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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를 넘다
트윈스와의 잠실 3연전이 모두 종료된 시점, 장소는 자이언츠 본부로 이동한다.
지정만 사장은 6회 초 터져 나온 강호의 결정적인 한방으로 경기가 2대 1로 종료되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선 채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 캐스터의 경기 종료 선언과 함께 잔뜩 긴장하고 있던 지 사장이 접대용 소파에 몸을 기댄다.
그런 지 사장의 얼굴에는 진한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저걸 해내네. 저게 사람이야? 혹시 외계인은 아니겠지?"
지 사장은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의문을 가지며, 웃음 짓고 있었다.
그를 웃음 짓게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한 선수로 인한 것이었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도 홈런을 때려버리네. 그것도 장외 홈런을."
지 사장은 문득 창밖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자이언츠와 트윈스의 경기가 진행된 잠실에서 내리는 비보다 확연히 굵어 보이는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남부전선을 중심으로 형성된 비구름이 이제 서서히 중부지방을 덮어가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부산을 포함한 경남 권은 하루 100mm가 넘는 소나기가 쏟아지는 중이었다.
"다음이 광주 일정이었나? 어디 보자. 광주 날씨는 어떨까?"
지 사장은 강호의 홈런으로 인한 여운을 갈무리한 후, 실질적인 부분을 체크하고 나섰다.
팀이 다시 연승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고, 강호의 연속 경기 홈런 기록 역시 현재 진행 형이었다.
지금의 좋은 흐름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주말에 잡힌 일정을 꼭 체크해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응? 광주도 주말 내내 비가 오는 거야? 이렇게 되면 좋은 흐름이 끊어질 수 있을 텐데.'
지 사장은 광주의 주말 날씨를 확인하며 걱정에 사로잡힌다.
그러면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 지 사장은 피식 웃음 짓는다.
"내가 언제부터 팀의 연승보다 백강호 선수의 기록을 걱정하고 있었던 거지? 이러면 구단 사장으로서 자격 미달인데?"
지 사장의 혼잣말을 통해 그의 내심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어느새 팀의 연승 기록보다 강호의 기록을 중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1위를 노리고 있는 팀 성적보다 한국 야구사를 새로 쓰고 있는 강호의 기록을 더욱 높게 평가하게 된 것이다.
강호의 팬이라면 당연한 모습일 테지만, 지정만 사장은 자이언츠라는 구단의 사장이었다.
조금은 자신의 생각을 반성하게 된다.
"에잉, 몰라. 그래도 백강호 선수가 최고야. 우리 백 선수가 살아야 팀이 1위도 하는 거 아니겠어? 생각난 김에 우리 백 선수 댓글이나 달아볼까?"
지 사장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하나 둘 씩 뜨기 시작한 자이언츠 기사에 댓글을 달려했다.
그런데 그런 지 사장의 의지를 방해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똑똑똑.
"사장님, 기획실장입니다!"
노크와 함께 들려온 목소리에 지 사장은 키보드를 누르던 손길을 멈추지 않은 채 소리를 내지른다.
"들어와!"
지 사장의 목소리에 허동준 기획실장이 빼꼼이 고개를 내민다.
늦은 시간, 사장실의 비서는 이미 퇴근하고 없었기 때문에 입실 보고 없이 노크와 허락을 통해 대면하게 된 두 사람이었다.
무언가 보고할 것이 있는 건지 두툼한 보고서를 들고 온 허 실장에게 지 사장은 다짜고짜 질문을 던진다.
"얼마야?!"
주어와 목적어를 생략한 지 사장의 물음.
맥락이 상실된 그 물음에 허 실장은 이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네?"
"얼마면 되겠냐고?"
여전히 주어가 없는 지 사장의 물음에 허 실장이 빠르게 두뇌 회전에 들어간다.
'뭐가 얼마냐는 말이야? 내 연봉? 아니면 본인 연봉? 그것도 아니면 아까 전에 먹었던 저녁 값?'
허 실장은 전혀 정답 같아 보이지 않는 몇 개의 단어를 떠올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에라 모르겠다. 사장님은 본인이 뭐 원빈이라도 되는 줄 아시나? 얼마면 되냐니? 내가 얼마 달라고 해도 주지도 않을 거면서.'
허 실장은 한 가지 사실만은 잘 알고 있었다.
지 사장이 묻고 있는 돈의 정체가 무엇이든 그 돈을 자신에게 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다.
"그러니까 뭐가 얼마면 되겠습니까?"
"저길 봐! TV화면을 보란 말이야."
그제야 지 사장은 여전히 켜져 있는 TV화면을 손끝으로 가리킨다.
