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62화 (26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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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간 자리

팬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태풍 나니는 예측대로 부산 경남 권을 휩쓸고 지나간다.

당연히 사직에서 예정된 베어스와의 시리즈 경기는 취소되어 버렸고, 덕분에 선수들은 3일이라는 휴식을 얻게 된다.

반면에 그 3일 동안 자이언츠 팬들은 우울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으아아~~ 야구 보고 싶다!! 야구를 내놔라!"

"비 언제 그쳐? 비 그치게 해달라고! 이 젠장맞을 하늘아!"

"우리는 야구를 원한다!"

"어서 백강호의 홈런을 내놓아라!"

팬들은 3일 동안 보지 못하게 된 자이언츠 야구를 갈망하며 각종 야구 게시판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그들의 분노는 하늘까지 닿아 있었다.

태풍으로 인해 경기가 연이어 우천 취소되자 빗줄기를 뿌리는 하늘을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하늘!"

하늘을 욕하던 팬들의 태도는 대구에서 예정된 라이온즈 전까지 연달아 우천 취소되면서 이제는 애원으로 바뀌고 있었다.

"흑흑흑, 제발 비 좀 그쳐주세요. 야구 좀 보게 해줘요."

"나는 비만 그칠 수 있으면 무슨 짓이든 하겠습니다. 하늘님이시여, 비를 그치소서~"

"저는 제 아내를 제물로 바칩니다. 비 좀 그쳐라!"

팬들의 애원에도 비는 계속되어 8월 마지막 주 자이언츠 경기는 모두 우천 취소되어버린다.

10호 태풍 나니가 일본으로 북상한 뒤 또 다른 태풍이 상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 11호 태풍 쉬바(CHIBA)는 대만과 필리핀 사이의 먼 바다에서 생성돼 8월 31일 제주도 앞바다를 지날 예정입니다. 중심기압은 994 헥토파스칼로 진행 방향이 동북쪽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라도 남부 지역과 제주도, 부산을 포함한 경상도 전역이 태풍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한편 국민안전처에서는....

뉴스 속보는 태풍 나니가 일본으로 북상한 가운데 또 다른 태풍 쉬바의 접근을 알리고 있었다.

이로 인해 자이언츠 팬들은 이번 주 경기에 대한 희망의 끈을 완전히 놓아 버린다.

"태풍 쉬바라니?! 안 돼, 쉬바!"

"쉬바 태풍! 우리 자이언츠 경기 어떻게 할 거야?!"

팬들은 망연자실한 채 댓글 달 의욕도 잃고, 시름시름 앓아간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 어느새 9월 달에 접어들고 있었다.

연달아 반도를 강타한 태풍으로 일주일이 훌쩍 지나가버리고, 어느새 9월 3일에 접어들고 있었다.

팬들이 태풍으로 시무룩해져있는 동안 어느새 발표된 확장 엔트리는 이미 시행되고 있었다.

경남 권과는 다르게 태풍의 여파가 거세지 않은 다른 지역에서는 확장 엔트리 발표 후의 라인업으로 경기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불펜 투수 몇 명 더 올라오니까 경기력이 달라 보이네. 더위 먹고 시름시름 앓고 있는 1군 선수들 이참에 싹 다 정리합시다!"

"우리 팀은 내야 수비가 문제였는데 이제 경기 좀 편하게 보겠네요. 확장 엔트리로 내야수가 2명이나 올라왔어요."

각 팀의 팬들은 확장 엔트리로 보강된 선수 자원에 즐거워하며 남은 일정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러는 중 자이언츠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태풍 쉬바가 소멸됐답니다!"

"뭐?! 쉬바가 소멸됐다고? 그럼 오늘 경기는 어떻게 되는 거야? 아직 비 내리고 있잖아?!"

"경기 전에는 비가 그친 답니다!"

자이언츠 팬들은 오랜만의 경기 소식에 기뻐하며 쾌재를 부르짖는다.

무려 일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야구를 못 본 까닭에 일부 자이언츠 팬들은 야구 금단 증상까지 호소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들은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일기예보부터 확인할 정도로 날씨 강박관념에 시달려야만 했고, 다른 구장의 경기 소식이 전달될 때마다 심각한 우울증을 내보였다.

