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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 저력
1회 초 팀의 선두타자인 유성철이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강호는 예리한 눈빛으로 마운드를 응시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마운드 위의 투수인 양현준을 살피는 중이었다.
양현준의 초구를 통해 오늘 그의 구위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양현준의 와인드업 동작을 시작으로 릴리스까지 모든 동작을 빠짐없이 살핀다.
부웅, 파핫.
역동적인 양현준의 와인드업이 끝난 후 그의 왼손에서 공이 떠난다.
그 직후 포수 이용구의 미트에 묵직한 소리가 모두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터엉!
묵직한 몸쪽 직구.
수위권 타자인 유성철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좋은 코스의 공이 완벽한 제구로 들어가 있었다.
주심은 그 공에 곧바로 판정을 내린다.
"스트라이크!"
주심의 판정은 스트라이크였다.
미리 알고도 대비하기 힘든 꽉 찬 코스의 묵직한 구위가 인상적인 양현준의 초구였다.
그에 대한 감상평은 자이언츠 덕 아웃 곳곳에서 들려온다.
"와우~ 오늘 양현준 구위가 제대로네! 구속은 얼마야? 145km? 150km는 넘을 줄 알았더니 구속은 생각보다 덜 나왔어."
강호의 근처에 서있던 지명타자 채중석이 전광판에 찍힌 구속을 확인하며 입을 연다.
그런 중석의 말에 누군가가 대답의 말을 꺼낸다.
"그만큼 볼 끝이 좋다는 뜻이겠죠. 중석 선배 눈에도 착각이 들 정도면 오늘 양현준 구위가 엄청나다는 뜻입니다. 차라리 라인업에서 빠진 게 잘 됐네. 타율 안 까먹어도 되고요."
양현준의 구위를 칭찬하며 오늘 라인업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 그는 바로 문표였다.
문표는 감기 환자들만 모아둔 벤치에서 벗어나 어느새 강호와 중석의 근처로 몰래 다가와 있었다.
중석은 그런 문표에게 본능적으로 한 발짝 물러서며 말한다.
"어허이, 감기 환자는 저리가. 귀하신 몸한테 감기 옮으면 어쩌려고 그래?"
"귀하다고요? 누가? 설마 중석 선배 본인이 그렇다는 겁니까?"
"나도 귀한 몸이긴 하지만, 여기 강호한테 감기 옮으면 안 돼~ 그러니까 저리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이것 참 서러워서 원."
문표는 중석의 타박에 한 블럭 떨어진 벤치에 멀찌감치 앉는다.
그리고는 양현준 투수의 초구를 보고 판단한 자신의 주장을 밝혔다.
"양현준이 초구부터 몸쪽으로 승부를 보네요. 원래 양현준의 포심은 타자 바깥쪽 코스로 헛스윙을 유도하는 목적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은 초구부터 몸쪽입니다. 뭔가 느껴지는 거 없으세요?"
문표는 자신의 주장을 밝히다말고, 중석에게 물어본다.
그 점은 중석 역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인지 '으음'하는 침음과 함께 입을 여는 중석.
근처에 자리한 강호는 두 베테랑 선배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평소 양현준의 코스 선택하고 다르긴 하네. 그래도 초구 하나 본 거잖아. 아직 타이거즈 배터리의 의도를 분석하기에는 이른 상황이야."
중석은 다소 보수적인 발언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고작 양현준 투수의 초구를 보았을 뿐이니 섣불리 판단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문표는 그런 중석의 말에 표정을 바꾼다.
중석을 향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보이는 문표, 그는 감기 기운으로 컨디션이 떨어진 중에도 중석을 향한 공격 본능을 잊지 않고 있었다.
"푸훗, 속편한 소리하시네요. 중석 선배님 대답을 들으니까 안심이 됩니다. 제가 감기에서 나을 때까지 중석 선배한테 자리를 뺏기는 일은 없겠네요."
문표의 갑작스러운 도발에 중석이 눈썹을 씰룩인다.
"뭐, 인마? 너는 뭐 그럼 양현준의 초구에 특별한 거라도 발견했다는 거야?"
"그럼요. 두고 보십시오. 양현준이 2구째에도 포심을 던질 테니까."
문표의 말이 끝난 직후, 양현준의 2구가 포수의 미트에 도착하고 있었다.
터엉!
"스트라이크!"
