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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을 완성하다
1사 주자 1, 3루의 상황에서 강호가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사직구장은 축제의 현장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우와아아아!!"
"거르지 말고 붙어라!!"
"백강호, 날려라!!"
팬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뜨거운 함성에 그라운드에 자리잡은 라이온즈 선수들이 위축될 정도였다.
하지만 타석에 자리한 강호에게는 그 어떠한 것보다도 더한 응원의 목소리였다.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야. 9위가 확정된 라이온즈가 1회 말부터 내게 고의사구를 줄 리는 없어. 볼넷도 마찬가지고. 나를 거른다고 해도 1사 만루 상황이 만들어지게 돼.'
강호는 라이온즈가 자신과의 승부를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강호의 그런 생각은 라이온즈의 선발 투수인 플랑의 초구 만에 뒤바뀌고 만다.
타악.`
바닥을 때리는 원바운드 공이 포수 미트를 때리고 다시 바닥을 나뒹군다.
라이온즈의 포수인 이치영은 급히 공을 집어 들고 주자들을 견제하는 모션을 취한다.
타석에 자리 잡은 강호는 이치영 포수의 그런 모습이 요식행위일 뿐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피하는구나.'
강호는 초구부터 원바운드 공을 던진 상대 배터리의 선택에 자신을 상대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2구 째 공까지 지켜봐야 확실해 지겠지만, 고의사구를 주지는 않아도 볼넷을 내줄 수는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강호의 그런 생각은 중계석 역시 동감하고 있었다.
"지금 플랑 투수가 던진 초구는 백강호 타자와의 승부를 피하겠다는 생각으로 보입니다. 고의사구는 아니더라도 고의사구에 가까운 볼넷이 예상되네요."
해설 위원인 양현준 위원의 말이었다.
그리고 강호와 양현준 위원의 생각에 자이언츠 덕아웃 역시 동의하고 있었다.
"강호를 거르네요."
김 수석의 말이었다.
초구부터 바운드가 심한 공을 던지는 플랑 투수의 모습에 강호와의 승부를 보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 때 상황을 확인한 손 감독이 묘한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닌가.
"라이온즈 쪽에서 강호를 상대할 마음이 없다면 상대하게 만들어 줘야지. 작전을 내게."
손 감독은 그렇게 말하면서 김 수석에게 세부 작전을 지시한다.
그런 손 감독의 작전 지시를 듣게 된 김 수석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곧바로 주자들과 베이스 코치들에게 시그널을 보낸다.
'지금의 작전은 감독님의 임기응변 같은 게 아니야. 감독님은 강호의 타석에서 지금과 같은 상황을 미리 예견하신 거야. 그래서 이런 작전을 준비하신 거고, 이전 경기에서 이 작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오직 이번 경기를 위한 까닭일 거야!'
김 수석은 싸인을 내며 작게 웃음 짓고 있었다.
지금의 작전은 라이온즈 덕아웃에서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동안 자이언츠는 강호의 타석 상황에서 특별한 작전을 낸 적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시즌 4할의 타율에 73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강호의 타격 능력을 믿기 때문이었다.
'감독님이 강호에게 믿고 맡기려는 생각이 강하셔서 강호의 타석에서는 작전을 내지 않았는데, 그런 과거의 결정들이 결국 오늘 경기의 변수를 만들게 됐구나.'
김 수석은 지금의 작전이 실패하더라도 라이온즈의 허를 찌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데 작전이 실패할 확률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김 수석의 생각이었다.
그런 김 수석의 생각과 손 감독의 작전은 김 수석의 싸인을 통해 타석에 선 강호에게도 오롯이 전달되고 있었다.
'더블 스틸 작전? 이런 방법도 있겠구나!'
강호는 덕아웃에서 나온 작전에 속으로 감탄사를 흘린다.
1사 주자 1, 3루 상황에서 더블 스틸이란 1루 주자가 2루로 향했을 때 포수가 송구를 선택하게 되면 3루 주자의 홈 스틸을 의미한다.
더블 스틸이 성공하게 되면 득점에 성공하는 것은 물론, 1루 주자가 2루로 이동하면서 병살타 확률이 극도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로 인한 중요한 변수가 또 하나 생겨난다.
'지금 상황에서 더블 스틸에 성공하면 주자가 두 명에서 한 명으로 줄어들게 돼. 그렇게 되면 내가 적시타를 때려내도 고작 1타점에 그친다. 라이온즈가 나를 걸러낼 당위성이 사라지게 되는 거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강호는 플랑의 2구에 대한 대처 방법을 결정짓는다.
