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81화 (281/335)

0281 / 0335 ----------------------------------------------

미리 보는 한국시리즈

강호가 타석에 들어서자 자이언츠 팬들은 하나 된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거르지 말고 붙어라!"

이제 강호의 전용 응원 메시지가 되어버린 팬들의 외침은 마운드 위의 투수에게도 전달되고 있었다.

한국 생활이 8년째인 니퍼드 투수는 자이언츠 팬들의 외침이 무슨 의미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고 있었다.

'붙으라고? 백강호와 승부를 보라는 뜻인가?'

니퍼드 투수는 자이언츠 팬들의 외침을 해석해보며 속으로 웃음 짓는다.

2회 초 무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선두 타자로 맞이한 상대 팀의 4번 타자다.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발 빠른 타자 주자를 볼넷으로 내보낼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팀에서는 백강호를 주자 없는 상황에서도 볼넷으로 내보냈다는 뜻이겠지?'

추측처럼 자문하고 있었지만, 니퍼드는 강호의 최근 기록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다른 팀에서 강호를 왜 볼넷으로 거르는 지를, 심지어 일부 팀들은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강호를 거르는 선택을 했었다.

니퍼드는 그 이유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백강호라는 타자가 위협적이라고 판단한 거야.'

니퍼드가 보기에도 눈앞의 타자는 위험한 요소가 다분했다.

지금 당장 강호를 메이저리그에 가져다 놓아도 빅 리그 급 강타자들의 하드웨어와 비교해서 전혀 꿀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었다.

강호는 시즌 타율이 4할이 넘는 컨택 능력과 100개 이상의 볼넷을 골라내는 선구안을 보유한 타자다.

안일한 마음으로 상대했다가는 어떤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시즌 66개라는 강호의 홈런 기록이 증명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해보지도 않고 거른다는 것은 겁쟁이들이나 택하는 방법이야.'

니퍼드 투수는 강호와의 승부를 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피할 이유도 없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강호와 같은 타자에게 일격을 허용하게 되면 경기의 분위기가 단 번에 넘어가게 될 거라는 우려는 존재했다.

'경기의 판도를 한 번의 타격으로 바꾸어 버리는 타자.'

한국 무대에서 8년이라는 시간을 활동한 니퍼드 투수가 올 시즌 강호의 모습을 지켜본 후 내린 평가였다.

과거 강호를 직접 맞상대하며 피 홈런을 얻어맞기도 했으니 지금 승부에서 방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니퍼드 투수는 한 시즌 만에 정점에 오른 강호와의 재대결을 맞이하며 혼신의 투구를 다할 생각이었다.

그런 니퍼드의 시선과 마주하게 된 강호.

-주자가 없는 상황입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아이템 사용 여부를 묻는 시스템의 메시지에 속으로 '아니'라고 대답하며 타석에 자리를 잡는다.

'지금 상황에서는 아이템을 쓸 필요가 없어. 분위기를 전환시킬 타석 기회일 수는 있지만, 몇 개 없는 타격 아이템이나 홈런 아이템을 사용할 타이밍은 아니야.'

강호는 이번 타석에서 타격 아이템 사용 없이 승부를 볼 작정이었다.

여덟 번째 프리마켓 방문으로 비어있던 하나의 스킬 창을 채워 놓은 상태다.

'4번 타자의 각성'스킬이 적용되고 있는 중이라서 굳이 타격 아이템 사용 없이도 충분히 위협적인 타격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은 상태창에 표시되는 수치들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백강호(24)

포지션:SS

컨  택:113.9[max](+14)

파  워:113.9[max](+14)

선구안:108(+14)

주  력:106.9[max](+7)

수  비:102(+7)

송  구:99(+7)

멘  탈:102(+7)

상태창으로 확인한 스탯들은 이미 정점을 찍은 모습이었다.

최고치에 근접할 정도로 성장한 스탯에 '살아있는 전설' 스킬과 '4번 타자의 각성'스킬이 더해지니 사기급이라 말할 수 있는 스탯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대 투수인 니퍼드가 역대급 용병 투수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강호 본인의 스탯은 역대급을 넘어 사기급이라 평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 있는 상태였다.

