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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이 집중되다
야구 종주국인 미국에서 강호에 대한 관심으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
이미 그보다 빠르게 여론이 들끓고 있는 나라가 있었다.
그곳은 바로 한국과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었다.
일본의 야구팬들은 한국 언론에서부터 비롯된 강호의 기록 달성 소식에 격한 반응을 보인다.
처음에는 일부 야구팬들로부터 시작된 반응이 각종 언론에서 대대적인 보도에 나서자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뭐?! 한국에서 61홈런이 나왔다고? 그것도 흑인 용병 선수가 아니라 오리지널 한국 선수가? 혹시 혼혈인 거 아냐? 아니면 약물의 힘을 빌렸다던가?"
"우리 일본과는 다르게 한국은 아직 혼혈인들이 스포츠 분야까지 진출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라고. 로컬이야. 순수 한국 사람이라고."
"제길! 한국에서 이런 기록을 낼 때까지 대체 우리 NPB(Nippon Professional Baseball)는 뭐한 거야? 우리는 이제 41개인데! 어째서 우리 일본이 이런 기록에서 한국 따위에게 뒤쳐지는 거야?"
"진정하라고. 어차피 한국 KBO와 우리 NPB와는 수준 차이가 심한 편이라고. 한국에서 아시아 기록이라고 떠들어 봐야 결국 한국에만 국한된 기록이야. 백강호라는 타자가 우리나라 리그로 온다면 50홈런은커녕 40홈런도 힘들 거야. 역대 한국인 타자들이 NPB에 와서 기록한 홈런 기록이 그 증거라고!"
"그런 말은 결국 정신 승리일 뿐이야. 우리가 가지고 있던 아시아 기록 60홈런도 결국 네덜란드 국적인 발렌틴의 기록일 뿐이잖아.
"2위 기록인 55홈런의 알렉스 카브레라나, 마찬가지로 55홈런을 친 터피 로즈도 결국 용병 타자였지. 카브레라는 베네수엘라, 터피는 미국 출생."
"1, 2위뿐인가? 3위 기록을 가진 랜디 바스도 미국인이잖아? 1985년도에 타이거WM에서 54홈런을 때렸었지."
"결국 우리 일본이 가진 오리지널 홈런 기록은 오치아이 단장의 52홈런이잖아? 그런데 이 기록은 1963년 호크스의 노무라 때 기록과 타이기록이야. 우리 일본 야구는 63년도부터 제자리걸음만 했다는 이야기잖아? 용병이 아니면 홈런 신기록이 갱신되지 않을 정도로!"
"사실 발렌틴의 60홈런이 아시아 신기록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어폐가 있지. 결국 한국 선수인 승짱(이승엽)의 56홈런이 아시아 최고 기록이었던 거야. 그걸 또 한국 출신인 백강호가 깬 거고."
"이봐, 네덜란드인이든 미국인이든, 베네수엘라든 우리 NPB에서 나온 홈런 기록은 모두 우리 일본의 것이라고! 자금력도 스포츠의 일부니까 그런 점을 평가 절하하지 말라고."
"무슨 멍청한 소리야? 그렇게 말하면 한국의 백강호가 더 대단하다는 소리밖에 안 되잖아? 백강호는 오리지널 한국인이란 말이야. 게다가 연봉도 고작 260만 엔밖에 안 돼!"
"뭐?! 고작 1년에 260만 엔으로 61홈런을 뽑아냈단 말이야?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역시 한국은 미스터리한 나라야. 한류 드라마나 한류 아이돌도 그렇고, 야구에서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현상이 나타나네. 하지만 야구만큼은 우리 일본이 뒤지지 않았으면 했는데..."
일본의 야구팬들은 격론 끝에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NPB의 홈런 기록은 용병 선수들로 인해 세워진 기록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며, 이승엽의 56홈런에 이어 또 한 번 아시아 홈런 기록의 정점을 찍게 된 강호의 61홈런이라는 금자탑에 부러움으로 한숨을 내쉰다.
그런데 일본 야구팬들을 놀라게 만드는 요소는 하나 더 있었다.
"문제는 그건 만이 아니야. 백강호가 소속된 한국 자이언츠의 잔여 경기가 아직 서른 경기 가까이 남아있다는 거야. 산술적으로는 70홈런 이상 때려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게다가 저 선수의 타율이 얼마인지 알아? 들으면 깜짝 놀랄 걸? 무려 4할 4푼 9리라고. 이건 인간계의 기록이 아니야."
"뭐? 그럼 4할 대 타율에 70홈런이라는 소리야?! 무슨 만화 같은 기록이야? 한국 KBO도 우리와 같은 144경기라며? 어째서 그런 기록이 가능하다는 얘기지?"
"궁금하면 네가 백강호의 야구를 직접 확인하면 되잖아. TV중계로는 볼 수 없겠지만, 인터넷에는 경로가 무궁무진하다고."
"좋아! 나는 이제부터 한국 자이언츠의 경기를 지켜보도록 하겠어!"
