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302화 (30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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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일전을 준비하다

자이언츠 선수단을 태운 원정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시즌 144경기 중 142번째 경기인 타이거즈와의 시즌 마지막 원정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고 귀환하게 된 자이언츠 선수단.

그런 선수단을 태운 버스는 복잡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었다.

"이제 한 경기만 이기면 돼! 한 경기만."

"베어스도 징글징글하네요. 베어스가 남은 경기를 다 이겨버려서 우리가 끝까지 긴장하게 생겼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주전 중견수로 자리잡은 유성철과 팀의 막내 격인 마무리 투수 권대우였다.

올해가 데뷔 시즌인 대우와 올 시즌 처음으로 규정타석을 채운 성철은 코앞으로 다가온 팀 우승에 꽤나 흥분해 있었다.

그것은 두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신인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일 라이온즈 전에서는 우리가 이기겠지요? 올 시즌 상대 전적도 우리가 훨씬 앞서지 않습니까?"

"내일은 무조건 이겨야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 타이틀을 획득하는 것도 그림이 좋지 않다고."

"그럼 마지막 경기 앞에서 우승하는 건 괜찮은 겁니까?"

"한 끗발 차이라는 말 몰라? 그게 묘한 차이가 있는 거야."

성철과 대우뿐만 아니라 좌익수 한택근과 우익수 박철, 2루수 경쟁자인 황인태 등이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올 시즌 완벽한 세대교체를 이루었다는 평가답게 원정버스에 오른 선수들 중 절반 이상의 선수가 이들과 같은 신인 선수들이었다.

덕분에 시즌이 막바지에 도달했음에도 원정 버스는 활기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라이온즈는 어차피 가을야구하고도 멀어졌으니까 강호 선배를 거를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내년 시즌 우선 지명권을 생각해서라도 이기는 것보다 지는 걸 바라지 않을까요?"

대우와 마찬가지로 스무 살 루키인 황인태의 말에 나름 연륜있는 신인 선수 유성철이 피식 웃음 짓는다.

이제 갓 스무 살인 인태와는 다르게 성철의 나이는 올해로 스물 여섯이었다.

"라이온즈가 남은 두 경기를 모두 패해도 올 시즌 10위는 위즈로 확정됐어. 굳이 우리에게 져줄 이유는 없는 거야."

"성철 선배 말이 맞아. 그리고 요즘 시대에 시즌 막바지라고 경기를 일부러 져주고 그러는 팀이 어디 있겠어? 옛날 옛적 시절에나 그랬지. 요즘 그러면 팬들한테 SNS계정 싹 털릴 걸?"

성철의 말에 근처에 앉아 있던 백업 내야수 임정이 말을 덧붙인다.

자신의 말에 성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임정은 더욱 신이 나서 말을 이어간다.

"그러니까 라이온즈도 강호 선배를 거를 수 있는 거야. 우리가 남은 라이온즈 전 두 경기를 모두 져버리면 베어스가 시즌 우승 팀이 되는 거잖아? 그런 점을 의식해서 라이온즈가 제대로 승부를 걸어올 확률도 높은 거지."

임정의 설명에 일부 신인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두 경기의 일정이 남은 자이언츠와는 다르게 2위 팀 베어스는 올 시즌 일정을 모두 끝낸 상태였다.

144경기를 모두 끝낸 베어스의 성적은 144전 88승 1무 55패.

현재까지 142전 88승 54패를 거두고 있는 자이언츠와 정확히 반 경기 차이로 승패 마진을 좁힌 채 시즌을 마감한 것이다.

만약 자이언츠가 라이온즈와의 남은 두 경기에서 한 경기 만을 승리해도 89승 55패가 되어 베어스를 누르고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남은 두 경기를 라이온즈에게 모두 패하게 되면 자이언츠는 시즌 전적 144전 88승 56패로 1무승부를 거둔 베어스에게 반 경기차로 뒤지는 2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시즌을 먼저 끝낸 베어스나 라이온즈 전을 앞두고 있는 자이언츠 모두가 남은 일정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였다.

"베어스 구단하고 라이온즈하고 암묵적인 협약이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 팀을 밀어내고 베어스가 정규 시즌 우승을 하기 위한 협약 말입니다."

"무슨 소리야? 시대가 언제적인데 그런 밀실 협약으로 우승 팀을 결정하겠어? 내 말은 라이온즈가 다른 구단이나 전문가들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우리와의 남은 경기를 대충대충 하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었어."

갑작스러운 대우의 물음에 임정이 얼른 주변을 살피며 황급이 대답하는 모습이었다.

대우가 꺼낸 말은 자칫 예민할 수도 있는 부분이어서 고참 급 선배들이 듣기에 따라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자신들과 같은 신인 선수들이 벌써부터 야구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좋아할 선배들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신인 선수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성철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네."