지 사장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렸던 허 실장은 야구 경기가 끝난 후 야구 프로그램을 방영 중인 TV화면에 시선이 닿는다.
TV에서는 마침 강호의 57호 홈런 화면을 하이라이트로 그려주고 있었다.
'아...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 같네.'
허 실장은 TV화면에 그려지는 강호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지 사장이 묻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어림짐작 할 수 있었다.
지 사장이 평소 강호에게 쏟고 있는 애정, 그리고 틈만 나면 자이언츠 기사에 들어가 강호를 찬양하는 댓글까지.
이 모든 정황을 살펴봤을 때 지 사장이 묻고 있는 바는 분명해진다.
"백강호 선수 기록 달성 포상금 말씀이시죠?"
"그래! 당연한 거 아냐? 내가 설마 허 실장 연봉 물은 거겠어? 우리 백 선수한테 줄 포상금을 얼마로 하면 되겠냐는 말이야."
지 사장은 이번에도 강호에 대한 애정을 포상금이라는 형태로 전달하려 하고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모습이라 더는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그래서 곧바로 염두 해두고 있던 대답을 꺼내는 허 실장이었다.
"보상을 하는 것도 좋겠지만, 얼마 전에 7천만 원을 시상하지 않았습니까? 벌써 백강호 선수에게 건넨 포상금 규모만 웬만한 선수 연봉이 넘을 겁니다. 7천만 원을 준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또 다시 포상금을 주는 건 관례에 어긋나지 않을까요?"
허 실장은 일단 반대의 의견을 밝힌다.
지 사장과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무턱대고 찬성하는 것보다 한 번의 반대 후 정황을 살피는 것이 대화를 빨리 끝내는데 유리하다는 결론을 얻은 상태.
'일단 한 번 반대하고, 사장님 반응 봐서 괜찮은 제안을 꺼내는 게 정답이야. 사장님은 흥분하셨을 때 결정이 빨라지시니까.'
그것이 허 실장의 생각이었다.
나름 괜찮은 제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단은 반대 의견을 밝힌 이유였다.
허 실장의 반대에 지 사장은 순간 울컥하는 표정으로 바뀐다.
"뭐, 관례? 관례 같은 소리하고 앉았네. 그딴 소리나 하니까 프런트가 구시대 속에 살고 있다는 비난을 듣는 거야. 얼마 전에 있었던 사장단 모임에서 내가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던 게 바로 백강호 선수 덕분이라고! 우리 백강호 선수 정도면 관례 정도는 깨도 돼잖아? 안 그래? 우리 백 선수한테 주는 돈이 아까워? 그게 네 돈이냐고?"
지 사장은 크게 분개하며 허 실장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허 실장은 지금이 자신의 제안을 밝힐 적기라고 느낀다.
'이 때야!'
허 실장은 순간 눈빛을 빛내며 한걸음 나선다.
그동안 지 사장의 구박과 비난을 들으며 그를 보필하다보니 어느새 최적의 타이밍을 포착하는 능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가히 인자기 급 기회포착 능력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5700만원이면 어떨까요? 57호 홈런이라는 의미를 더해주기도 하고, 금액 적으로도 적합합니다. 억 단위가 되면 좋겠지만, 백강호 선수가 갱신할 앞으로의 기록까지 생각하면 지금은 이 정도 선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추세라면 백강호 선수의 60-60기록 달성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고, 다른 기록들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억 단위의 포상금을 주는 것 보다는 기록 달성 때마다 상금을 부여하는 것이 팬들 보기에도 좋지 않을까요? 언론에 노출시키는 빈도도 늘어날 테니까 여러모로 이점이 많습니다. 현재 예산으로도 적절한 보상이고요."
갑작스럽게 시작된 허 실장의 논리정연한 말에 핏대를 세우던 지 사장이 입을 다문다.
삿대질까지 하며 호통을 치다가 허 실장에게 타이밍을 뺏기고 '어? 이게 아닌데'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기까지 한다.
잠시 허 실장의 설명을 곱씹어보며 생각에 잠긴 지 사장.
그는 연신 '5700? 괜찮은 것 같은데?' 라고 중얼거리며 사장실을 서성인다.
그러다가 결정을 내렸는지 '짜악'하고 양손을 맞부딪힌다.
"좋아! 5700만원이 적당하겠어. 억 단위를 주기에는 허 실장 말처럼 다음 기록도 대비해야 되고. 57홈런이라는 상징성도 있으니까 그 숫자를 맞추는 것도 좋겠지."
"네, 그리고 60-60달성 때 금액을 조금 더 올리고, 최종적으로 정규 시즌 우승이 확정되면 선수단 전체에 포상을 해야 하니 그런 점도 고려해야겠지요."