"나도."
강호에 대한 일본 야구팬들의 관심은 호기심 단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런 일본 팬들의 여론은 결국 마지막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저 선수를 우리 팀으로 데려오려면 얼마가 필요하지?"
"최소 1년에 300만 달러 정도는 줘야하지 않을까? 아직 20대 중반밖에 안 됐잖아?"
"홈런만 놓고 보자면 300만 달러 정도도 괜찮겠지만, 타율이 4할 대 타자라고, 컨택과 파워가 모두 최상급에 포지션이 유격수야! 게다가 어리기까지 한데다 한국 선수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군대 문제도 해결된 선수라고. 500만 달러 정도는 어떨까?"
"500만?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저런 선수가 뭐가 아쉬워서 그 돈을 받고 NPB로 오겠어? 나 같으면 그냥 바로 메이저리그로 직행하겠네."
"그건 안될 소리야. 한국 야구는 의무 7년을 채워야 포스팅 자격이 갖춰진다고. 한 시즌만 플레이해도 소속구단이 허락하면 포스팅 자격이 되는 우리와는 달라."
"뭐?! 한국 야구 선수들은 노예인 거야? 뭐 하러 7년이나 채워야 하지? 한국에는 선수협회 같은 것도 없는 건가? 설마 FA자격을 얻으려면 20년을 채워야 한다든지 하는 규정이 있는 거 아냐?"
"아니 FA는 우리와 같은 아홉 시즌이야."
"어쨌든 백강호 선수가 메이저리그로 가는 게 아니라면 우리 팀으로 왔으면 좋겠는데. 우리 팀 스카우터들은 저 선수에 대해 이미 조사에 들어갔겠지?"
일부 일본 팬들의 바람은 곧 다수의 의견으로 변해간다.
강호가 자격을 갖추어 일본 리그로 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시키기 위해 일본에 소속된 구단 스카우터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메이저에서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컵스와 레드삭스, 양키스와 다저스가 우리나라에 있던 스카우터들을 한국으로 이동시켰다나봐.
"그럼 지금 우리는 뭐 하러 비행기를 타는 거야? 한국 출신 선수들은 같은 값이면 우리 일본 리그보다는 메이저리그에 가려고 하잖아?"
"별 수 있나? 우리 같은 말단 스카우터들은 위에서 시키면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어서 가자고."
그렇게 해서 일본 쪽 스카우터들까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 사이 9월 4일과 5일에 진행된 사직구장의 경기는 자이언츠가 연패라는 성적표를 받아들며 팬들의 아쉬움을 사야만 했다.
6연승 후의 2연패라 딱히 분노하거나 비난하는 팬들은 없었지만, 딱 한 가지 사실에는 안타까운 감정을 표현하는 팬들이었다.
"아! 우리 백강호 선수의 연속 경기 홈런도 여기까지구나."
"뭘, 그래도 열 경기 연속 홈런이면 대단한 거지. 세계 신기록 아냐? 더군다나 61호 홈런까지 때려내고, 이런 타자가 또 어디 있겠어?"
"61호 홈런이라니, 참 대단하긴 하다. 오늘도 홈런 성 타구 여러 번 나왔는데, 한끗발 차이로 홈런 안 된 거잖아? 백강호 선수는 지치지도 않는가 봐."
"그러니까 더 대단한 거지. 시즌 초에는 오버 페이스다, 신인의 패기다, 말이 많았는데 결국 체력도 역대 급이라는 소리 아냐? 지금 KBO에서 이 정도 페이스 관리 잘 하는 선수는 백강호 선수밖에 없을 걸?"
팬들은 경기를 관람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강호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런데 그런 팬들의 발걸음이 잠시 움찔한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하늘에 있었다.
"어?! 지금 비 오는 거야? 나 지금 빗방울 맞은 것 같은데?"
"안 돼, 젠장! 내일 경기는 어떡하라고? 나 이번 자이언츠 경기 전부다 예매해놨단 말이야!"
"너는 예매를 했다면서 다음 경기가 어디서 열리는 줄도 모르고 있는 거야?"
"뭐? 그게 무슨 소리...아! 맞다. 다음 시리즈는 히어로즈 전이었지? 내가 깜빡했네. 정말 다행이다~"
자이언츠 팬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에 불안해 하다가 다음 경기 일정을 떠올리고는 크게 안도한다.
다음 시리즈 경기는 고척 돔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히어로즈와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연달아 상륙한 태풍으로 일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야구를 보지 못했었던 자이언츠 팬들에게는 희소식 중에 희소식인 것이다.
한편, 다시금 쏟아지기 시작한 빗방울로 자이언츠와 히어로즈를 제외한 모든 경기들에 변수가 생겨나고 있었다.
