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64화 (263/335)

0264 / 0335 ----------------------------------------------

맞대결의 결과

강호의 활약으로 와이번스 4번 타자 정의준이 각성한 가운데 1회 말 자이언츠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강호의 적시 2루타로 주자가 일소되긴 했지만, 타자 주자인 강호가 2루를 밟은 득점권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팬들이 가장 바라는 결과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딱!

경쾌한 타격음에 사직구장이 또 한 번 들끓는다.

5번 타자로 타석에 선 스팅이 강호에 이어 펜스를 강타하는 또 하나의 2루타를 때려내고 있는 것이다.

강호는 스팅의 2루타에 손쉽게 홈을 밟고 있었고, 자이언츠의 점수는 한 점 더 추가되고 있었다.

"그래! 오늘은 쉽게 가자!"

"이제 6연승이다!"

팬들은 1회 말부터 쉽게 풀려나가는 경기 진행에 환호성을 내지른다.

그런 팬들의 반응은 아직 이른 감이 있었지만, 자이언츠 덕 아웃의 일부 선수들은 팬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오오~오늘 경기는 쉽게 가겠는데?"

"그러게요. 1회부터 점수를 쉽게쉽게 뽑아내네요. 오늘 와이번스 선발이 김광헌 투수라서 긴장하고 있었는데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는 거죠."

벤치에 대기하고 있는 일부 선수들이 낙관론을 꺼내들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6번 타자인 채중석이 타석에 들어섰고, 깔끔한 병살타를 때려내며 이닝을 순식간에 종료시켜 버린다.

수비 시프트가 걸린 상태에서 유격수 정면으로 향한 라인드라이브 성 타구에 타자인 채중석이 아웃된 후 귀루 동작이 늦었던 2루 주자 스팅 역시 2루에서 태그 아웃되고 만 것이다.

그 장면에 누군가가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푸헷! 야, 조금 전에 누가 쉽게 갈 것 같다고 했어? 너희들이 설레발쳐서 재수 옴 붙은 거잖아. 물론 중석 선배가 삽 푼 것도 있지만. 여하튼 중석 선배 덕 아웃에 들어오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있어. 괜히 욕먹지 말고."

"아...네!"

후배 선수들을 향해 당부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문표였다.

그는 중석의 병살타 장면을 보고는 특유의 입담으로 채중석 천적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늘 경기에서 1루수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까닭에 이닝이 종료되는 것과 동시에 글러브를 챙겨들고 그라운드로 뛰어나가야만 했다.

그런 문표의 발걸음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덕 아웃으로 걸어 들어오는 중석의 걸음과 교차하게 된다.

문표는 방금 후배들에게 본인의 입으로 중석에게 아무 말 하지 말라고 당부해놓고는 스물스물 피어나는 장난기를 참아내지 못한다.

'아~ 상심한 중석 선배 얼굴 보고 있으려니 그냥 지나치기가 힘드네. 힘내라고 한 마디 건네줘야겠어.'

문표는 그렇게 생각을 마친 후 중석을 스쳐 지나가는 타이밍에 맞춰 응원의 메시지를 입에 담는다.

"병~~살타 깔끔하네요. 채중석 파이팅!"

"뭐?! 문펴 너 이 쉑!"

문표의 기분 나쁜 응원에 중석은 순간 울컥하고 만다.

그러나 사직구장을 가득 채운 팬들과 현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중계 카메라를 의식하고는 '쳇'하고 짧게 혀를 차며 덕 아웃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수비를 위해 그라운드로 뛰쳐나가는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게 중석은 벤치에 털퍼덕 소리를 내며 퍼져 앉는다.

오늘 6번 타자로 선발 출장한 중석은 지명타자였던 것이다.

"에잇, 문펴 자식! 실책이나 해버려라!"

중석은 홀로 자리에 앉아 1루 베이스 근처에 자리 잡은 문표를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붓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런 중석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2회 초 와이번스의 선두 타자로 나선 정의준의 타구는 1루수인 문표의 수비 위치에서는 잡을 수 없는 공이었기 때문이다.

