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89화 (289/335)

0289 / 0335 ----------------------------------------------

피하고 싶은 타자

9회 말 마지막 타석에서 세 번째 타자인 양희지의 타구가 외야 뜬공이 되고, 이 타구가 우익수의 글러브에 빨려드는 것으로 오늘의 경기는 끝을 맺고 있었다.

그런데 자이언츠 팬들의 환호는 마운드 위의 투수가 아니라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우익수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이것은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지만, 우익수 글러브를 낀 선수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장면이었다.

"백강호! 최고다!"

"백강호 선수는 우익수도 잘 보네! 다음번에는 투수도 한 번 해보세요!"

"투수도 하고, 포수도 하고, 백강호가 다 해먹어라!"

팬들의 환호를 통해 우익수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양희지의 타구를 포구해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선수는 다름 아닌 강호였다.

강호는 우익수 박철이 좌익수로 이동하며 생긴 공백을 3이닝 동안 채울 수 있는 선수로 낙점 받은 것이다.

'외야수 글러브도 참 오랜만이네.'

강호는 자신의 글러브 안에 들어온 타구를 내려다보며 피식 웃음 짓는다.

이참에 확인하게 된 자신의 우익수 스탯도 그를 웃음 짓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백강호(24)

포지션:RF

컨  택:106.9[max](+7)

파  워:106.9[max](+7)

선구안:101(+7)

주  력:106.9[max](+7)

수  비:83.1(+7)

송  구:81.2(+7)

멘  탈:102(+7)

오랜만에 서게 된 우익수로서의 상태창을 확인하게 된다.

타석 상황이 아니라 스킬은 '나는 전설이다' 스킬 하나 만이 적용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주전 우익수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스탯들이었다.

'이 참에 우익수로 보직 이동되는 건 아니겠지?'

강호는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강호가 우익수로 이동하며 비게 된 유격수 자리에는 5번 타자 스팅을 대신해서 지명타자로 올랐던 오진택이 대신하게 되었다.

다소 무리수로 보이는 이와 같은 결정은 오진택이 원래 팀의 주전 유격수라는 사실과 강호가 한 때 우익수 보직을 무리 없이 수행했다는 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실제로 두 선수는 남은 3이닝 동안 실책 없이 좋은 수비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수고했다, 강호."

팬들의 환호를 받고 돌아온 강호를 향해 손 감독의 찬사가 이어진다.

이 날의 경기는 강호의 사이클링 홈런에 힘입은 자이언츠가 결국 16대 9로 승리하게 된다.

베어스는 강호가 기록한 10타점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한 채 패배의 고배를 마시게 된 것이다.

"두고 보자, 백강호! 다음 경기에서는 이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

베어스의 4번 타자인 김재성은 강호의 이름을 곱씹으며 분루를 삼킨다.

그것은 재성을 제외한 다른 베어스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번 시리즈의 패배로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비록 오늘 경기의 패배로 팀이 2위로 내려앉게 되었지만, 시즌 내내 1위를 지켰던 자존심은 아직 베어스 선수들의 가슴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다음에는 이런 식으로 경기를 내주지는 않을 겁니다. 아직 정규 시즌은 남아 있으니까요.'

베어스의 사령탑인 구형태 감독 역시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는 손 감독에게 직접 전하지 않은 말을 속으로 삼키며, 남은 경기에 대한 각오를 다진다.

'빼앗긴 1위 자리는 다시 되찾을 겁니다. 다음번에 뵙죠, 손 감독님.'

그렇게 오늘 경기에 대한 회한을 삼키며 몸을 돌리던 구형태 감독.

문득 그의 시선에 팀 동료들과 손뼉을 마주치는 강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구 감독은 그런 강호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 베어스 선수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홈 관중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한 후 경기장을 빠져 나간다.

구 감독은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강호를 방출했던 과거의 결정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폭발할 것이라는 예상을 해본다.

한편 같은 시간, 장소는 잠시 관중석으로 이동한다.

강호의 모습을 보기 위해 잠실구장을 찾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자신들의 짐을 챙기며 대화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더 이상 백강호의 파워를 검증해야 한다는 말은 할 수 없게 되었어. 잠실구장에서 4연타석 홈런을 때리는 타자가 파워가 부족할 리 없지. 게다가 장외 홈런도 있었잖아?"

"저 정도 파워면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하고도 남아. 지금 당장 메이저로 직행한다고 해도 40홈런 이상은 책임져 줄 거야!"

"40홈런? 나는 50홈런도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보는데."

