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309화 (309/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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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보지 않은 편지

10월 5일 토요일, 자이언츠와 라이온즈 간의 사직 경기가 끝났을 때 부산 전역은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시민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던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은 채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각자의 표현법은 달랐지만, 시민들을 관통하는 공감대는 두 가지였다.

"우승이다! 우리가 우승했어!!"

누군가 크게 내지른 목소리를 통해 화합된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우승, 그리고 우리라는 단어.

그동안 수십 년이라는 세월동안 함께 응원하던 자이언츠가 처음으로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는 공감은 부산에서 살아가는 모든 시민들을 하나로 만들었다.

설령 각자의 삶을 찾아 부산을 떠나 있는 사람들도 그 감정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사는 환경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른 많은 이들을 함께 호흡하게 만든 것은 결국 TV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함께 기뻐하는 선수들의 모습이었다.

TV속 선수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이 달성한 위업을 뜨겁게 자축하고 있었다.

"이거 진짜야?! 진짜 우리가 우승한 거야?!"

지명타자 채중석은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큰 소리로 되묻기도 했고.

"엉엉엉, 우승이라니. 어서 그라운드에 굴러다니는 야구공들 다 챙겨! 이거 다 우승 기념품이라고!"

문표는 굵은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이 순간을 기념할 수 있는 물건들을 간직하려 했다.

"여보!! 나 여기 있어! 우리가 우승했어!"

베테랑 투수인 손명학은 관중석의 아내를 향해 양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고.

"고생했다! 이 징그러운 놈들아! 우리가 우승했다고!!"

올 시즌 주전 외야수로 자리 잡은 유성철은 2군 시절을 함께했던 후배들을 부둥켜안으며 눈물을 흘린다.

선수들과 함께 우승의 현장을 즐기고 있는 코칭스태프 역시 아이 같은 모습으로 지금의 기쁨을 나눈다.

이 모든 광경들. 선수들과 코치들, 자이언츠 팬들이 하나 되어 이 순간을 기념하는 중심에서 홀로 조용히 미소 짓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됐다.'

손 감독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바로 지금의 순간을 위해 10년이 넘는 세월을 2군 지도자로 머물러 있던 그였다.

시즌 초, 강호의 비상을 지켜보며 어쩌면 올 시즌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여겼던 꿈같은 바람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기쁨을 표현하는데 다소 서툰 손 감독도 지금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환하게 웃음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손 감독을 향해 팀의 캡틴인 강민수 선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들 뭐하는 거야? 감독님 잡아라!! 헹가래다!"

민수가 외친 '헹가래'라는 말에 울고, 웃고, 기뻐하던 선수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캡틴의 목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문표가 손 감독의 왼 쪽 팔을 붙들었고, 두 번째로 나선 강호가 손 감독의 오른 팔을 붙든다.

그 후에는 한꺼번에 몰려든 선수들이 손 감독을 들어 올려 하늘 높이 던져 올린다.

"와아아~~"

선수들은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손 감독을 다섯 번이나 헹가래치고 있었다.

손 감독이 '이놈들아!'라고 큰 소리를 내고 나서야 선수들은 웃으면서 그를 바닥에 내려준다.

헹가래의 후유증으로 비틀대는 손 감독의 오른 편에는 강호가, 왼편에는 문표가 그의 몸을 받쳐주고 있었다.

손 감독은 자연스레 두 선수의 어깨에 양 팔을 올려놓았고, 그 모습은 마치 환하게 웃는 손 감독이 강호와 문표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장면처럼 그려진다.

강호와 문표 역시 밝게 웃고 있었고, 주변의 모든 이들 역시 환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라 느낀 현장 사진 기사가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린다.

찰칵.

셔터 누르는 소리와 함께 그 장면은 자이언츠의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1975년 실업 야구단으로 창단하고, 1982년 프로 야구단으로 전환한 이후 역대 어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도 달성해내지 못했던 자이언츠의 정규 시즌 우승은 그렇게 2019년 10월 5일 되어서야 한국 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었다.