중계석에서는 정의준의 타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넘어갑니다! 몬테사의 4구째를 통타한 정의준의 타구가 사직구장의 담장을 넘습니다! 정의준! 시즌 50호 홈런! 올 시즌, 50홈런을 넘긴 선수가 세 명 째로 늘어납니다! 그리고 이 홈런은 3대 0으로 뒤지고 있던 경기를 3대 1로 따라 붙는 추격의 솔로 포로 기록됩니다!"

권성호 캐스터의 설명으로 모든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몬테사의 4구 째 패스트볼을 강타한 의준의 타구가 홈런이 된 것이다.

정의준은 이 홈런으로 아홉수에 걸려 한동안 49호에 멈춰있던 홈런 기록을 50이라는 숫자로 완성할 수 있었다.

테인즈와 강호에 이어 또 한 명의 50홈런 타자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와이번스 원정 팬들도 그런 정의준의 홈런에 함성으로 화답하는 모습이다.

"와아아아~!! 정의준 멋있다!"

"그래! 우리 와이번스에도 50홈런 타자가 나올 때가 됐지! 장하다, 정의준!"

"이참에 백강호 홈런 기록까지 쫓아가자!"

쏟아지는 와이번스 팬들의 함성 속에 정의준이 베이스를 돌아 홈을 밟는다.

홈을 지난 의준의 얼굴은 득의양양한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고, 그런 의준의 표정은 중계 카메라를 통해 고스란히 TV전파를 탄다.

"오오~ 정의준도 50홈런이야? 올 시즌은 홈런 경쟁이 대박이네! 지금 테인즈가 몇 홈런이지?"

"53홈런까지 쳤을 거야. 그래봐야 우리 백강호 선수한테는 아직 안 돼!"

"그건 당연한 거지. 60홈런을 바라보는 우리 백강호 선수하고, 이제 갓 50홈런 친 타자 클라스가 같을 수는 없는 거야."

"근데 50홈런을 '갓'이라고 말해도 되는 거야? 정의준도 역대 급 홈런 페이스잖아?"

"너는 어디 팬이야? 노선을 확실히 정해. 자이언츠야? 와이번스야? 올 시즌 홈런왕은 무조건 우리 백강호 선수야!"

TV로 경기를 관전하던 자이언츠 팬들은 의준의 50호 홈런으로 다시금 촉발되는 홈런왕 경쟁을 흥미 있게 지켜본다.

팬들의 바람으로는 강호의 타석에서 정의준의 홈런을 되갚아주는 시원스러운 홈런이 만들어 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그런 팬들의 바람 속에 경기는 계속 진행되어 어느새 3회 말 세 번째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

양 팀 점수는 이제 3대 2로 긴장감 넘치는 스코어가 만들어진 가운데 타석에 선 타자를 향해 뜨거운 함성이 뒤따른다.

당당한 발걸음으로 타석에 선 타자는 다름 아닌 강호였던 것이다.

"백강호~ 넘겨라!"

자이언츠 홈팬들의 일체된 목소리가 그라운드에 울려 퍼진다.

마음이 심약한 선수라면 어마어마한 팬들의 목소리에 멘탈이 흔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강호의 멘탈은 이미 현장과 팬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있는 부분이다.

프리마켓 상태창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강호의 멘탈은 99.9점을 만점으로 94점, 여기에 패시브 스킬인 '살아있는 전설' 스킬 효과까지 추가하면 101점이 된다.

강호는 만점보다 높은 정신력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타석에 선 강호의 얼굴에서는 일말의 긴장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에 마운드 위의 김광헌 투수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타석에 선 강호를 응시하고 있었다.

'차라리 거를까?'

강호를 다시 마주 한 광헌이 가장 먼저 가지는 생각이었다.

3회까지 진행되는 동안 잘 잡히지 않았던 포심 제구는 4분할 제구 정도는 잡힌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약한 마음이 드는 것은 강호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위압감이 승부를 망설이게 했기 때문이다.