성철은 임정과 마찬가지로 대우를 타박하며 얼른 선배들의 반응을 살핀다.

그런데 주변 선배들의 반응은 걱정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임정과 대우의 대화를 들었음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한다면 이쪽을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선배들도 긴장하고 있구나.'

성철은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야수조의 최고참인 채중석을 비롯해 전준오나 최훈, 손명학이나 윤명호, 윤길준 같은 베타랑 선수들 모두가 잔뜩 긴장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 승리를 통해 2연승을 챙기고, 팀의 매직 넘버가 1이 되었다는 사실이 선배들에게는 오히려 큰 중압감으로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 정도가 어찌나 심한 지 자이언츠의 분위기 메이커라 할 수 있는 문표마저도 입을 굳게 다문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었다.

문표를 포함한 고참 선수들은 단 한 가지 단어를 머릿속에 각인시킨 채 무거운 중압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우승!'

문표는 잠시 눈을 감아본다.

강호와는 다르게 그는 입단부터 자이언츠에서 시작한 진성 자이언츠 선수였다.

문표가 현역으로 활동하는 동안 팀이 우승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것은 정규 시즌이나 한국 시리즈 모두 마찬가지였다.

가을 야구에는 종종 초대를 받았지만, 포스트 시즌 시리즈마다 광속 탈락하며 한국 시리즈에 출장한 기억조차 없었다.

그것은 문표를 제외한 다른 선배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고, 캡틴 강민수를 포함한 고참 선수들의 가슴을 짓누르는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진짜 할 수 있을까?'

문표는 스스로를 향해 묻고 있었다.

개인의 영광보다는 본인이 현역으로 있을 때 팀 우승을 일궈보고 싶다는 바람이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하는 문표였다.

그렇기 때문에 손성조 감독이 2군에 있을 때부터 그를 믿고 따랐던 것이다.

'자이언츠 우승'이라는 대업을 위해 손 감독과 문표 모두가 개인의 욕심은 내려놓은 채 올 시즌을 기다렸던 건지도 몰랐다.

'아니!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야만 해! 나도 이제 마냥 어린 스무 살 루키는 아니잖아?'

문표는 생각한다.

올 시즌이 아니라면 팀이 우승이라는 영예를 안을 수 있는 시즌이 또다시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우려를 하고 있었다.

86년생, 올해로 서른네 살이 되는 문표는 이미 전성기를 지나 기량이 조금씩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캡틴 강민수를 포함한 모든 선배 선수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고, 그래서인지 올 시즌 코앞에 다가온 우승을 놓치기 싫다는 바람이 가슴을 무겁게 만든다.

우승, 그것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자이언츠라는 굴레 안에 있는 모두의 염원이었기 때문이다.

'해야만 해! 반드시! 올 시즌이 아니면 내가 현역 선수로 우승할 기회가 다시는 없을 지도 몰라!'

문표의 마음은 결국 간절해지고 만다.

그것이 문표를 포함한 고참 선수들을 무겁게 침묵하게 만든 이유일 것이다.

올 시즌이 아니면 다시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 아직은 기회가 많은 신인 선수들과는 다르게 30대 고참 선수들에게는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까닭이었다.

'결국 우리 자이언츠가 우승하기 위해서는 택근이나 철이의 말처럼 내일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해!

문표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긴 한숨을 토해낸다.

시즌동안 많은 시련들이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처럼 가슴이 무거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의지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시선을 돌리던 문표.

문득 그런 문표의 눈에 곁에 앉은 강호의 모습이 시선에 들어오고 있었다.

'강호.'

내일 경기를 위해 리포팅 자료를 읽고 있는 강호, 그 옆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무겁게 내려앉은 부담감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을 느낀다.

문표의 부담감을 덜어 내주는 것은 팀의 4번 타자인 강호에 대한 신뢰였다.

'심적인 중압감으로 따진다면 팀의 4번 타자인 강호가 제일 심하겠지.

그렇게 생각을 전환하자 문표의 가슴을 짓누르는 중압감이 빠르게 사라져만 간다.

괜히 웃음이 흘러 나와 피식 웃음 짓는 문표.

그런데 이때 문표의 기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다.

"강호, 내일 경기 준비하는 거야?"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문표가 고개를 돌려보니 팀의 캡틴인 강민수가 어느새 강호의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문표가 언뜻 살핀 캡틴의 얼굴에서는 미소 뒤에 감춰진 긴장감이 느껴졌다.

캡틴 역시 꽤나 큰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문표와 마찬가지로 위안할 곳을 찾아 강호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캡틴의 그런 마음이 심하게 공감되어 문표가 웃음 짓는 사이, 고개를 든 강호가 민수를 향해 대꾸의 말을 건넨다.

"네, 라이온즈는 저를 상대해줄 것 같은데 제대로 준비를 해놔야죠."