묵직한 소리와 함께 주심의 스트라이크 선언이 이어진다.
이로써 노 볼 2 스트라이크 상황.
중석의 놀란 눈빛과 강호의 시선이 문표에게로 향한다.
왜냐하면 문표의 예언대로 양현준의 2구가 145km의 포심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코스 역시 몸 쪽이었다.
"제 말이 맞지요? 아아~ 이거 감기로 선발 제외된 게 아쉽네 그려. 오늘 내가 선발 출장했으면 양현준의 공을 제대로 공략할 수도 있는 거였는데요. 뭐 별 수 없지. 편~하게 쉬고 있어야지."
문표의 말에 강호는 피식 웃음 지었다.
하나의 공을 예측한 것치고는 참으로 거만한 모습이었다.
양현준 투수의 주력 구종이 4개였으니 찍더라도 25%의 확률인 상황.
문표가 양현준의 투구에서 특이점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상황의 구종을 예측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호는 고개를 내저으며 관심을 꺼버렸지만, 중석의 입장은 다른 모양이었다.
"너, 문펴! 어떻게 알았어? 양현준의 버릇이라도 파악한 거야?"
"그럼요. 제가 누굽니까? 최문표 아닙니까? 자이언츠의 새로운 선구안의 달인, 최문표요. 양현준의 3구는 슬라이더일 겁니다. 자, 한 번..."
문표의 자신만만한 말이 이어지는 동안 양현준의 3구가 뿌려졌고, 3구째 구속을 확인한 중석의 표정이 다시 변화한다.
양현준의 투구 동작을 유심히 살피던 강호는 곁에서 피식 웃음지으며 이렇게 입을 연다.
"3구는 체인지업이네요."
강호의 말을 듣고, 중석이 전광판을 올려다본다.
원정팀 덕 아웃에서 정확한 구종을 파악하기 힘든 이유도 있고, 확실한 확인을 위해서 구속을 확인한 것이다.
123km.
양현준의 슬라이더 구속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느린 구속에 중석은 '문펴, 네가 그러면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몸을 돌린다.
3구는 강호의 판단대로 체인지업이었던 것이다.
"아....이게 아닌데. 저기서 양현준이 왜 체인지업을 던졌지?"
문표는 자신의 예상이 빗나가자 고개를 갸웃하며 팔짱을 끼는 모습이다.
강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런 문표의 자문에 대신 답해준다.
"삼진 잡으려고요. 못 보셨습니까? 3구째 체인지업에 성철 선배가 스윙을 하지 않습니까? 체인지업을 유인구로 던져서 삼구삼진을 잡았으니 양현준 투수의 선택이 적중한 거죠."
그것이 강호의 대답이었다.
양현준의 3구 또한 포심 패스트볼이라고 판단한 성철이 몸 쪽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헛스윙을 해버린 것이다.
문표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고, 강호는 자신이 경기 전부터 구상하고 있는 타격 전략을 고수하기로 한다.
'문표 선배의 말을 귀담아 듣다가는 이도 저도 안 돼. 오늘만큼은 타석 상황에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
강호는 문표의 장난스런 예측을 귓등으로 흘려보내고, 걸음을 옮긴다.
문표가 그런 강호에게 묻는다.
"강호 어디가? 화장실 가?"
"배트 가지러 갑니다. 이제 2번 타자 타석이니까 저도 나갈 준비해야죠."
강호는 그렇게 대답하며 자신의 배트를 가지러 걸음을 옮겼고, 그 사이 타석에 선 2번 타자 최훈이 양현준의 초구에 기습번트를 댄다.
투욱.
그야말로 툭하고 떨어지는 번트 타구였다.
최훈의 타구는 투수 양현준과 3루수 이범화, 포수 이용구 모두가 잡기 애매한 위치에 느리게 굴러간다.
자신의 번트가 묘한 곳으로 향한 것을 확인한 최훈은 전력질주로 1루로 달렸고, 뒤늦게 타구를 잡은 3루수 이범화가 1루를 향해 빠르게 공을 던진다.
"세이프!"
1루심의 판정은 세이프였다.
2번 타자 최훈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감행하면서까지 만들어낸 결과였다.
올 시즌 허리 부상 여파와 20살 고졸 루키 황인태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최훈이 자신의 선발 출장 기회를 살리기 위해 몸을 날리는 플레이를 보여준 것이다.
최훈의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 플레이는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와아아!!"