그런데 9월 3일 화요일 경기는 예정대로 열릴 거라는 얘기를 듣자 그 모든 증상들이 한 방에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여러분 저는 이만, 사직 구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시즌권 끊었거든요."

"당장 사직으로 갑시다!"

"근데 오늘은 어디랑 경기하는 겁니까?"

"몰라요. 그런 게 중요합니까? 자이언츠가 경기를 한다는데, 일단 사직으로 고고고!"

팬들은 기쁜 표정으로 곧장 사직으로 향한다.

인터넷 야구 게시판을 점령하고 있던 자이언츠 팬들이 사직구장으로 몰려가버리자 한동안 야구 게시판이 한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만큼이나 자이언츠 경기에 대한 팬들의 갈증은 어마어마한 것이었고, 현장 발권이 조기에 마감되는 기염을 토하며 오늘 사직에서 열리는 홈경기 역시 매진되어 버린다.

지 사장을 포함한 자이언츠 프런트로서는 입이 찢어질 만큼 기쁜 일이었다.

"사장님, 오늘도 매진이랍니다!"

"허 실장. 그걸 이제 알았어? 하여튼 자이언츠는 경기만 잘하면 팬들이 알아서 야구장을 찾아온다니까. 오늘 프로모션은 어떻게 됐어?"

"현장 이벤트 말입니까? 말씀하신대로 이벤트 상품 규모를 두 배로 늘렸습니다."

"아니, 그거 말고 딴 거 있잖아. '마'라고 적힌 손가락 모양 풍선 말이야. 그거 물량 확보했어?"

"네, 일단 3천 개까지 구매해 놨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전부 풀까요?"

"3천 개? 당장 오늘 경기에만 2만 8천석이 매진됐는데 꼴랑 3천 개로 시리즈 내내 어떻게 프로모션을 하겠다는 거야? 지금 장난하는 거야?"

"그게 가격 부담이..."

"도매가로 천 원밖에 안 하다면서? 3만개 정도 사면 딱 3천만 원이네. 물량 확보해서 이번 시리즈 동안 선착순 분배하도록 해! 우리 팀 홈경기 응원 문화는 우리가 주도해야할 거 아냐? 팬들한테 소소한 재미도 부여하고, 기념도 되고!"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추가 구입하겠습니다."

사장실을 찾은 허 실장과 대화를 주고받던 지 사장은 그제야 만족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는 이번 시리즈를 통해 많은 프로모션들을 구상하고 있었다.

5회 클리닝 타임 때의 현장 이벤트는 물론, 자이언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마'응원용 도구.

여기에 비장의 무기로 준비한 또 다른 선물들을 주문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태풍이 닥친 와중에도 손 감독과 기 코치 등의 현장이 바쁘게 움직인 것과는 별개로 지 사장과 프런트 역시 나름의 일들을 추진하고 있었다.

지 사장은 그 결과물을 오늘 시리즈 홈경기를 통해 조금씩 풀어나갈 계획인 것이다.

"일해라, 일! 매표가 매진될 정도로 팬들이 많이 찾아왔을 때 더 잘해야 하는 거야! 나중에 팬들 잃고 백날 이벤트 하는 것보다 이렇게 잘 될 때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하는 게 더 효과적인 거라고! 자, 뭐하나? 어서 움직여!"

"네!"

지 사장과 허 실장의 대화는 거기에서 종료된다.

이제 경기 시간이 2시간 전으로 다가와 있었기 때문에 계획된 내용을 실행에 옮기려면 더욱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프런트의 바쁜 움직임 속에 현장 역시 바쁘게 돌아간다.

장소는 이제 와이번스와의 경기가 예정된 사직 야구장으로 옮겨진다.

"비가 그친다고 하더니 아직도 내리네. 설마 오늘 경기는 취소되지 않겠지?"

문표는 경기 전 훈련을 위해 그라운드를 밟으며 의문 섞인 시선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런 문표의 시야에는 여전히 먹구름 낀 하늘과 조금씩 떨어지는 빗방울이 눈에 들어온다.