허 실장은 한 번 더 승부수를 꺼낸다.
정규 시즌 우승에 따른 포상금 지급.
단지 강호에게 국한된 포상금이 아니라 선수단 전체에 대한 포상금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래, 맞아. 지금 말한 내용대로 당장 준비해둬! 다음 홈경기에 앞서 포상금 지급을 할 테니까, 홈경기 일정에 맞춰서 이벤트를 준비하란 말이야."
"네, 곧바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지시하신 예산안은 수정해서 가져왔습니다."
"거기에 둬."
"넵."
허 실장은 그렇게 지 사장의 모든 공격을 방어해낸 뒤 유유히 사장실을 벗어나는 모습이다.
사장실 문을 나서는 허 실장의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지 사장의 입가에도 묘한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많이 컸네. 허 실장."
지 사장은 이미 나가버린 허 실장을 칭찬하며 그가 놓고 간 예산안을 뒤적인다.
그러다가 허 실장이 했었던 말 중에 하나를 떠올리고는 그 내용을 곱씹어 본다.
'최종적으로 정규 시즌 우승이 확정되면 선수단 전체에 포상을 해야 하니 그런 점도 고려해야겠지요.'
정규 시즌 우승을 고려해야 한다는 허 실장의 말.
그 말이 묘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이제 지 사장뿐만 아니라 허 실장 역시도 자이언츠의 정규 시즌 우승을 달성 가능한 목표로 두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허 실장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구단 직원 전체와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모든 팬들의 시선이기도 했다.
"우승."
지 사장은 그 단어를 작게 읊조려본다.
그러자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낀다.
프로야구 창단 원년 구단임에도 불구하고, 자이언츠에게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정규 시즌 우승이라는 영예.
이제 그 목표가 한층 더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손 감독, 당신은 이런 상황을 예측한 거요?"
지 사장은 혼잣말로 묻고 있었다.
자신의 삼고초려에도 1군 사령탑 자리를 여러 차례 거절했었던 손성조 감독의 혜안에 대해 문득 궁금해진다.
그리고 1군 사령탑 자리를 수락하며, 우승이라는 목표를 당당하게 밝혔던 그의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생생했다.
그래서 남은 경기들이 더욱 기대되는지도 몰랐다.
"우승, 그까짓 거 한 번 해봅시다!"
지 사장은 어느 때보다 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돌이킬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손 감독이 자신에게 했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지기 위해, 오늘도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사무실을 떠나지 않는 지정만 사장이었다.
한편, 자신의 포상금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강호.
장소는 강호와 선수들이 자리한 원정 버스로 옮겨진다.
내리는 빗속에서 치러진 경기로 인해 컨디션이 급격하게 떨어진 몇몇 선수가 있었다.
그 중에서는 오늘 경기에서 9번 타자이자 1루수로 선발 출장한 문표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이고, 삭신이야. 온 몸이 정상이 아니네."
본인의 팔뚝을 주무르며 엄살을 떠는 문표.
강호는 그런 문표를 타박하고 나선다.
"선배님은 다른 야수들보다 수비 부담이 적은 1루수지 않습니까? 움직이는 범위도 적고요. 어떻게 유격수인 저보다 더 엄살을 부리십니까?"
강호는 문표의 포지션이 수비 부담이 적은 1루수라는 점을 지적하며 웃음 짓는다.
그러자 문표의 반박이 만만치 않았다.
"강호 후배, 이렇게 비오는 날에 1루에 가만히 서서 수비하려니까 체온이 떨어지는 거야. 우리 같은 운동선수가 경기 중에 체온 떨어지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잖아? 체온이 떨어지면 부상 위험도 커지고, 바이오리듬도 깨지는 거라고. 내가 그 위험한 여건 속에서 경기를 했으니 컨디션이 바닥을 쳐도 이상한 게 아닌 거야."
청산유수와도 같은 문표의 대답에 강호는 고개를 끄덕인다.
허점을 찾으려면 충분히 찾을 수 있겠지만, 저렇게 변명에 들어간 문표와 말씨름을 하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그냥 대꾸를 포기하고, 자신의 일에 몰두하기로 한 것이다.
그때, 강호의 근처에서 재채기 소리가 들려온다.
"에이취!"
요란한 기침 소리와 함께 앞자리에 앉은 황인태의 몸이 들썩인다.
인태는 최훈을 대신해서 주전 2루수 자리를 차지한 내야수로서 강호와 키스톤 콤비를 이루는 선수였다.
키스톤 콤비(keystone combination)란 2루수와 유격수를 묶어서 부르는 말이었다.
인태의 기침 소리에 강호의 곁에 앉은 문표가 깜짝 놀라 입을 연다.