"저걸 살리네! 최훈 잘했다!"
자이언츠 팬들은 1루 베이스를 밟고 유니폼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고 있는 최훈에게 칭찬의 목소리를 전한다.
최훈이 허슬 플레이로 완성한 내야 안타는 그저 1루타의 의미에 그치기에는 많은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계석에서도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었다.
"지금은 최훈 선수가 몸을 날렸어요. 덕분에 3루수앞 기습 번트가 내야 안타로 기록됩니다."
배성한 캐스터의 상황 중계 후 이호범 위원이 코멘터리를 더한다.
"1번 타자 유성철 선수가 삼구삼진으로 물러나면서 경기가 타이거즈 배터리의 의도대로 진행될 수도 있었거든요. 타이거즈의 선발인 양현준 투수의 구위가 상당히 좋고요. 유성철 선수를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시작부터 분위기를 타이거즈 쪽으로 가져가나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내야 안타로 분위기가 조금은 바뀔 것 같네요. 이번 타석에서 병살타만 나오지 않으면 백강호 선수에게까지 타석 기회가 이어지거든요?"
이 위원은 최훈의 내야 안타로 인한 특이점을 그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단지 분위기의 흐름을 가져오는 것만이 아니라 팀의 4번 타자인 강호에게까지 기회를 연결시켜주는 안타라고 지적한다.
강호에게 타석이 연결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제는 자이언츠 팬뿐만이 아니라 모든 야구팬들이 알고 있었다.
그것은 곧 타점 생산의 기회라는 의미.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현장 팬들의 목소리가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타석에 선 전준오 선수의 뒤편에서 대기타석으로 오르고 있는 강호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와아아!!"
"백강호 파이팅!"
"58호 갑시다!"
"백강호 홈런!"
강호가 배트를 든 채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자 많은 응원이 뒤따르고 있었다.
아직 강호의 타석 기회가 온 것은 아니지만, 그가 그라운드에 발을 디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팬들은 가슴 벅차는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타석에 선 전준오 타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민망한 상황일 수도 있었다.
'실수로 병살타라도 치면 역적으로 몰리겠는데?'
전준오는 지금의 상황에 실소를 금치 못하며 자세를 잡는다.
지금 타석은 3번 타자인 자신의 차례인데 팬들은 다음 타자인 강호의 이름을 외치고 있다.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딱히 감정이 상하지는 않는다.
까마득한 후배를 질투하기에는 전준오의 연차도 적지 않았고, 강호를 향한 팬들의 기대가 어떤 의미인지 준오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더라도 나 혼자 죽어라 이거지? 좋아, 병살타를 회피하는 타격에 초점을 맞춰보자.'
준오는 이번 타석에서의 타격 전략을 순간적으로 수정한다.
원래의 계획은 정타를 의식한 타격이었다.
최근 유성철이나 박철, 스팅에게 밀려 주전 라인업에서 출전 기회를 많이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랜만의 선발 출전 기회에 욕심을 가진 채로 타석에 섰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팬들의 비난만 들은 채 벤치 멤버로 전락할 수도 있는 상황.
준오는 타격 전략을 수정하며 배트를 짧게 쥔다.
그 모습은 바로 뒤편에 앉은 포수 이용구의 눈에 포착되고 있었다.
'이것 봐라? 전준오 정도 되는 타자가 배트를 짧게 쥐었어?'
이용구는 전준오의 변화가 어떤 의미인지를 곧바로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준오를 상대하는 초구 결정이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최훈에 이어 전준오 역시 기습 번트를 감행할 수도 있다는 점과 컨택 위주의 타격을 의식한 싸인을 보낸 것이다.
치열해진 전준오와 타이거즈 배터리의 심리전을 대기 타석에서 지켜보던 강호.
타이거즈 배터리의 초구 선택을 예측해 본다.
'초구는 포심일 거야. 준오 선배의 타격 포지션으로 포심 확률이 높아졌어.'
강호는 그렇게 예측하고 있었다.
이용구 포수와 양현준 투수의 선택이 포심일 거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마운드 위의 양현준 투수라면 강력한 구위를 가진 데다 제구력까지 수위권인 포심 패스트볼을 초구로 선택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양현준 투수는 좌완투수이지 않은가.
좌완 투수가 던지는 강력한 포심 패스트볼은 노리고 친다고 해도 정타로 때려내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강호는 자신의 예상을 확인하기 위해 양현준의 세트포지션을 유심히 지켜본다.
