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71화 (271/335)

0271 / 0335 ----------------------------------------------

승선하다

선수단을 불러모아 손 감독이 했던 말을 통해 모두는 느끼고 있었다.

2019년 올 시즌, 자이언츠가 그 어느 때보다도 우승권에 가까워져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 인식은 단지 손 감독과 선수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미 모든 야구팬들은 올 시즌 베어스나 자이언츠, 두 팀 중 한 팀이 우승을 거머쥘 것이라는 공공연한 예측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

"정규 시즌 우승은 베어스나 자이언츠, 둘 중 하나겠지?"

"당연한 거 아냐? 3위인 다이노스는 여덟 경기 차나 벌어졌잖아. 앞으로 다이노스가 10연승 정도 해도 1위권까지 따라잡기는 힘들어진 거지."

"그러고 보니까 3위권도 박빙 아냐? 4위 히어로즈랑 5위 타이거즈가 다이노스하고 몇 경기 차이 안 나지 않나?"

"3위권만 그런 줄 알아? 지금 3위부터 7위까지는 헬이야, 헬! 5위권 경쟁이 어마어마하니까. 와이번스하고 트윈스도 바짝 쫓고 있다고."

"그럼 이글스, 라이온즈, 위즈는 물 건너 간 거야?"

"그렇다고 봐야지. 이글스는 아직 5위권 경쟁은 하고 있지만, 라이온즈나 위즈 가을 야구는 날아간 거지, 뭐."

팬들은 막바지에 접어든 올 시즌 결과를 예측하기에 분주했다.

전문가가 아닌 팬들도 기본적인 예측은 할 수 있었지만, 시즌 우승 팀 예측과 포스트시즌 확정 팀에 대한 예상은 아직 판가름내지 못했다.

베어스와 자이언츠로 예상되는 우승 팀 경쟁과 다이노스, 히어로즈, 타이거즈 간의 3위 권 경쟁, 그리고 와이번스와 트윈스, 이글스의 5위권 도약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1위부터 8위 팀까지의 경쟁이 혼전 양상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경기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런 상황에서 각 팀 선수단은 물론 프런트들도 바빠지고 있었다.

우승 경쟁에 돌입한 자이언츠 구단 본부가 더욱 바빠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장소는 자이언츠의 구단 본부로 옮겨진다.

"이제부터 야근이야!"

지정만 사장의 선언에 수뇌부 회의 참석 차 회의실에 모인 간부들이 일제히 한숨을 내쉰다.

그 중 지 사장의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허동준 기획실장은 빙긋이 웃음 지으며 지 사장을 향해 건네지 못한 질문을 속으로 삼킨다.

'언제는 야근 안 했습니까?'

허 실장의 속마음이 모든 임원들의 속내를 대변해주는 물음일 것이다.

자이언츠 구단 본부는 지정만 사장이 자이언츠의 사장으로 임명되었을 때부터 이미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든 임원들의 전원 야근을 선언하고 있는 지 사장의 목소리에 별다른 반응을 내보이지는 않았다.

지 사장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임원들의 반응에 오해를 한 것인지 만족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좋아. 다들 각오들은 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제부터 우리가 야근을 해야 하는 이유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해 주겠어."

지 사장은 호쾌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곁에 앉은 허 실장은 속으로 이렇게 대꾸하고 있었다.

'필요 없다고요. 그냥 야근할 테니까 회의나 끝내 주십시오.'

허 실장은 지 사장의 말에 속으로 대답의 말을 되뇌다 스스로의 생각이 웃겼던 것인지 피식 웃음 짓고 만다.

그런 허 실장의 미소를 포착한 지 사장.

그는 평소와 다른 온화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허 실장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왜, 허 실장? 벌써 기대되는 거야? 그래, 기대될 거야. 우리 같은 현대인들에게 할 일이 많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 거야? 내가 여러분들한테 발표를 하려고 직접 PPT를 작성했으니까 잘 보도록 해."

지 사장은 허 실장에게 말을 건네다 곧 모든 임원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런 지 사장의 손에는 어느새 PPT리모컨 하나가 올라가 있었다.

지 사장은 리모컨의 버튼을 눌러 프로젝트를 재생시킨다.

그러자 '자이언츠 우승!'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지 사장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PPT화면이 차례로 넘겨지고 있었다.

"자, 잘 들어! 베어스 128전 78승 1무 49패, 우리 자이언츠가 127전 76승 51패야. 현재까지 두 경기 차란 말이야. 이게 무슨 뜻인 줄 알아?"

지 사장은 PPT를 브리핑하다 말고 모두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그의 의도를 몰라 대답을 하지 않는 다른 임원들을 대신해 허 실장이 대꾸한다.

"우리가 우승 경쟁에 돌입했다는 뜻 아닙니까?"

"그래! 바로 그 거야. 우승 말이야! 선두인 베어스에 두 경기 차로 따라붙은 마당에 시즌 2위로 마감해서야 되겠어? 이제부터 우리는 우승 쟁탈을 위한 비상체제로 돌입해야 해! 다들 알겠어?"

