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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툴 플레이어
7회 초가 되기 전까지 강호는 3타수 2안타, 2루타 하나와 3루타 하나를 기록하며 4번 타자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양 팀 투수들의 호투로 경기가 투수전이 되고 있는 가운데 팀이 올린 3득점 중 2득점에 기여한 것이다.
아직 타점은 없었지만, 빠른 발로 만들어낸 장타가 득점으로 연결되며 잘 풀리지 않는 팀의 공격에서 선봉장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또 한 번 타석에 걸음을 옮기는 강호였다.
'3대 0 상황이니까 팀이 큰 실책만 없으면 경기는 이대로 승리하게 될 거야. 마무리인 대우나 팀의 필승 카드가 이틀 동안 쉬었으니까 불펜을 염려할 필요는 없어.'
강호는 타석으로 걸어 나가며 오늘 경기의 향방을 예측해보고 있었다.
세 번의 타석 기회에서 이미 두 번의 장타를 때려내고 있는 강호라서 큰 거 한 방에 대한 부담은 크지 않았다.
물론 팬들은 강호의 홈런을 바라고 있었으나 홈런은 욕심만 가지고는 마음먹은 대로 기록할 수 없는 것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 큰 부담은 없었다.
하지만 보기 드물게 홈런에 대한 욕심을 가져본다.
'지금 내 타격 폼이면 삼진 먹을 각오로 큰 스윙을 가져가다보면 하나 정도는 얻어 걸리지 않을까?'
타석에 들어선 강호의 생각이었다.
매 순간, 타석에 들어설 때면 치밀한 계획 속에 승부에 임하곤 했던 강호.
그런데 지금의 타석에서는 복잡한 생각 대신 본능적인 타격으로 승부를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난다.
이미 상대 투수인 맥도날드에 대한 투구 패턴 파악은 끝났다는 생각에서였다.
한편, 오늘 경기 동안 강호와 네 번의 타석 승부를 맞이하게 된 맥도날드 투수.
이미 110개가 넘는 공을 던졌지만, 여전히 히어로즈의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이제 그냥 거를까?'
맥도날드는 네 번째로 상대하게 된 강호와 마주하며 마음이 더없이 약해짐을 느낀다.
네 번의 타석 기회 동안 강호는 홈런이라고 착각할 만한 타구를 10개 가까이 날려 보냈었다.
그 중 대부분은 파울 홈런이 됐지만, 그 중 2개가 담장을 직격하는 타구가 된 것이다.
하나의 타구는 다행이도 좌익수 고정욱이 뜬공 처리할 수 있었지만, 그 타구 역시 펜스를 넘길 것만 같았던 장타 성 코스였다.
'백강호는 한국 리그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선수야! 이런 선수는 빅 리그에 있어야지, 왜 이런 야구 변방에서 나를 상대하고 있는 거야?'
맥도날드는 답답한 마음에 속으로 투정을 해보지만, 그런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리 없었다.
대신 그는 강호를 상대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에 돌입한다.
평소 빠른 공 위주로 상대 타자를 윽박질렀던 투구 패턴에 대대적인 변화를 가하며 강호와의 승부를 투수 인생 최대 고비로 여기기 시작한다.
한국 리그에 와서 처음 간절한 마음으로 투구에 나서는 맥도날드.
그의 초구가 뿌려지고 있었다.
파핫!
특유의 역동적인 투구 폼 이후 던져진 맥도날드의 초구.
공의 궤적을 확인한 강호는 순간적인 판단을 끝낸 후 곧바로 배트를 낸다.
'포심!'
강호가 판단한 맥도날드의 초구는 포심이었다.
이미 맥도날드 투수의 포심 적응은 끝나 있는 상황, 초구 코스는 실투로 봐도 될 정도로 가운데 몰리는 공이었다.
강호가 배트를 내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벌어진다.
부웅!
강한 바람을 일으킨 강호의 배트는 맥도날드의 공을 맞히지 못했다.
초구 컨택 비율이 상당히 높은 강호가 드물게도 초구에 헛스윙을 하고 만 것이다.