'붙어보자!'

강호는 더욱 눈빛을 빛내며 양손에 쥔 배트를 힘껏 쥔다.

그러면서도 어깨에는 힘을 뺀 상태로 상대 투수의 릴리스 동작에 맞추어 배트를 낼 수 있게 배트 끝을 앞뒤로 흔들었다.

대다수 타자들이 가진 습관일 수 있었지만, 강호의 사소한 동작은 더욱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덕분에 양희지 포수는 초구 선택을 망설이는 중이었다.

'일단 초구는 빼 보자. 백강호의 초구 타격 성향이 강하니까 위험 요소를 줄이고, 이번 타석에서 백강호가 무슨 생각으로 타석에 섰는 지를 읽어보는 거야.'

어렵사리 판단을 내린 양희지 포수는 초구에 바깥 쪽 커브 싸인을 낸다.

그것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니퍼드 투수와 강호의 불꽃 튀는 승부는 초구 바깥 쪽 커브를 강호가 타격하면서부터 화끈한 출발을 알린다.

따악.

깨끗한 타격음이었다.

하지만 그 타구는 베어스 덕 아웃으로 직행하는 파울 타구가 된다.

덕분에 베어스 선수들은 강호의 타구를 피하기 위해 혼비백산해야만 했다.

"아이고, 깜짝이야!"

"뭐야? 저격이야? 나 지금 맞을 뻔 했어."

베어스 선수들은 덕 아웃으로 날아든 타구를 피하기 위해 급히 몸을 움직인다.

강호는 손바닥을 들어 올려 고의가 아니었음을 베어스 덕 아웃에 알린 후 다시 니퍼드 투수와의 승부에 집중한다.

그리고 두 선수의 대결은 어느새 9구째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따악!

또 한 번의 타격음에 자이언츠 팬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8구째 승부와는 다른 대형 타구가 잠실구장의 외야를 가로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넘어가라! 넘어가!""

"홈런 아냐? 홈런....아!"

"아아아...!"

자이언츠 팬들의 기대는 곧 탄식으로 바뀌고, 반면에 베어스 팬들의 탄식은 안도의 한숨으로 뒤바뀐다.

좌측 담장을 노리고 날아간 강호의 타구가 담장 직전에서 파울 라인을 넘어버린 것이다.

1루를 향해 내달렸던 강호는 타구 방향을 확인한 후 다시금 타석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런 강호의 표정에는 아쉬운 감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포심을 노리는 게 들통 났겠구나. 계획을 수정해야겠어.'

강호의 생각은 어느새 다음 공에 대한 계획으로 넘어가 있었다.

파울 홈런이 된 타구가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크게 연연하지 않고 있었다.

니퍼드의 포심을 유도하기 위해 슬라이더를 노리는 시늉을 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니퍼드의 투구 수를 9개나 늘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안타를 때려내지 못했어도 니퍼드 투수의 투구 수를 늘린 게 성과가 될 수 있어. 공략하기 까다로운 투수니까 내 타석에서 최대한 투구 수를 늘려서 한 이닝이라도 일찍 교체되게 만드는 것도 방법일 테니까.'

강호는 빠른 공을 노리는 자신의 의도가 들통 났지만, 부정적인 부분보다는 긍정적인 요소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왜냐하면 오늘의 경기가 마지막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 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팀이 한국 시리즈에 나가서 베어스와 맞붙게 되면 결국 니퍼드라는 투수를 넘어야만 해. 그러니까 지금 타석에서 니퍼드 투수의 공을 최대한 많이 경험하는 것도 한국 시리즈를 위해 큰 도움이 되는 거야. 정규 시즌이 끝난 후에는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그것이 강호의 생각이었다.