허 실장의 대답에 지 사장은 호쾌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비상체제 돌입을 선언하고 있었다.

그런 지 사장의 말에 허 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대답한다.

'네, 야근하자는 소리 아닙니까?'

허 실장의 속내는 다른 임원들의 마음의 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임원들 역시 비상체제 돌입 후 계속될 야근에 이미 내성이 생겨 있었다.

그 후에도 지 사장의 일장연설은 계속되었고, 이미 철야를 각오한 임원들은 머릿속으로 자신들이 분담해야할 업무에 대해 구상해 나간다.

허 실장 이하 자이언츠 프런트들은 이미 지 사장의 업무 스타일에 동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지나 9월 18일 오후를 지나고 있었다.

경기 전 선수단을 불러 모아 각오를 밝혔던 손 감독의 선언이 있었던 17일 경기는 안타깝게도 자이언츠의 패배로 결정되고 만다.

선발 투수가 조기에 무너지며 2회까지 7실점을 허용했던 것이 뼈아팠던 경기였다.

그럼에도 경기 막판까지 추격에 추격을 거듭해 점수 차를 7대 8까지 좁혔다는 것이 고무적인 부분이었다.

자이언츠 선수들은 초반 빅 이닝을 허용했음에도 끝까지 경기를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모습을 보여주었고, 팬들은 그런 선수들의 모습에 기립 박수로 화답하며 이날 경기의 의미를 부여해주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 타이거즈와의 시리즈 6차전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장소는 경기가 진행될 사직야구장, 중계를 위해 입을 뗀 중계석으로 옮겨진다.

"안녕하십니까? 자이언츠와 타이거즈, 타이거즈와 자이언츠 간의 시리즈 6차전이 진행되고 있는 사직야구장입니다. 저는 캐스터 권성호, 해설에는 송진석 해설위원과 안지원 위원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어제 경기에서는 자이언츠가 초반 7실점을 딛고 9회 말까지 7대 8로 추격하는 끈질긴 모습을 보여줬거든요? 비록 경기를 패하긴 했습니다만, 그런 끈질김이 올 시즌 자이언츠의 좋은 성적을 대변해 주는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데요. 두 분 위원님들께서는 어제의 경기, 어떻게 지켜보셨습니까?"

중계석의 권성호 캐스터가 인사말을 건넨 후, 어제 있었던 경기 내용을 거론하며 해설위원들에게 마이크를 넘긴다.

권 캐스터가 건넨 멘트를 먼저 받은 것은 타자 출신 해설 위원인 안지원 위원이었다.

"네, 어제 경기는 1회 초 빅 이닝을 만들어낸 타이거즈의 집중력과 그 점수를 끝까지 지켜낸 전략이 주효한 경기였습니다. 어제 경기의 키 플레이어로 지목된 자이언츠의 백강호 선수를 세 번의 고의사구로 거를 정도로 극단적인 전술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선택과 집중으로 박빙의 승부를 승리로 이끌었고요. 반면에 자이언츠는 9회 말까지 1점차로 추격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런 모습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경기를 더욱 기대하게 되는 거죠."

안 위원의 친절한 설명이 끝난 후, 곧바로 송진석 위원의 해설이 이어진다.

그는 이글스 출신의 레전드 투수로서 선수 생활동안 큰 족적을 남겼지만, 해설 위원으로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는 못했다.

"어제 자이언츠는 5선발인 윤명호 투수가 1회에 무너지면서 경기를 힘들게 풀어갔거든요. 반면에 타이거즈는 선발 투수인 스티븐 투수가 6이닝동안 2실점으로 호투해 주었어요. 그런데 대조적으로 타이거즈 불펜진이 남은 3이닝동안 5실점을 내주면서 경기 막판 불안한 모습을 내비쳤거든요. 자이언츠는 선발인 윤명호 투수가 무너지긴 했어도 7과 1/3이닝을 책임진 불펜이 1실점만 허용하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오늘 경기 내용도 선발 투수와 불펜진간의 균형이 얼마나 잘 맞는 지가 경기의 관건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송 위원은 투수 출신 해설위원답게 투수 관점에서 경기를 분석해주고 있었다.

두 해설위원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어느새 경기는 시작되어 있었고, 타이거즈는 1회부터 자이언츠 선발 투수인 이청기를 집요할 정도로 물고 늘어진다.

이청기 투수는 95년생, 강호와 동갑내기인 젊은 투수로 9월 달에 발표된 확장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못했지만, 1군에 등록됐었던 사준식 투수가 어깨 염좌 증세로 제외되자 새롭게 이름을 올린 신예 투수였다.

손성조 감독은 과감하게도 올 시즌 1군에 처음 등판하는 이청기 투수를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내세운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다소 과감한 발탁일 수도 있었지만, 이청기 투수를 직접 콜업한 손 감독의 입장은 달랐다.

좌완 투수로서의 이점과 2군에서 1선발 자리를 지켰던 경력, 또한 직접 눈으로 살핀 이청기의 구위를 믿고 올린 기용인 것이다.

