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59화 (258/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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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나니

선수단이 사직행 귀환 버스에 올랐을 무렵, 야구와 관련된 언론들은 일제히 한 가지 사실을 전파하고 나선다.

야구 기자들은 현장에서 직접 본 내용이나, TV중계로 확인한 내용, 혹은 경기를 보지 않았어도 다른 기자들의 기사를 확인하고는 부랴부랴 기사를 재생산하기에 이르렀다.

강호의 59호 홈런, 그리고 그 전에 기록된 58호 홈런까지.

이제 60홈런까지 고작 하나 남겨 놓은 강호의 홈런 기록으로 인해 야구와 관련된 모든 매체들이 들끓고 있었다.

심지어 야구와 관련이 없는 연예계 매체들이나 정식 뉴스에도 강호의 홈런 기록 행진을 거론할 정도였다.

이제 강호의 홈런 기록은 야구계를 떠나 사회를 뜨겁게 만드는 핫이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응원하는 팀을 떠나 강호의 홈런 기록으로 하나 되어가는 팬들의 댓글 반응을 모아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소름이다! 9월 달이나 돼서야 60홈런 나올 줄 알았더니. 벌써 59홈런이야? 백강호 선수 몰아치는 능력도 역대 급이네!"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은 달성될 분위기인데? 이제 9경기 연속 홈런이지? 다음 번 경기만 홈런 치면 그 기록도 달성 완료!"

"지금 자이언츠 5연승 아닌가? 팀 연승보다 백강호 선수 홈런 기록이 더 중요한 거야?"

"팀 5연승 소식을 묻어버리는 백강호 선수 클래스. 후덜덜해요!"

"아...! 다음 주 화요일까지 또 어떻게 기다리냐? 경기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경기보고 싶어서 손이 떨린다! 다음 주도 직관가야지! 사직 홈경기니까~"

"백강호 선수 60홈런을 위해서 우리도 같이 달려요!!"

"달려, 달려!"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어느새 강호의 공식 팬 카페가 만들어진 것은 물론, 네이버 밴드를 통해 자이언츠의 일정을 공유하거나 단체 직관 일정을 잡기도 했다.

팬들이 체계적으로 자이언츠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애쓰는 이유는 바로 강호에게 있었다.

계속 이어져 나가는 강호의 홈런 기록을 직접 보기 위한 수고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당사자인 강호 본인은 정작 그런 분위기와는 조금 동떨어져 있었다.

장소는 광주를 떠난 자이언츠 원정 버스로 이동한다.

5연승이 이어지고 있는 연승 행진으로 원정 버스 안의 분위기가 상당히 좋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너희들 그거 알고 있어? 7월 18일 경기부터 우리 팀 승패 전적이 25승 1패라는 거?"

"당연하죠~ 16일 이글스 경기에서 지지만 않았어도 26연승이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자꾸 이기다보니까 이제 1위하고 승패마진도 얼마 안 남았어. 베어스가 72승 1무 43패였지? 그럼 우리랑 몇 경기 차이인 거야?"

"세 경기 차입니다. 저희가 69승 46패니까요. 베어스가 3연패하고 저희가 3연승을 더하면 동률입니다."

"우와~! 그렇게나 좁혀졌어? 후반기 시작할 때만 해도 베어스 1등자리는 넘사벽 같아 보였는데, 지금 분위기 봐서는 당장 다음 주에도 추월이 가능하겠는데?"

선수들은 연승 분위기가 이어지며 팀 승률이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즐거워했다.

그로 인해 구단의 대우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체감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최근 몇 년 동안 팬들에게 뜨거운 비난만 들어야했던 자이언츠 선수단은 참으로 오랜만에 접하게 된 팬들의 호의와 열성적인 응원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그런 감동적인 분위기에 누군가가 찬물을 끼얹는 말을 꺼낸다.

"다음 주는 안 될 겁니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원정 버스를 가득 채우던 축제 분위기가 씻겨 나간다.

