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55화 (25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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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호의 저력

    25일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아침 기상과 함께 비가 그친 하늘을 확인한 손 감독은 미리 준비했던 대로 경기 준비에 돌입한다.

    감기로 컨디션이 떨어진 선수들의 상태를 체크하는 것을 시작으로 오늘 진행될 경기를 승리로 이끌기 위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나선다.

    그 후, 라인업 구상을 위해 자리에 앉았을 때 함께 있던 김 수석이 말을 걸어온다.

    "감독님, 오늘 경기에서 중석이를 넣어보는 게 어떨까요? 어제부터 컨디션이 부쩍 올라온 모양입니다."

    김 수석의 제안에 손 감독이 잠시 행동을 멈춘다.

    작성을 시작한 라인업 차트에는 오직 한 선수의 이름만이 기입된 상태였다.

    4번 자리의 강호.

    손 감독이 라인업 차트에 가장 먼저 적어 넣은 이름이었다.

    "채중석?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손 감독이 묻는다.

    그동안 라인업 구상을 할 때마다 김 수석을 곁에 두기는 했지만, 김 수석이 따로 의견을 더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김 수석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보려는 손 감독이었다.

    "중석이가 의욕이 대단합니다. 다른 선수들한테 들어보니까 어제 두 시간 동안 실내 운동을 했답니다. 제가 직접 보기도 했고요. 문표나 스팅이 감기에서 회복되고는 있어도 컨디션이 100%는 아니지 않습니까? 지명 타자나 1루수 자리에 중석이를 넣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팀 분위기에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요."

    김 수석의 주장은 나름의 근거가 있어보였다.

    단지 컨디션이 좋은 이유라면 중석보다 컨디션이 좋은 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석을 라인업에 넣으면 팀 분위기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나쁘지 않게 들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석을 집적 확인하지 않고, 선발 라인업에 넣을 생각은 없었다.

    오랜 시간 손 감독 본인이 고수해온 원칙을 깨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경기 전 훈련 때 상태를 확인해봐서 대타 정도로 기용할 수 있겠지. 한정된 타석 기회에서 중석이가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좋은 일이고."

    그것이 손 감독의 대답이었다.

    경기 전 훈련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에야 중석에게 기회를 부여할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김 수석도 자신의 말 한 마디에 손 감독이 무턱대고 중석을 기용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손 감독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 하나를 추가하는 조언에 만족하는 김 수석이었다.

    '감독님이 인정에 이끌리거나 단기적인 분위기에 혹하실 분은 아니니까. 중석이도 이 정도 기회가 생긴 것에 만족하겠지. 녀석도 프로 생활 19년차 프로 선수니까.'

    김 수석을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한 발짝 물러선다.

    채중석은 올해로 37살이 되는 선수지만, 빠른 년생인 까닭에 프로 입단이 나이에 비해 1년이 빨랐다.

    올해로 데뷔 19년 차 베테랑인 중석이 지휘부의 이런 의지를 읽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선발 라인업 한 자리를 원한다면 강호처럼 확실한 걸 보여줄 필요가 있어. 적어도 지금의 자이언츠는 그런 팀이 되었으니까.'

    김 수석은 그렇게 생각을 마치며, 손 감독이 작성해 나가는 라인업에 시선을 고정한다.

    잠시 후 작성이 완료된 라인업을 확인한 김 수석은 조금은 놀란 얼굴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괜찮겠습니까? 라인업 변동이 너무 심한 게 아닐까요?"

    김 수석은 확인 차 묻고 있었다.

    강호의 이름을 4번 자리에 넣음으로써 시작된 라인업 구상은 김 수석이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다른 결과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손 감독은 그런 김 수석에게 작성한 라인업을 건네며 표정 변화 없이 입을 연다.

    "오늘 경기는 우리 자이언츠의 마지막 시험무대가 될 게야."

    "시험무대요? 어떤 시험 말입니까?"

    자신의 말에 대한 김 수석의 되물음에 손 감독은 진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우리가 우승할 자격을 갖추었는지,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경기가 되는 거지. 이대로 라인업 통보하도록 해!"