스카우터들은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며 활발하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러다가 다른 팀 스카우터들과 마주칠 때면 강호에 대한 호평을 중단하고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이미 강호에 대한 판단을 끝내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구단이 강호를 눈독드리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오는 행동이었다.

'백강호는 우리 구단으로 데려와야 해!'

지금의 시점에서 모든 스카우터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강호를 향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확신이 쏟아지는 가운데, 잠실구장에는 메이저리그에서 온 스카우터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잠실구장의 곳곳에는 국내 리그의 다른 팀에서 보낸 스카우터들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포스트 시즌 출전이 유력한 팀들인 다이노스와 히어로즈, 그리고 타이거즈 등의 전력분석원들이었다.

정규 시즌이 끝나고 포스트 시즌에서 맞붙게 될 베어스와 자이언츠의 전력을 분석하기 위해 잠실구장을 찾은 것이다.

"김재성은 여전히 위협적인데? 가을이 되도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겠어."

"민정현이나 오재현도 마찬가지야. 가을야구에서 베어스와 맞붙게 되면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최근 타석 자료들을 긁어모아 둬야겠어."

포스트 시즌 진출이 거의 확정된 다이노스 전력분석원들은 베어스의 주력 선수들을 분석하기에 바빴다.

그들이 자이언츠에 비해 베어스의 분석에 더욱 집중하는 이유는 정규 시즌 우승이 자이언츠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판단에서였다.

아무래도 준 플레이오프를 거쳐 플레이오프를 준비해야하는 입장에서 한국시리즈에서 맞붙게 될 1위 팀과의 시리즈보다 플레이오프에서 맞붙게 될 2위 팀과의 시리즈를 먼저 준비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지면 한국시리즈도 없었기 때문에 정규 시즌 2위로 예상되는 베어스의 전력을 우선적으로 분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당사자인 베어스를 제외한 모든 팀들은 자이언츠 쪽의 정규 시즌 우승 확률을 높게 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자이언츠는 어때? 플레이오프 준비가 우선이라지만, 자이언츠에 대한 준비도 해둬야지."

"자이언츠는 신인 선수들이 많아서 오히려 베어스보다 상대하기 편하지 않을까요? 한국시리즈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전무하다시피한 팀이잖습니까? 특히 올해는 세대교체 시즌이니까 그렇게 큰 무대에서는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정규 시즌 우승이 예상되는 자이언츠에 대한 다른 팀 전력분석원들의 냉철한 분석이었다.

자이언츠는 올 시즌 완벽한 세대교체로까지 평가받는 한 해였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가을야구 경험이 전혀 없는 신인 선수들이 많다는 단점도 존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이언츠의 포스트 시즌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평가는 좋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때, 한 켠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모두가 애써 꺼내지 않고 있던 질문 하나를 던져온다.

"백강호는 어떨까요? 백강호도 포스트 시즌 경기에서 허점이 생길까요?"

누군가의 물음에 자이언츠의 포스트 시즌을 부정적으로 말하던 대다수의 분석원들이 입을 다문다.

그들이 자리한 곳에는 단지 다이노스 분석원들 뿐만 아니라 히어로즈와 타이거즈, 와이번스와 트윈스 분석원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경기를 관전할 때는 따로 앉아 있었지만, 경기가 끝난 후 식사를 함께하기로 약속한 까닭에 한 곳으로 모여든 이유였다.

"음...백강호는."

누군가 대답을 위해 입을 연다.

그리고 곧 이어진 그의 말에 모두가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걸러야지. 오늘 경기만 해도 그래. 베어스가 밀어내기 볼넷을 주더라도 백강호를 걸렀으면 뒤집을 수도 있는 경기였어. 혹시라도 가을야구에서 자이언츠와 맞붙게 되면 백강호는 거르는 수밖에 방법이 없어."

"맞아요. 올 시즌 백강호는 약점이 없어요. 2년차가 되면 상황이 좀 달라질 수도 있지만, 올해는 언터쳐블입니다. 차라리 출루를 시키더라도 고의사구를 주는 게 좋을 겁니다."

강호를 향한 전력분석원들의 의견은 같았다.

설령 만루 상황에서 밀어내기 볼넷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강호를 거르는 게 옳은 결정이라는 것이다.

다소 비약적인 생각이기도 했지만, 70홈런이라는 정점을 찍은 강호에게 어울리는 대처 방법이기도 했다.

전력분석원들이 강호에 대한 이야기로 분주한 동안 자이언츠 선수단은 원정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이번 주에 예정된 잠실 원정을 모두 끝냈으니 더는 머무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선수들이 귀환을 위해 원정 버스에 오르는 가운데 강호를 향한 함성은 계속되고 있었다.