그러면서도 양현준의 투구 모션에 배트 타이밍을 맞추는 것을 잊지 않는다.
파핫.
와인드업에 비해 간결한 양현준의 세트포지션 후, 묵직한 패스트볼이 포수 미트를 파고든다.
파앙!
포수 미트에 공이 파고들 때까지 타자인 준오는 배트를 내지 않았고, 주심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하고 있었다.
그 자신감 넘치는 투구에 강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에게 돌아올 타석을 구상한다.
'양현준 투수의 구위가 오늘따라 유독 묵직해. 제대로 노리고 친다면 홈런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강호는 문득 궁금해진다.
최대치까지 성장한 자신의 파워가 양현준이라는 국내 최정상급 좌완 투수의 구위를 이겨낼 수 있을지.
그것도 평소 때의 구위가 아니라 시즌 최고로 끌어올린 양현준 투수의 패스트볼 구위였다.
그 묵직한 구위를 이겨내고 홈런을 때려낼 수만 있다면, 이제 강호를 위협할만한 투수는 국내에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최고의 시나리오는 준오 선배가 볼넷이나 안타로 출루해서 성철 선배가 2루 이상에 위치하는 거야. 주자가 득점권에 있으면 '칠 때 친다'스킬이 적용될 테니까 최고의 스탯 상태에서 타석에 설 수 있어.'
강호는 준오가 출루한다면 그것보다 좋은 상황은 없다는 생각을 가진다.
그러나 굳이 준오의 출루가 없더라도 양현준 투수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존재했다.
'굳이 스킬 도움이 없더라도 지금의 파워와 타격 메커니즘이라면 양현준 투수의 구위를 충분히 이겨낼 수 있어!'
강호는 그렇게 생각을 마치며 타석으로 걸음을 옮긴다.
전준오가 양현준의 2구째에 기습 번트를 댄 후 1루에서 아웃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1루 주자인 성철은 2루 베이스를 밟을 수 있었고, 이제 2사 주자 2루 상황에 강호가 타석에 서게 된다.
국내 최정상급 베테랑 투수인 양현준의 자존심을 생각한다면 고의사구가 나올 수는 없는 상황.
자이언츠 팬들의 함성이 더욱 커진다.
"백강호 날려라!"
"홈런! 홈런을 보여줘!"
팬들의 함성 속에 타석에 선 강호.
그런 강호의 시야에 익숙해진 시스템의 메시지가 표시된다.
-득점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타격 아이템 사용을 묻는 시스템의 메시지에 강호는 '아니'라고 짧게 답하며 타격 자세를 잡는다.
지금은 다른 어떤 결과도 필요 없었다.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강호가 바라는 것은 오직 홈런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운드 위의 양현준을 응시하는 강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훨씬 뜨겁게 느껴진다.
그런 강호를 특유의 포커페이스로 응시하는 양현준 투수.
현장을 찾은 양 팀 팬들과 TV중계로 경기를 지켜보는 모든 팬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이었다.
'백강호! 시즌 초까지만 해도 반짝하고 사라질 선수인줄 알았는데, 어느새 국내 최고의 타자가 돼버렸어. 다이노스나 이글스, 트윈스의 선례로 본다면 백강호를 고의사구로 거른다고 해도 내가 큰 비난을 받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강호와 시선을 마주하며 기 싸움을 벌이고 있던 양현준 투수는 지금의 상황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피하지 않겠어. 승부다!'
그것이 양현준 투수가 내린 결론이었다.
88년생 올해로 32살, 기량이 만개해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국내 최정상급 투수는 강호와의 승부를 피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그것은 강호 역시 원하는 바였다.
'기간제 아이템 효과가 사라진 지금, 투수가 던지는 구종이나 코스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투수가 던지는 공을 치지 못한다면 그건 타자라고 말할 수도 없는 거야.'
강호는 생각을 마치며 쥐고 있던 배트에 더욱 힘을 준다.
누가 봐도 장타를 의식한 타격 자세였지만, 그것을 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새로운 홈런 신화를 써나가고 있는 강호가 홈런을 의식한 타격 자세를 취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오히려 강호의 홈런에 대한 열망을 확인했다는 기대감에 팬들의 마음은 더욱 설레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인 순간 양현준과 강호, 두 선수의 승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