다른 선수의 발언이었다면 선배들이 나서서 헛소리 말라고 나무랐겠지만, 발언을 한 사람이 강호이다 보니 선배들마저도 조금은 주춤하게 된다.

다른 이들을 대표해서 강호와 친분이 깊은 문표가 입을 연다.

"강호 후배, 너무 냉정한 거 아냐? 우리도 당장 다음 주에 1위 자리에 오르기 힘들다는 건 알고 있어. 그래도 분위기라는 게 있는데 같이 동조 좀 하고 그래."

문표가 나무라고 나서자 그에게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던 강호, 그런 강호의 의도는 앞쪽에서 불쑥 튀어나온 얼굴 하나로 인해 멈춰지고 만다.

갑작스레 커다란 얼굴을 들이민 사람은 팀의 최고참 야수인 지명타자 채중석 선수였다.

"문펴, 너 왜 우리 백 스타한데 뭐라 그러는 거야? 우리 강호가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1위는 9월에 해도 되는 건데 뭐 조급하게 다음 주에 1위를 하니 마니 하고 있어?"

갑작스럽게 대화에 끼어든 중석.

그는 최근 팀의 상승세가 4번 타자인 강호의 대활약 덕분에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강호의 말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고 있었다.

문표는 그런 중석의 태도에 실소를 금치 못한다.

"조급하긴 누가요? 중석 선배야말로 조급해 보이시던데요? 오늘 대타로 섰을 때 헛스윙을 두 번이나 하지 않았습니까? 아~~선구안 귀신인 중석 선배의 선구안은 어디로 가버린 거야?"

문표의 반문에 중석은 씨익 하고 웃음 짓는다.

왜냐하면 오늘 대타로 타석에 섰을 때 단타이긴 했지만, 안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결국 3구째에 안타 때렸으면 된 거잖아? 내가 문표 네 자리 뺏을까봐 걱정되는 거지, 지금?"

"제 자리요? 이제 완전히 인정하시는 겁니까? 우리 팀 1루수 보직이 제 거라는 걸요?"

"그래, 너 가져라. 나는 그냥 1루수 말고 지명타자 하련다."

"오오~"

중석의 항복 선언에 문표가 입을 동그랗게 말며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런데 그런 두 선배들의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선수들이 집단으로 반발하고 나선다.

그들은 중석, 문표와 함께 1루수 겸 지명타자 자리를 경쟁하고 있는 김상훈, 이인호, 그리고 외국인 타자 스팅이었다.

"1루 자리는 제 겁니다!"

"그리고 지명 타자는 제가 맡아뒀다고요."

"겟 아웃 히어~ 대츠 마이 포지션~! 유 가이스 스테이 벤치! 너네드른 벤치나 지켜!"

순서대로 김상훈, 이인호, 스팅의 말이었다.

그들의 참전으로 문표가 앉은 자리 주변이 소란스러워진다.

참고로 강호가 앉아 있는 자리는 문표의 바로 옆자리였다.

"아, 저기 선배님들."

"강호는 잠시 기다려봐. 1루, 지타 경쟁자들 서열 정리가 좀 필요하겠어!"

강호가 나서려하자 그의 편을 들어주던 채중석이 강호를 만류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포지션에 관한 서열 정리에 들어간다.

"너희들 자이언츠 지명타자 자리를 내가 몇 년 동안 지켜왔는지 알아? 어디서 지타 자리를 탐내고 있어? 1루 보직은 너희들이 가지더라도 지명타자는 내 거라고! 알겠어?"

중석은 반쯤은 진담이 담긴 목소리로 엄포를 놓고 있었다.

그런 중석의 발언이 재미있었는지 어느새 캡틴 강민수를 포함한 다수의 선수들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 사이 중석의 대항마라 할 수 있는 문표가 반박하고 나선다.

"아니 무슨 자이언츠 지명타자에 정규직으로 입사하셨어요? 프로야구 포지션에 네 거 내 거가 어딨습니까? 잘 하는 놈이 선발 출장하는 거죠."