"백강호 선수! 싸인 하나만요!"

"백강호 선수 최고다! 80홈런까지 갑시다!!"

주차장까지 따라온 자이언츠 팬들의 함성은 원정 버스가 잠실구장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런 팬들의 열정을 버스 안에서 경험하게 된 선수들은 한 선수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강호, 어디까지 할 거야?"

캡틴인 민수가 모두의 의문을 담아 강호에게 묻고 있었다.

목적어를 생략한 그의 물음에 강호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홈런 기록 말이야. 팬들 말처럼 진짜 80홈런까지 칠 생각이야?"

민수의 물음에 강호는 그제야 그의 얼굴에 담긴 장난기를 발견하게 된다.

잠시 대답할 말을 찾아보던 강호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 홈런 치는 것도 쉽지 않게 됐어요. 홈런 아이템을 다 써버렸거든요.'

이것이 민수에게 차마 답하지 못한 강호의 진심이었다.

오늘 경기에서 2회 초, 운 좋게도 아이템 사용 없이 홈런을 때려내며 사이클링홈런이라는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

4연타석 홈런 중 3개의 홈런이 '홈런'아이템으로 만들어낸 기록인 것이다.

강호의 생각이 이어지는 동안 곁에 앉은 문표가 민수의 물음에 대신 답하고 있었다.

"이제 정규 시즌이 열 한 경기 남았으니까 산술적으로 경기당 홈런 하나만 치면 80홈런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죠. 잠실에서 4연타석 홈런을 치는 강호가 남은 경기에서 홈런 하나씩을 못 치겠습니까? 안 그래, 강호 후배?"

문표는 강호의 80홈런 달성을 낙관하며 동의를 구해 온다.

강호는 그런 문표의 물음에 '안 그래요.'라고 답하며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아무래도 80홈런은 불가능할 겁니다. 홈런이라는 게 제가 때리고 싶다고 해서 나오는 기록도 아니지 않습니까?"

자신의 주장을 반박하는 강호의 말에 문표는 피식 웃어 보인다.

그런 문표의 미소에 전염된 일부 선수들도 함께 웃음 짓는다.

강호로서는 그런 동료 선수들의 모습에 의아함이 생겨난다.

"왜 웃으세요?"

"웃기잖아. 강호 후배는 시즌 70홈런을 때린 데다 잠실에서 사이클링 홈런을 때린 타자인데 마음먹으면 홈런이 가능한 거 아니었어? 그러고 보니까 강호 후배가 홈런 예고를 한 적도 있었잖아."

문표의 반론에 몇몇 선수들이 '맞아, 그랬지'라며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강호가 그런 선배 선수들의 생각에 난감해할 무렵, 선수들이 탄 원정 버스 근처에는 또 한 대의 자이언츠 원정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선수들의 버스에 비해 조금은 낡아 보이는 버스는 자이언츠 코칭스태프가 탄 차량이었다.

코칭스태프가 탄 원정 버스 역시 선수들의 버스와 다르지 않게 활발한 대화가 오고가는 모습이었다.

"아까 버스에 올라탈 때 보니까 강호의 80홈런을 응원하는 팬들이 있더라고요."

손 감독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사람은 팀의 수석 코치인 김민철 수석이었다.

그는 버스에 오르기 전, 얼핏 듣게 된 팬들의 목소리를 주제로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 김 수석의 말에 손 감독이 피식 웃음 지었고, 김 수석의 말이 이어진다.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강호의 타격 컨디션을 보니까 한, 두 경기 만에 가라앉을 타격감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사직 경기에서도 오늘 같은 타격감이 이어지면 가능하지도 않을까요? 80홈런 말입니다."

김 수석은 팬들이 주장한 강호의 80홈런 달성이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의견이었다.

현재까지 강호가 71홈런을 달성한 상태라서 남은 열 한 경기 동안 아홉 개의 홈런만 추가하면 되고, 남은 경기 중 사직 홈경기가 더 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홉 개의 홈런을 추가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강호는 9월 19일 경기부터 4경기 연속 홈런 기록을 이어오고 있었고, 특히나 오늘 경기에서는 전대미문의 사이클링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 강호에게 과연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기나 할까?

그런데 손 감독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보였다.

"그건 불가능해."

"네?"

손 감독의 단호한 대답에 김 수석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강호에 대한 손 감독의 신뢰와 애정을 잘 알고 있는 김 수석이었기에 지금 손 감독의 대답은 조금은 의외의 것이었다.

자신의 대답에 당황한 김 수석을 향해 손 감독의 말이 이어진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