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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와 팬의 만남
강호의 타석에 앞서 이미 히어로즈의 투수는 교체되어 있었다.
5회 말에 등판한 양헌 투수가 2/3이닝을 1실점으로 막고 내려간 후 6회 말 시작부터 다른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있는 것이다.
"후우~"
바뀐 투수가 길게 날숨을 내뱉는다.
새로 마운드에 오른 투수 금민석은 86년생으로 올해 34살이 되는 베테랑 투수였다.
2005년 베어스에 입단 후 2009년 히어로즈로 트레이드되어 지금까지 히어로즈의 불펜으로 활약하고 있는 중이었다.
신인 시절 좌완 투수로서 많은 장점을 가졌다는 평을 받으며 촉망받는 루키시절을 경험하기도 했다.
'나더러 백강호를 상대하기 위한 원 포인트 릴리프가 되라니. 이거 설마 몰래카메라는 아니겠지?'
민석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강호를 상대하기 위해 자신을 내보내려하는 불펜 코치의 지시에 처음에는 장난인줄만 알았다.
30대 중반인 민석은 30대 후반의 불펜 코치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라서 종종 그런 장난을 치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은 장난이 아니었다.
'백강호를 상대하기 위한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백강호가 좌완에게 약한 건 옛날 옛적의 일이라고!'
민석은 속으로 절규하고 있었다.
원 포인트 릴리프(one point relief)란 특정한 한 명의 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등판한 구원투수를 뜻한다.
그러니 지금 마운드에 오른 민석 본인이 백강호라는 괴물 타자를 막기 위해 구원 등판했다는 의미가 된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나는 모르겠다. 그냥 동현이가 싸인내는 대로 던지련다.'
민석은 자신에게 지나친 책임을 부여한 코칭스태프의 결정을 속으로 불평하며 포수 박동현의 리드대로 공을 던지기로 한다.
그렇게 해서 강호를 향한 금민석의 초구가 결정되고 있었다.
딱!
호쾌한 타격음에 공을 던진 민석의 시선이 얼른 타구 방향을 쫓는다.
좌측 파울 라인을 살짝 벗어나는 타구가 3루 쪽 관중석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만약 타구가 5미터만 오른쪽으로 향했더라면 홈런이 될 수도 있는 공이었다.
공을 던진 민석으로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저런 타자한테 무슨 정면 승부야?! 백강호는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라고! 홈런치는 괴물!'
민석은 강호의 위협적인 초구 타격 모습에 혀를 빼문다.
그런 민석의 모습을 마주하고 있는 강호,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꽤나 아쉬워하고 있는 중이었다.
'배트를 너무 빨리 돌렸어. 마무리 동작 때 회전을 덜 먹였으면 넘어가는 거였는데.'
강호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초구를 타격한 감각이 나쁘지 않은 까닭이었다.
배트에 느껴지는 공의 무게감이 워낙 가벼워서 임팩트를 하는 순간 당연히 넘어갈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 타구가 좌측 폴대를 빗겨나가는 파울이 되자 금민석 투수와는 다른 의미로 혀를 빼물게 된다.
'이제 실투가 아니면 상대 투수가 좋은 공을 줄 확률은 사라져버린 거야. 볼넷을 줘도 좋다는 생각으로 유인구 승부만 걸어올 테니까.'
강호는 초구 승부 후 나머지 공에 대한 상대 배터리의 결정을 직감하고 있었다.
오늘 1회와 3회에 강호 본인의 뜨거운 타격감을 확인한 상대 배터리가 조금 전의 파울 홈런을 보고서도 정면 승부를 걸어올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 강호가 홈런을 때릴 확률 또한 낮아진다.
'이번 타석에서 홈런 날리는 건 포기하고 컨택 위주로 가자. 어차피 제대로 상대해주지도 않을 테니까.'
그런 생각으로 강호는 왼발 각도를 벌려 오픈 스탠스 자세로 전환한다.
그러면서 평소에 비해 주먹 반 개 정도 배트를 짧게 쥐며 배트 박스에서 포수를 향해 반 발짝 물러나는 모습이었다.
강호의 그런 타격폼 변화에 모든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운다.
히어로즈의 배터리와 덕아웃은 물론 중계석에서도 그 점을 포착하고 있었다.
"지금 백강호 타자가 타격폼을 수정했어요. 배트를 짧게 쥐었죠?”
중계석의 염 캐스터가 강호의 타격폼 변화를 지적하자 곁에 앉은 안 위원이 세부적인 설명에 나선다.
