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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한국시리즈
손 감독의 인터뷰 영상은 부지런한 팬들로 인해 더욱 많은 이들에게 전파되고 있었다.
경기 내용만 보고, 인터뷰 영상까지는 보지 않았던 팬들도 검색어 순위를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손성조'라는 이름을 클릭 하게 된다.
"어?! 이거 뭐야? 손성조 감독 이름이 왜 검색어에 올라가 있어?"
"오늘 경기는 자이언츠가 이겼잖아? 인터뷰에서 무슨 말이라도 한 거 아냐? 검색한 번 해봐!"
자이언츠 팬들은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에서 발견한 익숙한 이름에 자연스레 손을 가져다 댄다.
그리고 관련어로 링크되는 동영상 하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몇 시간 전, 손 감독의 인터뷰 영상이었다.
-남은 목표는.
인터뷰 영상 속, 손 감독은 담담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여자 아나운서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을 했기 때문에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내용의 인터뷰 답변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상은 빗나가고 만다.
-우승입니다.
짧은 대답이었다.
다섯 글자에 불과한 손성조 감독의 짧은 대답, 그것이 지켜보던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자이언츠 팬이라면 바람은 가질 수 있었지만, 목표로는 할 수 없었던 너무 먼 종착점이었다.
온라인상의 일부 팬들이 자이언츠의 우승을 논할 때마다 섣부른 예상을 경계했던 대다수 자이언츠 팬들, 그런 팬들의 가슴속에 손 감독이 선언한 다섯 글자가 파고든다.
'우승이라고? 우리가? 우리 자이언츠가?'
팬들의 가슴이 거세게 뛰고 있었다.
역대 자이언츠의 감독 중에서 우승을 논한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것을 현실화 시킨 감독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팬들은 더 이상 감독들의 말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 불신을 깨는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손성조 감독 정도 되는 사람이 아무런 근거 없이 저런 인터뷰를 할 리가 없잖아?"
"근거? 백강호나 권대우 정도면 충분한 근거 아냐? 당장 주말 2연전만 모두 이기면 1위로 올라서는 거잖아."
"진짜 가능하다고? 우리 자이언츠가 정규 시즌 우승하는 게 정말 가능하단 말이야?"
팬들의 마음은 손 감독이 각인시킨 '우승'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히고 만다.
여전히 불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감독의 말에 또 한 번 속기에는 그동안 자이언츠라는 팀이 준 실망감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담한 어조로 우승을 논하는 손 감독의 태도에서 왠지 모를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까짓 거, 가보자! 자이언츠는 우승하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어? 이번 시즌이 아니면 언제 또 우승권에 가까이 갈 수 있겠어? 물들어 왔을 때 노 저어야지!"
"당장 남은 시즌 표 죄다 예매 하자! 사직 홈경기만 가는 게 아니라, 원정 경기도 다 챙겨보는 거야! 나는 앞으로 보름동안 병가 내고 자이언츠 경기만 쫓아다닐 거야!"
"나도! 자이언츠가 정규 시즌 우승하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손성조 감독 말대로 올 시즌에 진짜로 우승하게 되면 그 현장에 없었다는 게 얼마나 원통할 거야? 앞으로 무조건 현장 관람이다!"
팬들의 생각은 곧 우승 현장을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흥분된 마음과 기대, 부정적인 마음을 이겨내는 믿음이라는 감정이 자이언츠 팬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도 할 수 있어! 베어스만 넘으면 되잖아?"
"이번 시리즈만 넘으면 돼! 이번 시리즈만 이기면 우리가 우승권에 더 가까워지는 거라고!"
팬들도 알고 있었다.
21일 토요일과 22일 일요일에 예정된 베어스와의 시리즈 경기를 승리할 수만 있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우승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인지 손 감독의 우승 선언 영상에 달리기 시작한 기원의 댓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간다.
"손성조 감독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꼭! 우승시켜 주세요."
"우리 자이언츠도 이제 우승을 공언할 수 있게 됐구나! 자이언츠 야구 본지 30년째입니다. 딱 한 번만 봐도 좋으니까 정규 시즌 우승하게 해주십시오."
"성지순례 왔습니다. 자이언츠 우승을 위해서 이제부터 남은 경기 전부 직관하겠습니다. 손성조 감독님 부탁드려요. 주말 베어스 전 꼭 스윕해 주십시오. 선수들도 파이팅!"
"자이언츠, 할 수 있다! 우승까지 달립시다!