일부러 니퍼드의 공을 파울로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강호도 정타를 때려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니퍼드, 양희지 배터리의 볼 배합이 워낙 좋았고, 투수인 니퍼드의 구위와 제구력이 뛰어난 까닭에 정타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초조해 하는 것보다 타자인 본인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부담없이 자기 스윙을 가져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린 강호였다.

티익.

이번에는 다소 먹힌 소리와 함께 타구가 등 뒤로 솟구쳐 버린다.

양희지 포수가 몸을 일으켜 타구를 쫓아봤지만, 타구는 아슬아슬하게 관중석으로 넘어간다.

강호는 니퍼드의 10구 째 공 역시 파울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쯤 되자 공을 던지는 투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었다.

'1회에 세 타자를 상대로 던졌던 투구 수를 백강호 한 명을 상대하면서 던지게 생겼구나.'

니퍼드 투수는 헛웃음을 지으면서 강호의 눈빛을 응시한다.

여전히 날카로운 강호의 눈빛이 자신의 시선과 마주치자 니퍼드 투수는 다른 관점에서 지금의 승부를 바라보기로 한다.

'볼 카운트가 아직 2볼 2스트라이크 상황이니까 삼진이나 범타로 돌려세울 가능성은 충분해. 정확하게 말하면 삼진 확률은 낮고, 범타 확률은 꽤나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야. 백강호의 시즌 삼진 개수는 26개밖에 안 되니까, 삼진으로 잡으려는 욕심보다 범타를 유도하는 게 옳아.'

니퍼드 투수는 11구 째 공을 마음속으로 선택하고 있었다.

강호와의 승부에서 그가 사용한 구종은 포심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슬라이더와 커브였다.

아직 강호에게는 보여주지 않은 공 하나가 있었으니 그 공을 던져 내야 땅볼을 유도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싱커다! 싱커를 던져서 백강호를 아웃시키는 거야.'

니퍼드 투수가 11구 째 공에서 강호를 잡기 위해 선택한 결정구는 싱커였다.

싱커(sinker)는 볼이 타자에게 가까이 접근했을 때 가라앉듯이 떨어지는 변화구를 말하는데 변화구 보다는 속구에 가깝다.

타석 직전에 가라앉는 싱커에 타자들이 속구로 착각하고 헛스윙 할 가능성이 높고, 타격에 성공해도 땅볼이 되는 경우가 많아 포심과 함께 구사했을 때 큰 장점을 보이는 구종이었다.

이렇게 장점이 많은 싱커 구종이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도 존재했다.

싱커라는 구종을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하면 그저 구속이 느린 속구로 전락하게 된다.

130km대의 속구는 강호와 같은 슬러거들의 먹이일 뿐인 것이다.

'그동안 백강호에게 싱커를 보여준 적이 없어. 지금 타석을 위해서 아껴둔 꼴이 되었구나. 백강호를 삼진으로 잡지 못한다는 게 아쉬운 일이지만, 우선은 아웃카운트를 올리는 게 중요한 거니까.'

니퍼드 투수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위안하며 11구 째 공을 던지기 위해 와인드업 동작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의 투구 모션에 맞춰 테이크백 동작에 들어갔던 강호 역시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다.

'포심인가? 궤적이 포심인 것 같은데?'

강호는 배트를 휘두르면서도 확신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11구째를 타격하는 강호의 스윙은 평소의 자신만만한 타격이 아니라 컨택을 우선시 한 타격이었고, 떨어지는 싱커의 궤적에 맞춰 허리를 제대로 회전시키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딱.

타격음과 함께 강호의 발이 1루로 향한다.

평소 강호다운 타격은 아니었지만 배트는 니퍼드의 싱커를 정확히 컨택해 냈고, 타구는 내야를 넘어 중전 안타라는 결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강호는 1루 베이스를 밟은 후에야 니퍼드가 던진 구종을 확신할 수 있었다.

'싱커였구나. 궤적이 포크볼을 보는 거랑 비슷했어.'

강호는 처음 접하는 니퍼드의 싱커를 컨택해낸 후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 속으로 수십 번 이상 조금 전의 타격 장면을 되새긴다.