이 날을 시작으로 자이언츠는 한국 야구사에 없었던 새로운 위업을 달성해 나가게 된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 사실을 예측한 이는 많지 않았고, 당사자인 선수들 역시 우승을 달성한 현재의 순간에 집중할 뿐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무려 1시간 넘게 계속된 축제의 현장을 떠난 선수단에게 구단에서 회식 자리를 제안했지만, 손 감독은 구단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한다.

"아직 정규 시즌 종료까지 한 경기가 남았습니다. 회식 자리는 정규 시즌이 끝났을 때 가졌으면 합니다."

정중하게 밝힌 손 감독의 거절 의사에 지정만 사장 역시 빠르게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달성하지 못한 정규 시즌 우승을 이루어 냈음에도 여전히 내일의 경기를 준비하는 손 감독의 모습에서 지 사장은 내년 시즌의 자이언츠를 더욱 기대하게 된다.

'내년에도 우리 자이언츠는 다시 또 날아오르겠구나.'

지 사장은 그렇게 확신을 가지며, 기분 좋게 선수단을 놓아준다.

그 후 선수들은 샴페인으로 흠뻑 젖은 유니폼을 갈아입은 후 이 기쁜 순간을 가족들과 공유하기 위해 경기장을 나선다.

그런 선수들을 향해 경기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자이언츠 팬들의 뜨거운 함성이 쏟아진다.

"잘했다, 자이언츠!!"

"고생많았어요! 우승 축하합니다!"

"손 감독님, 감사합니다!"

"백강호가 제일 잘 했다!"

"다른 선수들도 잘 했습니다!"

팬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선수들은 그런 팬들의 함성에 고개를 숙이며 성원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달한다.

그 때 다른 선수들과 함께 고개를 숙인 문표의 귓가에 예상하지 못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최문표 선수! 팬이에요! 저랑 결혼해 주세요!"

미성의 목소리는 분명 문표를 부르는 젊은 여자 팬의 목소리였다.

문표는 감사 인사를 위해 숙이고 있던 고개를 얼른 쳐들며 소리를 내지른 여성 팬을 향해 대꾸의 목소리를 높인다.

"정말? 내 팬이라고요? 어서 혼인 신고하러 갑시다!"

절반의 감동과 절반의 장난기를 담은 문표의 대꾸에 사직구장은 웃음바다가 된다.

강호 역시 문표의 말에 웃음 지으며 경기 내내 쌓여있던 긴장감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팬들을 향한 감사 인사가 끝나고, 선수들 모두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할 무렵 강호는 자신을 향해 환하게 미소짓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있었다.

"강호야."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인 강수의 목소리는 많은 인파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을 뚫고 강호의 귓가에 오롯이 전달되고 있었다.

강호는 감격의 현장에서 듣게 된 형의 익숙한 목소리에 참아왔던 눈물이 눈가로 차오름을 느낀다.

'오늘은 기쁜 날이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싶지는 않아.'

강호는 콧잔등이 시큰해짐을 느끼며 복잡한 감정을 수습하려 애쓴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형과 함께 공유하고 있었던 힘들었던 기억과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강호의 머리를 헤집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이 본인의 인생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자신을 지켜주었던 기억, 그것과 함께 형이 힘들 때마다 해주었던 마법과도 같은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강호야 알겠지? 서두르지 말고, 다치지 말고.'

형의 그 말은 강호를 지금까지 지켜 준 힘이었고, 프리마켓이 준 행운의 기회를 부여잡을 때까지 야구를 포기하지 않게 해준 목소리이기도 했다.

강호는 샘솟는 눈물을 참아내기 위해 미간을 깊게 찡그려 보이며 형을 향해 빠르게 다가선다.

이대로 형의 얼굴을 계속 마주하고 있다 보면 눈물을 참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형의 얼굴을 더 이상 보지 않을 수 있도록, 형에게 다가가 그의 몸을 끌어안는다.