그런 모습은 이번 시즌 내내 강호의 승부를 지켜보았던 팬들에게는 의외의 광경이었다.
"어?! 우리 백강호 선수도 헛스윙을 다하네?"
"헛스윙을 했어도 타격 자세는 무너질 생각을 안 하네. 제대로 맞았으면 그대로 홈런이 나올 스윙이야!"
"근데 맥도날드가 초구로 뭘 던진 거야? 백강호 선수가 초구에는 헛스윙을 잘 안하는 편인데, 어떻게 헛스윙을 유도한 거지?"
팬들은 강호가 헛스윙을 했음에도 딱히 안타까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보기 드물게 초구 헛스윙을 한 강호의 모습을 흥미로워 한다.
보통 펀치력을 갖춘 강타자들은 헛스윙 확률과 볼넷 대 삼진 비율이 좋지 못한 편이다.
대표적인 예로 자이언츠에서 강호 다음의 장타력을 뽐내고 있는 스팅은 시즌 서른 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0.716의 높은 장타율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초구 헛스윙 비중이 높고 볼넷 대 삼진 비율도 0.61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볼넷 대 삼진 비율이 1이하라는 것은 볼넷으로 걸어 나가는 확률보다 삼진으로 아웃당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시즌 강호의 볼넷 대 삼진 비율은 3.72나 된다.
삼진 1개를 당할 때 3.72개의 볼넷을 얻어서 걸어 나간다는 의미였다.
그로 인해 강호의 출루율은 5할 3푼 대를 기록할 정도였고, 타석 당 출루 확률이 53.2%나 될 정도로 높은 출루 확률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기록들은 강호의 타격과 장타력 외에도 선구안이라는 또 다른 강점을 알게 해주는 부분이었고, 선구안 부분에서도 리그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강호.
그랬던 강호가 초구부터 크게 헛치는 모습이 팬들에게는 신선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당사자인 강호 역시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는다.
'맥도날드가 포크볼을 던졌어?!'
강호는 조금은 놀란 모습이었다.
초구 패스트볼 비중이 현저히 높았던 맥도날드가 초구에 다른 공을 던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강호가 놀란 이유는 포크볼이라는 구종 자체에 있었다.
'리포팅 자료에 맥도날드가 포크볼을 구사한다는 내용은 없었는데, 미국 마이너 시절 때는 포심과 슬라이더, 체인지업만 던졌던 투수고, 한국에서 익힌 건가?'
강호가 놀란 이유는 맥도날드 투수가 포크볼을 구사한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외국인 좌완 투수의 포크볼 장착.
이것은 의미하는 바가 남다르기도 했고, 그 공을 오늘 경기의 네 번째 맞대결에서 꺼내든 것도 의외였다.
첫 번째 타석부터가 아니라 이미 3대 0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꺼내 든 포크볼이라는 카드는 큰 의미가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것은 아직 완성된 포크볼은 아니라는 소리야. 생각해보면 포심을 던질 때와 투구 폼이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했어.'
강호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한 판단을 마친다.
그 사이 주심은 볼 카운트가 1 스트라이크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며 공 하나를 꺼내 맥도날드 투수에게 직접 던져준다.
맥도날드가 던진 초구 공은 원 바운드 된 까닭에 다른 공으로 교체해 준 것이었다.
한 편, 치열한 고민 끝에 초구 포크볼을 선택한 맥도날드 투수.
그는 강호와는 다른 이유로 놀라고 있었다.
'내 포크볼이 통했어?!'
본인이 던져놓고는 스스로가 놀랄 지경이었다.
자이언츠 타자들의 포크볼 대응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맥도날드였다.
그래서 허를 찌른다는 생각으로 한 번 던져본 것이었는데 그 공으로 강호의 헛스윙을 유도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 더 던져볼까?'
문득 드는 생각에 스스로 마음을 다 잡는다.
'아니야, 미완성인 포크볼로 백강호의 헛스윙을 유도하는 것은 한 번 정도가 전부일 거야. 그냥 백강호에게 포크볼을 던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에 만족하자. 백강호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것만으로 포크볼을 던진 의미는 충분한 거야.'