"청기 정도의 구위라면 1군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공이야. 지금 우리에게 선발 자원이 한 명 더 생긴다면 더 이상 투수가 없어서 지는 경기는 없어지게 될 거야."

이것이 이청기를 바라보는 손 감독의 생각이었다.

손 감독은 이청기의 선발 등판에 우려를 표하는 김민철 수석에게 이렇게 대꾸하고 있었고, 김 수석은 결국 손 감독의 결정을 따르게 된다.

그러면서도 끝내 한 가지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김 수석이었다.

"이청기 투수의 구위는 충분히 1군용이라 할 만 합니다. 하지만 청기가 1군 경험은 고작 50이닝밖에 되지 않아요. 1군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선발 투수로 올린다면 그 경험부족이 발목을 잡을까 걱정입니다."

"팀의 4번 타자인 강호나 마무리 투수인 대우가 1군 경험이 많아서 저렇게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어. 재능을 타고난 녀석들은 결국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주머니를 뚫고 나오게 되는 거야. 청기도 그런 녀석들 중에 하나이고."

손 감독은 이청기를 일컬어 낭중지추라는 고사를 인용할 정도로 믿음을 내보이고 있었다.

시즌 초 2군에서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이청기 투수였지만, 후반기로 돌입하면서 어느새 2군 1선발 자리에 안착하기도 했다.

손 감독은 그런 이청기 투수가 이제 본인이 가진 재능을 만개하기 시작했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1회 초부터 김 수석이 우려하던 상황이 발생되고 말았다.

딱!

경쾌한 타격음이 김 수석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이청기 투수의 초구를 타격한 타이거즈 1번 타자 노수강이 1루를 밟은 후 연달아서 2번 타자인 강한율이 우전 안타를 때리고 연속 안타에 성공한 것이다.

이로써 1회 시작부터 무사 주자 1, 3루 상황이 만들어지고, 어제 경기에서 1회 빅 이닝을 내주었던 악몽이 또 다시 재현되는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김 수석은 잠시의 망설임 끝에 결국 손 감독에게 의견을 전달한다.

"청기가 아직 신인이라 1군 선발 자리가 낯선 모양입니다. 여 코치한테 마운드에 올라가보라고 할까요?"

김 수석은 조심스러운 말로 자신의 의견을 전한다.

어제 경기에 이어 오늘 경기까지 내어주게 되면 베어스와의 1위 경쟁에서 한 발짝 물러서게 되는 것이 자이언츠의 입장이었다.

오늘 경기만큼은 절대로 내줄 수 없다는 각오가 김 수석을 조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손 감독은 그런 김 수석에게 작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한다.

"김 수석이 많이 불안한 모양이네. 잠시 지켜보게. 청기가 2실점 이상 내어준다면 여 코치를 마운드에 올리도록 하지."

손 감독이 자신의 의견을 절반 정도 수용하는 대답을 하자 김 수석은 그제야 한 걸음 물러나는 모습이었다.

그 사이 타이거즈의 3번 타자 브랫이 타석에 들어선다.

브랫은 올 시즌 3할 6푼 3리의 타율로 타이거즈에서 가장 뜨거운 타격을 보여주고 있는 외국인 타자였다.

무사 1, 3루 상황에 가장 핫한 타자인 브랫이 타석에 서자 마운드에 선 이청기 투수가 긴 날숨을 내쉬며 강민수 포수의 싸인에 연달아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자신의 유격수 위치에서 보게 된 강호.

동갑내기 신예 투수인 청기의 위기에 생각이 많아진다.

'청기는 포심 패스트볼의 구위와 제구가 일품인 녀석인데, 지금은 포심 제구가 전혀 안 되고 있어. 민수 선배가 타자 몸 쪽 싸인을 내도 반대 투구를 하고 있어. 제구가 안 되는 것 같지는 않고, 긴장을 하고 있다는 뜻인데.'

강호는 이청기 투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의 심리 상태를 유추해보고 있었다.

처음 1군 선발 투수로서 마운드에 선다는 부담감과 긴장감, 그리고 사직구장을 가득 채운 홈팬들의 함성이 이청기 투수의 어깨를 굳어버리게 만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연달아 떠오르고 있었다.

'투수 본인이 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게 힘들다면 야수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타개하는 방법도 있겠지. 3루 주자인 노수강 선수를 홈에 들여보내더라도 1실점으로 위기를 마무리할 수 있으면 청기도 본인의 페이스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강호는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포함한 야수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을 떠올려 본다.

그 때 포수인 강민수 선수가 야수들에게 싸인을 보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비 시프트 싸인?'

강호는 캡틴 강민수의 수비 시프트 싸인을 확인하는 즉시 걸음을 옮긴다.

벤치에서 전달받았을 포수 강민수의 수비 시프트 싸인대로 수비 위치를 세 걸음 앞으로 당긴 것이다.

그 후 잔뜩 얼어붙은 이청기 투수와 브랫의 승부가 시작되었고, 브랫을 향한 청기의 4구 째 공이 뿌려졌을 때 강호는 진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타구가 유격수 방면으로 향합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어려운 상황을 단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메시지가 시야에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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