문표의 반박에 참전을 선언했던 세 명의 선수들이 얼른 동조하고 나선다.

"맞습니다!"

"지명타자는 우리 모두의 자리라고요!"

"대츠 라이트! 나도 지면타자 조아! 땡뱉에 수비 안해도 되니가~"

순서대로 김상훈, 이인호, 스팅의 말이었다.

특히나 마지막 스팅의 말에 근처에 있던 모든 선수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한 여름 무더운 날씨에 경기를 해야 하는 야구 선수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야~ 스팅 말이 걸작이네요. 그럼 나도 지명타자 자리나 좀 노려봐야겠는데?"

갑자기 중간 자리에 앉아 있던 캡틴 강민수가 참전의 의사를 밝힌다.

자이언츠 야수들 중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민수가 나서자 순간 중석과 문표가 흠칫하는 표정을 짓는다.

"뭐? 민수 너 무슨 소리야? 그럼 우리 팀 안방마님 자리는 어쩌고?"

"포수 자리는 민경이도 있고, 2군에 진태도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요즘 나이 먹고 포수 장비 차고 경기하려니 더워 죽겠어요. 이참에 저도 지타로 전향하죠, 뭐."

"그건 안 돼!"

민수의 말에 중석이 절규하자 원정 버스 안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진다.

여기에 2루수 경쟁에 밀려난 최훈과 3루수 백업이 된 오진택까지 합세하자 문표의 주변은 혼돈의 장이 되고 만다.

또 한 번 지적하지만, 강호의 자리는 문표의 옆 자리였다.

'분위기가 왜 이렇게 된 거야? 시끄러워서 귀가 따가울 지경이네.'

강호는 목소리를 높여가는 선배들 사이에 앉아 생각한다.

자신이 어떡하면 지금의 아비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그냥 원정 버스 자리를 옮길까?'

다른 자리로 이동할까하는 생각도 가져보지만,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왠지 자신이 자리를 옮기면 문표 역시 자리를 옮길 것 같다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결국 이런저런 생각 끝에 최초의 주제로 전환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왜냐하면 선배 선수들의 대화는 어느새 유격수 자리를 제외한 전 포지션 경쟁에 관한 이야기로 돌입해 있었던 것이다.

"요즘 외야 라인도 헬이라고요. 나도 그럼 지타로 가야겠다."

"준오 너는 그냥 외야에 있어. 발 빠른 베테랑 외야수가 지타를 하면 어쩌자는 거야?"

"발은 문표도 빠른데 문표는 지타 뛰잖습니까?"

"아, 문표는 열외로 치자."

"왜 저를 열외로 칩니까? 제가 지타 자리에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데요. 지타는 제가 먹겠습니다."

"너 그냥 1루수 하라고."

"1루수는 제 자리입니다."

"시끄러! 상훈이 너는 저 뒤로 가 있어."

외야 라인 최고 고참인 전준오와 중석, 문표, 상훈으로 이어지는 대화에 다른 선수들까지 첨언을 더하자 강호의 주변 자리는 더욱 소란스러워진다.

그러자 강호는 스마트 폰을 열어 인터넷을 실행시킨 후 소란의 주체나 다름없는 문표의 어깨를 두드린다.

"문표 선배."

"어엉? 강호 후배 잠시 빠져 있어봐. 지금 중석 선배가 더위 드신 것 같으니까 후배 된 입장으로 챙겨드려야지."

문표의 말은 중석을 위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제 경쟁자를 넘어 천적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강호는 그런 문표에게 최초 분란이 된 주제에 대해 다시 거론하고 나선다.

"우리 팀 말입니다. 다음 주에 1위 못한다는 이야기요."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해도 돼. 다음 주 화요일부터 베어스하고 5차전이잖아? 우리가 1위하려면 시리즈를 다 이겨야 하는데 아무래도 힘들겠지."