"배트를 짧게 쥔 것도 있고, 백강호 선수가 포수 쪽으로 반 족장 물러났거든요? 그러면서 왼발을 벌려서 오픈 스탠스 자세로 전환했어요. 이렇게 되면 상체가 투수 쪽으로 열려서 시야가 넓어지는 장점이 발생합니다. 반면에 배트를 짧게 쥔 것과 더해서 장타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강호 타자가 오픈 스탠스로 자세를 변환한 것은 몸 쪽으로 휘감아 들어오는 변화구에 대한 대처 능력을 올리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타자 출신 안경훈 위원의 자세한 설명이었다.
그의 설명이 끝나자 이런 타격폼으로 인한 결과가 예측되고 있었다.
염 캐스터는 그 점에 대해 곧바로 묻게 된다.
"그럼 백강호 타자가 홈런 때릴 수 있는 확률이 줄어드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고 봐야죠. 백강호 선수는 히어로즈 배터리에서 좋은 공을 주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 것 같아요. 더 이상 볼넷으로 걸어 나가지 않겠다는 백강호 선수의 의지 표출이지 않을까 합니다."
안 위원의 대답으로 TV 중계를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강호의 내심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들어 상대 팀 배터리의 계속되는 승부 회피에도 강호가 쉽게 걸어 나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장면이었다.
강호를 응원하는 자이언츠 팬들로서는 그런 강호의 의지가 참으로 보기 좋게 느껴진다.
"그래! 팀 4번 타자라면 저 정도 투지는 있어야지!"
"백강호 선수가 괜히 72홈런이라 때린 거겠어? 저런 끈질긴 성격이 있으니까 세계 기록도 넘보는 거 아니겠어?"
"그나저나 좀 아깝기도 하네. 그냥 배트 길게 쥐고 홈런 노리면 안 되나? 지고 있는 상황도 아니고, 4점차로 이기고 있는 무사 상황이잖아. 히어로즈에서도 고의사구로 낼 것 같지는 않은데 그냥 붙어도 되는 거잖아?"
"야구 모르는 소리하네. 네가 지금 투수면 타격감 좋은 백강호한테 좋은 공 주고 싶겠어?"
"아니. 그냥 고의사구로 거르고 말지."
"그래. 너도 싫은데 금민석이라고 백강호랑 붙고 싶겠어? 고의 사구는 아니어도 제구가 안 되는 척하면서 똥볼만 던지겠지. 결국 백강호 선수가 배트 짧게 안 쥐면 볼넷이라고."
자이언츠 팬들은 강호의 타격 폼 변화로 인한 결과에 대해 예측하며 뜨거운 설전에 돌입하고 있었다.
그중 마지막 팬이 말한 내용이 TV화면을 통해 현실화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짜 똥볼만 주네. 저게 무슨 공이야? 왜 갑자기 죄 없는 심판 머리를 저격해?"
어떤 팬의 말대로 민석이 던진 2구가 심판 머리 쪽을 향해 던져지고 말았다.
주심은 140km후반 대의 강속구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본인도 모르게 '엄마야!'라고 소리치며 몸을 웅크리고 만다.
덕분에 민석의 공을 피할 수는 있었지만, 근처에 있던 모두가 웃음을 참아야하는 희극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그 모습을 확인한 주심은 민망했던지 얼른 변명의 말을 꺼낸다.
"이거 나 저격한 거 아냐? 지금부터 웃는 사람은 다 퇴장시킨다."
주심의 말은 민망함을 감추기 위한 농담을 담고 있었지만, 포수인 박동현의 입장에서는 웃을 수 없는 주심의 농담이었다.
"아, 넵. 죄송합니다. 민석이 손이 미끄러진 모양입니다."
박동현 포수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실투를 던진 금민석 투수가 모자를 벗고 주심에게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에 주심은 마지못해 괜찮다는 시늉을 해보였지만, 또 다시 민석의 실투가 나올까봐 마치 박동현 포수의 그림자가 된 것처럼 그의 뒤편에 바짝 붙어 선다.
그런 주심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금민석 투수는 투구에 앞서 주심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겨난다.
'거기서 왜 손이 미끄러진 거야? 이번에는 그러면 안 되니까 릴리스 할 때 공을 0.1초만 더 쥐고 있어야겠다.'
금민석 투수는 3구째는 실투를 하지 않기 위해 릴리스 포인트를 0.1초 정도 뒤로 끌기로 한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그런 금민석 투수의 결정이 또 다른 실투를 만들고 말았다.
파핫!
과격한 와인드업 동작에 이어진 릴리스 동작.
자신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금민석 투수는 이번 3구째 공 역시 실투임을 깨닫는다.
조금 전, 주심의 머리 위로 던졌던 실투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실투인 것이다.
'이런!'