팬들의 댓글 행진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댓글 행렬은 손 감독의 인터뷰 영상뿐 아니라 자이언츠의 모든 기사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자이언츠 팬들의 그런 바람은 곧 그들을 상대해야 하는 팀인 베어스 팬들의 시야에 포착되고, 자연스레 양 팀 간의 신경전으로 발전되는 모습이었다.
"우리를 스윕한다고? 꿈도 크시네."
"자이언츠 요즘 분위기 좀 좋다고 넘보지 못할 나무를 올려다보네."
"손성조 감독도 실수한 거야. 공식석상에서 우승이라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게 아니지. 시즌 내내 1위하고 있는 우리 팀 감독도 함부로 우승이라는 말을 안 하고 있는데."
"그러게, 우승 선언은 손성조 감독이 아니라 우리 구형태 감독이 해야 하는 거 아냐?"
베어스 팬들은 손 감독의 우승 선언으로 달아오른 자이언츠 팬들의 반응에 찬물을 끼얹고 있었다.
그런 베어스 팬들의 주장은 점차 격렬한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번 시리즈에서 끝장을 내주자, 베어스 파이팅!"
"그러고 보면 이번 시리즈가 미리 보는 한국 시리즈가 되겠네. 자이언츠 놈들, 이번 시리즈에서 스윕 패 당해봐야 한국 시리즈에서 욕심을 안 내지."
"미리 보는 한국 시리즈? 그건 모르는 거지! 자이언츠가 2위로 시즌 끝내도 포스트 시즌에서 다이노스나 다른 팀이 한국 시리즈에 올라올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이번 시리즈에서 스윕해서 제대로 보여줍시다. 올 시즌 우승 팀은 우리 베어스라는 걸요!"
베어스 팬들은 시리즈 스윕을 외치고 있었다.
손 감독의 발언으로 고조된 자이언츠 팬들의 콧대를 꺾어주자는 주장을 펼친다.
물론 경기는 팬들이 아닌 선수단이 진행하는 것이었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모든 팬들에게는 팀 승리를 응원할 권리가 있었다.
베어스 팬들과 자이언츠, 양 팀 팬들은 경기 전부터 본인들의 몫을 제대로 수행하며 뜨겁게 달아오른 신경전에 제대로 불을 붙여나간다.
그런 분위기는 다음 날이 되어 잠실야구장의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시간과 장소는 9월 21일 경기를 앞둔 잠실구장으로 옮겨진다.
"자이언츠! 이기자! 이겨서 우승하자!"
"무조건 이겨라! 오늘은 지면 안 돼!"
"헛소리! 오늘 경기는 우리가 이긴다! 어디서 2위 팀이 큰 소리야?!"
"베어스 이겨라!! 오늘은 10대 0으로 가자!"
아직 경기가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양 팀 팬들의 함성 소리가 무척이나 뜨겁게 느껴진다.
양 팀의 덕 아웃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오늘 경기는 지면 안 되겠는데?"
누군가의 목소리에 대답하는 선수는 없었다.
그러자 말을 꺼낸 최훈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는 모습이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응원의 열기로 달아오른 관중석과는 다르게 침묵하고 있던 덕 아웃에서 누군가 묵직한 분위기로 말을 꺼낸다.
그는 바로 자이언츠의 캡틴인 강민수였다.
"어제 감독님 인터뷰 내용은 다들 알고 있을 거야."
캡틴의 말에 모두의 이목이 그에게로 집중된다.
선, 후배 선수들뿐 아니라 꽤나 거리가 떨어져 있던 일부 코치들 역시 민수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만큼이나 자이언츠 덕 아웃 내부가 고요했던 까닭이다.
코치들의 입장에서는 지금 상황에서 팀의 주장인 민수가 선수들에게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 하며 시선을 옮겼고, 곧 민수의 말이 이어진다.
"감독님이 대외적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 다음날 경기부터 지고 들어가면 감독님 입장이 많이 난처해지실 거야. 팬들 사이에서의 여론도 안 좋아질 거고."
민수의 말에는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어제 손 감독의 발언으로 인한 여파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 평범한 말에도 쉽게 대답하는 선수는 없었다.
민수의 다음 말 역시 평범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니까 오늘 경기."
말을 하는 민수의 얼굴에는 다부진 미소가 감돌기 시작한다.
그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느낀 선수들은 민수가 다음으로 건넨 말을 더욱 경청하게 된다.
"이기자."
민수의 말은 담담하게 들려왔다.
흥분된 어조도 아니었고, 기합이 든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이유는 어제 손 감독의 선언과 연장선상에 있는 당부의 말이기 때문이다.
총사령탑의 우승 선언에 이어진 캡틴의 승리 당부.
그것을 전달받은 선수들은 이제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물론 팀의 4번 타자인 강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늘 경기는 반드시 이긴다!'
