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끝난 게 아니었어?"

강호는 놀란 얼굴로 자문하고 있었다.

지난 방문으로 프리마켓의 행운이 끝난 줄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다시 이렇게 프리마켓으로 오게 될 줄이야.

아직 경황이 없는 강호의 시야에 방문 때마다 보게되는 메시지들이 표시되고 있었다.

[사용자 백강호가 입장합니다.]

[4,920exp를 획득하였습니다.]

[6,370mp를 획득하였습니다.]

[훈련과 경기 결과로 인해 선구안이 +0.4보정됩니다.]

[훈련과 경기 결과로 인해 수비가 +0.3보정됩니다.]

[훈련과 경기 결과로 인해 송구가 +0.5보정됩니다.]

[훈련과 경기 결과로 인해 멘탈이 +0.8보정됩니다.]

[오늘 방문 후 프리마켓이 종료됩니다.]

익숙한 문구로 시작되는 메시지들은 마지막에는 낯선 글자들로 끝이 나고 있었다.

오늘 방문 후 프리마켓이 종료된다는 말, 그 문장을 통해 강호는 오늘 방문이 프리마켓에 들어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라졌어."

강호가 시선을 두고 있는 곳은 매번 올 때마다 확인했던 숫자가 있던 곳이었다.

지난 번 방문 때 17이라고 각인돼 있던 숫자는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달라진 점은 또 있었다.

방대한 매장 내부의 모든 아이템 진열대들이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매장은 완전히 텅 비어있었다.

더 이상 구매할 것도, 받을 수 있는 것도 모두 사라진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방문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은 곧 이어진 메시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사용하지 않은 mp들은 스탯으로 자동 전환됩니다.]

처음 접하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오늘 방문 이후에는 아이템을 살 수도, 사용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보유하고 있는 모든 mp들을 최대치를 찍지 않은 스탯들에 자동 분배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상태창을 열어본다.

다행히도 프리마켓의 효과가 적용되고 있어 상태창을 확인하는 것은 아직 가능했다.

'하지만 잠시 후가 지나면 상태창을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해 지겠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프리마켓 시스템은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거야.'

강호는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해보며 시야에 표시되는 스탯들을 확인한다.

백강호(24)

포지션:SS

컨  택:99.9[max]

파  워:99.9[max]

선구안:94.9

주  력:99.9[max]

수  비:95.8

송  구:94.2

멘  탈:96.3

스탯들이 골고루 상승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헤아려보니 exp로 전환하는 것과 동일한 전환 비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mp포인트를 다 사용하지 말고 남겨둘 걸 하는 후회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강호에게 그런 후회는 순간일 뿐이었고, 크게 아쉬워하지는 않는다.

대신 4,920exp로 어떤 스탯을 증가시킬 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강호는 피식 웃음 지으며 모든 포인트를 사용해 버린다.

그동안 잘 투자하지 않았던 한 가지 스탯에 남아있는 모든 포인트들을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앞으로 시작될 본격적인 야구 인생을 위해서 그가 선택한 스탯은 '멘탈'이었다.

백강호(24)

포지션:SS

컨  택:99.9[max]

파  워:99.9[max]

선구안:94.9

주  력:99.9[max]

수  비:95.8

송  구:94.2

멘  탈:98.7

강호는 최종적으로 완성된 스탯들을 기억하기 위해 일곱 가지 스탯들을 곱씹어 본다.

이제 다시는 상태창을 열어볼 수가 없기 때문에 현재의 스탯을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 때 시야가 점점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새하얗게 빛이 나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강호 본인의 손바닥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한 빛 무리에 휩싸이게 된다.

프리마켓의 문이 닫히고 있는 것이다.

강호는 양손으로 눈을 가린 상황에서 듣게 된 시스템의 마지막 목소리를 접하게 된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이제껏 들어왔던 시스템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착각이 들게 하는 목소리는 강호를 향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사용자 백강호를 등록 해제합니다.]

말의 내용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프리마켓 종료에 앞서 강호를 사용자에서 등록 해제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강호는 그 목소리에서 익숙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설마."

강호는 기억을 더듬으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어렴풋이 짐작하려 했다.

하지만 점점 프리마켓에서 멀어져 가는 의식으로 인해 기억을 더듬는 행위 자체를 중단당하고 만다.

강호가 프리마켓에서 완전히 퇴장하기 전, 달라진 시스템의 목소리는 그를 향해 이렇게 말해오고 있었다.

[행운을 빕니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강호는 그 목소리에서 자신을 향해 말해오는 이의 정체를 깨닫게 된다.

"당신...!"

강호는 상대를 향해 소리치려 했지만, 어느새 그의 의식은 프리마켓을 떠나 현실 세계로 돌아와 있었다.

"아!"

강호는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깨어난다.

주변은 어두웠고, 강호가 누워있는 곳은 사직동 자신의 방 침대 위였다.

눈을 찌르는 듯한 빛 무리는 사라져 있었다.

강호는 잠에서 깨어난 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뚜렷했던 기억 하나가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분명 목소리를 들었는데...?"

강호는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미간을 찌푸렸지만, 프리마켓에서 나온 과정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상태창을 불러보지만, 시야에는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고 있었다.

강호는 사실을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해 입 밖으로 단어를 꺼내어 본다.

"상태창."

소리 내어 말해 보아도 시스템은 대답이 없었다.

대신 갑작스레 방문을 연 형이 시스템을 대신하여 강호의 부름에 답해오고 있었다.