민수의 물음에 답하는 강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별로 긴 대답도 아니었고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았지만, 왠지 그 대답을 듣게 된 민수의 표정이 편안해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 좋은 태도다."

민수는 짧게 대답하며 강호의 어깨를 두드려준다.

강호는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민수의 손이 경직돼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민수 선배도 긴장하고 있구나.'

강호가 지신의 심정을 눈치 챘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수는 만족한 얼굴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강호는 그런 민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곁에서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는 문표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문표는 자신과 시선을 맞춰오는 강호의 눈빛에 괜히 헛기침을 내뱉는 모습이었다.

"음, 흠."

왠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문표의 모습에 강호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요?"

"아니, 뭐. 오늘따라 강호 후배가 잘생겨 보여서 그냥 한 번 봤어."

"무슨 소립니까?"

"그냥 그렇다고."

문표는 그렇게 둘러대며 시선을 돌려버린다.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본인이 아니라고 하니 강호로서도 캐묻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무엇보다 강호는 내일 경기를 준비하기에 바쁜 상황이었다.

'싱거운 사람 같으니라고.'

결국 창가를 바라보는 문표를 향해 피식 웃 어보인 후 강호는 다시 라이온즈의 리포팅 자료를 향해 시선을 내린다.

문표는 차창의 유리를 통해 그런 강호의 모습을 확인하며 그와는 다른 의미의 미소를 지어보인다.

'부탁한다, 강호야!'

문표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부탁의 말을 속으로 건네면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중요한 일전을 앞둔 상태에서 팀의 4번 타자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은 문표였다.

한편, 선수들이 탄 원정 버스 근처에는 여느 때와 같이 코칭스태프를 태운 낡은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낡은 버스 안의 분위기는 선수들을 태운 원정 버스 쪽 분위기보는 가벼웠다.

내일 경기를 위해 미리부터 선발 라인업 구상에 들어간 손 감독과 김 코치, 그들의 활발한 대화가 버스가 출발할 때부터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선발은 세준이로 정하고, 수제는 쉬게 하겠습니다."

김민철 수석의 말이었다.

그는 자신의 수첩에 손 감독이 내린 결정 사항을 일일히 메모하며, 내일 경기의 라인업을 구성해가고 있었다.

"강호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라이온즈는 다른 팀들처럼 강호를 거르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김 수석의 물음에 손 감독은 팔짱을 낀 채로 조용히 장고에 들어간다.

최근 강호는 상대 팀 배터리의 기피 대상 1순위였다.

강호는 최근 다섯 경기에서 총 14개의 볼넷을 얻어내며 이미 2001년도에 호세가 세운 최다 볼넷 기록을 4개 차이로 넘어선 상황이었다.

덕분에 쉽게 풀어낸 경기도 있었고, 위즈 전처럼 꼬여버린 경기도 있었다.

그것을 통해 손 감독은 한 가지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한국 시리즈에서는 강호와의 승부를 피할 확률이 높아. 강호와의 승부를 피해서 상대 팀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높다는 것은 이미 최근 경기를 통해 증명된 사실이니까.'

최근 경기를 통해 손 감독이 내린 결론이었다.

연승 가도를 달리던 자이언츠는 강호를 철저히 거르는 베어스의 고의사구 작전에 막혀 연승이 끊어지고 말았다.

여기에 10월 2일 경기에서는 강호를 상대할 것이라 생각한 위즈가 두 번의 고의사구를 내며 강호의 타격 흐름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모습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두 팀 간의 경기를 통해 손 감독이 느낀 점은 단순했다.

'베어스는 한국 시리즈에서 강호와의 승부를 최대한 피하게 될 거야.'

손 감독은 그렇게 결론짓고 있었다.

시즌 어느 경기보다 중요한 한국 시리즈에서 베어스가 강호와의 승부를 고집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차라리 정규 시즌 남은 두 경기에서 강호를 아껴, 조금이라도 베어스 쪽에 강호의 타석 전략을 노출시키지 않는 방법은 어떨까 고민될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김 수석의 질문에 답하는 손 감독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이 담겨 있었다.

"강호의 문제는 일단 내일까지 고민해 보기로 하지."

"네? 알겠습니다."

김 수석은 손 감독의 대답이 의외였던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강호에 대한 손 감독의 우려를 눈치 챈 것이다.

"그럼, 타자 쪽은 4번 자리는 빼고, 1번 자리부터 정하겠습니다."

김 수석의 제안에 손 감독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강호의 4번 자리를 빼놓고 라인업을 구성하려니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야수 쪽의 모든 라인업을 유보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강호를 배제한 채 라인업 구성을 고민한다.

그런 손 감독과 자이언츠 선수단을 태운 원정 버스는 빠르게 사직으로 내달린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 드디어 결전의 날인 10월 5일 토요일이 밝아 있었다.

정규 시즌 마지막 일전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사직구장에 나와 있던 손 감독은 의외의 손님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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