    손 감독의 확언으로 오늘 라인업이 결정되고 있었다.

    우승할 자격을 시험해 보겠다는 손 감독의 말, 김 수석은 왠지 그 말에 묘한 기대감을 품게 된다.

    그런 김 수석의 기대를 안은 채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자이언츠 선수단은 광주 챔피언스 필드로 이동해 있었다.

    챔피언스 필드 관중석은 최근 뜨겁게 달아오른 자이언츠의 팀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마산과 잠실에서 목격했던 것처럼 광주에서도 여전히 뜨거운 자이언츠 유니폼 물결을 재확인하게 된다.

    "저기! 백강호 선수다!"

    "어디? 와아아! 백강호 선수! 파이팅!"

    "오늘도 홈런 갑시다!"

    챔피언스 필드의 과반수를 채운 자이언츠 원정 팬들은 경기 전 훈련을 위해 그라운드를 밟은 강호에게 열화와 같은 응원의 목소리를 토해낸다.

    오늘 경기에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자이언츠 선수 모두가 그라운드를 밟고 있었지만, 팬들의 눈에는 오직 강호만 보였다.

    평소라면 이런 분위기에서 문표가 질투의 말을 꺼냈겠지만, 오늘 문표를 포함한 다수의 주전 선수들이 라인업에서 빠져 벤치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 오늘도 이럴 줄 알았지."

    문표는 벤치에 앉아 구단에서 나눠준 건강 음료를 들이키며 오늘 경기 전, 분위기를 총평하고 있었다.

    강호를 향한 팬들의 애정이 식기는커녕 더욱 더 뜨거워져만 가는 현장의 분위기였다.

    문득 문표의 시선이 팬들의 성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주인공에게로 향한다.

    강호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경기 전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강호에게 수비 훈련을 함께 하고 있던 1루수 김상훈이 질문을 던진다.

    "강호, 오늘 컨디션 좋은가 보네? 긴장 안 돼?"

    "긴장이요?"

    "그래, 너 오늘 고비만 넘기면 연속 경기 홈런 신기록도 가능하잖아?"

    상훈의 물음에 강호는 피식 웃어 보인다.

    그의 말대로 오늘 경기는 강호에게 많은 의미가 부여된 경기였다.

    여덟 경기 째로 이어지고 있는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대호 선수가 보유하고 있는 아홉 경기 연속 홈런 기록과 고작 1개차로 좁혀진 상황에서 오늘 경기마저 홈런을 때려낸다면 이대호 선수의 세계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는 것이다.

    '기간제 아이템의 효과도 사라지고, 홈런 아이템도 더는 없어. 타석 상황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건 스킬 정도가 전부야.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이템 도움 없이 홈런을 칠 수 없는 타자일까?'

    강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지금의 자신은 과연 어떤 타자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일곱 번째 프리마켓 방문으로 컨택에 이어서 파워 스탯까지 최대치를 찍었어. 거기다가 두 개의 스킬 효과까지 받고 있는 상태. 나는 과연 아이템 도움 없이 홈런을 때릴 수 없는 선수일까?'

    재차 질문을 던져보며 마음의 소리를 들어본다.

    가슴 속 깊은 곳까지 찾아보지 않아도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대답이 있었다.

    그것은 질문에 대한 부정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단지 프리마켓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노력을 더한 자신의 기량에 대한 확신이 생겨난다.

    '절대 아니야. 오늘 경기, 그리고 앞으로 남은 모든 경기에서 그걸 증명해 보일 테니까. 이제 아이템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보일 수 있다는 걸.'

    강호는 그렇게 생각을 마치며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상훈에게 대답의 말을 꺼낸다.

    "해봐야죠."

    그것이 강호의 대답이었다.

    대답 속에 담긴 자신감을 느낀 상훈은 더 이상 강호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강호의 말대로 경기는 해봐야 아는 것이지 않은가.