"강호야, 무슨 일이야? 비명 소리 들리던데?"

형은 그렇게 물어오며 꺼져 있던 조명 스위치를 찾아 켠다.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자 강호는 미간을 찡그리며 형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려 하다가 갑작스레 심장을 옥죄는 불안감에 급히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다.

'혹시 다 사라져버린 건 아니겠지? 한 순간의 꿈이었던 것은 아니겠지?'

강호는 프리마켓으로 인한 모든 기억들, 우승의 위업을 달성한 기억들이 한순간의 꿈이었을까봐 불안해진다.

강호를 불안하게 만드는 이유는 프리마켓의 마지막 기억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프리마켓과 관련된 모든 기억들이 희미하게 흩어지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고 있었다.

'그대로다!'

화장실에 도착해 전신 거울을 확인한 강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혹시나 시즌 초, 비루했던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 있을 것을 우려했는데 온 몸을 장식한 우람한 근육들은 그대로였다.

문득 주먹을 쥐어보니 전완근 가득 느껴지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강호야, 왜 그러는 거야? 몸이 안 좋아?"

강호는 화장실 입구에 선 채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형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통해 프리마켓이 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지만, 확신을 가지기 위해 형에게 소리쳐 묻는다.

"우승한 거 맞지?!"

"뭐?"

"형, 나 우승한 거 맞지? 우리가 우승한 거 맞지?"

갑작스럽게 소리치며 다가오는 동생의 모습에 위압감을 느낀 강수는 부지런히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몇 시간 지났다고 그걸 까먹어? 자이언츠가 우승한 지 아직 하루도 안 지났어. 꿈자리가 안 좋았던 모양이네."

강수의 이어진 말에 강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혹시나 프리마켓이 문을 닫으며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우려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불안감이 프리마켓의 마지막 기억이 사라진 것과 연결되어 강호에게 두려움을 주었던 것이다.

형인 강수는 불안한 표정을 짓는 강호의 어깨를 두드려 준다.

그러면서 염려되는 표정으로 제안하고 있었다.

"강호야, 몸이 안 좋으면 내일 경기는 라인업에서 빼달라고 그래. 어차피 팀도 우승했는데 내일 경기는 쉬어도 되는 거잖아? 한국 시리즈도 생각해야지."

형의 당부에 강호는 그제야 완전히 정신을 차린다.

'달라진 게 아니구나! 달라진 건 프리마켓이 사라졌다는 사실뿐이야. 프리마켓으로 얻은 모든 것들은 여전히 내게 남아있어!'

강호는 빠르게 정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본인의 기억이 훼손된 사건으로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멘탈 스탯에 마지막 포인트를 배분한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강호는 문득 기억에 남은 멘탈 수치를 읊조려 본다.

"구십팔 점 칠."

"응? 뭐가 구십팔 점 칠이야?"

"아니야, 형. 나는 괜찮으니까 형은 이제 자. 내일 경기 보러오려면 형도 일찍 자야지."

강호는 자신의 읊조림에 물어오는 형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한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선 후 활짝 열린 방문을 닫는다.

탁.

방문이 완전히 닫힌 것을 확인한 강호는 책상에 앉아 볼펜과 메모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보았던 상태창의 기억들을 메모지에 적어나간다.

컨  택:99.9

파  워:99.9

선구안:94.9

주  력:99.9

수  비:95.8

송  구:94.2

멘  탈:98.7

그렇게 일곱 개의 모든 스탯들을 메모지에 적고나니 자신이 일 년 동안 경험했던 것이 꿈일 수 없다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이 메모지에 적힌 숫자들이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강호는 메모지에 적혀 있는 숫자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서랍을 열어 깊숙한 곳에 메모지를 넣어 둔다.

그리고는 책상에 앉아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풀어내기 위해 기억을 더듬는다.

"뭐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분명 프리마켓에 들어 선 순간의 일과 스탯을 분배한 후의 일까지도 기억이 나고 있었지만, 자신이 어떻게 프리마켓에서 나왔는지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분명 마지막 순간에 시스템의 목소리를 통해 어떤 말을 들었던 기억은 나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이었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아.’

강호는 결국 기억을 더듬는 것을 그만두고 다시 잠자리에 들기로 한다.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을 보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면서도 침대에 누워 여전히 기억을 더듬는 까닭은 냉철한 이성과는 다르게 심장이 거세게 뛰고 있는 이유였다.

강호는 지금 자신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감정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끝내 그것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아버린다.

그런 강호의 귓가에 닫힌 문틈 너머로 들려오는 형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강호야, 진짜 괜찮은 거지? 그럼 내일 경기도 안 빠지는 거지? 형은 너만 믿고 친구들이랑 사직구장에 야구 보러 갈게! 내일 야구장에서 보자!"

강수는 닫힌 문밖에서 그렇게 말해오고 있었다.

강호가 형의 목소리에 피식 웃음 짓는 사이 문밖에서는 인기척이 사라지고 있었다.

동생의 상태가 걱정이 된 강수는 괜한 말로 말을 걸고는 있었지만, 이 이상의 걱정은 하지 않기로 한 모양이었다.

아직은 강호에게 남은 경기가 있었기 때문에 선수 본인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 같았다.

'형 답다.'

강호는 사려 깊은 형의 행동에 미소 지으며 천천히 잠이 든다.

강호의 감정을 격렬하게 들끓게 만들었던 프라마켓의 마지막 목소리는 그렇게 강호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간다.

그리고 또 다시 시간은 지나 강호와 자이언츠의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