이윽고 플랑의 2구가 뿌려지고, 1루 주자인 전준오가 스타트를 끊는다.
그 모습을 확인한 라이온즈의 이치영 포수가 무릎을 세우는 사이, 강호가 다소 과격한 스윙 동작에 들어서고 있었다.
부웅!
강호의 시원한 스윙은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을 크게 헛치고 있었고, 설마 강호가 이렇게 빠지는 공에 스윙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포수 이치영이 다소 놀라고 만다.
그 사이 1루 주자 전준오가 2루 베이스를 향해 달리다 멈칫하는 모습이었고, 그것을 확인한 이치영 포수가 곧바로 2루를 향해 공을 뿌린다.
묘한 상황에 투수인 플랑이 송구를 피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마운드에서 몸을 숙여버렸고, 그 모습을 확인한 3루 주자 유성철이 홈을 향해 내달린다.
파핫!
성철의 발걸음이 홈으로 향하자 포수의 송구를 받은 유격수 김성우의 표정이 급박해진다.
1루 주자인 전준오는 1루와 2루 사이에 멈춰선 상태였고, 3루 주자인 유성철은 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에 2루가 먼저인가, 홈이 먼저인가를 잠시 고민하던 김성우 유격수는 1루 주자 전준오를 무시하고 홈을 향해 곧장 공을 뿌린다.
그 찰나의 시간동안 홈을 향해 더욱 가까워진 3루 주자 성철은 강호가 타석에서 물러난 것을 확인하고는 홈을 향해 몸을 날린다.
촤아악!
머리부터 들어간 성철의 슬라이딩은 과격한 면이 있었다.
유격수 김성우의 송구를 받은 이치영 포수는 자신의 실수로 야기된 상황에 이를 악물며 태그에 나선다.
타악.
성철의 손이 베이스를 스치는 것과 포수의 글러브가 성철의 팔에 닿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 사이 잠시 멈춰 서 있던 1루 주자 전준오는 이미 2루를 밟고 있었고, 이제 모두의 시선은 주심에게로 향한다.
"세이프!!"
주심의 판정은 세이프였다.
양팔을 크게 펼쳐보이는 주심의 선언에 자이언츠 홈팬들의 목소리가 환호로 뒤바뀌고, 주자의 몸을 직접 태그한 이치영 포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목소리를 높인다.
"아웃입니다! 글러브가 먼저 닿았어요!"
"아니야. 홈 터치가 먼저였어. 확실해."
"비디오 판독 해주십시오. 비디오!"
주심의 단호한 태도에 이치영 포수는 라이온즈 덕아웃을 향해 비디오 판독을 요청한다.
그의 요청을 받아들인 라이온즈 덕아웃의 선택에 주심은 판독실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잠시 후 다시 모습을 드러낸 주심은 천천히 양팔을 펼쳐보였고, 그 모습에 사직구장이 다시 환호로 물든다.
"이야~~ 1회부터 장난 아니네!"
"그래! 바로 이거야! 이렇게 작전으로 점수 내면 얼마나 좋아! 발 빠른 주자들은 제 때 활용하는 게 맞는 거지!"
"자, 이제 백강호는 거르지 말고 붙어라!"
자이언츠 팬들 역시 이제 달라진 상황을 은연중에 인식하고 있었다.
손 감독의 더블 스틸 지시로 1득점을 성공시켰고, 주자는 1, 3루에서 주자 2루 상황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타석에는 팀의 4번 타자인 강호가 서있는 가운데 볼카운트는 1볼 1스트라이크 상황.
고의사구와 다를 바 없는 볼넷을 내기에는 현재의 상황이 적절치 않게 되었다.
가장 먼저 그 점을 거론한 것은 역시나 중계석이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백강호 타자를 거를 수가 없겠네요."
양현준 위원의 말에 곁에 앉은 한 캐스터가 습관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건 왜 그렇습니까?"
"주자가 줄어든 상황에서 백강호 선수에게 정타를 허용해도 1타점이거든요. 홈런을 맞아도 2점이에요. 만약 백강호 타자를 걸러서 주자가 다시 모이게 되면 1회에 빅 이닝을 내줄 수도 있어요. 지금이 경기 후반부라면 백강호 선수를 거르는 게 좋겠지만, 아직 1회거든요? 지금은 상대하는 게 맞아요."
양 위원의 설명은 자세하지는 않아도 TV를 지켜보는 팬들이 알아듣기에는 충분했다.
그래서인지 플랑 투수의 3구를 기다리는 자이언츠 팬들의 기대는 뜨거웠다.
