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307화 (307/335)

0307 / 0335 ----------------------------------------------

해결사

1회 말, 자이언츠가 1점을 앞선 가운데 또 다시 나온 번트 작전은 의외의 연속이라 표현해도 무방했다.

3번 타자인 전준오의 기습 번트에 이어진 4번 타자 강호의 기습 번트.

여기까지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었는데 전형적인 슬러거 타입의 외국인 타자, 스팅의 번트 모션은 상대팀의 구상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더욱 중요한 점은 플랑 투수의 공이 던져진 이후 스팅이 배트를 걷어 들여 컨택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점이었다.

스팅의 번트 모션은 결국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 작전이었던 것이다.

딱.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이미 스타트를 끊었던 모든 주자들이 더욱 속도를 높인다.

스팅의 타구는 번트에 대비해 전진 수비를 하고 있던 라이온즈의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교묘하게 가르고 지나가는 땅볼 타구였다.

라이온즈 내야수들이 정상적인 수비를 하고 있었더라면 병살타로 연결시킬 수도 있었던 평범한 땅볼 타구가 빠르지 않은 속도로 내야를 관통해 버린다.

"돌아, 돌아, 돌아!"

3루 베이스 코치의 주문 속에 3루 주자인 전준오는 이미 홈을 밟은 상태였고, 팀 내에서 가장 주력이 좋은 2루 주자 강호 역시 홈을 향하던 속도를 천천히 줄이고 있었다.

여기에 이미 타구가 내야를 빠져나갈 당시 2루 베이스를 돌고 있던 1루 주자 황제인마저 3루 베이스를 도는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제인의 질주는 3루까지였다.

"스톱, 스톱!!"

3루 베이스 코치는 양 팔을 활짝 펼쳐 보이며 3루 베이스를 돌던 황제인을 막아 세우고 있었다.

런 앤 히트 작전으로 스타트를 일찍 끊긴 했지만, 타구는 내야를 간신히 넘은 짧은 안타였고, 이 타구에 1루 주자가 홈으로 쇄도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것을 확인시켜 주듯이 좌익수 채수호가 던진 공이 홈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타악!

채수호가 던진 공은 그라운드를 원바운드로 때린 후 이치영 포수의 미트에 빨려든다.

이치영 포수는 강호의 타석 상황에서 더블 스틸을 허용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이를 악문 상태였다.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상황을 살피던 이치영 포수의 눈에 2루 베이스를 향해 움직이던 타자 주자 스팅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은 필연적 일이었다.

파핫!

이치영 포수가 들고 있던 공은 곧장 2루수를 향해 날아든다.

포수 마스크를 벗고 마운드 근처까지 이동했던 이치영의 송구는 정확히 2루수 백상현의 글러브에 들어가고 있었다.

아직 2루 베이스와는 거리가 멀었던 타자 주자 스팅이 아웃될 것은 자명한 일.

스팅은 즉시 걸음을 멈추고, 1루 베이스를 향해 몸을 돌린다.

그런 스팅의 선택은 또 다른 변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2루수와 유격수, 1루수가 스팅을 협살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동안 3루 쪽에서 갑작스러운 외침이 터져 나온 것이다.

"홈! 홈!!"

목소리의 주인공은 3루수 김정훈이었다.

그의 목소리에 상황을 파악한 내야수들이 급박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홈플레이트 뒤편에서 급변하는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플랑 투수도 서둘러 홈 커버에 들어간다.

마운드 근처에 서있던 이치영 포수 역시 급하게 홈으로 내달린다.

그사이 1루와 2루 사이에서 2루심의 콜 선언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웃!"

2루심의 판정으로 타자주자였던 스팅은 런다운 아웃된다.

황제인이 홈으로 파고든 상황에서도 스팅을 아웃시킨 1루수 구자겸의 센스가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홈으로 쇄도하는 황제인의 발걸음은 한걸음을 더 나아갈 수 있었고, 공을 잡은 1루수 구자겸은 홈 커버에 들어간 플랑 투수와 홈을 향해 달리던 이치영 포수 중 누구에게 공을 송구할 지를 잠시잠깐 동안 망설이고 만다.

파핫!

송구에 나선 구자겸 1루수의 선택은 결국 이치영 포수였다.

홈에 먼저 자리 잡은 것은 플랑 투수이지만, 홈을 방어하기에 투수라는 포지션이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구자겸의 송구를 받은 이치영 포수는 몸을 날리면서까지 황제인의 몸을 태그하고 나선다.

타악.

몸을 살짝 틀며 이치영 포수의 태그를 피한 황제인의 손끝이 홈을 훔치고, 이윽고 주심의 판정이 떨어진다.

"세이프!!"

황제인의 홈 쇄도는 세이프가 된다.

구자겸의 송구 타이밍은 빨랐고 송구 방향도 나쁘지 않았지만, 공을 받은 이치영 포수의 위치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차라리 홈에서 대기하고 있던 플랑 투수에게 송구하는 것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들고 있었다.