실투를 깨달은 민석이 눈을 크게 뜨고, 타격폼을 변화시킨 강호의 스윙이 파노라마 같이 그의 시야에 펼쳐진다.
부웅!
강호의 스윙으로 인한 바람 소리가 마운드에 선 민석에게까지는 들릴 리 만무하지만, 민석은 강호의 스윙 소리가 태풍이 불어올 때의 소리처럼 크게 느껴지고 있었다.
강호는 오픈 스탠스 자세에서 왼발의 발바닥을 눕히며, 배트를 몸 쪽으로 끌어당기는 스윙으로 민석의 3구를 정확히 통타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강호가 때려낸 타구가 하늘을 향해 솟구친다.
홈런이 되기에는 각도가 높아 보이는 타구라서 민석은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타구 방향을 시선으로 좇는다.
그러나 그런 민석의 희망은 곧 좌절감으로 뒤바뀌고 만다.
"와아아아!!!"
"넘어갔어!!!"
사직구장을 뒤흔드는 팬들의 목소리가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배트를 짧게 쥔 강호가 홈런을 때려내버린 것이다.
지축을 뒤흔드는 팬들의 함성 속에 강호의 발걸음이 1루를 향하고, 중계석에서도 팬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큰 목소리로 상황을 알린다.
"좌익수 뒤로! 좌익수 뒤로!! 담장을~ 넘어갔습니다! 백강호의 솔로포가 터집니다! 드디어 백강호가! 배리 본즈의 세계 홈런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염 캐스터는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목소리가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호의 지금 홈런 장면은 앞으로 대한민국의 홈런 기록을 거론할 때마다 재생되고, 또 재생될 야구 역사의 귀중한 장면이었다.
이런 홈런을 설명하는 목소리에 에너지를 아낄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캐스터로서 야구팬들과 관계자들에게 두고두고 욕먹을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추가 설명을 더하는 염 캐스터의 목소리에는 피를 토하는 듯한 에너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백강호의 이 홈런은 시즌 73호 홈런으로 기록됩니다!!"
염 캐스터가 에너지 넘치는 멘트로 강호의 홈런을 선언할 무렵, 1루 관중석에 홈팬들과 함께 섞여 있던 지정만 사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지 사장의 주변은 팬들이 내지른 함성으로 완전히 뒤덮여버린 상태였다.
"허 실장, 뭐해!?"
"네? 사장님, 뭐라고요?! 팬들 목소리 때문에 잘 안들립니다!"
"폭죽 터뜨려 인마!! 우리 백 선수가 홈런 쳤잖아! 73홈런!! 어서 폭죽!!"
"아! 네!"
지 사장이 목이 터져라 소리치자 그제야 지 사장의 말을 인식한 허 실장이 근처에 놓아둔 무전기를 집어 든다.
그 무전기는 현장 진행 요원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허 실장이 막 무전기를 들고 교신을 시도할 무렵, 지 사장이 바라던 폭죽이 사직구장의 하늘을 아름다운 빛의 향연으로 물들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불꽃 축제를 연상케 하는 엄청난 장면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 사장이 미리 준비시켜둔 강호를 위한 이벤트 중 하나인 것이다.
펑, 펑, 펑, 펑!!
엄청난 폭죽의 향연은 팬들의 목소리마저 일순간 잠재울 정도로 압도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무려 수천만 원의 예산을 투자한 결과가 눈앞에서 예술적인 광경을 만들어내자 지정만 사장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감돌기 시작한다.
"그렇지! 바로 저거야! 내가 뭐라 그랬어? 이번 주에 백강호 선수가 73홈런 때릴 거라 했지? 기가 막히는 타이밍이구만! 아주 좋아!"
"네? 뭐라고요?! 사장님 폭죽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립니다!"
"귀 좀 파고 다녀라, 허 실장. 경기 전에 내가 준비하라고 한 팬 선물 이벤트는 어떻게 됐어?"
"아! 그거 말입니까? 말씀하신대로 1천 개를 준비해서 자이언츠 로고 박힌 포장지로 반듯하게 준비해뒀습니다."
"뭐?! 허 실장, 안 들려. 크게 좀 말해!"
지 사장과 허 실장은 폭죽이 터지는 가운데 경기 후의 이벤트 준비를 또 한 번 확인하고 나선다.
강호의 홈런으로 기쁜 와중에도 자신들이 할 일을 잊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 두 사람과 자이언츠의 모든 팬들을 환호하게 만든 당사자는 오른손을 높이 들어 올린 채 베이스를 돌고 있었다.
'해냈다! 아이템의 도움을 받은 타석이 많긴 했어도 결국 73홈런까지 오게 됐구나!'