그런 강호를 향해 자이언츠 팬들의 함성이 쏟아지고 있었다.

"잘했다, 백강호! 역시 백강호는 다르네!"

"툭 대니까 안타가 나오네! 백강호 선수! 이제 도루 하나 더 합시다!"

자이언츠 팬들은 니퍼드에 가로막혀 답답했던 1회 초 공격 후, 2회 초 강호의 끈질긴 승부 끝에 나온 안타에 기뻐하고 있었다.

비록 평소 강호가 보여준 호쾌한 타격은 아니었지만,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니퍼드 투수에게 11구 승부 끝에 안타를 뽑아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팬들이었다.

그런 팬들의 환호를 들으며 강호는 주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한다.

'아직 경기는 끝난 게 아니니까.'

원하는 타격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주자로서의 역할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

강호는 다음 타자인 황제인이 타석에 들어서는 것을 확인한 후 최대한 리드 폭을 벌리며 니퍼드 투수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니퍼드 투수는 그런 강호의 모습을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강호가 올 시즌 최다 도루를 기록하고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분명 도루를 하겠지.'

그런 생각으로 연달아 두 개의 견제구를 던지지만, 강호를 견제구로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신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야유만이 되돌아온다.

"마!"

"마! 1루 말고 포수한테 던져라!"

자이언츠 팬들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니퍼드 투수는 한 개의 견제구를 더 던진 후에야 황제인을 향한 초구를 던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황제인이 쏘아올린 타구가 잠실구장의 외야를 가로지른다.

니퍼드의 초구 패스트볼을 노린 황제인의 스윙에 정확한 임팩트가 더해져 대형 타구로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중계석에서는 황제인의 지금 타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초구 밀어냈습니다. 오른쪽 떠갑니다! 담장 쪽입니다! 담장 넘어가나? 담장 넘어갑니다! 황제인의 투런 홈런, 니퍼드의 초구를 타격한 황제인의 타구가 잠실구장의 담장을 넘깁니다."

한 캐스터는 황제인의 타구가 투런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황제인의 타구는 우측 담장을 밀어 넘기는 홈런이었고, 그 타구에 도루를 준비하고 있던 주자 강호와 타자 주자인 황제인이 연달아서 홈으로 걸음을 옮긴다.

잠실구장은 벼락같이 나온 황제인의 투런 포에 자이언츠 팬들의 함성 소리로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우와아아!!"

자이언츠 팬들은 환호하고 있었다.

강호의 중전 안타에 이어진 황제인의 투런포로 기선제압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즐거워한다.

그러나 자이언츠 팬들의 즐거움은 곧 깊은 탄식으로 뒤바뀌게 된다.

3회 말 황제인의 투런포를 되갚아 주는 베어스의 3번 타자 바인스의 투런 포가 터져 나온 것이다.

"우와아아!!"

이번에는 베어스 팬들의 함성 소리가 잠실구장을 뒤엎는다.

그 후에도 양 팀 팬들의 함성은 번갈아서 잠실구장을 뒤흔들고 있었다.

한 팀에서 1점을 내면 상대 팀에서 똑같이 1점을 내는 상황이 반복되며 8회 초가 되었을 때 어느새 양 팀 점수는 5대 5가 되어 있었다.

양 팀 선발 투수의 선발승이 날아가 버리고, 이제 양 팀의 마운드는 불펜 투수들이 올라있는 상황.

베어스의 마운드를 지키는 투수는 새롭게 교체된 셋업 투수 윤형준이었고, 반면에 타석에 선 타자는 자이언츠의 4번 타자인 강호였다.

강호는 8회 초 타석에 들어서며 1사 주자 1, 2루 상황의 베이스 상태를 확인한 후 들고 있던 배트를 힘껏 쥔다.

뿌드득.

배트에 힘을 주자 온 몸의 근육들이 수축되는 것이 느껴지고, 동시에 윤형준 투수의 초구가 던져진다.

그리고 강호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 공에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다.

따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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