광주와 마산, 대구에서 계획된 시리즈 첫 경기가 우천 취소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로 인해서 6일에 진행된 경기는 잠실과 고척 구장의 두 경기가 유일했고, 그렇지 않아도 각국의 스카우터들로 인해 이목이 집중된 고척 경기가 더욱 주목받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
한국 야구팬들 입장에서는 우천으로 취소된 연고 구단의 경기를 보지 못하게 되었으니 잠실구장과 고척 구장의 경기를 대신 보게 되었고, 그들의 선택은 의외로 간단했다.
"무조건 고척이지! 백강호 선수 홈런 기록이 추가되는지 봐야 하잖아?"
"백강호 선수가 두 경기 동안 홈런을 쉬었으니까 오늘 경기는 치지 않을까? 그럼 62홈런이고."
"홈런 기록도 궁금하긴 한데, 나는 오늘 경기에서 백강호가 최다 2루타 기록을 깰 수 있을 지가 더 궁금해."
"그게 무슨 소리야? 최다 2루타?"
잠실 경기와 고척 경기 중 관전할 경기를 택하던 야구팬들은 결국 강호를 볼 목적으로 고척 경기를 택하게 되고,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강호가 갱신해 나가는 기록에 관심을 내보인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이어진다.
"너 몰랐어? 올 시즌에 백강호가 때린 2루타가 45개잖아. 두 개만 더 때려내면 2016년에 최형수의 최다 2루타 기록을 넘어서는 거라고. 한 시즌 최다 2루타 기록이 46개거든."
"헐, 그게 진짜야? 최다 3루타 기록도 백강호가 깨지 않았어? 최다 홈런은 벌써 깼고, 그럼 최다 2루타까지 깨면 끝나는 거 아냐?"
"오늘 2루타 기록만 깨면 최다 안타 기록만 빼고 다 해먹는 거지, 뭐. 지금까지 백강호의 안타 총 개수가 185개니까 최다 안타 기록도 얼마 안 남았어."
"최다 안타 기록은 몇 개인데? 서건찬이 가졌다는 건 알겠는데 개수는 모르겠네."
"201개야. 2014년 기록이고."
"그럼 올 시즌에 백강호 선수가 최다 안타에 최다 2루타, 최다 3루타, 최다 홈런 기록까지 다 갱신할 수 있다는 소리네?"
"그렇게 되는 거지, 뭐.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최다 도루 기록도. 지금 백강호 도루가 80개니까 이정범 위원 84도루까지 4개밖에 안 남았어."
"최다 도루까지?! 와아~ 그런 게 진짜 가능해? TV에서 하도 백강호, 백강호 떠들기에 어느 정도인가 했더니, 완전 사기 케릭이네! 그런 선수가 타율이 4할 대라고? 도대체 왜 한국 야구판에 있는 거야? 그 정도 클래스면 진즉에 메이저리그로 갔어야지."
팬들은 강호의 기록을 되새겨보며 그가 얼마나 대단한 기록을 써나가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런 점을 인지하게 된 또 다른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미국 쪽 스카우터들이었다.
"한국 야구가 이렇게 만만한 수준의 리그였나? 이런 기록들이 말이 되는 거야? 다른 건 제쳐두더라도 4할 대 타율과 병행해서 이런 기록들을 이어갈 수 있는 리그냐는 말이야."
"왜? 남미 리그에서는 4할 대 타자들도 심심찮게 튀어나오잖아? 한국 리그 수준도 그 정도로 보면 되는 거지."
"분명 한국 야구는 더블 에이에서 트리플 에이 정도의 수준이라고 하지 않았나? 미스터 류나 오 같은 투수들이 나오는 걸 보면 투수들 수준도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말이 안 돼. 다른 타자들하고 격차가 너무 심해."
"역시 자료에 나와 있는 숫자들만 봐서는 판단이 안 되겠지?"
"그래, 직접 봐야겠어. 백강호라는 이 선수를 직접 보지 않고는 리포팅 자료에 나와 있는 어떤 내용도 믿기 힘들겠어. 너무 비현실적이야."
스카우터들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후, 강호의 세부 기록을 살피다가 결국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기로 한다.
유튜브 영상이나 한국에서 전달된 강호의 타격 모습을 미리 살펴보기도 했고, 지금처럼 리포팅 자료나 시즌 기록들을 뒤져보기도 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강호를 판단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만약 백강호라는 선수가 진짜 리포팅 자료나 기록에 적혀 있는 그대로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지?"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한국 리그의 수준이 크게 낮지 않고, 백강호 선수의 실력이 리포팅 자료대로라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까?"
동료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기는 스카우터.
비행시간을 고려해 본다면 비행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 공항에 도착하게 될 것이고, 시차 적응 시간도 없이 고척 야구장으로 이동해야할 것이다.
다른 구단의 스카우터들 역시 파견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아야 했다.
곧 질문을 받은 책임 스카우터가 대답의 말을 꺼낸다.
"그렇다면 백강호를 반드시 잡아야겠지! 그게 우리들의 역할이잖아."
그것이 책임 스카우터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출발지는 달랐지만, 도착지는 같은 비행기들이 인천 공항을 향해 빠르게 날아들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