"인태! 감기 걸렸어? 너 저리 앞자리로 가!"
"네? 갑자기 왜요?"
"왜긴 왜야? 너 강호한테 감기 옮기면 어쩌려고 그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인태를 추방하려는 문표의 행동에 강호로서는 참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다른 선수들은 상관없지만, 강호 후배는 감기 걸리면 안 돼! 이건 엄청 중요한 일이라고! 인태 어서 앞자리로 옮겨. 저 앞에 빈자리로 가라고!"
"아, 네. 그러겠습니다."
인태는 대 선배인 문표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앞자리로 이동한다.
강호가 나서서 만류해 보지만, 오히려 그런 강호를 만류하는 손길이 있었다.
그는 바로 야수조 최고참인 지명타자 채중석이었다.
"문펴 말이 맞아. 다른 선수는 몰라도 강호 너만큼은 안 되지. 감기 같은 잔병치례 때문에 연속 홈런 기록이 깨질 수는 없잖아? 그리고 강호 네가 빠지면 팀 연승 기록도 휘청거릴 거고."
중석의 말에 많은 선배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다.
심지어 캡틴 강민수마저 동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에췻!"
또 한 번의 재채기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한 선수에게로 모인다.
그는 바로 문표였다.
인태에 이어 재채기를 토해낸 문표에게 중석이 손짓을 해 보인다.
"저리 썩~ 꺼져! 어디 강호 옆 자리에서 바이러스를 옮기려고 그래? 저 앞자리로 가!"
"아, 젠장. 내가 왜 감기에 걸렸지?"
"이유는 필요 없고, 저리 가라고. 이 바이러스 덩어리야."
평소 같았으면 중석의 타박에 반박했을 문표지만, 지금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본인이 인태에게 한 말이 있어서인지 얼른 짐을 챙겨들고는 앞자리로 이동하는 문표.
강호가 그런 문표를 만류하기 위해 나섰지만, 중석이 손을 들어 보인다.
"강호는 여기에 앉아 있어. 괜히 문펴랑 어울리다 감기 옮으면 어떡해? 알겠지?"
중석은 그렇게 당부의 말을 건네며, 손수 물티슈를 꺼내 들고 문표가 재채기를 뱉어낸 시트를 닦아내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본인도 감기에 옮을까 조심하는 모습이 코믹하게 느껴진다.
"그럼 편히 쉬라고, 우리 4번 타자~~"
중석은 물티슈로 문표의 흔적을 모두 지운 후 강호에게 윙크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문표와 중석이 앞자리로 이동하자 덕분에 뒤쪽 자리가 조용해졌다.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네.'
왠지 조용해진 분위기가 편하게 느껴지는 강호.
그의 시선이 곧 차창 밖으로 옮겨진다.
부산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에서도 여전히 빗방울이 차창을 때리고 있었다.
오히려 부산에 가까워질수록 비가 거세지는 느낌이었다.
강호는 그런 빗줄기를 바라보며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제 홈런 아이템은 없어. 그리고 기간제 아이템의 효과마저도 사라지고 말았어.'
트윈스 경기를 통해 달라진 사실을 곱씹어 본다.
이번 시리즈 경기를 통해 강호는 57홈런이라는 대업을 달성할 수 있었지만, 덕분에 업적 보상으로 받은 일회용 홈런 아이템을 모두 소진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시리즈 마지막 경기를 기점으로 기간제 아이템인 '내가 심판이다'의 효과도 사라져 버렸다.
이제부터 만들어질 홈런 기록은 본연의 타격 능력으로 승부를 봐야하는 것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고비겠구나.'
강호는 다음 경기가 진정한 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홈런 아이템도, 기간제 아이템도 없이 본연의 능력만으로 홈런을 때려야 하는 상황.
그렇기 때문에 다음 경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마냥 편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해내야만 해! 여기에서 기록이 멈춰버리면 여덟 경기 동안 때려낸 홈런의 의미도 퇴색돼버리는 거니까.'
강호는 각오를 다지며, 다음 시리즈 경기를 일찍부터 준비하고 나선다.
그런 강호와 선수단을 태운 원정 버스는 어느새 부산을 향해 들어서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마늘주사는 가정의학과에서 투약받을 수 있는 링겔이라 보시면 됩니다.
운동 선수들이 기력이 떨어지면 종종 맞는 링겔인데 효과는 좋은 것 같습니다.
마늘 성분이 든 것은 아니고, 링겔을 꽂으면 입에서 마늘 향이 올라와서 그렇게 불린다고 합니다.
기력이 떨어지거나 의욕을 다소 상실했을 때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저한테는 효과가 있네요.
독자님들께는 환절기 감기가 피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_^