'아니야. 나는 김광헌이야. 아무리 강타자라 해도 신인 타자를 피해서는 에이스라 할 수 없어. 승부를 보자!'

광헌은 나약해지는 마음을 바로 잡는다.

시즌 초 와이번스의 1선발은 외국인 투수인 카라의 자리였다.

그러던 것이 시즌 중반 복귀한 광헌이 후반기 시작부터 1선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제는 명실상부한 팀의 에이스로 입지를 굳힌 상태.

여기서 강호와의 승부를 피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굳건히 다지고 있던 에이스 자리가 흔들릴 수도 있었다.

광헌은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

'슬라이더!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내가 던질 수 있는 모든 공을 던져서라도 백강호를 잡을 거야!'

광헌은 그렇게 결정을 내린 후 포수 이재훈의 초구 싸인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던져진 초구 패스트볼.

주심은 묘한 궤적을 그리는 광헌의 패스트볼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판정을 내린다.

"스트라이크!"

주심의 판정은 스트라이크였다.

강호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게 넓어진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에 불만을 표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이 이전 타석보다 넓어졌어. 하긴 1회 때 존이 너무 좁긴 했지.'

강호는 그렇게 납득하며 다시 타격 자세를 취한다.

불만을 표시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아무런 제스쳐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주심의 볼 판정이 후해졌다면 애매한 코스의 공은 모두 커트해내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현재 주자 상황은 1사 주자 2루 상황.

'살아있는 전설' 스킬과 더불어 '칠 때 친다' 스킬이 적용된 강호의 컨택 수치는 111.9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정도 컨택 수치로 커트할 수 없는 공이 들어온다면 강호는 그냥 삼진을 당할 생각을 가진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

문득 든 생각에 속으로 웃음을 지으면서 강호는 김광헌 투수의 2구째도 흘려보낸다.

이번에는 존을 크게 벗어난 높은 코스의 슬로우 커브였다.

공을 잡은 그립이 좋지 않았거나 광헌의 제구가 잠시 빗나간 것으로 보였다.

그 후에도 강호와 광헌의 승부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어느새 볼 카운트는 풀카운트가 완성되어 있었다.

이미 강호에게만 아홉 개의 공을 던진 광헌은 이제 승부를 위해 결정구를 던져야 할 때라는 것을 느낀다.

'슬라이더야! 아홉 개의 공 중에 슬라이더는 없었으니까, 이번 공을 슬라이더로 던지면 제 아무리 백강호라도 꼼짝없이 당하게 될 거야.'

광헌은 그렇게 판단을 내린 후, 2루 주자를 신경 쓰지 않는 모습으로 특유의 역동적인 와인드업에 들어간다.

곧 릴리스 동작이 끝나고, 광헌의 손에서 열 번째 공이 던져지고 있었다.

광헌의 투구 동작에 맞춰 테이크백을 가져가던 강호의 눈이 순간 번뜩인다.

'슬라이더!'

강호의 눈빛이 번쩍이는 것을 시작으로 전신의 근육이 움직이고 있었다.

판단은 순간이었고, 행동은 빨랐다.

이미 모든 준비를 갖춘 대퇴근이 굳건하게 상체를 지지하는 가운데 잔뜩 팽창되었던 삼두근이 속도를 더하고, 임팩트 순간 배트를 지지하는 전완근에 핏대가 불거진다.

강호의 그런 근육 움직임은 완벽한 스윙 동작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광헌이 던진 공의 궤적을 쫓던 배트가 정확한 임팩트로 공을 때린다.

따악!!

타석을 가득 채우는 호쾌한 소리에 모든 자이언츠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양 팀 덕 아웃을 지키고 있던 모든 선수들도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너무도 완벽한 스윙과 정확한 임팩트.