문표는 강호의 말을 대충 넘기며 중석을 향해 삿대질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강호는 그런 문표의 팔을 잡아끌며 활성화시킨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들이민다.

"아뇨, 그런 말이 아니라 다음 주 베어스 전은 못할 겁니다."

강호는 새로운 사실을 전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의 말에 한창 뜨겁게 달아올랐던 논쟁 분위기가 가라앉고 있었다.

문표의 삿대질을 받고 흥분하던 중석 역시 강호의 스마트폰을 향해 시선을 옮긴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어디 이리로 줘봐."

중석의 요구에 강호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건네었고, 캡틴 강민수와 상훈, 인호와 스팅 등이 그런 중석의 등 뒤에서 강호의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강호가 건넨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한 선수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어?! 이게 뭐야?"

선수들을 대표해 중석이 놀란 목소리를 내자 강호가 대답을 위해 입을 연다.

다행이도 이번에는 강호의 말을 막아서는 사람은 없었다.

"태풍이요. 다음 주 화요일에 태풍이 상륙한답니다. 그러니까 사직 홈경기는 우천취소될 거예요."

강호는 일기예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밝힌다.

그런 강호의 말대로 중석이 들고 있는 스마트폰 화면에는 제 10호 태풍 나니(NANI)의 북상 소식에 관한 일기예보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그와 같은 시각, 다음 주 홈경기 일정으로 잔뜩 기대에 부풀었던 자이언츠 팬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뉴스 속보가 전해진다.

아직도 야구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생중계 화면의 하단에는 흘러가는 자막으로 이런 문구가 전시되고 있었다.

[10호 태풍 나니, 26일 월요일 제주도 관통 예정]

팬들이 지나가는 자막으로 보게 된 태풍 예보는 처음에는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 야구 프로그램이 종료되고,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을 때 접하게 된 뉴스예보를 통해 이번 태풍의 경로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 10호 태풍 나니는 필리핀 앞바다에서 생성돼 8월 26일 제주도와 남해를 관통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중심기압은 1,000 헥토파스칼로 진행 방향이 북동방향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제주도 일대와 남해안, 부산을 포함한 경남권이 태풍의 세력권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국민안전처에서는 태풍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처 마련을 고심하고 있는 한편....

뉴스 속보에서는 당장 내일로 다가온 태풍 북상 소식을 연달아 내보내고 있었다.

이미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온 전라도와 제주도 일부 지역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내일부터는 전라도 전역과 충청 일부, 제주도와 경남 권 전역에 태풍주의보가 발령될 거라는 소식이었다.

이 소식을 통해 야구팬들은 한 가지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럼 다음 주 경기는 전부 취소된다는 얘기잖아!"

"안 돼!! 내가 사직 홈경기 표를 어떻게 해서 구한 건데?!

"왜 우리 사직구장은 돔구장이 아닌 거야?!"

팬들은 태풍의 북상 소식으로 인해 예상되는 다음 주 경기 일정 취소에 슬퍼한다.

팬들의 입장에서는 야구 휴식일인 월요일 하루가 지나기를 기다리는 것도 힘들 지경인데 다음 주 며칠 동안 야구를 볼 수 없다는 소식에 절망감에 빠져 들고 있었다.

특히나 자이언츠 팬들의 절망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럼 우리 백강호 선수 홈런 기록은 어떻게 되는 거야?"

"이러다 백강호 선수 컨디션 떨어지면 어쩌라고? 빌어먹을 태풍 나니요!"

"망할 태풍! 백강호 선수 홈런 기록 끊어지면 내가 가만 안 둬! 태풍이고 나발이고 죽창 꽂으러 간다!"

자이언츠 팬들의 원성 속에 태풍 나니는 빠르게 북상해온다.

그로 인해 야구계는 뜻하지 않은 또 한 번의 휴식을 맞이하게 되고, 오직 홈구장이 돔 형태인 히어로즈와 그를 상대하는 팀만이 예정된 일정을 진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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