"그래! 백강호한테 볼 그만 주고 이제 스트라이크 좀 던져라! 백강호 공 치는 것 좀 보게."
"이왕이면 가운데로 던져서 홈런으로 가자!"
자이언츠 팬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타석에서 물러서 있던 강호가 다시 배터 박스 안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는 타격 폼을 오픈 스탠스로 전환하며 배트를 짧게 쥔 모습이었다.
장타보다는 컨택에 초점을 맞춘 강호의 타격 폼 변화에 라이온즈 배터리가 동시에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또 1점 내주게 생겼네. 그래, 이렇게 된 김에 백강호한테 깔끔하게 1점 내주고, 다음 타자부터 편하게 가는 게 좋겠어.'
투수인 플랑은 편하게 생각하기로 하고, 강호와의 제대로 된 승부를 준비한다.
정타를 허용해도 1실점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 플랑의 계획은 그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예측하지 못한 변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니!?"
"뭐야?"
공을 던진 플랑 뿐만 아니라 포수인 이치영도, 팬들과 중계석도, 심지어 양 팀의 덕아웃 모두를 놀라게 만드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승부 상황에서 정교한 타격을 준비하고 있던 강호가 갑자기 번트 모션을 취한 것이다.
그 황당한 모습에 라이온즈 내야수들은 제대로 된 대처를 할 수 없었다.
시즌 4할 4푼의 타율에 73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거포가 번트를 댈 것이라는 예측을 누가할 수나 있었겠는가.
강호의 올 시즌 번트 시도는 4번 밖에 없었고, 그 마저도 전반기 동안의 시도가 전부였다.
손성조 감독 체제에서 강호가 번트를 시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투욱.
먹힌 소리와 함께 타구가 그라운드를 구른다.
번트는 성공적이었다.
플랑의 체인지업에 배트 끝을 맞춘 강호의 번트는 투수와 3루수 사이를 천천히 구르고 있었고, 2루 주자인 준오가 3루를 밟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심지어 타자 주자인 강호가 1루를 밟을 때까지 번트 타구를 손에 쥐지 못할 정도로 예측하지 못한 번트였던 것이다.
그 모습에 자이언츠 홈팬들의 환호가 웃음으로 뒤바뀌고 있었다.
"와하하~ 백강호가 번트를 하네!"
"나는 백강호가 번트할 줄은 몰랐네."
"그걸 누가 알았겠어? 혹시 벤치에서 나온 지시인가?"
"손 감독이 왜 백강호 같은 거포한테 번트를 지시하겠어? 지금은 타자가 판단한 기습 번트로 봐야지."
"백강호 정도면 그냥 타격하는 게 낫지 않나? 정타를 때렸으면 1타점이잖아?"
"야구 모르는 소리하고 있네. 좀 전에 더블 스틸 못 봤어? 백강호가 번트를 대서 다시 주자가 1, 3루에 갔잖아? 타자는 황제인이고. 이 상황에서 손 감독이 낼 수 있는 작전이 얼마나 많겠어? 또 그거 대비하느라고 라이온즈 배터리가 얼마나 머리가 아프겠어? 지금은 백강호가 번트를 댄 게 1타점을 때린 것보다 훨씬 잘 한 거라고~"
야구 지식이 해박한 일부 팬들은 강호의 번트 상황으로 야기 될 변수를 예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런 팬들의 기대대로 다음 타자인 황제인이 타석에 들어서고, 또 한 번 자이언츠의 더블 스틸이 감행된다.
파핫!
1루 주자인 강호가 2루를 향해 내달린다.
그 모습에 포수 이치영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지만, 앞전과 같은 더블 스틸을 우려해 2루를 향해 공을 던지지는 못한다.
대신 3루 주자를 견제하는 시늉을 해보이다가 다시 투수를 향해 공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상황은 이제 1사 주자 2, 3루가 되어버린 것이다.
타자 황제인의 최근 뜨거운 타격감을 고려한다면 최악의 결과를 예상할 수도 있었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 마운드 위의 투수는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젠장맞을!'
플랑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지금의 상황이 자이언츠 덕아웃의 더블 스틸 작전과 강호의 예상치 못한 번트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도루를 할 리 없는 강호를 향해 연달아 두 개의 견제구를 던지게 된다.
"마!!"
"투수 뭐하냐?! 2루에 견제를 왜 해?"
홈팬들의 원성이 뒤따른다.
사직구장이 '마'라는 소리로 가득 찬 가운데 플랑이 흔들리는 것을 확신한 이치영 포수가 마운드를 향한다.