그런 아쉬움은 당사자인 구자겸 1루수만이 아니라 경기를 지켜보는 모든 라이온즈 팬들의 감정이기도 했다.

"아아...차라리 플랑한테 던지지. 플랑이 먼저 홈에 자리 잡고 있었잖아."

"순식간에 만루가 비어버리네. 주자들이 죄다 들어갔어."

라이온즈 팬들의 아쉬운 목소리대로 이제 자이언츠의 득점은 4점으로 늘어나 있었다.

손 감독이 스팅의 타석에서 지시한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 작전이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타자주자인 스팅이 런다운에 걸린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1회 말에 마련된 만루 찬스를 고스란히 살려낸 결과였다.

사직구장을 채운 홈팬들의 환호가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이야아!!"

"그렇지! 작전 제대로네! 백강호한테 번트를 내게 했으면 이 정도 결과는 만들어야지!"

"잘했다, 스팅!"

자이언츠 팬들은 3타점 싹쓸이 적시타를 때린 스팅의 안타를 칭찬하고 있었다.

비록 어설픈 주루 플레이로 런다운에 걸리긴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황제인 마저 홈을 밟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스팅이 고의로 협살 상황을 만든 것이라면 참으로 창의적인 득점 생산법이라 할 수 있었다.

중계석에서도 그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지금은 스팅 선수가 런다운에 걸린 게 오히려 득점으로 연결된 모습이에요. 홈 송구를 차단하는 이치영 포수의 판단도 좋았고, 스팅을 아웃시킨 1루수 구자겸의 순발력도 좋았지만, 결국 득점이라는 이득을 챙긴 건 자이언츠가 돼버렸네요."

양현준 위원의 말이었다.

그는 라이온즈 선수들의 대처를 칭찬하면서도 결과는 자이언츠에게 유리한 쪽으로 나버린 사실을 풀이해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금의 대량 득점으로 인한 오늘 경기의 향방을 예측하는 말을 내뱉는다.

"아직 1회거든요? 라이온즈가 4점차의 점수를 따라잡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습니다. 황제인의 홈 쇄도로 추가득점을 내주기는 했어도 주자는 다 사라졌지 않습니까. 분위기가 다소 자이언츠에게 넘어간 점은 있지만, 라이온즈 선수들도 힘을 내서 플레이할 필요성이 있어요."

그것이 양 위원의 설명이었다.

상당히 우회적으로 돌려 말하고는 있었지만, 경기의 분위기가 자이언츠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은 빠뜨리지 않는다.

양 팀의 에이스 투수가 맞붙은 경기에서 1회부터 4실점은 치명적이라는 것이 양 위원의 솔직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양 위원의 그런 예측은 결론적으로 틀린 것이 된다.

1회 말에 4실점을 내준 라이온즈는 2회 초에 1점, 3회 초에 2점을 따라붙는 저력을 선보이며 오늘 경기를 쉽게 내주지 않을 거라는 각오를 내보인 것이다.

한 때 네 시즌 연속 통합우승을 달성했던 라이온즈의 저력은 시즌의 막바지에 도달해서야 다시금 부활의 날개를 펼쳐 보인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사직구장의 좌측 펜스를 향해 이동한다.

4회 초, 선두 타자로 타석에 선 라이온즈의 7번 타자 이치영이 1회의 실수를 만회하는 솔로 홈런을 터뜨린 것이다.

벼락같이 터져나온 이치영의 홈런에 1회 말, 자이언츠가 만들어낸 4득점은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넘어갑니다! 이치영의 동점 솔로포가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습니다. 그리고 이 홈런은 이치영 선수의 시즌 20호 홈런으로 기록됩니다!"

중계석의 한 캐스터가 목청껏 외치는 목소리에 TV로 중계를 지켜보는 자이언츠 팬들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이러다가 역전당하는 거 아냐?"

"조금 불안하긴 하네. 3회 말에 백강호가 날린 타구가 넘어갔어야 하는 건데. 그게 넘어갔으면 동점까지는 안 되는 거잖아."

"다 결과론이지, 뭐."

자이언츠 팬들은 아쉬운 감정을 담아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3회 말 주자 없는 상황에서 벼락같이 터져 나온 강호의 타구는 펜스를 넘어가기 직전에 우익수 바티스타의 글러브에 붙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만약 그 타구가 담장을 넘겼다면 강호의 시즌 홈런 기록은 74홈런이 되며 세계 신기록을 새롭게 수립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호를 응원하는 팬들로서는 두고두고 아쉬운 장면으로 남는다.

하지만 경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팬들이 주목할 순간은 계속해서 만들어진다.

"2루!"

파핫!

"아웃!"

2루심의 아웃 선언에 이어진 1루심의 아웃 판정으로 사직구장을 찾은 홈팬들이 그나마 위안을 찾을 수 있었다.

4회 초 이치영의 홈런 포 이후에도 공격의 고삐를 놓지 않았던 라이온즈의 공격이 병살타라는 결과로 끝을 맺고 있었던 것이다.

"백강호 잘했다!"

팬들의 목소리를 통해 조금 전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었다.