강호는 지고 싶지 않았다.
다른 팀도 아닌 베어스였다.
이제는 베어스와 구형태 감독에 대한 억하심정이 많이 사라졌다지만, 베어스를 상대할 때면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열망이 존재했다.
복수나 치졸한 감정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무언가를 증명해보이고 싶은 순수한 바람일 뿐이다.
'나를 방출할 당시의 구 감독님의 결정은 충분히 납득가능한 일이야. 한 때는 원망하고 미운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나도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과거의 일에 얽매일 필요가 더는 없어.'
베어스와 구 감독을 대하는 강호의 마음가짐은 달라져 있었다.
강호 본인에 대한 방출이 프로의 세계에서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원망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제 대한민국의 최고 타자로 평가받는 시점에서는 원망의 감정이 사라진 것을 느낀다.
'그렇다 하더라도 증명해 보이고 싶어. 백강호라는 선수가 충분히 쓸모 있는 선수라는 것을. 그건 구 감독님한테 증명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내 자신한테 확인시켜주고 싶은 거야. 한 때는 버려졌어도 지금은 아니라고, 나는 이곳에서 살아남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강호는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다.
더 이상의 미움도 원망도 없이 자신을 위해 증명해 보이려고 한다.
비록 반칙과 같은 행운으로 얻은 기회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새롭게 얻은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이언츠의 4번 타자 백강호의 모습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킨다.
그러는 사이 캡틴 강민수가 모두를 향해 마무리 말을 전하고 있었다.
민수는 선수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두어 번 박수를 쳐보이며 이렇게 얘기한다.
"자, 자!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오늘 경기는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니까."
민수는 모든 선수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밝히며 이렇게 마지막 당부를 전한다.
"이기러 가자!"
캡틴 강민수는 승리할 것을 당부해오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캡틴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선수들은 그제서야 한 목소리가 되어 힘차게 대답한다.
"네!"
대답과 동시에 캡틴을 포함한 모든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쳐나간다.
아직 경기가 시작된 것은 아니었지만, 사전 행사를 위해 그라운드로 나가는 선수들의 발걸음에는 승리에 대한 열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던 김민철 수석은 선수들이 모두 그라운드를 박차고 나서야 진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오늘은 다르겠는데요?"
김 수석의 웃음기 띤 말은 곁에 있는 손성조 감독을 향한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선수들을 향한 뿌듯한 감정이 전달되고 있었다.
"다를 게 뭐가 있겠나? 이길 경기는 이기고, 질 경기는 이기게 만드는 거지."
손 감독의 대답은 자칫 퉁명스럽게 들릴 수도 있었지만,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손 감독의 대답에서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손 감독과 호흡을 맞춰온 김 수석은 그런 부분에 대해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감독님께서 즐거워하시는구나.'
김 수석의 판단은 그러했다.
프로야구 감독이라는 자리는 매일같이 긴장과 부담, 책임감의 연속에서 버티고, 버텨야하는 어려운 자리였다.
그런 어려운 자리에 앉아서도 선수들의 모습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손 감독이 대단해 보이기까지 한다.
또한 그것은 손 감독 본인이 어제의 인터뷰를 통해 유도한 내용이기도 했다.
곁에서 지켜보는 김 수석의 입장에서는 손 감독의 그러한 점이 더욱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그런 점은 알고 있다고 해서 쉽게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손 감독님 정도 되는 연륜이 쌓여야만 할 수 있는 일이겠지.'
김 수석은 아직 손 감독의 곁에서 배울 것이 많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닫는다.
또한 더욱 많은 것을 보고 배우기 위해 질문 하나를 던져 본다.
"오늘 경기는 이기겠지요?"
김 수석은 많은 의미를 담은 함축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자칫 단순해 보이는 질문일 수도 있었지만, 손 감독이라면 자신의 질문에 내제된 의미를 헤아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김 수석의 생각은 손 감독의 곧 이어진 대답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기게 될 게야. 선수들이 이기기로 마음을 먹었으니까."
손 감독은 대답과 함께 진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의 미소가 함축된 질문에 대한 모든 대답을 대신하는 것만 같았다.
대답을 들은 김 수석은 더 이상의 질문을 멈추고, 선수들이 풀어나갈 경기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오늘 경기는 이기게 될 테니까.'
김 수석의 확신 속에 시간은 지나 양 팀의 경기가 시작되려 한다.
모든 팬들과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미리 보는 한국시리즈라 말했던 자이언츠와 베어스 간의 경기는 주심의 힘찬 선언과 함께 시작을 알린다.
"플레이 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