꽈악.

강수는 자신을 끌어안은 채 어깨를 강하게 부여잡는 강호의 행동에 잠시 놀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내 동생의 진심을 눈치 채고는 말없이 강호의 커다란 등을 어루만진다.

"고생 많았다."

형의 잔잔한 목소리를 들으며 강호는 자신이 그토록 염원하던 꿈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나는 결국 살아남았어. 영문 모를 행운으로 거머쥔 기회이지만, 이렇게 형과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야.'

강호는 여전히 형을 끌어 안은 채로 주체하기 힘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수습해 나간다.

그러면서 이제는 프리마켓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야구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다.

'내가 해낸 거야!'

앞날을 예감하는 강호의 얼굴에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형은 그런 강호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었고, 형제의 발걸음은 잠시 후 사직동 집을 향해 이동한다.

그 때 형인 강수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동생인 강호에게 아쉬움의 정체를 말할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동생이 이루어낸 승리의 순간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기에 결국 입을 다물고 만다.

'진주가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강수는 가장 기쁜 날에 기쁨을 함께 나누지 못한 막내 동생의 빈자리를 안타까워한다.

그렇게 강수의 아쉬움 속에 형제가 걸음을 옮길 무렵, 강수에게 아쉬움을 준 주인공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이 순간을 함께하고 있었다.

장소는 잠시 진주가 머물고 있는 호주의 일터로 이동한다.

진주는 인터넷 기사를 통해 자이언츠의 우승 소식을 접하고 있었고, 기사에 첨부된 사진을 통해 둘째 오빠인 강호의 환한 미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웃는 모습은 여전히 바보 같네."

진주는 자이언츠 우승의 순간, 강호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속 오빠는 자신의 기억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한 가지 익숙한 모습은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강호의 환한 미소였다.

"옛날에는 오빠의 이런 웃는 모습이 싫었었는데."

진주는 사진 속 오빠의 웃는 얼굴을 흉내내어본다.

어렸을 때는 오빠의 웃는 모습이 좋아 항상 강호의 곁에 붙어 지내고는 했다.

철이 들기 시작할 무렵에는 힘겨운 삶에 일그러진 오빠의 모습이 싫어 강호를 멀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간혹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는 강호의 모습에 애잔함을 느끼고는 했었다.

그 감정을 들키기 싫었기에 간혹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는 강호의 미소에 바보 같은 웃음이라 욕하고 비웃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 기억들이 진주의 가슴을 힘들게 한다.

"지금은 보고 싶다..."

그리웠다.

자신을 향해 웃어 보이는 강호의 환한 미소도, 자신을 항상 나무라기만 하던 큰 오빠 강수의 꾸지람마저도.

가족을 등지기 위해 떠나온 한국이지만, 이제는 그토록 싫었던 한국이 그리워진다.

진심을 말한다면 두 오빠의 얼굴이 그리웠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는 없어!"

진주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휴대폰을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들을 찾아 해내며 분주하게 시간을 보낸다.

땀 흘리며 일하다 보면 오빠들에 대한 그리운 감정이 잊혀 지고는 했다.

한국을 떠날 때는 그렇게도 미웠던 오빠들인데 지금은 왜 그들과의 기억이 추억처럼 남아 자신을 힘들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알기 싫어. 알 필요도 없고.'

진주는 그렇게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으며 부지런히 일을 해나간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업무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고,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쓸쓸히 걸음을 옮겨 도착한 숙소는 넓지는 않았지만,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그런데 유독 정돈되지 않아 보이는 부분이 한 곳 있었다.

찌그러진 박스와 그 속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편지봉투들은 깔끔하게 정돈된 실내의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

진주는 한동안 박스 안에 담긴 편지를 바라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큰 오빠가 보낸 편지는 다행히도 진주의 손에 도달해 있었지만, 과거의 기억들을 잊고 싶었던 진주는 그 편지들을 열어보지 않은 채 낡은 박스 속에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편지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생겨난다.