맥도날드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또 다시 치열한 볼 배합에 돌입한다.
그런 맥도날드의 표정은 너무나도 진지해 보였고, 그 점을 포착한 1루 주자 박철이 맥도날드의 2구째에 도루를 감행하고 있었다.
맥도날드는 1루 주자인 박철의 도루를 눈치 채고 있었지만, 견제구 하나 던지지 않은 채 오로지 강호와의 승부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파핫!
와인드업에 이은 역동적인 투구 동작, 우월한 키와 기다란 팔에서 던져지는 공은 초구와는 다른 궤적을 보이며 포수 미트에 꽂힌다.
퍼엉!
묵직한 소리가 포수 미트를 때리는 사이 1루 주자 박철이 2루 베이스로 내달리고 있었고, 포수 박동현은 주심의 판정을 확인할 새도 없이 곧바로 2루를 향해 공을 던진다.
그 사이 주심의 볼 판정이 이어진다.
"스트라이크!"
주심의 볼 판정이 모두를 놀라게 할 무렵, 박철의 도루 승부 결과가 나오고 있었다.
"세이프!"
2루심은 세이프를 선언하고 있었다.
박철의 2루 도루가 성공한 것이다.
이로서 1사 주자 1루 상황이 1사 주자 2루 상황으로 뒤바뀐다.
그런데 팬들은 그것보다 다른 사실에 더 놀라고 있었다.
또한 놀란 것은 자이언츠 덕 아웃의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조금 전에 그 공이 스트라이크야?"
"바깥쪽으로 조금 빠진 거 아닌가?"
"아니야, 들어가긴 했어. 밖에서 존 안으로 휘는 백 도어 슬라이더야."
강호의 승부를 지켜보던 선배 선수들은 맥도날드의 2구 스트라이크 판정에 각자의 의견을 더하는 모습이었다.
강호가 존 안으로 들어온 슬라이더에 대처를 전혀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타석에 선 강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분명 바깥쪽으로 빠진 공이었어. 박동현 포수의 프레이밍 동작에 주심이 속은 거야.'
강호의 생각이었다.
흔히 미트질이라 불리는 프레이밍(framing)은 포수가 투수의 공을 받는 순간, 미트를 순간적으로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끌어오는 동작을 의미한다.
포수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주심의 스트라이크 판정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공 몇 개 차로 빠진 볼을 스트라이크로 만들기 위한 포수들만의 기술이다.
히어로즈의 박동현 포수는 박철의 도루를 견제하는 순간에도 고도의 프레이밍 기술을 선보인 것이다.
'덕분에 볼 카운트가 불리해졌어. 이제 비슷한 공은 전부 커트다!'
강호는 이제 물러설 곳이 없다는 생각을 가진다.
배트를 가볍게 쥐고, 존과 비슷한 코스의 공은 무조건 커트할 생각으로 승부의 방향을 전환한다.
그 후 맥도날드 투수의 투구가 이어진다.
딱, 딱, 딱!
세 번의 타격음이 이어지고, 볼 카운트는 여전히 2스트라이크 상황.
상황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맥도날드는 이미 강호에게 다섯 개의 공을 던지고 있었다.
그 후 맥도날드는 다섯 개의 공을 더 던져 열 개의 공을 던지는 동안 어느새 볼 카운트는 풀 카운트까지 변하게 된다.
그리고 상황은 이제 이 승부를 결정지을 맥도날드의 11번째 투구로 이어진다.
파핫!
맥도날드 투수는 강호와의 승부에 모든 것을 내건 사람처럼 혼신의 투구를 다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허점을 파고 든 2루 주자 박철이 2루 도루 성공에 이어 3루 도루까지 성공시킨 상태였지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맥도날드는 오직 강호와의 대결에만 집중한 모습이었고, 그의 11구째 공이 포수의 미트를 향하고 있었다.
맥도날드의 릴리스 동작에 맞춰 테이크백에 들어갔던 강호 역시 배트를 낸다.
부웅, 티익.