그 때 한창 하늘을 살피고 있던 문표의 귀를 멀게 하는 함성 소리가 사직구장을 가득 채운다.

"우와아아!!"

"백강호다!"

"백강호 파이팅!!"

"백강호 선수 오늘도 홈런이요!!"

함성 소리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굳이 설명은 필요 없어 보였다.

문표는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강호를 노려보며 이렇게 따져 묻는다.

"팬들이 너한테 홈런 맡겨놨어? 왜 너만 보면 홈런 타령인 거야?"

"그러게요. 제가 좀 물어볼까요? 며칠 전에 확인해 보니까 제 공식 팬 카페도 생겼던데요. 회원 수가 몇 명인 줄 아십니까?"

"아니, 안 물어봤어. 안 궁금해. 뭐 한 1,2천 명 되겠지."

문표의 넘겨짚는 말에 강호는 자신의 오른손을 펼쳐 보인다.

활짝 펼쳐진 강호의 오른손을 확인한 문표는 순간 궁금해져 묻게 된다.

"오천 명이야?"

"아뇨. 오만 명이요."

"뻥치지 마! 강호 후배가 무슨 연예인도 아닌데 팬 카페에 오만 명이나 가입을 한다고?"

갑자기 버럭 소리치는 문표의 행동에 강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런 강호의 태도에서 거짓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추하게 된 문표가 눈을 크게 뜬다.

"진짜야? 진짜 오만 명이야?"

"네, 며칠 전에 5만 7천 명 정도였으니까 지금쯤 6만 명 정도 되지 않았을까요?"

"젠장, 이거 팬 없는 선수는 서러워서 살겠어? 왜 나는 팬 카페를 안 만들어주는 거야? 데뷔한지 10년이 넘었는데."

"인기가 없어서죠."

"그러니까 인기가 왜 없냐고? 이렇게 잘 생긴 얼굴을 가졌는데?"

"진심이십니까?"

"....그냥 훈련이나 하자."

결국 문표는 대화를 중단하고 훈련에 집중하기로 한다.

지금도 경기장을 가득 채운 자이언츠 팬들은 강호의 이름을 연호하며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한창 선수들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있던 덕 아웃에서도 팬들의 뜨거운 목소리에 관심을 내보인다.

"강호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예전에도 대단했지만, 오늘은 더 심한 것 같습니다. 귀가 먹먹할 지경이에요."

덕 아웃 밖으로 얼굴을 슬쩍 내밀어 보았던 김민철 수석이 입을 연다.

그의 말에 선수들의 움직임을 체크하고 있던 손 감독이 대답했다.

"9일 만에 하는 경기이지 않나? 팬들 반응이 뜨거운 것도 당연한 일이지."

"하하, 그렇긴 합니다. 그나저나 선수들이 우천으로 쉬는 동안 경기 감각이 떨어졌으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는데 괜한 걱정인 것 같습니다. 다들 몸 관리를 잘한 것 같은 느낌이에요."

"프로라면 당연한 거야. 며칠 쉬었다고 감각이 떨어지면 프로 자격이 없는 거지. 그런 선수라면 확장 엔트리로 자리가 넉넉해졌다고 해도 당장 2군에 내려가야 할 거야. 자이언츠 1군에 그렇게 허술한 선수의 자리는 없을 테니까."

손 감독은 가벼운 어조로 말하고 있었지만, 말의 내용은 묵직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선수 본인이 방심해서 슬럼프가 온다면 1군에 자리가 없을 거라는 말.

잔여 경기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는 시즌에서 배제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런 손 감독의 인식 변화에서 김 수석은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감독님은 벌써 포스트 시즌 체제로 선수들을 바라보고 계시는구나!'

김 수석은 그렇게 상황 파악을 마친다.

팀의 사령탑이 의지를 내보인 가운데 수석 코치인 자신이 뒤쳐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제 모든 자이언츠 코칭스태프는 포스트 시즌 체제로 경기를 준비하고, 선수들을 관리해야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감독의 의지가 곧 팀의 의지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더 바빠지겠구나.'