아마도 둘째 오빠의 환한 미소를 기사로나마 접한 이유일 것이다.

결국 오랜 시간을 고민하던 진주는 수십 통의 편지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뻗은 손에 잡힌 편지 봉투 하나를 열어본다.

투둑.

편지 봉투를 열자 그 안에 들어 있던 지폐 몇 장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진주는 바닥에 떨어진 지폐들을 가지런히 모은 후 생겨나는 의문에 인상을 찡그리며 편지지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진주야. 큰 오빠다.]

인사말은 짧은 문장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적어놓은 큰오빠의 짧은 인사말에 진주는 가슴이 찌릿하게 아파오는 것을 느낀다.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감정은 그토록 외면하고 있던 그리움이라는 감정일 것이다.

진주는 인사말로 시작되는 큰오빠의 편지를 천천히 읽어본다.

[....잘 지내고 있지?

오빠들은 잘 지내고 있다.

강호는 지금 한국에서 내놓라하는 야구 선수로 활약하고 있어.^^

강호가 표지에 실린 야구 잡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너는 야구에 관심이 없으니까 이렇게 직접 눈으로 봐야 믿겠지?

진주, 너는 어렸을 때부터 의심이 많았으니까.

사실은 이런 말이나 하려고 편지를 쓴 건 아니야.

나는 네가 외국에서 그만 고생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주었으면 한다.

이제 옛날같이 힘들게만 살지 않아도 돼.

이 오빠가 사직동에 집도 샀고, 강호도 유명한 야구 선수가 되서 CF계약도 하고 그러거든.

오빠들이 진주 너 하나만큼은 충분히 책임질 수 있어.

공부는 한국에서 계속하게 해줄 테니까.

그만 한국으로 돌아와라.]

거기까지 읽고 있던 진주의 눈가에서 결국 눈물이 흘러내린다.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오빠의 말, 그 말에 왜 이렇게 가슴이 아린 것일까.

진주는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나머지 부분을 향해 시선을 내린다.

[...이제 가족사진을 보지 않으면 진주 네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아.

이 오빠는 네 얼굴을 잊어버리는 게 많이 겁이 난다.

한국에는 네 삶이 없다고 호주로 떠나버렸을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붙잡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자존심 강한 진주는 울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심하게 흐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편지를 그만 볼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게 하면 큰오빠의 편지에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굵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편지를 끝까지 읽어 나간다.

[...네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진주 너에게 편지를 보낼 거다.

진주 네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편지 보내는 걸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네가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우편에 500달러를 동봉해서 보낸다...

...일주일 후에 다시 편지 보낼게.

진주야,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부디 호주에서도 건강하게 지내라.

2019년 8월 2일 한국에서 큰 오빠가.]

편지는 그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이 하나의 편지를 보니 큰오빠가 왜 일주일에 한 번 편지를 보내왔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큰오빠가 보내온 편지를 한 번도 읽어보지 않고 방치하고 있었기에 이제야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왜....나 한테 왜!"

진주는 한동안 '왜'라는 말만을 되풀이하며 하염없이 눈물짓고 있었다.

보고 싶었다.

매정하게 떠난 한국이지만, 이제는 그곳으로 돌아가 자신을 향해 환하게 미소 짓는 오빠들을 얼굴을 마주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에 더욱 아픈 가슴을 이겨내기 위해 주먹을 들어 가슴을 두들기는 진주였다.

진주가 울음을 멈추고, 감정을 수습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서였다.

부스럭.

한손에 든 강수의 편지를 다시 한 번 읽어본 진주는 문득 바닥에 가지런히 모아놓은 지폐들을 내려다본다.

지폐들을 내려다보는 진주의 눈가는 퉁퉁 부어 있었지만, 그녀의 입가는 묘한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바보 같은 큰 오빠, 500달러로는 비행기 표 못산다고."

진주는 그렇게 불평하며 미소 짓고 있었다.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 한국을 떠나있던 진주는 이제 오빠들의 품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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