배트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공을 스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
그리고 그것으로 맥도날드와 강호의 승부가 결정되어지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의 판정은 삼진이었다.
마음먹고 휘두른 강호의 배트가 맥도날드의 공을 건들긴 했지만 스치고 지난 정도였고, 이 공이 포수 박동현의 미트를 파고들며 파울팁 삼진이 선언된 것이다.
두 선수의 치열한 승부는 강호의 삼진 아웃으로 결정되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양 팀 팬들, 그 중 자이언츠 팬들은 강호의 삼진 장면에 이런 목소리들을 내고 있었다.
"우리 백강호 선수도 삼진을 먹네?"
"나 백강호 선수 삼진 먹는 거 처음 봐!"
"우와, 이게 얼마만의 삼진인 거야? 백강호 선수도 삼진을 다 당하네."
"홈런 치는 건 많이 봤어도 삼진 당하는 거 보는 건 처음이네. 인간적이고 좋네. 안 그래?"
"아직 백강호가 인간계로 내려오려면 멀었어. 그거 알아? 지금 삼진이 백강호 선수 시즌 26번째 삼진이야. 홈런 61개 때릴 동안 삼진을 26개밖에 안 먹은 거라고."
"그럼 백강호 선수 홈런 치는 거 보다 삼진 보는 게 더 어렵다는 얘기 아냐? 오늘 좋은 거 보고 가네."
자이언츠 팬들은 7월 17일 경기 이후 오랜만에 접하게 된 강호의 삼진 장면에 오히려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강호가 보여준 것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접할 수 없는 강호의 삼진 기록이 더 희소성 있게 느껴진다.
그런 팬들의 심리는 이런 응원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잘 했다!"
"야구 선수가 삼진 먹을 수도 있는 거죠! 힘내요 백강호 선수!"
"백강호 선수 삼진 먹은 공 누구한테 던졌어? 나한테 팔면 안 되나? 그게 홈런구보다 더 귀한 거잖아?"
강호를 위로하는 팬들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삼진을 당하고 덕 아웃으로 돌아온 강호의 귓가에도 들려온다.
덕분에 강호는 조금은 민망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다.
그런 강호에게 캡틴 강민수가 말을 건다.
"여어~ 우리 강호, 이게 얼마만의 삼진이야? 오늘 우리 강호의 홈런보다 보기 드문 삼진을 다 보네."
민수는 장난스러운 말로 강호를 위로하며 덕 아웃을 웃음바다로 만들어 놓는다.
강호의 삼진이 워낙 보기 드문 장면이었던 까닭에 삼진을 당했음에도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흔하지 않은 장면을 보았다고 좋아하는 선배들도 있을 정도.
그런 묘한 분위기가 어색하게 느껴진 강호는 헛웃음을 지어 보인다.
'다음에는 삼진은 안 되겠는데?'
아직 자신이 갈고 닦을 부분이 더 남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강호.
그런 강호의 각오는 다음 경기인 9월 7일 시리즈 두 번째 경기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시리즈 첫 경기를 3대 0 승리로 따낸 자이언츠는 다음 날 두 번째 경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에 숨죽이고 있던 자이언츠 원정 팬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중계석의 조호준 캐스터는 지금 강호의 타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넘어갔습니다!! 백강호 선수의 시즌 62호 홈런이 터져 나옵니다! 그리고 이 홈런은 2대 1로 뒤지고 있던 팀을 3대 2로 앞서게 만드는 역전 투런 포로 기록됩니다! 세 경기 동안 침묵하고 있던 백강호 선수의 홈런포가 또 다시 가동됩니다!"
조 캐스터는 강호의 타구가 홈런이 되었음을 선언하고 있었다.
이 홈런으로 만들어진 점수가 결국 이날의 결승점으로 기록되고 있었고, 강호의 타격에 힘입어 자이언츠는 고척 원정 경기 세 경기를 모두 승리로 이끌며 2연패 후 시리즈 스웝 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한 후 사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73승 48패.
고척 원정을 다녀온 자이언츠가 시즌 경기를 23경기 앞둔 시점의 성적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