    100번의 치밀한 예상이 있어도 경기 중에 벌어지는 사소한 변수를 통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는 것이 스포츠 경기였다.

    결국 강호의 기록에 대한 결과는 경기를 통해 확인해봐야 했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시간과 장소는 경기 시작을 준비하는 중계석으로 옮겨진다.

    "안녕하십니까? 8월 25일 일요일 광주 챔피언스 필드에서 맞붙게 된 타이거즈와 자이언츠, 자이언츠와 타이거즈 간의 시리즈 5차전 중계를 맡은 캐스터 배성한입니다. 금요일과 토요일, 앞선 두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되면서 많은 팬들이 우울해하셨을 것 같은데, 오늘은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며칠 째 계속되던 비구름이 완전히 사라진 광주 하늘을 보고 계십니다."

    캐스터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TV중계가 시작되고 있었다.

    배 캐스터의 인사말이 끝난 후 곧바로 곁에 앉은 해설 위원이 입을 연다.

    오늘 경기에서 해설 위원으로 나선 사람은 이호범 위원이었다.

    그는 다소 보수적이고 객관적인 해설을 하기로 정평이 나있었지만, 최근에는 그런 명성이 다소 떨어진 분위기였다.

    시즌 초 강호에 대한 해설 내용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한 까닭에 강호의 기록 달성을 전망했던 예언이 꽤 많이 어긋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의식한 것인지 오늘 경기만큼은 조금은 다른 해설을 준비해온 이 위원, 그가 입을 연다

    "오늘 경기에는 많은 의미가 부여되고 있거든요? 홈팀 타이거즈의 5위권 도약이 걸려있는 경기라는 점도 있고요. 원정 팀 자이언츠의 5연승이 달려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백강호 선수의 홈런 기록일 것 같아요."

    이 위원은 그렇게 강호의 이름으로 운을 뗀 후, 약간은 웃음기 띤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간다.

    "2010년에 자이언츠의 4번 타자였죠. 이대호 선수가 기록한 아홉 경기 연속 홈런이 연속 경기 홈런 최고 기록입니다. 이 기록은 국내 기록일 뿐만 아니라 세계 기록이기도 하고요. 백강호 선수가 오늘 경기에서 도전할 기록이 바로 이 기록인데요. 문제는 타이거즈의 오늘 선발 투수가 양현준 선수라는 점입니다. 양현준 투수 최근 다섯 경기에서 3승 무패, 0.93의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어요. 양현준 투수의 시즌 방어율이 3점대인 것을 생각한다면 최근의 기세가 무서울 정도거든요. 백강호 선수가 연속 경기 홈런 신기록을 세우기 위해서 넘을 마지막 고비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호범 위원은 타이거즈의 선발 투수로 내정된 양현준의 이름을 거론하며 강호의 기록 달성에 가장 중요한 특이점을 밝힌다.

    그의 발언으로 TV를 통해 경기를 관전하고 있는 자이언츠 팬들은 잠깐이나마 걱정을 하게 된다.

    "양현준이 요즘 그렇게 구위가 좋아? 오늘 경기에서 홈런 기록이 끊어지는 건 아니겠지?"

    "8개까지 치고, 9개째에서 침묵하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건데. 오늘도 칠 수 있을까?"

    "당연히 치겠지! 백강호 선수인데! 쓸데없는 걱정할 시간에 응원이나 해."

    팬들의 우려는 곧 강호에 대한 믿음으로 뒤바뀌고 있었다.

    상대 선발 투수에 대한 걱정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자이언츠 팬들이었다.

    "오히려 양현준이 오늘 경기를 걱정해야지. 우리 백강호 선수한테 홈런을 맞을 거니까. 안 그래?"

    강호에 대한 팬들의 믿음을 보여주는 대목일 것이다.

    대다수 자이언츠 팬들은 강호의 홈런을 확신하며 이어지는 자이언츠의 라인업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라인업을 확인하는 팬들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하고 있었다.

    장소는 자이언츠의 타순을 읽어 내리는 중계석으로 다시 이동한다.