김 수석의 생각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간은 어느새 경기 시작이 예정된 시간이 다가와 있었다.

5시 전후로 그치기 시작한 빗방울은 경기 시작 시점이 되었을 때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어느새 하늘에 낀 먹구름도 개어가는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접한 팬들의 가슴 역시 맑게 갠다.

"어! 이제 비 안 오네. 태풍이 완전히 지나간 모양인데?"

"태풍은 진즉에 소멸됐지. 태풍이 끌고 온 비구름이 조금 남아있던 건데 그마저도 사라진 모양이야."

"좋아! 그럼 오늘부터 비는 안 내린다는 뜻이잖아."

팬들은 환한 표정으로 맑은 날씨를 반긴다.

그러다 비가 그치면서 얻게 되는 이점 하나를 떠올리게 된다.

"그럼 우리 백강호 선수 홈런 치는 데 문제없다는 뜻이지?"

"그렇지! 비가 안 오니까 홈런 날리는 것도 유리해지는 거지. 아무래도 비가 오면 저항이 발생하고, 비거리가 줄어드는 법이니까."

"좋았어! 내 잠자리채 어디 갔어? 오늘은 백강호 선수 홈런 볼을 잡고야 말겠어!"

팬들은 강호의 홈런을 바라며 각자의 기대에 부푼다.

그런 팬들의 바람 속에 경기는 곧 시작되고 있었다.

1회 초 자이언츠의 선발 투수 몬테사의 호투에 와이번스의 공격이 삼자범퇴로 빠르게 종료되고, 어느새 1회 말 자이언츠의 공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장소는 잠시 자이언츠의 타순을 읽어 내리고 있는 중계석으로 옮겨진다.

"1회 말, 자이언츠 타순입니다. 1번 우익수 유성철, 2번 중견수 전준오, 3번 3루수 황제인, 4번 자리에는 유격수 백강호, 5번은 스팅, 6번 채중석, 7번 캡틴 강민수, 8번 최훈, 9번 최문표의 순입니다. 오늘 자이언츠 타선의 무게감은 평소보다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조 위원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자이언츠 타순을 읽어 내린 권성호 캐스터는 곧바로 해설위원인 조성한에게 마이크를 넘긴다.

조성한 위원은 자이언츠 출신의 해설자로서 팀 후배들에게 후한 평가를 해주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객관적인 해설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조 위원이 객관성을 잃는 순간이 간혹 발생했는데 지금 거론하고 있는 한 선수에 대한 평가를 할 때가 바로 그러했다.

"오늘 자이언츠 공격 역시 백강호 선수에게 초점을 맞춰야할 것 같아요. 감기나 기타 이유로 라인업에서 빠져 있던 주전 선수들이 대거 복귀했다는 점도 관전 포인트고요. 저는 오늘 자이언츠 타순의 키 플레이어로 백강호 선수를 지명하겠습니다. 오늘 경기에서도 홈런을 추가한다면 백강호 선수의 이름으로 된 새로운 세계 기록 하나가 추가되는 거고요. 시즌 홈런 기록은 60호가 되는 겁니다. 그 부분이 오늘 경기의 최대 관전 포인트로 볼 수 있겠습니다!"

차분하게 시작되었던 조 위원의 말은 힘 있는 목소리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TV로 중계를 지켜보는 거의 모든 자이언츠 팬들은 그런 조 위원의 말에 동감했다.

그러는 사이 1회 말 자이언츠의 공격이 시작되고 있었고, 1회부터 자이언츠 타선이 불을 뿜기 시작한다.

딱!

경쾌한 타격음이 사직구장을 함성으로 가득 채운다.

1번 타자인 유성철이 풀카운트 승부 끝에 삼진당하기는 했지만, 뒤이어 타석에 선 2번 타자 전준오와 3번 타자 황제인이 연속 안타를 때려내며 루상에 출루한 것이다.

그로 인해 1사 주자는 1, 3루가 되고 모두의 시선은 이제 타석으로 걸음을 옮기는 한 선수에게로 옮겨진다.

그는 바로 강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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