거기에 스윙 후의 연결 동작까지 완벽한 호선을 그리는 강호의 배트에 걸린 공이 사직구장 외야 높은 곳까지 뻗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계석에서는 강호의 타격에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아!! 쳤습니다! 김광헌의 10구째를 통타한 타구가 좌중간 높은 곳으로 솟구쳐 오릅니다! 그리고 이 타구는 사직구장의 담장을 완전히 넘기는 홈런으로 기록됩니다!! 백강호! 60호 홈런! 여러분 믿어지십니까? 지금 사직구장에서 백강호 선수가 한국 야구사의 홈런 기록을 새롭게 갱신했습니다! 그리고 이 홈런으로 세계 야구 기록사도 새롭게 써나가게 됩니다. 연속 열 경기 홈런을 때려내며 같은 팀 선배였던 이대호 선수의 세계 기록을 새롭게 갱신합니다!"

중계석의 권 캐스터는 강호의 타구가 홈런이 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60호 홈런.

한국 야구사에서는 나오기 힘든 기록일 거라 여기던 고지에 드디어 강호가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홈런으로 사직구장의 모든 사고가 잠시 멈춰버리고 만다.

"우와아아아!!!"

"넘었어!! 홈런이야!!"

"미쳤네! 진짜로 넘기네!!"

사직구장의 함성이 폭발하고 있었다.

팬들은 알고 있었다.

지금 홈런을 때려낸 타자가 강호가 아니라면 자신들의 폐부 깊숙한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금과 같은 함성을 내지를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왠지 강호의 홈런은 다른 선수들이 때려내는 홈런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심장을 거칠게 요동치게 만드는 마법과도 같은 힘이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자이언츠 팬들은 다시없을 지금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더욱 더 큰 목소리로 소리를 내지른다.

"와아아아!!"

팬들의 함성 속에 강호는 홈을 밟고 있었고, 이제 양 팀의 점수 차는 5대 2까지 벌어지게 된다.

그로 인해 와이번스의 에이스인 김광헌은 조기 강판되어 버렸고, 3회부터 와이번스의 불펜이 가동되기 시작했지만, 강호로 인해 불이 붙은 자이언츠 타선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5회가 지났을 때 양 팀의 점수 차는 이미 14대 3까지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

와이번스의 불펜 투수들은 마운드에 오르는 족족 점수를 헌납하며 불을 질렀고, 그들의 마음은 이렇게 절규하고 있었다.

'오늘 경기는 재앙이야!'

그것이 와이번스 불펜 투수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행되자 와이번스 감독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은 단 한가지였다.

'오늘 경기는 그냥 접자. 더 이상 올릴 불펜 카드도 없고.'

와이번스 감독은 오늘 경기를 내어주더라도 내일 경기를 위해 팀의 필승 카드 자원을 아끼기로 결정을 내린다.

한편, 2회 초 50호 홈런을 때려내고 득의양양하게 벤치에 앉아 있던 의준은 말이 없었다.

오늘 경기가 시작되기 전 그의 각오는 누구보다도 남달랐다.

"내가 신인 타자인 백강호에게 뒤쳐지다니. 오늘 경기에서 내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고 말겠어!"

의준은 경기 전의 각오대로 2회 초 벼락같은 홈런을 때려내며 덕 아웃에 금의환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의준의 50호 홈런도 강호가 60호 홈런을 때려내 버리자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잊혀지고 만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따악!

또 한 번의 호쾌한 타격음에 사직구장이 들썩인다.

8회 말 다섯 번째로 타석에 선 강호가 또 하나의 홈런을 때려내고 있는 것이다.

61호 홈런.

강호는 오늘 두 개의 홈런을 더하며 자신의 홈런 기록을 61이라는 숫자로 새겨버린다.

그 모습을 덕 아웃에서 지켜보게 된 와이번스의 4번 타자 정의준.

지금 의준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냥 포기하자. 올 시즌 홈런왕 타이틀은 너 가져라. 백강호.'

그것이 강호를 바라보는 정의준의 시선이었고, 그렇게 한 명의 홈런왕 경쟁자가 대열에서 이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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