라이온즈 덕아웃에서는 통역이 마운드로 향했고, 잠시의 대화 끝에 포수 이치영이 플랑의 어깨를 다독이며 다시 마운드를 내려간다.
그 모습을 지켜 본 중계석에서는 상황을 설명하고 나섰다.
"지금은 이치영 포수가 잘하는 겁니다. 플랑 투수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거든요? 이럴 때는 포수가 다독여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중계석의 양 위원은 투수를 다독이는 이치영 포수의 행동을 칭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칭찬에도 플랑 투수의 기분은 가라앉지 않았고, 초구를 몸쪽으로 던지라는 포수의 싸인에 황제인의 허리를 스치는 사구를 던지고 만다.
황제인은 초구부터 몸에 맞는 볼이 나왔다는 사실에 어이없어 하며 천천히 1루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5번 타자 황제인 마저 출루하며 이제 1사 만루 상황.
손 감독은 지금의 상황에서 승기를 가져올 수 있다고 확신하며 김 수석을 향해 또 다른 지시를 내린다.
"작전을 내게."
손 감독의 지시에 다시 자이언츠 덕아웃이 분주해진다.
6번 타자인 스팅의 타석에서 김 수석의 분주한 싸인이 이루어지고, 한참동안 싸인을 확인하던 타자 스팅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그 후 타격 폼을 취하는 스팅의 모습에서 또 한 번 모든 이들이 놀라고 만다.
"번트? 스팅이?"
"스팅이 번트를 한 적이 있었나?"
"아니, 한 번도 없어. 오늘이 처음이야."
"우와~ 이거 재밌네! 페이크 번트 같은 건가?"
"페이크일 수도 있고, 진짜 번트일 수도 있고. 라이온즈 배터리가 머리 좀 아프겠는데?"
팬들의 예상각대로 라이온즈 덕아웃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장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수석 코치인 조성래 수석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승부하라고 할까요?"
조 수석의 질문을 받은 라이온즈 감독은 깊은 한숨을 토하고 있었다.
백강호의 번트도 놀라울 따름인데 만루 상황에서 스팅의 번트라니.
시즌이 막바지에 도달한 지금 자신에게 왜 이런 시련이 주어지는지 하늘을 원망하게 된다.
"승부해야죠. 만루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대신 불펜을 준비시키세요."
"네, 그럼 내야수들 수비 위치는 당기는 게 좋겠지요? 진짜 번트를 할 수도 있잖습니까? 백강호도 번트를 댔는데 스팅이라고 대지 말라는 법도 없잖습니까?"
자신의 지시에 되돌아온 조 수석의 물음에 라이온즈 감독은 머리가 더욱 복잡해진다.
'만루 상황에 번트 모션이 나왔으니까 내야를 당기는 건 맞는데, 만약에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 작전이면 땅볼이 될 타구가 적시타로 뒤바뀌게 돼. 그렇다고 내야를 가만히 두게 되면 스팅이 진짜 번트를 댈 수도 있는 거야.'
라이온즈의 감독은 이것도 저것도 선택할 수 없는 아이러니에 갇히고 만다.
하지만 감독인 자신이 망설일 수는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한 가지 선택은 반드시 해야만 했다.
"내야를 당깁니다. 번트에 대비하라고 하세요."
감독의 말에 결국 스팅의 번트에 대비한 라이온즈의 수비 포지션이 이동한다.
자신의 지시에 내야수들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며 라이온즈의 감독은 이전과는 다른 자이언츠의 또 다른 모습을 대면하게 된다.
'자이언츠를 바라보는 모두가 백강호라는 강타자의 등장과 팀의 세대교체에 주목하고 있을 때 손 감독은 자이언츠라는 팀의 호흡을 완성해가고 있었구나!'
시즌 막바지가 돼서야 알게 된 사실에 탄식이 절로 나온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전문가들이 자이언츠의 올 시즌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왜 이제서야 확신처럼 드는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 오늘 경기를 쉽게 내주지는 않겠어! 만약 오늘 경기를 우리 라이온즈가 가져올 수 있다면 내년 시즌부터는 우리도 자이언츠 못지않은 부활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
라이온즈의 감독은 그렇게 확신하며 또 다른 지시사항을 추가로 내린다.
아직 경기는 1회 말을 지나고 있었고, 양 팀 감독의 치열한 두뇌싸움 속에 팬들의 시선은 여전히 타석을 향하고 있었다.
파핫!
이윽고 투수인 플랑이 와인드업에 들어가고, 그에 맞춰 2루 주자인 강호를 포함하여 만루를 채운 모든 주자들이 지면을 박차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타자인 스팅은 이를 악다문 모습으로 또 다른 변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