1사 주자 1, 3루의 위기 상황에서 팀의 위기를 막아낸 것은 유격수인 강호였던 것이다.

강호는 유격수와 3루 간을 관통할 듯한 빠른 타구를 간발의 차로 잡아낸 후, 역동작이 걸린 상태에서도 점핑 스로우로 2루 송구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 역동적인 수비 동작은 사실 일회용 아이템인 '호수비'아이템을 사용한 결과였지만, 강호 본인을 제외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닝을 종료시키고 덕아웃에 들어선 강호에게 코칭스태프들의 칭찬이 뒤따른다.

"수비 좋았어, 강호!"

"그래, 이번 위기는 이렇게 막아내고 4회 말부터 따라 붙으면 되는 거야!"

앞에 것은 손 감독의 목소리였고, 뒤의 것은 김민철 수석의 것이었다.

강호는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며 그들의 말에 동감한다.

'다시 원점에서 생각하면 되는 거야. 감독님이라면 5회부터 불펜을 가동시킬 것이 분명해. 흔들리고 있는 몬테사 대신에 불펜이 조기 가동되면 분위기는 다시 우리 쪽으로 넘어올 수 있어!'

굳이 머리를 굴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1회 말에 4득점을 올렸지만, 4회 초에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비록 동점이긴 해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라이온즈 쪽에서 분위기를 가져간 것으로 보는 게 옳았다.

3이닝 만에 라이온즈에게 뺏겨버린 분위기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확실한 한 방이 필요해 보였다.

'장타가 해답이 될 수 있어. 득점권 상황에서 홈런이라도 때려낸다면 분위기를 다시 우리 쪽으로 가져올 수 있다!'

강호는 자신의 해결사적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득점권 상황에서의 장타나 홈런으로 분위기를 단 번에 가져올 수 있다면, 경기가 후반부에 접어들어 라이온즈가 역전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각오를 다지며 강호는 자신의 타석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런 생각은 강호만의 것이 아니라 자이언츠 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팬들 역시 강호의 타석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백강호 타석은 언제 돌아오는 거야?"

"1회 말에 나왔고, 3회 말에 나왔으니까 5회 말 정도에 나오겠지."

"5회 말에 주자들이 좀 깔린 상태에서 백강호가 타석에 서면 좋겠어. 그럼 한 방에 해결할 수도 있는 거잖아."

팬들은 활발한 의견 교환을 나누며 강호의 타석을 기다린다.

그런 팬들의 바람 속에 좋은 타격과 호수비를 번갈아 보여주는 양 팀의 경기력은 일품이라 평할만했다.

라이온즈 선수단도 1회 말 상황 이후에는 고도의 집중력을 선보이며 추가 실점 없이 5회까지 경기를 끌고 온 것이다.

5회 초까지 양 팀이 합쳐 열여덟 개의 안타가 나온 상황에서 4대 4 동점 상황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양 팀의 야수들이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덕분에 팬들은 매 상황마다 긴장된 마음으로 경기를 관전하고 있었고, 그런 팬들 사이에는 지정만 사장과 허 실장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사장님, 이러다가 지는 거 아닐까요? 만약 경기를 내주게 되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지는 건 예상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지 사장은 곁에서 들려오는 허 실장의 목소리에 미간을 좁혀 보인다.

5회 초 라이온즈의 공격이 무득점으로 끝이 나고, 공수가 교대되는 시점이어서 허 실장의 물음에 쓴 소리로 답할 시간적 여유는 충분해 보였다.

"재수 없는 소리 할 거면, 허 실장 먼저 퇴근 하도록 해. 나는 오늘 경기 이기는 것까지 보고 퇴근할 테니까."

지 사장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거칠지 않았다.

주변의 보는 눈을 의식해서 감정을 절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 사장은 우승의 순간을 홈 팬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오늘 역시 1루 쪽 관중석에 팬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닙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준비를 해두는 것이 어떨까 해서요..."

"뭘 준비해? 선수들 덕아웃에 갖다 논 샴페인을 치우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우리가 지는 상황에서 따로 준비할 게 뭐 있어? 허튼 소리하지 말고 잠자코 경기나 지켜 봐. 5회 말에는 반전이 생길 테니까."

허 실장을 나무라는 지 사장의 목소리에는 자이언츠 선수단을 향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그런 지 사장의 믿음 속에 라이온즈 야수들이 그라운드를 채워나가고, 이내 타석에는 자이언츠의 3번 타자인 전준오가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

지 사장은 7구째까지 이어지는 전준오의 타석 승부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다가 이내 8구째 승부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쥔다.

"그렇지!"

지 사장은 밝은 얼굴로 환호하고 있었다.

선두 타자인 전준오가 출루하며 5회 말은 다시없을 기회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타자로 타석에 들어서는 선수의 얼굴을 확인하며 지 사장은 경기가 시작된 이후 굳건히 지키고 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그리고 다른 팬들의 목소리에 자신의 목소리를 더하며 힘차게 소리치고 있었다.

"백강호! 날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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