강호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22일 베어스와의 잠실 경기에서 홈런 아이템을 모두 써버린 후 더 이상의 홈런은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오늘 경기에서 두 개의 홈런포를 추가하며 73홈런까지 도달하게 되자 그런 걱정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린다.
걱정과 염려가 사라진 마음의 공간에 기쁨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이 샘솟는 것을 느낀다.
"멋지다, 강호!"
홈을 밟은 강호에게 대기 타석에 있던 5번 타자 황제인이 축하의 말을 건네 온다.
그 뒤로 덕 아웃에서 자신을 향해 양팔을 펼쳐 보이는 팀 동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우와~ 백강호! 결국 해내는구나!"
"73홈런이라니! 어서 들고 있는 배트를 내게 양도해라!"
"강호 선배님! 존경합니다! 이제부터 선배님의 몸종이 되겠습니다."
"저리 비켜! 찬물에도 위아래가 있지. 강호 시중은 내가 든다!"
누구라도 할 것 없이 선후배, 동료 선수들 모두가 강호의 73호 홈런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강호는 그런 동료들을 향해 활짝 웃어 보이며, 가장 먼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손 감독을 향해 다가선다.
손 감독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강호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얼굴을 가리는 짙은 색 고글을 벗으며 이렇게 말했다.
"더할 나위 없는 멋진 홈런이었다."
진하게 웃으며 말하는 손 감독의 목소리에서 기쁜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손 감독은 강호의 홈런을 평하며 '더할 나위 없었다'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그것은 강호가 손 감독에게 들었던 찬사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칭찬으로 기억될 것 같았다.
"네!"
강호는 씩씩한 목소리로 답하며 손 감독이 내민 오른손과 손뼉을 맞부딪힌다.
타악!
서로 손뼉을 맞부딪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중계 카메라를 통해 모든 시청자들에게 전달되고, 그 모습은 오늘 있었던 모든 구장의 경기 장면 중 팬들에게 가장 훈훈한 감동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강호의 솔로 홈런포가 쐐기점이 되어 이날의 경기는 결국 자이언츠의 7대 2 승리로 끝이 나게 된다.
경기가 자이언츠의 승리로 종료된 후 미리 예정된 대로 강호의 70-70달성에 대한 시상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의 시상식은 이례적으로 자이언츠의 구단 사장인 지정만 사장이 직접 주관하는 시상식이었다.
이 시상식에서 미리 준비된 대로 강호의 입체 피규어가 1천 명의 관중들에게 선물로 전달되고, 훗날 들려오는 말로는 이 피규어의 가격이 개당 50만 원까지 치솟았다는 풍문이 돌 정도였다.
"우와! 백강호 선수랑 똑같이 만들었네."
"이것 봐! 팔, 다리가 다 움직여! 허리도 돌아가네."
"잘 만들었다~"
이벤트에 당첨되어 강호의 피규어를 받아든 팬들은 기뻐했다.
차후의 일이 아니더라도 강호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해낸 피규어를 받아든 팬들은 경기가 승리했다는 사실보다 이벤트에 당첨됐다는 사실에 더욱 즐거워한다.
그리고 그런 팬들보다도 즐거워하는 인물이 그라운드에 또 있었다.
"백강호 선수, 팬입니다."
"네?"
강호는 2억이라는 시상금이 적혀있는 피켓을 받아들며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구단에서 전달한 시상금이 2억이나 된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것을 전달한 지정만 사장이 건넨 말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구단 사장이 자신의 팬이라니. 이런 걸 립 서비스라고 하는 것일까.
그런데 지 사장의 이어진 말에서 그가 처음한 말이 진심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구단에 소속된 사진 기사가 공식 사진을 찍을 거긴 합니다만, 나중에 따로 셀카 한 번 찍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구단 사장의 간절한 목소리에 강호는 차마 거절의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소속 구단의 사장이지 않은가.
"네. 그렇게 하시죠."
"SNS 팔로윙 수락도 부탁드립니다."
"네?"
"SNS팔로윙이요. 제가 팔로어를 할 테니까 수락만 눌러주세요."
"저는 SNS 안 하는데요."
"걱정 마세요, 백강호 선수. 구단 기획 팀에서 전문가를 불러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네?"
"아~~이제 기념사진을 촬영하나 보네요. 자~~ 웃읍시다. 스마일."
지 사장과의 몇 마디 대화 후에 강호는 기념사진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강호는 왠지 구단 사장과 일개 선수가 아닌, 톱스타를 흠모하는 열성팬과 사진을 찍는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강호의 복잡한 기분 속에 곁에 선 지정만 사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스마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