    "1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부터 시작되겠습니다. 타순입니다. 1번 타자 우익수 유성철, 2번 2루수 최훈, 3번 중견수 전준오, 4번 타자 유격수 백강호, 5번 지명타자 이인호, 6번에 3루수 황제인, 7번에는 1루수 김상훈, 8번 좌익수 한택근, 9번은 포수 안민경의 순입니다."

    라인업을 읽어 내린 배 캐스터는 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오늘 자이언츠의 라인업에서 상당한 변화를 느낀 이유였다.

    "자이언츠의 라인업에 주목할 점이 상당하네요. 1번 유성철과 4번 백강호 선수를 제외한 전 타순에 변경점이 있습니다. 기존의 박철과 스팅, 강민수와 최문표, 황인태, 오진택. 이 여섯 명의 선수가 라인업에서 빠져 있어요. 아홉 명의 야수 중에 여섯 명이 교체되었는데요. 이런 라인업 변화를 어떻게 보십니까?"

    배 캐스터는 이전 시리즈와는 확연히 다른 자이언츠의 라인업 구성을 지적하며, 이 위원에게 바통을 넘긴다.

    그러자 준비하고 있던 이호범 위원이 '음~'하는 침음과 함께  입을 연다.

    "경기 전에 확인해본 바로는 최문표, 스팅, 오진택, 박철, 황인태 선수가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합니다. 강민수 선수는 감기는 아닌데 컨디션이 조금 떨어져서 휴식차원으로 뺐다고 하고요. 아마도 잠실에서 있었던 우천 경기로 자이언츠 선수들의 컨디션이 전반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위원은 자이언츠 코칭스태프에게 전달받은 사실을 우선적으로 밝힌 후, 자신의 의견을 더한다.

    "그렇다고 해도 시험적인 성격이 강한 라인업입니다. 물론 오늘 라인업에 등록된 야수들의 기량이 나쁜 건 아니에요. 아홉 선수들의 평균 타율이 3할이 넘으니까요. 선수들의 수비 실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손성조 감독이니까 수비 능력 또한 검증받은 야수들이고요. 그래도 선발 출장하던 주전 선수들을 여섯 명이나 교체한 거거든요.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캡틴 강민수 선수는 타순에 넣는 게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상황에 따라서는 강민수 선수나 감기 증세로 빠져 있는 선수들이 대타로 나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위원은 그렇게 자이언츠 타순을 설명하고 있었다.

    배성한 캐스터의 입장으로서는 다소 부족한 설명이라 느꼈는지 다른 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손성조 자이언츠 감독이 이런 라인업을 들고 나온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타순을 보시면 중심 타선의 무게감은 크게 약하지 않거든요. 2할 9푼 4리의 전준오 선수가 3번 타순이고, 3할 1푼 3리를 기록하고 있는 이인호 선수가 5번 타자에요. 기존 3번 타순에 있던 황제인 선수가 6번으로 가고요. 여기에 4번 타자 백강호 선수를 생각한다면 결코 만만한 타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추해 보자면 4번 타자 백강호 선수를 중심으로 한 손성조 감독의 자신감이지 않을까 싶어요. 4번 타자인 백강호 선수만 중심을 잡고 있으면 대대적인 라인업 변화에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드러난 라인업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이호범 위원의 솔직한 생각이었다.

    강호를 중심으로 한 손성조 감독의 자신감, 그 감정이 오늘 경기에서 표출된 것이라고 여긴다.

    배성한 캐스터 역시 이 위원의 그런 주장에 동의하고 있었다.

    자신감이 없다면 오늘과 같은 라인업 구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 경기까지 자이언츠가 이기면 정말로 1위 경쟁은 알 수 없겠는데? 이러다 자이언츠가 진짜 1위하는 거 아니야?'

    배 캐스터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궁금증을 속으로 삼킨다.

    자이언츠의 첫 타자인 유성철이 타석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기 때문에 캐스터인 본인도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

    그가 곧 입을 연다.

    "경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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